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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유시민의 정치 좌표 그리기


  『국가란 무엇인가』는 ‘유시민의 정치 좌표 그리기’다. 유시민은 이 책에서 플라톤, 홉스, 루소, 마르크스를 망라하며 정치철학의 좌표를 깔끔하게 그려내는 동시에, 정치인으로서 자신이 서 있는 좌표를 명료하게 선언하고 있다.

  지식 소매상을 자처하는 그답게 대중들에게 정치철학의 계보를 맛깔스럽게 설명한다. 그가 간략하게 그려내는 계보는 국가주의-자유주의-마르크스주의로 요약할 수 있으며, 그는 여기에 플라톤의 ‘목적론적 국가론’을 끼워 넣는다.

  홉스로 대표되는 국가주의 국가론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를 벗어나게 한 ‘국가’를 신격화한다. 국가가 국민의 안보를 위하는 한 국민은 국가에 충성을 다해야 한다.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은 국가를 계급 지배의 도구로 보고 철폐의 대상으로 삼는다. ‘신’과 ‘악마’ 사이에 위치한 자유주의 국가론은 그 스펙트럼이 꽤 넓다. 로크의 법치주의, 스미스의 시장경제, 밀의 자유주의, 하이에크의 신자유주의까지 자유주의 진영 내 이념적 다양성이 높으나, 이들은 국가가 선을 행하려기보다 악을 저지르지 않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본질적으로 한 그룹으로 묶을 수 있다. 그는 우리 사회의 주류적 정치이념이 국가주의와 자유주의에 걸쳐있다고 진단한다.

  유시민은 어찌 보면 진부한 국가론의 x축에 오랫동안 배격된 플라톤의 ‘목적론적 국가론’을 불러들인다. 플라톤은 만물이 고유의 텔로스(목적)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가 역시 예외가 아닌데, 그는 국가의 텔로스가 정의라고 주장했다. 유시민은 플라톤의 견해를 자유주의자의 견지에서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유주의 국가론이라는 땅을 딛고 정의를 실현하는 국가를 바라보며 나아가’고자 한다. 그는 스스로를 ‘진보자유주의자’로 규정하며,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책과 정치인 유시민의 ‘독창성’이 비롯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구체적인 정의의 개념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을 채택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를 ‘각자에게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것’으로 규정했다. 그렇다면 국가의 정의란 국민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것일 테다. 유시민은 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들, 이를테면 자유적 기본권, 교육권, 환경권, 행복추구권 등이 ‘헌법’을 통해 규정돼있다고 설명한다. 헌법이 없던 플라톤의 시대에는 마땅히 받아야 할 것들이 전제 군주나 일부 귀족들에 의해 자의적으로 정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민주적으로 헌법이 정해지는 현대 정치체제에는 권리의 주체들이 권리를 정할 수 있다. 바로 그 차이로 인해 유시민은 다시 지금, 여기에 목적론적 국가론을 호출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라는 관념적인 조직은 인간들의 의사결정과 행동을 통해 실제적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국가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가를 운영하는 인간주체들이 그러한 정치를 펼쳐야 한다. 유시민은 도덕적 국가 실현을 위한 정치인의 도덕 이념으로 베버의 ‘책임윤리’를 내세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진보주의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중시하는 베버식의 윤리보다 의도의 순수함을 중시하는 칸트의 ‘신념윤리’을 추구한다. 신념윤리에 입각한 진보주의자는 체제를 비판하는 지식인으로 활동할 때엔 사회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적지만, 그들이 국가권력에 참여할 때엔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동기만 중시하면서 정치적 비극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 단적인 예시로 바이마르공화국의 몰락을 든다. 바이마르공화국의 여러 정치 주체들이 결과보다는 동기만을 중시하며 투쟁에 골몰한 결과 인류 역사상 가장 극악무도한 나치에게 권력을 넘겨주었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베른슈타인을 옹호하며 혁명보다는 개혁주의자를 표방한다.

  이 지점에서 최근 진보정당과의 합당 논의가 흘러나오는 와중에 유시민 대표가 던진 메시지의 뜻이 분명해진다. 그는 진보정당이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변화해 스스로 국가권력 운영을 맡으려는 전략으로 나아갈 의사가 확인된다면 국민참여당이 함께 하는 문제를 검토해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책임윤리론자’인 유시민은 그동안 ‘신념윤리’를 내세워 왔다고 보여지는 진보정당이 ‘책임윤리’를 추구한다면, 달리 말해 ‘사회주의’라는 ‘동기’가 아니라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책임’을 중시한다면 합당을 고려하겠다는 의미로 읽혀진다.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유시민은 최근 대세라 할 수 있는 야권연대에 대해서도 결과에 대한 책임을 중시하는 책임윤리로 바라보고 바람직한 현상이라 진단한다. 선거 결과가 어떻게 되던 타협 없이 자기 당의 후보를 내기보다, 선거를 이기기 위해 적절한 타협을 하는 것은 신념윤리를 중시한 결과라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유시민은 목적론적 자유주의자이자, 개량주의자이며, 책임윤리자이다. 그는 『국가란 무엇인가』를 통해 깔끔히 그린 좌표 위에 자신의 위치를 분명히 표시하고 있다. 나는 그가 여기서 쓴 것들에 대해 거의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아직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정치와 그가 보이려 하는 정치 사이의 간극을 부정하기 힘든 것 같다. 그가 그 간극을 좁혀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한, 나는 유시민의 정치를 응원할 용의가 충분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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