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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꾸만 딴짓 하고 싶다 - 중년의 물리학자가 고리타분한 일상을 스릴 넘치게 사는 비결
이기진 지음 / 웅진서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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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내 삶이란 게, '물리학이라는 전공과 여타 딴짓'이 전혀 구분되지 않는 일상이 아닌가. '도대체 물리학자로서 지금까지 뭘 한 거야?'라고 자책할 수도 있지만, '실은 이게 난데?'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정말 열심히 피를 흘리며 썼던 수많은 물리학 논문에 대한 이야기를 싹 빼버린 것이 여기에 실린 '딴짓'이라는 이야기인데, 나쁘지 않다. 

-p.4, 들어가는 말 중에서

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라는 책 제목을 되뇌어 보며, 딴짓이라는 단어의 뜻을 검색해 본다. 명사. 어떤 일을 하고 있을 때에 그 일과는 전혀 관계없는 행동을 함. 또는 그런 행동. 전혀 관계없는 행동이라는 말에 마음의 모서리들이 비근거린다. 어떤 일과 전혀 관계없는 다른 일이란 게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이 리뷰를 쓰기 전 내가 어떤 문장을 써야 할까 생각하다가 나의 딴짓들을 생각하고, 그 딴짓들이 나에게 어떤 즐거움을 주었는지 생각하고, 그와 비슷한 즐거움을 주었던 또다른 딴짓을 생각하고, 그 또다른 딴짓을 새삼 해 보면서 정작 써야 할 리뷰는 쓰지 않고 시간을 보냈던 건 리뷰쓰기와 아주 조금의 상관도 없는, 쓰잘데없는 짓이었을까. 흠.


세상에 외따로 떨어져 있는 무언가는 없다고 생각하기에, 그렇지 않다고 고개를 젓는다. 오히려 그러한 딴짓들이 정작 진짜로 하려던 그 '어떤 일'을 더 풍성하게 만들 수도 있는 거라고, 우겨 본다. 그래서 자꾸만 딴짓 하고 싶어하는 이 책의 저자도, 그 딴짓들 덕분에 행복했으리라 짐작한다. 그 딴짓이 오히려 저자가 진짜 하려던 일보다 더 즐거웠던 적도 많았을 거라 추측한다. 그 덕분에 이 책의 부제처럼, 중년의 물리학자가 고리타분한 일상을 스릴 넘치게 살 수 있었으리라 싶다.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꼭 물리에 관심을 가져야만 할 일은 세상에 없고, 물리를 소통의 한 창으로 삼을 이유도 없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소통거리는 많다. 음악 이야기, 물 좋은 클럽, 랩, 맛있는 음식점, 영화. 

-p.295, '세상에서 제일 싼 정어리 깡통' 중

이 책은 물리학자 이기진 씨가 자신이 가진 보물들과 함께 살아온 이야기들을 묶은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 사이사이에 그 보물들의 역사뿐만 아니라 그에 적용된 물리학적 원리에 대한 설명도 섞어 놓았지만 교양이나 지식보다는 이기진이라는 사람의 비범하면서도 엉뚱하고 자유분방한 면모를 더 많이 느낄 수 있다. 일반 사람들이 물리보다 훨씬 더 흥미로워할 소통거리를 창문 가득 늘어놓고는, 누군가 다가와 "이게 뭐에요?"라고 말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아저씨가 상상된달까. 아저씨의 얼굴은 당연, 싱글싱글 웃는 표정일테고, 시선은 창 밖을 내다보고 있겠지.


보물이라는 말에 번쩍번쩍한 보석류나 보티첼리의 그림, 셰익스피어가 직접 쓴 미발표 원고, 루이 십몇세들이 대를 이어 쓴 왕관 같은 걸 기대한다면 매우 난감한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이 책에 실려있는 보물들은 대부분 저자가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것들이니까. 오렌지 껍질 벗기는 플라스틱 칼을 꽂아 놓은 파란 비둘기 도자기, 깨진 손잡이 부분을 철사로 둘둘 감아 놓은 흰색 티팟, 강철 와이어로 만들어진 달걀 커터, 빨간 손잡이에 세 개의 구멍이 뚫린 병따개, 나무 손잡이가 덜렁거리는 티 스트레이트…남들의  책상이나 부엌 위에서 본 것도 같은 물건들. 


각각의 물건들은 매우 흔해 보이지만, 사실은 사람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세상에 똑같은 또다른 것이 존재할 수 없는 것들이다. 공장에서 매끈하게 뽑아낸 것에서는 나올 수 없는 투박함과 정겨움. 저자는 이런 물건들 하나하나에 담겨 있는 이야기들을 편안하게 풀어놓는다. 어떤 벼룩시장에서 얼마를 주고 샀는지, 살 때 상인과 어떻게 협상을 했는지, 하나하나 정확하게도 기억하고 있는 저자의 목소리에 '혹시 지어낸 거 아냐?'라는 발칙한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ㅎ 



나는 현재가 제일 행복한 시간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어려웠던 과거 시간은 어찌어찌 다 흘려보냈고, 과거의 영광이나 즐거움 역시 지나갔다. 남은 것 중 하나인 불확실한 미래를 뺀다면 제일 안전한 지금이 최고의 시간일지 모른다. 그러나 머물지 않고 빠르게 움직이기만 하는 상황에 놓이면 나 같은 사람은 정말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또 어떨 땐 혼자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해지기도 한다. 어쩌면 그래서 이런 오래되고 시간이 멈춰 있는 아름다운 것들에게서 위안을 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숨가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어서.

-p.163, '막포도주를 담기엔 너무 예쁜 코발트 병' 중

솔직히 말하자면, 어떤 독자들은 책 속 저자의 사진을 보며 눈을 흘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_-)는 교수나 되이니까 저렇게 로봇 만들고 아르메니아 갔다 오고 파리 벼룩시장에서 물건 사 오고 한옥집에서 지낼 수 있는 거지 일반 사람들이 다 자기처럼 살 수 있나? 뭐 저렇게 속 편한 소리를 하고 있어? 사는 게 엄청 여유로운가 보지? 나 역시 좀더 어릴 적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툴툴대며 책장을 넘겼을 것 같으니까. 대학생 때였더라면 아예 읽으려 들지도 않았을 것 같고.


물론 사는 건 점점 어렵다. 항상 불안하고 대부분 불확실하며 자주 즐겁지 않고 종종 뒤처지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가 가장 행복한 시간일지 모른다고 느끼는 것 역시 사실이기에, 책 속의 어떤 문장들에 깊이 공감한다. 물건에게서 위안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결국은 갑갑한 현실로부터 마음을 쉬게 해 주고 싶은 욕망의 발로라는 고백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나 역시 번지르르한 물건들보다 '정말 말도 안되는 어떤 것들'로부터 위로받는 경우가 많으니까. 너무 지치고 지긋지긋한 날, 삐뚤삐뚤한 글씨가 적혀 있는 쪽지 하나에 마음이 물컹해지는 경험이 많았으니까.


또 한번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저자가 부럽다. 물질적 여유 때문이 아니다. 대학교수라는 직책 때문도 아니다. 규격화되고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자유로움이 부럽다. 번지르르한 자랑거리들을 늘어놓으며 거들먹거리는 대신 소박하고 털털하게 작은 행복들에 관해 수다를 떠는 모습이 편안하고 자신 있어 보였다. 자신과 자신의 삶을 참 사랑하고 긍정하는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행복한 기억이라며 신 김치와 흰쌀밥을 만 김에 간장을 살짝 찍어 먹었던 어느 여름의 (자그마치) 성찬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특히 그랬다. 그러고 보면 나 역시, 저자처럼, 행복한 기억의 대부분은 거대한 무언가가 아닌 자잘하고 소박한 경험이었던 것 같기도.



생명의 존재는 그 원형의 유지에 있다. 어떠한 세상 풍파 속에서도 자신의 모습을 지켜 내는 것. 변형되거나 변질된 모습 없이 세월을 이겨 내고 의연한 존재 가치를 만들어내는 물건. 그런 것은 영원한 생명체와 같은 존재감을 지녀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영감'이라는 정신적인 축복을 선사한다. 우리는 그 영감을 통해 물건의 존재와 대화를 시작한다. 

-p.215, '아니, 이제는 개집까지 모으냐?' 중

누군가는 무표정한 얼굴로 사람이라면 딴짓하지 말고 자기 할 일을 해야 한다고들 한다. 학생은 공부를 하고 직장인은 업무를 하고 공무원은 공적 이익을 추구하고 자영업자는 사업장의 이익을 도모하는 게 맞는 거라고. 하지만 공부가 학생도 아니고 업무가 직장인도 아니고 공적 이익이 공무원도 아니고 사업장의 이익이 자영업자도 아니다. 한 인간이 '해야 한다'고 의무시되는 일이 그 인간 자체의 본질과 일치하지 않거나 큰 상관이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다. 오히려 딴짓이 나를 숨쉴 수 있게 하고 살아지게 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딴짓하지 말라고, 할 일만 하라고 한다면, 어휴, 얼마나 갑갑할까. 상상만 해도 숨이 막힌다.


가끔씩은, 아니, 자주, 나도 딴짓 하고 싶다. 고유한 존재감을 가진 물건들을 마주하고, 그 물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 나와 함께 살아온 시간 동안 너희들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느냐고, 너희들이 이렇게 변할 동안 나는 어떻게 변했노라고, 듣고 말하고 싶다. 그 대화를 통해 힘을 얻고 위안을 얻고 영감을 얻고 싶다. 아, 아무래도 내일은 꼭 시간 내어 딴짓을 해야겠다! 오랜만에, 공들여서!!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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