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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윤대녕 지음 / 현대문학 / 2014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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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든 지금에 와서야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p.127)

윤대녕의 소설을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다. 중학생 때 이미 성인 여자 같았던 그녀에게, 대학교 2학년 때쯤『은어낚시통신』을 선물받았다. 집에 돌아와 쭈뼛거리며 책을 펼쳤다. 책 속 사람들은 쓸쓸했고 모호했다. 책장이 잘 안 넘어갔다. 두터운 안개 뒤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멀리 떨어져 힘들게 관찰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한숨을 쉬며 책을 덮었다. 나는 아직도 너와 친구가 되었던 중학생 때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데, 너는 내게 이 책을 주다니. 다른 책을 읽어 볼까 하고 도서관에서 몇 권의 소설을 빌렸다. 여전히 힘겨웠다. 그 정서와 분위기는 내 것이 아니었다. 반도 읽지 못하고 반납 날짜를 넘겼다.


그 이후로 윤대녕의 글을 읽지 못했다.『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을 읽기 전까지 쭉. 표지를 바라보며 과연 내가 이걸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의심했다. 책 속의 남자는 여전히 쓸쓸했고 어두웠으며 책 속의 대화들은 누렇게 바랜 종이 위에 인쇄된 듯 낯설었다. 변한 건 나였을까? 술술 잘 읽혔다. 스무 개 남짓의 장소들에 얽힌 윤대녕의 이야기들이 쏙쏙 흡수됐다. 작가의 말까지 다 읽고 생각했다. 나도 유령처럼 서성대는 어른이 되어버렸구나. 이 책이 이렇게 잘 읽히는 건 그 때문이겠구나.




얘야, 이것이 과연 삶이라는 거냐? (p.26)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은 윤대녕의 기억 속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이다. 과거에 머물렀던 곳이기에 지금은 장소로만 남아 있는 곳들을 그는 섬세하게 공간화한다. (그가 생각하는 장소와 공간의 차이점은 광장에 대한 이야기에 잘 설명되어 있다. 이렇게 : 광장은 약속의 장소이면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기도 하다. 또한 그곳에서는 자주 음악회나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그러할 때 광장은 자연스럽게 공간화된다. 사람이 모여 있지 않은 광장은 단순한 장소에 불과한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집이자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집, 어머니의 집, 결혼한 이후 살고 있는 집, 잠시 지나쳤던 휴게소와 영화관과 공중전화 부스와 우체국, 아버지와 함께 갔던 역전 다방이나 아들과 함께 갔던 바닷가나 지인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찾았던 노래방 등 다양한 장소들에 얽힌 이야기들을 천천히 풀어놓는다. 차분한 말투에서는 자신이 살아온 시절들을 담담히 정리하는 듯한 여유마저 엿보인다. 그 역시 작가의 말을 통해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던 과거의 기억들을 복원하는 글쓰기가 많은 순간 내게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삶을 복원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더불어 삶이 내게 남겨준 것이 무엇인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254쪽)고 고백한다.



비록 어두웠던 기억일지라도 내게는 여전히 잊지 못할 추억의 공간으로 존재하고 있다. (p.106)

에세이라면 응당 그러함이 당연함에도, 나는 자세하고 솔직하며 사사로운 일들을 다수의 대중에게 공개하는 작가들의 대담함에 새삼 놀라곤 한다. 이 책을 읽을 때도 그랬다. 불도에 귀의하고자 절을 찾았던 얘기나 세상을 떠난 이를 생각하며 방송통신대 뒤편에 있는 술집 문을 두드리던 얘기를 읽으며 슬픔에 젖어 서성대는 남자의 구겨진 어깨를 떠올리다가, 매일 꼬박꼬박 헬스클럽에서 한 시간씩 운동을 하며 아들과 함께 낚시를 다니고 프로야구 경기를 보러 간다는 이야기에서 아버지의 단단한 뒷모습을 떠올리기도 했다.


억압을 많이 받고 자란 외아들 출신으로 선천적으로 병약하고 초등학교 때부터 가출을 일삼았으며 혼자 저녁을 먹고 맥주를 마시는 데 익숙했던 이는, 부엌에서 꼼꼼히 밥을 차려 먹고 성실하게 건강을 관리하고 아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이와 같은 사람이다. 둘 중 하나가 진짜고 하나가 가짜인 것이 아니다. 진짜인 한 인간의 다양한 모습이 공간 속에서 진솔하게 펼쳐지는 모습에, 야릇한 감동 비슷한 것이 느껴졌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글은 도서관에 관한 글이었다. 도서관을 유령들이 득실거리는 납골당에 비유한 그의 표현은 매우 신선했다. 도서관을 찾았던 소년 윤대녕이 엄숙하고 권태롭고 음울한 사서의 침묵에 압도당해버렸기에, 한참 전에 어른이 된 지금도 그는 도서관을 죽은 말의 세계이자 밤마다 유령들이 출몰할 수 밖에 없는 공간으로 묘사할 수 있는 거겠지.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이들의 뒷편에서 카프카가 도스토옙스키가 카뮈가 웅성거리기도 하며, 때로는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되살아나 주위에서 서성거리기도 한다는 문장을 읽으며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문득 느껴지는 인기척에 뒤를 휙 돌아보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별빛속에 수많은 나그네들이 길을 가며/ 또 그대에게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다 (p.157)

나도 때때로 과거를 떠올린다. 경사가 많고 골목이 어지럽게 엉켜 있던 서울 변두리의 주택가를 떠올리기도 하고, 과일 냄새와 만두를 찌는 열기와 빵 굽는 냄새와 허여멀건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던 생닭의 축축함이 섞여 있던 시장 골목을 생각해내기도 한다. 신기한 건 구체적인 일이나 사건, 같이 있던 사람들의 얼굴보다 먼저 '어떤 장소'들이 먼저 떠오른다는 거다. 언제, 누구와 같이, 무슨 일을 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 장소가 기억의 끝자락을 붙잡고 늘어져 당황하기도 했다.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을 마지막 장까지 다 읽고 나서야, 과거를 떠올릴 때 장소가 가장 먼저 기억났던 이유를 조금은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의 나는 이미 없어졌고, 그 시간으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고, 그 때를 같이 보낸 사람들과는 헤어졌다 할지라도, 그 때 나라는 사람이 누군가와 함께 있었던 장소는 남아 있으니 이 기억이 내 상상은 아니라고, 기억 속의 나는 분명 있었던 것이라고, 믿고 싶은 게 아닐까. 그 때의 나와 그 때의 시간과 그 때의 사람들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볼 수 없는 것과 달리, 그 장소엔 가 볼 수 있을 거고 그 땅은 밟을 수 있을 테니까. 


광장에 관한 글을 다시 한 번 읽으며 문득 그려 본다. 약속의 장소이면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곳. 사람이 존재하면 그 순간 공간으로 변하는 곳. 어떤 관계도 만남도 상상도 가능한 곳. 미래의 삶과 연관되어 있는 곳. 지금 그 곳에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천막 속에 앉아 있고, 유민이 아버님께서 30일 넘게 단식을 하고 계신다. 노란색 리본을 달고 광장을 찾는 사람들 덕분에 공간화되는 그 곳. 오늘 수척해진 유민이 아버님의 손을 잡아 주었던 교황님의 마음은 그곳을 어떤 공간으로 만들어 줄까.  모든 일은 늘 '그 이후'에 가서야 의미가 확인되는 법일 테니, 더 많은 시간이 지나야만 알 수 있겠지. 지금은 그저, 인간의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하는 공간이기를, 아름다운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기를 기도해 본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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