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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 최인호 유고집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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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주님, 제 손을 놓지 마소서. (135쪽)


9월 25일, 저는 헤세의 책을 읽었습니다. 아름다운 글을 읽으며 그가 정원에서 보낸 노년을 상상했습니다. 아버지의 침대 곁에 노트북을 펼쳐놓고 리뷰를 썼습니다. 문득 뉴스에서 익숙한 이름과 함께 '…암으로 투병하다가…' 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고개를 들어 TV 화면을 바라보니, 당신의 이름이 자막으로 떠 있었습니다. 당신의 영정 사진을 배경으로. 아, 아직 그의 소설을 한 편도 읽지 못했는데, 하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병으로 고통받던 때에도 카톨릭 주보에 투병기를 썼다고 했습니다. 죽기 전까지도 글을 썼다고 했습니다. 한 자 한 자 손으로 썼다고 했습니다. 당신의 책더미 속에서는 공개되지 않은 원고들도 발견됐다고 했습니다. 그 글을 모아 유고집을 펴낼 거라고 했습니다. 늙고 까칠하고 깡마른 손으로, 여기저기 주삿바늘 자국이 남은 손으로, 당신이 힘들게 글자를 적어내려가는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나는 타이핑하던 손을 멈추고 뉴스가 끝날 때까지 멍하니 앉아 있다가, 잠든 아버지의 손을 잡았습니다. 당신의 손만큼, 늙고 까칠하고 깡마른, 여기저기 주삿바늘이 꽂혀 있었던, 그 손을.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를 위해 눈물을 흘려 주소서.  (94쪽)


요즘 챙겨 보는 웹툰 중에서 병원에서의 일상을 다룬 작품이 있습니다. 아내는 입원해 수술을 받고 이어 치료를 받습니다. 남편은 그런 아내를 간병합니다. 6인실에서 아픔에 괴로워하는 환자들과 그의 가족들을 만납니다. 그 만화 중간에 나오는 아내의 대사 중, 이런 말이 있습니다 : 저쪽 세계도 아니고 그쪽 세계도 아닌 곳에서 살고 있구나. 내가 모르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었구나. 입원하기 전에는 아내도, 남편도, 자신들이 있는 곳과 같은 장소의 존재를 상상도 못했었겠죠.


입원하신 아버지를 간병하기 위해 병원에 머무를 때마다 여기는 병원 바깥 세계와 분리된, 또다른 세계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아침 7시와 오후 12시와 저녁 6시면 꼬박꼬박 세 끼를 침대 앞으로 가져다 주고, 하루에 대여섯번씩 혈압과 체온과 산소 포화도를 체크하고, 8시간마다 간호사가 교대되고, 이틀에 한 번씩 링겔 주삿바늘이 꽂히는 팔을 바꾸는 세계. 기침 소리와 가래 끓는 소리와 신음 소리와 간병인-병원에서는 '여사님'이라고 부르죠-들의 목소리가 끊임 없이 이어지는 세계.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침대 위를 뒹굴고, 이불과 같이 온 몸을 말고, 이를 갈고, 꽉 다문 이 사이로 신음을 내뱉고, 머리를 쥐어뜯고, 소리지르고, 울고, 화를 내고…그러다 갑자기 숨을 멈춰버리기도 하는 세계. 거기서 나는, 생과 사의 경계가 멀지 않다는 걸 목격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잘난척 해봤자 육체적 고통 앞에서는 한없이 나약할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산 몸뚱이에 뾰족한 바늘 하나가 들어오면 세상이 끝난 듯 소리를 지르는 게 인간이니까요.



바라옵나니, 우리 목숨의 하루하루를 천성의 경건함으로 채워 주소서. (70쪽)


그런데 당신은, 거기서 글을 쓰셨더군요. 멀쩡한 문장 하나를 만들어 입밖으로 내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을텐데. 음식을 씹어 삼킬 수 없어서 몸에 힘을 주는 게 힘들었을텐데. 소리내어 기도를 하고, 요한복음을 칭찬하고, 농담을 하고, 아픈 이를 위로하고, 만나는 이들에게 웃음을 보이고,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셨더군요.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상태일 때도 계속 감사하다고, 감사하다고 하셨더군요. 무엇이 그리도 감사했을까 생각하다가, 당신의 기도를 떠올렸습니다.


주님꼐서 주시는 고통을 통해 내 자신이 주님의 도움 없이는 한 발자국도, 숨 한 번도 쉬지 못하는 무생물의 존재임을 깨닫게 하시고, 견딜 수 있는 힘과 용기도 함께 주소서. 제 보잘것없는 고통이 작으나마 주님의 고통을 덜어드릴 수 있는 도움이 되게 하시고 절대로 악마에게서 지켜 주소서.


마음 속으로는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하더라도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게 하소서. 겟세마니 동산의 피땀을 생각게 하소서. 잠이 들었던 제자들과 달리 한 시간이라도 깨어있게 하소서.


육체는 악마이며 이 육체는 주님으로 가는 시선조차 방해하려고 합니다. 아아, 주님 도와주소서. 주님의 도우심 없이는 저는 불타는 연옥의 가장 버림받은 영혼입니다.


주님, 제 허리띠를 묶고 저를 끌고 가소서. 저는 눈먼 자이니 제 뜻과 의지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나이다. 성모님 이제와 우리 죽을 때에 불쌍한 죄인을 돌보소서. 품에 안아 주소서.                             (255-259쪽)


그 고통 속에서 당신은 당신을 지키시는 손을 보았겠지요. 당신을 지키시는 손이 당신과 함께 하심을 보았겠지요. 덕분에 미소를 지을 수 있었겠지요. 깨어있을 수 있었겠지요. 한없이 약해지는 순간에, 나 자신이 얼마나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지 알게 되는 순간에, 처절하게 밑으로 밑으로 가라앉는 순간에, 그렇게 약하고 사소하고 보잘 것 없고 가라앉은 존재라는 이유로 더욱더 강하게 돌보시고 안아 주시고 지켜 주심을 믿었던 당신을 보며, 눈물을 참기가 힘들었습니다. 감사했던 당신처럼 감사했습니다. 경건함으로 당신의 하루하루가 가득 찼듯이, 침대에 누워 있는 내 아버지의 하루하루도 경건함으로 가득 차길 기도했습니다.



부디, 이제 두려움 없이 훨훨 날으시길 -김연수 (333쪽)


누군가는 당신의 이 책을 보며 1987년 8월에 당신이 적은 문장을 똑같이 말할 것입니다. '예수쟁이', '아아, 마침내 지고 말았군' '아아, 그가 마침내 인간으로서 약해졌구나' 라고요. 암이라는 병 앞에서 신앙 이외의 길을 찾지 못했다고요. 결국 이렇게 신을 찾는 약한 인간으로 죽었다고요. 이건 그냥 종교서잖아, 라고 불편해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신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이 맹목적인 구복과 다르다고 믿는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감사하고 감동했습니다. 당신의 기도야말로 한계를 가진 인간이 자신의 삶을 긍정하게 하는 방법이었다고 믿으니까요. 자신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건 나 자신이라고 오만해하는 대신 절대적 존재 앞에 한없이 약한 존재임을 받아들였으리라고 믿으니까요. 마지막 순간까지 그토록 겸손했기에 고통 앞에서 불평을 구토처럼 쏟아내는 대신 절절한 기도로 자신을 지켜내고 모두에게 감사할 수 있었을 것이라 믿으니까요.


당신의 책을 덮으며 생각했습니다. 내 아버지도 지금 기도하고 있을지 모른다고요. 내 귀엔 들리지 않지만, 입속으로 끝없이 기도하고 있을지 모른다고요. 움직이지 않는 혀와 말라버린 목구멍으로, 울며 감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또 다짐했습니다. 앞으로도 같이 기도해야겠다고요. 지금까지 기도하고 감사했듯이, 앞으로도 감사하고 기도할 것입니다. 당신이 그 고통 앞에 끝까지 겸손하고 감사했듯이, 나도 그러하겠습니다. 


당신이 남긴 글을 이제부터 찾아 읽으려 합니다. 죽는 날까지 소설을 쓰고 싶어했던, 끝까지 펜으로 글을 썼던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잊힌다는 것은 정말로 죽는 것이니까요. 당신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면, 죽어도 죽지 않은 것이니까요. 부디 당신은, 당신을 사랑했던 후배들의 바람처럼, 두려움 없이 훨훨 날으시길. 당신의 손녀로 태어나 이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아이라고 고백했던 소녀의 소망처럼, 그곳에서도 생일날 한번에 촛불을 끄시길.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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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다 하지 못한 - 김광석 에세이
김광석 지음 / 예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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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나질 못할 사람들 속에 묻혀 우리도 그렇게 잊고 사는 것 -내 꿈 中

1996년 1월은 참 이상한 달이었다. 새해가 되자마자 곧 2집을 낼 거라던 서지원과 5집을 준비한다던 김광석이 5일 간격으로 세상을 떠났다. 5일이 지나고는 룰라의 이상민이 손목을 그었다고 했다. 20일이 지나고는 서태지와아이들이 해체 기자회견을 열었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김성재 사건의 충격이 아직 가시지도 않았는데…' '10대 소녀팬들의 정신적 충격이 크고…' '베르테르 신드롬이 사회적으로 우려되며…' 운운하며 온갖 기사를 쏟아냈다. 수많은 뒷얘기와 소문이 시끄럽게 떠돌았다. 


매년 다시 맞는 1월, 이후의 삶을 계속해 나가는 이들을 떠올리는 일은 거의 없다. 벌써 18주기를 맞게 된 이들이 떠오를 뿐이다. 1976년생인 서지원은 내 기억 속에서 언제나 스무 살 미소년이고, 1964년생인 김광석은 영원한 서른 셋 청년이다. 그들을 떠올리거나 그들의 노래를 들을 때면 안타깝고 아쉽지만, '결코 늙지 않을 그들'에 대한 경외감이 가슴 한 구석에 고개숙인 채 숨어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제프 버클리와 커트 코베인과 히스 레저를 떠올릴 때 그렇듯이. 나이가 들어 머리가 희끗희끗해지고 깊은 주름살이 이마에 패인 김광석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기에, 그가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올해 쉰 살이 되었으리라는 것도 믿기지 않았다. 언제나 서른 셋, 기타를 메고 하모니카를 건, 미소 띤 얼굴로 조근조근 말을 하고 물기가 많은 목소리로 쓸쓸하게 노래부르는, 가객.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대를, 그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그 날들 中

김광석의 에세이 <미처 다 하지 못한>을 읽는 내내, 그의 목소리를 들을 때와 비슷한 감정들이 소용돌이쳤다. 슬픔이 가득 담긴 눈으로 쓸쓸한 자신의 삶을 바라보면서 그래도 살아야겠다고 입술에 침을 바르는 이를 바라보는 듯 했다. 내가 읽고 있는 글을 쓴 이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지 벌써 20년 가까이 되었음을 계속 실감하며 글자를 읽어내려갔기에, 말할 수 없이 심란해지곤 했다.


 속의 그는 매우 예민하고 여리고 약하고 많이 아픈 것 같았지만, 그래도 살아야겠다고 계속 다짐하는 것 같았는데. 잘 살아야겠다고, 열심히 노래해야겠다고 계속 스스로에게 되뇌이는 것 같았는데. 젊은 날의 방황과 고민은 쓸모없는 시간 낭비가 아니라 인간의 생각과 정신을 더 깊게 만드는 필요 조건임을 잘 아는 것 같았는데. 산다는 건 괴롭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라는 걸 잘 알면서도 버텨내는 사람 같았는데. 그러니까, 스스로 목숨을 끊을 사람 같지 않았는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삶은 때로 일정 부분 만족하며, 일정 부분 아쉬워하며

그래도 살아가야 한다. (P.68)


그때 내가 좀 더 많은 생각과 경험을 했더라면 지금 내 음악이 더 풍부해지지 않았을까

…젊었을 때 많이 사랑하고/ 많이 이별하세요./ 방황과 고민은 젊음의 특권이니까요. (P.94)



눈을 감으면 흘러 내릴까 눈 못 감는 내 사랑 -외사랑 中

그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기도 했다. 책 속 여기저기에서 무언가에 대한 사랑으로 할퀴어진 그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사랑 때문에 참 많이 아팠구나 싶었다. 어떤 사랑이었을까. 노래를 부르는 것도 그 사랑 때문이었을까. 한 번도 만난 적 없고 단 한 번도 눈 마주친 적 없는 그리운 는, 내 속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고 토로했던 는, 도대체 누구였을까. 궁금했다. 솔직히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아내 말고 사랑하는 이가 따로 있었나' 하는 생각까지도 잠시 했다(어떤 의미에선 불경한 생각이기도 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그의 예전 기사를 검색해 보다가 그의 딸이 발달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뒷통수를 세게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딸에 대해 적어내려갔던 글들이 새삼 찡했다. 서연이가 건강했으면 좋겠다는 소망, 서연이와 친해지고 싶다는 바람, 무조건 그 아이를 사랑하고 사랑할 것이고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다짐, 서연이가 자신의 자랑이라 참 좋고 참 행복하다는 고백…왠지 숙연해졌다.


너무 가까이 있어 자주 짜증이 나고 화가 나고 지치고 괴로워져 곁에 없는 누군가, 완벽히 나를 이해하는 누군가, 내 속에서 나온 것 같은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갈구하고 원하지만, 결국은 다시 바라보게 되는 이. 가는 길마다 함께 다니며 길을 비춰주겠다고, 가난한 살과 영혼이라도 모두 주고 싶다고, 삶의 끝자리를 지켜 주고 싶다고, 내 사람이라고 말하게 되는 이. 그가 누구였을까. 여전히 조금은 궁금하고 죽을 때까지 모르는 것이겠지만, 서연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 아니더라도.



내 노래는 허공에 퍼지고 내 노래는 끝나지만 내 맘은 언제나 하나뿐 -말하지 못한 내 사랑 中

가장 마음 편히 페이지를 넘길 수 있던 순간은 김광석의 노래에 숨겨 있던 사연들을 읽어내려갈 때였다. 어릴 때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노래를 어떻게 시작했는지, 김민기를 어떻게 만났고, 노래를찾는사람들 1집을 어떻게 발표했는지, 사랑했지만과 서른 즈음에와 이등병의 편지와 그녀가 처음 울던 날과 나른한 오후는 김광석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노래인지…이런 얘기들을 그의 육성으로 직접 들을 수 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도 들었지만, 이렇게라도 그 노래들의 뒷얘기들을 들을 수 있어 고맙다는 생각이 더 컸다.


책의 전반적인 글이 노랫말 같았고, 3부에 실린 그의 미발표곡 가사들을 읽을 때는 곡조도 모르는 노래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환청이었을까. 어떤 가사들은 아깝다 싶을 만큼 마음에 들었다. '지금은'이 특히 그랬다.


지금은 아무 말 할 수 없어요

지금은 아무 말없이 걸어요

눈 감으면 지난 바람

사무치도록 아쉬웁지만

지금은 아무 말 할 수 없어요

지금은 아무 말없이 그저 걸어요


중간에 실린 '날 사랑했다면'의 가사를 읽으면서 박학기가 부른 노래를 떠올리고, 그 노래를 김광석이 불렀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보았다. 김광석 버전의 '날 사랑했다면'도 아름다울 것 같은데. 또 아쉬워지려 해서, 아니라고, 고마운 거라고, 이렇게라도 그가 남기고 간 가사들을 읽을 수 있어 고마운 거라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나의 노래는 나의 힘, 나의 노래는 나의 삶 -나의 노래 中

김광석의 앨범 한 장도 없고, 그의 노래를 들으며 성장한 세대도 아닌 나까지도, 나이를 먹고 삶을 계속해나가는 동안 자주자주 그의 목소리를 떠올리고 그의 노래를 찾아듣는 것은, 그의 노래가 결국 삶과 사랑에 대한 것이기 때문은 아닐까. 그의 목소리에는 근본적인 슬픔이 깃들어 있지만, 결코 절망적이지도 암울하지도 않다. 고통을 손바닥 위에 놓고 펄쩍펄쩍 뛰는 대신, 한 발 떨어져 바라보는 듯한 처연함. 결국은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받아들이고 마는 담담함. 왜냐하면, 그런 게 살아가는 거니까. 산다는 건 그런 것들과 함께 가는 거니까. 그 절절한 애틋함이 그가 만들어 부른 노랫속의 삶에 깃들어 있기에, 누구나 삶의 어떤 지점에서 김광석을 떠올리는 게 아닐까. 나의 노래가 힘이고 삶이라고 했던 김광석을.


<미처 다 하지 못한>을 읽은 후 한동안 김광석을 검색해 보고, (종편을 한 번도 본 적 없었음에도) '히든싱어 김광석편'을 찾아 보았다. 왠지 김광석이라는 사람을 좀더 알게 된 듯한 느낌이다. 한 번 더 책을 다시 읽어보고, 이번엔 그의 노래를 차례대로 들어봐야겠다. 1집부터 마지막 앨범까지, 라이브앨범까지.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오경필 중사가 그를 그리워하며 한숨을 쉬었듯이, 나도 그를 그리워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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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목적어 - 세상 사람들이 뽑은 가장 소중한 단어 50
정철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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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목적어>를 읽기 전, 내가 알던 정철은 유명 카피라이터나 몇 권의 책을 쓴 작가가 아니라 '문재인의 사람'이었다. 문재인이 부산 사상구에 출마했을 때 '바람이 다르다'라는 카피를 만들었고, 대선 후보로 출마했을 때는 그를 위한 헌정 광고를 만들었던 사람. 따라서, 지난 대선 때 결코 1번을 찍지 않았을 사람.

뼈아픈 패배로 괴로워했을 게 분명했을 그가 대선 후 1년이 지난 때 <인생의 목적어>라는 책을 내놓았다. 그 자신에게 인생의 목적어는 무엇이었을까. 어떤 목적이 그를 '그러한 삶'으로 이끌었을까. 좀 궁금했다. 이 책에서 명징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했고, 시원하게 틀렸다. 이 책은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2800여명의 사람들이 꼽은 3000여개의 단어들 중 50개에 대한 이야기를 엮은 책이었으니까.


가족, 사랑, 엄마, 꿈, 행복, 친구, 믿음, 우리, 도전, 희망, 돈, 건강, 이름, 추억, 감사, 여유,웃음, 실패, 생각, 책, 여행, 변화, 다름, 만남, 매력, 그러나, 왜, 나, 너, 아버지, 자식…등 수많은 '인생의 목적'들이 다섯 개의 장에 묶여 있었다. 이 단어들을 거울로 놓고 나를 비춰 보면서 나만의 목적어를 찾아 보라는, 역시나 친절한 안내 멘트와 함께.

유명 카피라이터의 책답게 재치있으면서도 여운이 남는 문장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어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고 즐거웠다. 너무 가볍지도, 너무 감상적이지도 않았고. 삶을 긍정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이가 쓴 글이구나 싶었다. 표지를 넘기자마자 나오는 이 문장부터 그랬다.

세상에 불량품인 인생은 없다는, 따뜻한 선언.


그리고 이어진, 수많은 '휘어진 바나나' 사진들ㅋ


여유를 가르치는 선생님들로 '라면'을 꼽으면서 스프도 받아들인다. 계란도 받아들인다. 김치도 받아들인다. 찬밥도 받아들인다. 너라면 그럴 수 있니?라고 쓴 부분은, 말장난 같으면서도 신선했고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공작을 숨어서 댓글 다는 국가정보원 직원, 다람쥐를 쳇바퀴 돌고 도는 대한민국 학생, 하루살이를 내일이 없는 시간강사에 빗댄 부분에서는 한숨이 나왔다. 대안학교 학생들을 만난 경험을 이야기했던 글도 기억난다. 그가 만난 대안학교 아이들이 선생님에 대해 쓴 짧은 글은 이랬다.

선생님이라는 사람은 관찰하기 참 좋은 대상이다. 저마다 다른 개그 포인트와 귀여움이 있다.


나도 아이들을 보며 이렇게 느끼는데! 하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개그 욕심을 가진 아이들을 귀여워하는 편이라. 그들은 선생님을 권위로 보지 않고 사람으로 보고 있었다.라는 문장을 읽으며, 아이들이 나를 사람 대신 권위로 봐 주길 바랐던 예전의 나를 떠올려 보기도 했다. 첫 출근날, 아무도 환영해 주지 않아 초조하고 황당하고 허무했던 기억을 풀어 놓은 글에서도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12개월 간 고생문이 첩첩할 것이 눈앞에 훤히 펼쳐져 어찌할 줄 모르고 머리를 쥐어뜯던, 그 겨울의 나. 그래서 직업을 선택할 땐 그 무엇보다 그 일, 재미있니?라는 질문을 해 보라는 글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섬뜩함을 느꼈다ㅋ


무엇보다 이 책은 친절했다. 독자에게 자신과의 인연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하고, 자신을 읽은 후의 감상 모범답안까지도 제시해 주는 책이 또 있을까.


하루에도 수백 권씩 쏟아진다는 책. 오늘 그중 한 권이 당신의 손 위에 놓여 있습니다. 결코 쉬운 인연이 아닙니다. 나무로 살다 끝날 수도 있었던 그의 인생이 당신을 찾아온 이유를 한번쯤은 생각해 주십시오.


서툰 글, 지루한 생각, 불편한 논리, 억지와 과장을 잘 참고 마지막까지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누군가, 이 책 어땠어? 정철이라는 사람 글 어땠어?라고 물으면 시시콜콜 지적하지 마시고 그냥 이렇게 헐렁하고 넉넉하고 가벼운 대답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괜찮아.


게다가 책 중간에 있는 이 페이지의 배려 돋음이란!

글자에 지친 독자를 위한, 휴식 페이지.

파란 하늘, 하얀 구름, 이걸 조용히 응시하는 게 휴식 :)



책장을 덮고 생각했다. 아마 이 책을 읽은 독자들 중 99% 정도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거다. 그렇다면 내 인생의 목적어는 무엇일까. 나는 세 개의 단어로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 



역시 나는 평범한 인간이라ㅋ 사람들이 많이 꼽은 40여개의 단어들 중 세 개를 생각해 내고 말았다. 재미, 배움, 자유. 나는 조금이라도 더 자유롭게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 배우고, 배움을 통해 자유로워지고 싶다. 진리로 자유케 되고, 자유로 진리케 되는 과정이 재미있었으면 좋겠다. 이것이, 지금의 내게 가장 중요한 명제 같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결코 자유롭지 못한 존재. 내 삶으로부터, 가족으로부터, 직장으로부터, 현실로부터. 그래서 '자유' 부분을 읽으며 
생활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하는 생활인으로서는 완전한 자유와 적당히 거리를 두고 타협이라는 것을  수밖에 없다는 문장을 만났을 땐 가슴이 콱 막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타협이란 게 얼마나 비겁한지에 대해 침을 튀기며 완전한 자유를 쟁취하라고 부추기는 대신 전부가 아니면 전무라는 생각은 정말 자유롭지 못한 생각이며 현실을 쓰러뜨리는 것은 결국 타협보다 못한 굴복을 하게 만들 뿐이라고 조언하는 부분에선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싶어 나도 모르게 울컥 하고 말았다. 부담으로 남는 '전부'를 욕심내기보다 타협이 만들어 준 51%의 자유를 100%로 누리라는, 이 현실적이면서도 따듯한 말 덕분에.

51%의 자유만으로도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내일모레는 아닐지라도 내년 휴가 땐 당신도 인도를 욕심낼 수 있다. 지금 당장 부다페스트에서 하모니카 연주회를 할 수는 없지만 동네 음악학원 주말반은 등록할 수 있다. 쌀독을 채우고 남는 돈으로 아프리카에 사는 한 소녀의 저녁밥을 책임질 수 있다. 당신의 이런 불완전한 자유, 불충분한 자유, 51%의 자유를 지켜본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부럽다. 


자유롭게 살고 싶어하면서도 스스로를 부자유한 인간으로 옭아매고 있었던 나에게, 지금으로도 충분히 자유로울 수 있다고 속삭여 준 책.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인생의 목적을 처음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해 준 책. 이 세상에서 제일 친절한 책 덕분에, 나는 책을 읽기 전보다 아주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래서, 누가 이 책 어떠냐고, 정철이라는 사람의 글 어떠냐고 물어본다면, 이렇게 답할 거라고, 확실하게 쓸 수 있다 : 응 괜찮아, 그냥 읽어 봐.


마지막으로, '아!!'하는 느낌이 들게 했던 짧은 글 하나. 이 책에서 만난 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이다. 많이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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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위하여 - 여자가 알아야 할 남자 이야기
김형경 지음 / 창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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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기본적으로 나는 남/여를 나누고 각 성별의 특징을 설명해 주는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심리학이든 정신분석학이든 뇌과학이든 진화생물학이든, 뭘로 범주화하고 설명하든간에 읽는 내내 마음이 꺼끌꺼끌해져서 다 읽지 못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들 다 읽은 '화성남자금성여자(아 반댄가? 아 확인하고 싶지 않다ㅠㅠ)'도 참고 참고 읽다가 결국 못다 읽었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도 그리 편안한 마음이 아니었고, 불편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해서 그런지 끝내 기분좋게 읽지 못했다. 아쉬움이나 안타까움이 많이 남는 책이었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참 좋은 책이고 참 감동 깊은 책이겠지만, 나에겐 그다지 깊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ㅠㅠ



<남자를 위하여>


표지에서 먼저 눈길이 갔던 건 남자를 위하여라는 제목. 주체가 없는 듯 하지만 '여자가 알아야 할 남자 이야기'라는 부제를 참고해 제목의 빈 문장 성분을 채워넣으면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알아야 할 이야기' 정도가 아닐까 싶다. 거칠게 말하자면 '여자들아 너희들 남자를 잘 모르지? 남자는 너희가 아는 그런 존재가 아니야! 그러니까 내 얘기 잘 듣고 남자에 대해 이해해~ 그리고 나서 남자들을 잘 받아들여주렴~♡'같다는 느낌…이었…달까;;



책은 크게 네 파트로 나뉘어 있는데, 작가 스스로는 각각의 파트를 '책머리에'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첫째 장은 남자의 성격과 성향에 대한 내용으로 특히 남자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책임감과 경쟁심의 근원에 대해 알아 봄. 둘째 장은 남자들이 생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식에 대한 내용으로 여러 가지 다양한 대상에 리비도를 분산 투자하는 남자들의 특징을 설명함. 셋째 장은 남자들이 내면에 억압해 둔 부정적 감정 영역들에 대한 내용임. 넷째 장은 앞의 세 장에서 제안한 남자들의 심리에 대한 질문이자 해답 같은 내용임.


그렇지만 정말 각 장의 특징이 저렇게 잘 나타나고 있나…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남자들이 '남자라서' 갖는다는 불안과 폭력적/경쟁적인 성향과 성적 탐닉과 심리적 결핍에 대한 얘기들이 1장부터 4장까지 고루 퍼져 있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그래서 네 장의 구분에 대한 설명에서 설득력을 느끼지 못했다.

작가는 다양한 남자들의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취지로 주변에서 경험한 한국 남자 이야기, 신화, 외국 문학 작품, 외국 작가가 쓴 책에서 접한 사례 등등을 폭넓게 언급하고 있다. 이건 장점이기도 하겠지만, 삶의 경험과 배경이 서로 다른 개인들을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공통적인 존재'라 묶음으로써 단순화하고 탈맥락화한 건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동시에 들었다. 언급된 남자들의 상당수가 중산층의 화이트칼라라는 점도 아쉬웠고. 그런 면에서 생동감이 좀 부족하다는 느낌. 

이 책의 예상 독자가 전세계 사람들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한국 남자를 이해하고 싶어하는 한국 여자거나 자기가 왜 이러는지 이해하고 싶어하는 한국 남자들 아닐까(뭐 한국어를 아는 외국인도 읽을 수 있잖아! 라고 말하는 누군가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하아-_-). 그렇다면 좀더 '한국 남자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외국 신화나 민담이나 동화도 좋지만 차라리 한국 남자들의 '고유한 특징'을 보여주는 민담이나 전설이나 동화 같은 게 더 생생한 느낌을 주지 않을까 싶은.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이런저런 책을 읽고 사례들을 모아 정리한 '2차 자료' 같다는 기분이 가시지 않는다는 건 확실한 아쉬움.



울고 싶어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건 그냥 남자 얘기가 아니라 인간의 일반적인 특성 아니야?'란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자꾸 이어졌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 범주화를 전제로 쓰여진 글에서 나타나는 '어쩔 수 없는 특징'임을 알면서도 '이게 왜 남자의 특성이야? 이런 여자도 많은데?' 하는 생각이 자꾸자꾸 드는 거다. 경쟁에 대한 얘기라든지 사물을 사랑하는 남자 얘기라든지 감정을 숨기는 남자 얘기라든지…등등등.


특히 내가 가슴을 퍽 쳤던 순간은 192쪽을 읽던 때. 

남자의 심리를 주제로 다루는 책을 읽을 때 자주 의문에 빠졌던 대목이 있다. 왜 남자들은 항상 '배 째라!'는 식인가 하는 것이었다. '남자는 원래 그런 종족이다'라는 식의 내용들을 나열해두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를테면 이런 거였다. "남자는 원래 자기보다 강한 여자를 싫어하니, 남자를 떠나보내지 않으려면 그 앞에서 힘을 자랑하지 말라." "남자는 원래 철이 안 드는 종족이니 영원히 아들 보살피듯 그들을 보살펴라." "당신의 남편 혹은 남자 친구는 당신 인생에서 넘버원으로 존재하고 싶어한다. 이 사실을 명심하라." "남자가 혼자 간직하고 싶어하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경우에도 그 부분을 집요하게 건드려서는 안된다."


아 그러니까요 작가님. 그런 말들 싫잖아요. 그런데 저는 작가님 책을 읽으면서 그런 순간들을 자꾸 만나요ㅠㅠ 물론 작가님은 정신분석학과 심리학을 동원해 나름대로 남자에 대해서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설명을 해주고 계신 것 같아요.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그러그러하기 때문에 남자는 그럴 수 밖에 없다"로 귀결된다는 느낌이 들어요. 


게다가 '남녀가 사이좋게 지내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그래도 완전히 불가능한 일은 아닌 듯 보인다. 개인들이 사적인 관계에서 잘 지내는 길에는 명백히 검증된 방법이 있다. 그 방식을 더 큰 단위로 확장시켜 적용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또 순진한 환상을 꽃피워본다.'라니요ㅠㅠㅠ 결국 '여자야, 그런 남자를 이해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으렴~♡'이라는 건가요? 근데 그러면 마음이 진짜 평화로워지나요? 그리고 내 마음만 평화로워지면 모든 게 끝인가요? 아 물론 제 마음이 평화로워지면 저한테는 끝일 수도 있겠죠. 근데 저는 그런 이해를 통해 평화를 얻을 수 없어요ㅠㅠㅠㅠ 그리고 무엇보다도 작가님이 말씀하신 그 '순진한 환상'이야말로 제게 평화를 주지 않아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I'm sorry but I'd prefer not to.


책의 뒷표지에는 위와 같은 글이 쓰여 있다. 이 책이 남녀 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위한 조언이 될 거라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이 책을 읽고 '조화로운 관계를 이루어갈 수 있겠다!'는 배움을 크게 얻지 못했다ㅠㅠㅠㅠ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 깨달음은 '나'라는 인간에게 적용되는 것이므로!!!!!!!!!! 이 책을 감동 깊게 읽었거나 이 책을 읽고 인생에 꼭 필요한 조언을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할 수 없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이 다 나같지 않으니까.  누군가에게 이 책은 참 좋은 책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내게는 맞지 않는 책인 것 뿐. 그러니 '헐 내가 좋아하는 책 왜 욕함? 이따위 글 집어치우고 다시 제대로 추천하지 못하겠음?!?!'하고 누군가 나를 비난하더라도, 안타깝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바틀비의 이 말밖에 없겠다 : I'd prefer not to.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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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수업 -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법륜 지음, 유근택 그림 / 휴(休) / 2013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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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륜 스님의 책을 읽었다. 처음이다. 멘토나 힐링이라는 말에 격렬한 거부 반응을 보이던 때였다면 안 읽고 싶어했을 거다. 법륜 스님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분이 '국민 멘토', '힐링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으니까. 남의 힘으로 할 수 있는 힐링 따위란 없고, 멘티와 지속적이고 상호적인 관계를 주고받지 못하는 멘토는 의미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 명약관화해진 지금은 뭐, 힐링이나 멘토 같은 말에 좀 무관심해져서 그런지 큰 거부감 없이 책을 펼칠 수 있었다.



*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는 부제가 보여주듯이, 이 책의 예상 독자는 '잘 물든 단풍'을 향해 나아가는 분들이다. 인생의 황금기가 다 지나갔다고 생각하는 어르신들에게 당신의 황금기는 바로 지금이라고, 황금기답게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라고 어깨를 툭툭 쳐 주는 책이 인생 수업이다. 그러다보니 생로병사로부터 자유로워지기, 부모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에 너무 오래 빠져 있지 않기, 퇴직 후에도 행복하게 일하기, 자식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등에 대한 제언들을 책 곳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자식도 없고, 비혼 상태를 계속 유지할 계획이고, 퇴직 후의 삶(을 매일 생각하고 있지만 실행은 못 하고 있다보니 어쩔 수 없이 그것)과도 거리가 있다보니, 스님의 조언을 내 상황에 끼워맞춰보려고 낑낑대기보다는 인간이기에 당연히 지켜야 하고 몸에 익혀야 할 '보편적 충고'를 들어 볼까 하는 마음으로 편안하게 책을 읽었다. 이렇게 만난 스님의 말씀 중 내게 가장 와닿았던 것을 요약하자면 이 한 문장으로 쓸 수 있을 것 같다 : 인정하고, 자유로워지고, 감사해라.



* 모든 불만이란 이상과 현실의 불일치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한다. 이상이란 다른 말로 욕망일 테고, 바람일 테고, 소망일 테고, 기대일 테다. 나의 욕망과 남의 욕망은 같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때로 충돌하고 자주 갈등하므로 나의 욕망은 늘 미완성 상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기에, 욕망을 이루고 싶어하고, 그것이 이루어진 현실을 바라고, 간절히 소망하기도 하고, 기대를 갖고 기다리기도 한다. 그것이 완벽히 이루어지는 건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그냥 인정하는 것. 나의 이상은 현실이 될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 현실이 된 이상은 더이상 이상이 아닐 것이므로, 그것은 이상 자체의 숙명임을 담담히 긍정하는 것. 이런 마음을 몸에 익힌다면, 과도하게 기대하지도 욕심을 부리지도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스님의 이 말씀처럼.


길가에 난 풀 한 포기나, 산에 살고 있는 다람쥐나, 인생살이나 다 똑같습니다. 자기 자신은 특별한 줄 알지만 사실은 별거 아니에요. 아무리 잘난 척해도 100일만 안 먹으면 죽고, 코가 막혀 10분만 숨을 못 쉬면 죽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러면 특별해져야 한다는 부담 없이 가볍게 살아갈 수 있고, 어떤 사람을 만나든 어떤 일을 하든 편안하게 할 수 있습니다. (pp.16-17)


현재의 나로부터 출발하면 조금만 향상이 되어도 성과가 나니까 자긍심이 생깁니다. 그런데 상상의 나를 기준으로 삼으면, 현실의 자기가 어느 정도 올라와도 늘 그 기준에 못 미치기 때문에 항상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좌절하고 절망하는 겁니다. (p.82)


인생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먼저 지금까지 욕심내고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삶의 우선순위를 뒤로 매겨야 합니다. (pp.51-52)



* 나의 사소함을 인정할 수 있게 된다면, 집착하지 않고 자유로워질 수 있겠지. 돈이나 지위나 명예, 사회적 시선이나 사람들의 눈길로부터 자유로워져 민들레 홀씨처럼 가볍게 살 수 있겠지. 그렇게 살고 싶다. 오지 않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잡히지 않고, 올지 안 올지 알 수 없는 내일을 위해 오늘의 즐거움을 미루지 않고, 지금 내가 누리는 시간에 감사하면서, 겸손한 마음으로. 스님의 말씀을 또다시 옮겨 보자면, 이렇게.


지도자는 개인에게 책임을 묻고, 개인은 자꾸 제도에 책임을 물으면 끝이 안 납니다. 어차피 인생은 지금 이 순간에 살고 있는데, 제도 개혁은 시간이 걸리잖아요. 물론 끊임없이 제도 개혁을 요구하고 개선책을 강구해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나는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불평불만 속에서 괴롭게 산다면 내 인생을 낭비하는 거예요. 그래서 개개인도 조금 사회를 긍정적으로 보고, 그에 맞게 대처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겁니다. (p.211)


자기에게 주어진 처지를 받아들인 사람의 얼굴은 무척이나 편안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저분은 나이 들어도 참 밝고 당당하게 사는구나.' 여깁니다. 그런 모습이 바로 잘 물든 단풍이 아름답듯이 늙음이 비참해지지도 않고 초라해지지 않고 순리대로 잘 늙어가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p.226)



* 때때로 인생이 학교 같았으면, 또는 수업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졸업한 아이들 중 '선생님이 학교 다닐 때 했던 말 중 졸업 이후부터가 진짜 고생이라고, 사회 나가면 지금보다 훨씬 힘들다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있다. 인생이 수업이라면 틀리고 실수해도 괜찮을 텐데. 1교시를 망쳤어도 2교시에 잘 하면 되니까 기죽지 않을 텐데. 3교시에 잘못했어도 그 잘못을 통해 배운 걸 4교시에 써먹으면 되니까 좌절 같은 거 하지 않을 텐데. 


왜 우리는 인생을 수업 같이 살지 못하고 시험 같이 살아야 할까. 1교시에 실패했으면 2교시에 아무리 잘 해봤자 본전도 찾지 못하는 것처럼, 아둥바둥하며 집착하고 욕심 부리고 실망하고 괴로워하고 남을 미워해야 할까. 이 책의 제목, <인생 수업>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되뇌었다. 내 삶을 수업이라 생각하자고. 한 번 일어난 일을 지울 수도 되돌릴 수도 없지만, 한 순간 한 순간이 내게 배움을 주는 거라 믿자고.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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