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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민주주의 - 신자유주의 이후의 사회를 구상하다
김상준 지음 / 아카넷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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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김상준 경희대 NGO 대학원 교수는 『미지의 민주주의』에서 정치·사회적인 영역에서 신자유주의 이후의 새로운 미래를 구상하고 있다. 저자는 역사의 발전이 끝났다는 ‘역사의 종언’류의 종언 담론에 반발해 ‘미지(未知)’를 내세운다.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언젠간 드러날 미지에 대한 인식을 통해 현실의 정체에서 벗어나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미지를 인식하는 방법으로 ‘성찰성’을 제시하고, 특히 윤리적 성찰의 가능성에 주목해 ‘미지의 윤리’를 제시한다. 미지의 윤리란 현재의 자신을 타자화하는 성찰을 통해 자기 이해(利害)의 굴레를 넘어서는 것이다. 이는 알랭 바디우가 “자신에 대한 초과”라고 표현한 것으로 롤스가 말한 ‘무지의 베일’을 쓴 본원적 입장과도 관련이 깊다.

그는 이렇게 마련된 미지의 윤리로 국가-시장-시민사회가 공공성에 따라 유기적으로 연계된 ‘시민적 사회’를 구상한다. 이 사회의 핵심은 공공 사안에 대한 ‘성찰적 합의’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그 실천방안으로 저자는 3부에서 ‘시민의회’라는 새로운 헌법기관을 제안한다. 시민의회는 시민 정책 배심원제 같은 심의제와 고대 아테네식 추첨형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심의기구다. 해당 의제와 관련 없는 시민들이 공정하게 공공의 안건을 심의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저자인 김상준 교수는 “이 책이 젊은 세대가 암울한 현실에서도 미지에 대한 인식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는 용기와 희망을 찾는 데 일조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학신문, 2009년 9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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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캐피털리즘 - 표류하는 개인과 소멸하는 열정
리차드 세넷 지음, 유병선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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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삶은 하나의 서사라 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노후를 준비한다. 그러나 최근 경제위기로 약혼자들은 결혼을, 신혼부부들은 출산을 미루고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노후 문제도 펀드의 수익률이 곤두박질치면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됐다. 이번 위기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서사’를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그들의 삶을 불확실성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오늘날의 ‘새로운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리처드 세넷의 『뉴캐피털리즘』이 출간됐다.  

노동사회학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계급의 숨겨진 상처』(1972),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1998)를 저술한 바 있는 세넷은 이번 저서에서도 노동현상을 통해 사회를 통찰하며 삶의 서사를 파괴한 주범을 지목한다. 이른바 MP3형 조직이 그것인데, 듣고 싶은 노래 순서를 그때그때 바꿀 수 있는 MP3처럼 유연한 노동조직을 추구하는 새로운 자본주의가 노동자들의 미래를 불확실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새로운 자본주의 신봉자들은 노동유연화가 개인의 자유로움을 증진시킨다고 역설하지만, 세넷은 오히려 증폭된 불확실성이 삶의 서사를 파괴한다고 비판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변화무쌍한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을뿐더러 당장 자신의 일자리부터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부제처럼 ‘개인을 표류시키고 열정을 소멸시키는’ 새로운 자본주의 문화에 맞서기 위해 세넷은 책의 말미에서 ‘장인정신’이라는 가치를 제시하고 있다. 그는 장인정신을 한마디로 ‘일 그 자체를 위해 어떤 일을 잘 해내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세넷은 “자신의 이해득실을 초월한 헌신만이 사람들을 정서적으로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며 “그런 헌신이 없다면 사람들은 생존경쟁의 살벌함 앞에 무릎 꿇고 말 것”이라고 역설한다. 시시각각 담당업무가 변하는 새로운 자본주의 문화에서 ‘장인’형 인간은 외곬이라며 홀대받고 있지만 장인정신은 오히려 새로운 자본주의가 빠뜨린 ‘헌신’이라는 기본 덕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쓰레기가 되는 삶들』에서 현대사회가 ‘쓰레기’와 다를 바 없는 지위를 가진 계층을 끊임없이 배출한다고 비판했다. 바우만의 지적에 따르면 세넷이 말하는 불확실성의 세계에서 표류하는 현대사회의 개인들도 언젠가 쓰레기 신세가 될지 모르는 일이다. 아쉽게도 세넷은 단지 국가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적인 지위를 부여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그들이 표류하지 않을 ‘정신적이고 정서적인 닻’을 제공하자는 정도에서 논의를 끝내고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의 서사가 뒤흔들린 상황에서 ‘어떻게’ 서사를 회복시킬 수 있는 지가 관건이기에 그의 결론은 다소 궁핍하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현대사회가 파괴한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 ‘노동’을 논의의 중심에 재등장시킨 이 책은 그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의의를 갖는다. 마르크스는 인간을 ‘노동하는 존재’로 보고, 자아실현을 성취하는 노동 행위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가의 이윤을 생산하는 행위로 바뀌면서 인간소외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세넷이 제시하는 ‘장인’의 모습은 이러한 소외를 극복한 본래의 ‘노동하는 인간’과 상통한다. 저자는 마지막 말에서 “사람은 누구나 일을 제대로 해내려 노력함으로써만 자신의 삶이 아무렇게나 흘러가지 않도록 단단히 붙들어 맬 수 있다”고 재차 강조한다.


(대학신문, 2009년 4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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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아담 잭 런던 걸작선 1
잭 런던 지음, 이성은 옮김 / 궁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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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별개의 영역처럼 보이는 ‘문학’과 ‘과학’이라는 정신활동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바로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과학철학자였던 바슐라르는 과학사를 연구하는 동안 상상력의 중요성을 깨닫고 문학비평에 천착했다. 지난 6일(금) 번역, 출간된『비포 아담』은 과학적 상상력이 소설로 거듭난 대표적 작품 중 하나다. 저자인 잭 런던은 원시 인류의 생활을 상상하면서 인간성을 통찰하고 인간 사회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유전물질이 생식세포를 통해 전달된다는 이론에서 영감을 얻은 런던은 “자신의 모든 기억을 자손의 대뇌조직에 새겨놓아 그 기억이 여러 세대를 흐를 수 있다”는 상상력을 펼친다. 소설 속 꼬마 미국인은 매일 밤 꿈속에서 ‘나무부족’의 일원인 ‘큰 이빨’이 된다. 대학에서 진화론을 배우면서 꿈의 비밀을 푸는 열쇠를 발견한 주인공은 그간의 꿈을 복기해 원시 인류의 삶을 들려준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세 부족 중 가장 원시적인 부족의 일원인 ‘큰 이빨’은 의붓아버지 ‘수다쟁이’에게 쫓겨난 뒤 ‘동굴부족’의 서식처에 도착한다. 아내를 죽이는 극악무도한 우두머리인 ‘붉은 눈’에 반기를 들었다가 ‘늘어진 귀’와 함께 탈출한 그는 ‘재빠른 것’을 만나 사랑에 눈을 뜬다. 붉은 눈이 재빠른 것을 뺏으려는 소동이 마무리될 때쯤 활을 쏘고 불을 능숙하게 다루는 ‘불부족’이 서식처를 습격한다. 학살 속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큰 이빨과 재빠른 것은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난다.

런던은 약육강식의 세계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그의 작품에 담아냈다. 『비포 아담』에서 고등 문명이 상대적으로 약한 문명의 구성원들을 학살하는 모습은 사회진화론을 앞세워 식민지를 확장해나가던 제국주의의 모습과 닮았다. 러일전쟁 종군기자로 1904년에 조선을 방문하기도 한 저자는 불부족에게 당한 고통을 나무부족에게 되갚아주는 동굴부족의 모습을, 당시 일본의 모습에서 발견한 것인지도 모른다.

40세라는 짧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19편의 장편소설 등 수백 편의 작품을 쏟아낸 런던의 상상력은 그의 다양한 경험에서 비롯됐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일찍 학교를 그만둔 그는 통조림 공장과 원양 어선을 전전했고 돈을 벌기 위해 알래스카로 떠나 골드러쉬 대열에 합류하기도 했다. 런던은 최하층 노동자에서 미국 문학 역사상 가장 대중적인 작가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역동적인 삶을 살았다.

『비포 아담』이 출간된 지 105년이 지났지만 그의 풍자는 여전히 유효하다. 선집의 기획자인 곽영미씨는 “약육강식의 현실이 단지 고도 자본주의라는 이름 하에 좀 더 세련된 모습만 보일 뿐 더 잔인하고 혹독해졌다”고 말한다. 강대국은 여전히 약소국을 경제적으로 착취하고 있고 신형 무기를 앞세운 전쟁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런던이 보여주는 인류의 어두운 자화상은 한 세기가 지난 오늘까지도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다. 인류는 아직도 ‘전-아담’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니냐고. 

 (대학신문, 2009년 3월 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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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에 대한 복종
스탠리 밀그램 지음, 정태연 옮김 / 에코리브르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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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5월 아돌프 아이히만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체포된다. 정치철학자인 한나 아렌트는 재판에 참관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떠난다. 2년 뒤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600만명이 넘는 유대인을 학살한 아이히만은 상부의 명령에 복종한 평범한 사람이었을 뿐”이라며,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내놓는다. “누구나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논란에 휩싸였다.

같은 해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은 「복종에 관한 행동의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이 근간이 된 『권위에 대한 복종』이 지난달 20일 번역, 출간됐다. 그의 이론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정작 책은 원서가 출간된 지 35년 만에 한국에 소개됐다.

밀그램은 이 연구의 핵심적인 교훈이 “적대감 없이 자기 일을 수행하는 평범한 사람도 파괴적 과정의 대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른바 ‘대리자적 지위’를 갖게 되면 상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심리적으로 도덕적 책임감을 무시하기 쉬워진다는 것이다. 실험 결과는 아렌트의 주장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진행한 ‘복종 실험’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해치라는 명령에 상상 이상으로 복종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밀그램은 실험에서 사람들이 어느 정도까지 전기충격을 가할 수 있는지를 측정했다. 대다수의 피험자들은 전문가들의 예측과 달리 끝까지 명령에 복종해 감전사를 일으킬 정도까지 처벌을 가했다. 밀그램의 실험은 로렌 슬레이터가 쓴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에서도 다뤄진 바 있다. 『권위에 대한 복종』은 실험이 어떻게 설계되고, 어떤 변수들이 선택되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곁들였다.

밀그램은 에필로그에서 “양심과 권위 사이의 갈등으로 인한 딜레마는 사회의 본질 속에 내재하며, 나치 독일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도 그러한 딜레마는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민주사회에서도 어떤 방식으로든 일단 권위가 생기면 유사한 양상으로 복종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밀그램의 이론은 그가 논문을 쓴 직후부터 책을 펴내기까지 10년의 시간동안 진행된 베트남 전쟁에서 실제로 입증된다. 밀그램은 베트남 전쟁 중 상관의 명령에 따라 민간인 370명을 죽였다고 밝힌 미군 병사와의 인터뷰를 책 끝머리에 싣고 있다.
 

(대학신문, 2009년 3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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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의 탄생 - 몸, 그 안에 새겨진 근대의 자국
이영아 지음 / 민음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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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도 미용에 관심을 끊지 못하는 한 대학원생은 어느날 ‘육체로부터 유난히 자유롭지 못한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그는 ‘왜 난 내 몸에 대한 강박에 시달려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품고, 답을 얻기 위해 ‘어디서’ 강박이 오는 것인가를 먼저 추적한다.

최근 출간된 『육체의 탄생』의 저자 이영아씨는 그 답을 ‘근대’에서 찾는다. 근대화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몸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게 됐다. 내 몸이 나의 것임을 발견하면서 비로소 나만의 육체가 탄생한 것이다. 저자는 몸에 대한 지식을 축적한 근대화 이후에 우리 몸을 조작하고 통제하는 것이 가능해 졌다고 설명한다. 현대사회에서 육체는 조작과 통제가 능숙할수록 더 많은 자본과 권력을 창출할 수 있는 자산으로 거듭난다.

저자는 개화기를 맞이하면서 “‘몸’은 더 이상 유교적 이데올로기를 실천하는 수단으로 머물기를 거부했다”고 말한다. 유교에서 ‘대를 잇는 매개체’에 불과했던 몸이 단번에 개인의 소유물이 된 것은 아니다. 책은 단발령 논쟁을 소개하면서 개화기 조선 때 근대적인 ‘육체’가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보여준다. 유학자들은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를 부르짖으며 상투를 자를 수 없다고 극렬히 저항했지만 결국 ‘위생’이라는 근대적 개념에 밀려 좌절을 맛보게 된다.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단발하는 사람이 급증했고 이발소는 개화와 근대를 상징하는 공간이 된다.

‘몸’의 개인화는 외부억압으로부터 육체의 해방을 의미하는가. 오히려 저자는 “전통적 인식과의 결별을 통해 내 몸은 (부모의 것이 아닌) 나의 것이 됐다고 믿은 순간, 내 몸은 (나의 것이 아닌) 권력의 것이 됐다”고 말한다. 국가는 국익을 위해 ‘생체정치’를 내세우며 개인의 몸을 통제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위생을 위해 운동을 통한 몸의 단련이 권장됐고, 청소년의 성교육도 국가의 관리 하에서 이뤄졌다. 유교이념이 사라진 자리에 몸에 대한 ‘위생’과 ‘교육’이라는 두 담론이 새로운 규율로 들어선 것이다.

확고해보이던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자리는 어느새 ‘권미징추(勸美懲醜)’에게 넘어간 듯하다. ‘더 근대적인 몸’을 향한 경주는 우리가 끊임없이 더 멋진 몸으로 재탄생할 것을 요구한다. 누구도 멈출 수 없는 ‘강박의 경주’는 근대의 논리, 자본의 논리, 권력의 논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학신문, 2008년 11월 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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