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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친구들 1
줄리언 반스 지음, 한유주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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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퇴근길에 이 책을 읽으려고 직장에 가져 갔었다. 출근길엔 신문을 읽느라 못 읽었고, 집에 갈 때 읽어야지 하고 책상 위에 올려뒀다. 다른 부서의 부장님 한 분이 우연히 이 책의 제목을 보시고 "재밌어?"라 물으시더니 얼마나 재미있는지 잠깐만 보시겠다고 하셨다. 한 시간 후, 도저히 손을 놓을 수가 없다며 빌려 가셨고, 그 주에 2권까지 독파하셨다. "나는 소설 별로야. 지어낸 얘기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그런가, 읽다보면 다 거짓말 같고 재미가 없어."라고 자주 말씀하시던 분이었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아, 이 책, 확실히 재미가 있긴 있나보다, 그렇다면 띠지의 '읽기를 멈출 수 없는 이야기!(명조체)'가 완전한 허위과장광고카피는 아니군…하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2. 초반부를 읽을 땐 좀 집중이 좀 덜 됐다. '아서'는 '아서 코난 도일'일 거라는 사실이 너무 당연하다보니까 아서에 대한 서술 부분을 읽을 때는 별 문제가 없었는데, 조지에 대한 서술을 읽을 때는 '이 사람은 아서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거지? 언제 만나는 거야?'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 정신이 흐트러졌었다. 게다가 조지가 파르시라는 사실을, 샤푸르지 목사가 명백하게 짚어주기 전까지는 제대로 눈치채지 못한 터라 도대체 주변 사람들이 조지를 왜이렇게 괴롭히는 건지 이해가 안 가 답답하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1892년 6월 6일을 기억하라고 샤푸르지가 말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제까지 뭘 본 거지? 하는 생각이 들어 페이지 앞쪽을 넘겨 보니, 시드 헨쇼가 조지를 보며 새끼손가락으로 양 입꼬리를 끌어올리고 엄지로 귀를 펄럭이며 원숭이 얼굴을 한다는 내용에다가 윌리 샤프(세상에나!)가 조지에게 다가와 "넌 우리랑 어울리지 않아."라고 말하는 내용이 자그마치 23페이지에 있었다. 아, 완전히 속은 듯한 기분. 실제로는 속은 게 아니라 예민하지 못했던 스스로가 짜증스러웠던 거겠지만.


그 기분으로 다시 페이지를 슬슬 넘겨보니 모든 게 이해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조지를 보며 비웃는 아이들, 조지 앞에서 원숭이 얼굴을 흉내내는 아이들, 침대에 누워 호주와 인도와 캐나다 등등을 대영제국과 연결하는 동맥과 정맥을 생각하는 조지, 시드니와 봄베이, 케이프타운, 혈통, 같은 단어들을 떠올리는 조지, '에들지'를 제대로 발음하지도 쓰지도 못하는 주제에 무례하고 뻔뻔하게 구는 경사 시절의 업턴 등등. 젠장. 샤푸르지의 말처럼 주님의 피조물은 모두 동등한 축복을 받지만, 그럼에도 조지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미개한 사람들과 마주칠 수 있었던 것처럼, 나 역시 다른 독자들과 동등하게 활자로 줄리언 반스의 이야기를 읽었지만, 그가 뿌려둔 힌트의 조각들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눈을 가린 채 헤매고 있었던 게다.



3. 그때부터는 페이지가 술술 넘어갔다. 아서의 삶은 아서의 삶 나름대로 흥미로웠고 조지의 삶은 또 조지의 삶 나름대로 파란만장(!)해서, 1권이 끝나가도록 둘의 접점이 보이지 않는데도 그다지 초조하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누명을 쓰고 재판에서 패소한 후 감옥에 갇히는 조지의 이야기를 쭉 읽어치우면서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 본 것과 같은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니까 억울한 사연을 가진 사람이 홈즈에게 편지를 보내 도움을 요청하듯이, 조지가 자신의 억울함을 '셜록 홈즈의 아버지'에게 호소하고, 아서가 그 호소에 마음이 움직여 사건에 대해 알아보고, 홈즈처럼 조지를 만나고, 사실을 파헤치고, 조지의 누명을 벗겨주지 않을까…하고 대충 짐작했던 것. 다행히도 그 짐작은 거의 틀리지 않았다ㅋ


조지의 재판 이야기만큼이나 흥미로웠던 건 아서의 이야기였다. 코난 도일이 의사 출신이었고 강령회에 관심이 많았으며 셜록 홈즈 얘기로 세속적 성공을 거둔 이후에도 추리소설보다 역사소설을 더 쓰고 싶어했다는 것 정도야 알고 있었지만, 아내 투이와 애인 진 사이에서 왔다갔다했다는 것은 전혀 몰랐다. 진이 등장한 이후부터는 유명인의 스캔들을 훔쳐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읽는 내내 '으엉 이거 어떻게 되는거지'와 '아, 왠지 진이 아깝다'와 '아, 투이 좀 안됐다'와 '그러고 보면 아서도 좀 안됐다' 사이에서 갈팡질팡. 지금은 메리가 가장 안됐다 싶기도 하지만…모든 사람에게는 그 사람 나름대로의 상황과 사정이 다 있는 거니까, 다들 조금씩은 안쓰럽다고 생각한다. 역시 사랑은 타이밍인 것인가!



4.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조지가 자신이 괴롭힘을 당한 원인을 인종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매우 단호하게 밝히는 부분이었다. 파르시 이야기를 꺼내는 아버지에게 자기는 영국인이라고, 대영제국의 일원이라고, 나를 파르시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당당히 말하던 어린 조지가 그대로 어른이 되었던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만약 내가 조지처럼 저지르지도 않은 잘못 때문에 협박을 당하고 피해를 입는다면 어떨까. 내 행동이 문제가 아니라면 겉모습이 문제인 것이리라 여기고 자신의 외양을 추하게 여기며 괴로워하지 않았을까. 어릴 적부터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친한 친구 하나 없이 평생을 보내고, 제대로 연애 한 번 하지 않았던 조지의 자아는 어쩌면 이렇게 강하고 단단해졌을까.


그러다 문득 이것은 자아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항상 진리를 말하는 삶 속에서 길을 가야 한다."는 샤푸르지의 말을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듣는, 어린 조지가 떠올랐던 것이다. 자신의 삶을 통해 진리를 말하지 않는다면, 그 삶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을 조지. 그래서 자신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아서 앞에서도 '아서의 말은 과연 진리인가'를 계속 따지던 조지. 명백하게 참이고 진실된 그 무엇을 찾으려 애썼던 조지. 눈으로 감각할 수 없는 것들, 상상력의 영역에 있는 것들은 '보려고 들지 않았던' 조지…가 한꺼번에 와르르 머릿속을 빙빙 돌았다.


그렇다면 아서는 어떤가. 어릴 적부터 상상력이 뛰어났던 소년. 자기의 상상력을 통해 부귀와 명예를 누리고, 다른 이들의 삶을 '올바로' 돌려놓는 데 기꺼이 참여했던 유명 작가이자 저명한 인사.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추론하면서 남들이 볼 수 없었던 진실을 세상에 바로 보였던 사람. 하지만 자신이 본 것을 '아는 것'이라 완벽하게 믿게 된 사람. 그래서 조지의 인종이 괴롭힘을 당하게 된 원인이라고 확신했을 사람.


나는 그 둘 사이 어디에 있는가. 나는 조지처럼 명백하고 확실한 것만을 보려고 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내가 본 것에 불과한 그 무엇을 진실이라 확신하는 사람인가. 결국 이 소설은, '본다'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가 보는 세상의 그 어떤 진실도 완전한 진실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그러니 모든 것을 의심하지도, 완벽하게 자신하지도 말라는 것인가.


사실은, 잘 모르겠다. 그냥 이 이야기가 재미있었고, 특히 조지가 아서와 진의 결혼식에 참석하던 부분은 조금 감동적이기도 했으니, 그걸로 됐다.



5. 아서만큼이나 진이 매력적이었고, 조지만큼이나 모드가 매력적이었다. '남편이 하자는 대로 따라하고 가자는 대로 따라가는 부인이 된다는 것'을 못할 것만 같던 젊은 진이 '레이디 코난 도일'로 바뀐 것도, 병약하고 보살핌 받아야 하고 모두의 걱정을 한 몸에 받던 모드가 오빠의 결정 장애를 책임지는 든든한 동반자로 자란 것도 흥미로웠다. 이 두 여인의 이야기가 아서와 조지의 이야기보다 더 재미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조금 들긴 하지만, 뭐, 이것 역시, 됐다. 아서나 조지의 세계와는 또다른 그녀들의 세계가 있다는 것 역시, 내가 볼 수 없는 세계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반증일테니.


하지만 여전히 궁금하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본 것일까? 내가 본 것은 맞는 것일까? 다시 이 책을 읽는다면, 처음 읽었을 때와 다른 무언가가 또다시 보일까? 그렇다면 내가 이전에 읽었을 때 본 것은 뭐였던 걸까? 나는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무엇을 보았는가? 무엇을 볼 것인가?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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