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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라디오 - 오래 걸을 때 나누고 싶은 이야기
정혜윤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신해철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음악에 대한 이야기 중간 즈음에 DJ로서의 신해철에 관한 이야기가 끼어 있었다. 수많은 학생들을 잠못들게 했던 음악도시 때문에 '애들이 늦게까지 저거 듣고 와서 존다'고 교사들이 푸념했다는 문장을 읽고 낄낄 웃었다. 나도 그랬지. 청취자들을 쥐고 흔들며 웃겼다 울리다 결국은 넋나가게 했던 신해철의 음악도시는 종교집단이나 피라미드 집단의 모임 같아 한 회라도 듣지 않으면 벌받을 것 같았으니까. 음악도시뿐인가. 별밤, FM 인기가요, FM 데이트, 볼륨을 높여요, 밤의 디스크쇼, 기쁜우리젊은날, FM 영화음악, FM은 내친구, 음악캠프…소년 시절의 밤에 윤동주가 부른 이름들이 프랑시스 쟘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였다면, 소녀 시절의 밤에 내가 부른 이름들은 저것들이었을지도.


 

나는 오랫동안 언젠가는 라디오에 대해서 쓰고 싶다고 생각해 왔어. 무엇을 쓰고 싶은 걸까? (p.13)

라디오를 떠올릴 때마다 느껴지는 애틋함과 아련함이 어디 나만의 것일까. 지금도 라디오를 매일 듣고, 가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나만의 일일 리 있을까. 그러니 라디오 제작과 관련된 얘기, 특히나 그 뒷얘기라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고 재미있어 할까. 책 제목인 마술 라디오를 보자마자 굴비 두름처럼 줄줄 묶여나올 수 있었을 저 생각이 책을 다 읽은 이후에야 떠오른 건 책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 채 무턱대고 책을 펼쳤던 탓일 게다. 라디오에 얽힌 마술 같은 이야기인가보다, 라고 예상하면서 읽기 시작했으면 됐을 걸.


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웠다. 이 말투는 뭐지? 언제까지 이 말투를 쓰는 거지? 이 프롤로그는 뭐지? 무슨 얘기를 하겠다는 거지? 어떻게 흘러가는 거지? 왜 갑자기 팬 얘기가 나오지? 김어준과 일곱 개의 오렌지와 황병기 선생과 윌리엄 포크너와 몇 개의 공식들 사이를 왔다갔다 하다 보니 응? 엉? 엥? 등의 말들이 혀끝에서 튕겨져나왔다. 그래도 투덜대지 않고 노오란 페이지를 계속 넘겼던 건 이 '계단' 이야기가 꽤 인상깊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부끄러움의 계단, 수치심의 계단, 자책의 계단, 결심의 계단, 핑계의 계단, 책임 공방의 계단, 감탄의 계단, 놀라움의 계단, 암중모색의 계단, 발견의 계단…내가 매일매일 딛고 오르내렸던 온갖 계단에도 저런 이름들을 붙일 수 있었을 텐데. 왜 나는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 보지 못했던가. 일상 속에서 이야기를 발견해내는 능력이, 혹은 이야기를 엮을 수 있는 마음의 눈이나 쉼의 여유가 내겐 그만큼 부족했기 때문일까. 이 생각이 들고 나니 이 책에서 펼쳐질 얘기가 무엇이든간에 나는 이것을 읽고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믿음이 (어처구니없게도!) 생겨 버렸다.


혼란하던 게 천천히 가라앉고 집중하며 읽을 수 있었던 건 프롤로그 중반을 훨씬 넘겼을 때였다.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했던 이야기들을 이제 수년 전 보물 릴테이프를 만들 때처럼 편집해서 통째로 넘겨. 나는 이 이야기들이 좋았어. 이야기들이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야…(중략) 이야기 속 사람들이 질문에 따라 살고 있었기 때문이야라는 부분을 읽으며, 나에게도 이 이야기들이 질문을 던져 주기를, 이 이야기들을 읽어가면서 나 역시 나의 질문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



어떤 이야기들이, 잊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내 왕국에 살고 있어. (p.307)

프롤로그가 끝나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나오는 열 네 개의-하지만 어쩌면 하나의 내용인 것도 같은-이야기들이 주욱 이어진다. 아내와 함께 배를 타는 어부 아저씨, '빠삐용'의 아버지, 브람스 교향곡을 듣는 선배, 장승을 만드는 노인, 일흔 여덟에 글을 배우기 시작한 할머니, 젊은 2세대 노점상, 헤엄칠 때 노래를 부르는 해녀……'세상에 이런 일이'나 '궁금한 이야기 Y' 같은 TV 프로그램 같은 데서 본 듯한 이야기 같기도 하고 언젠가 누군가에게 들어본 듯한 이야기 같기도 하다. 하긴, 아무리 파란만장한 인생이라도 요약해 놓으면 평범하고 뻔해 보이는 거다. 내 인생이 아니라면 더더욱. 내게 일어난 발톱만한 일은 머리통만하다고 펄펄 뛰면서도 파도 같은 남의 일은 물장구 같은 거라 여기며 흘낏 보고 마는 게 인간이니까.


그래서 정말 마술 같은 건 이야기 속 인물들의 삶에 대한 요약본이라기보다는, 그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살아보고, 겪어보고, 부딪쳐본 후에 만들어진 생각들. 실낱 같은 순간들, 조각 같은 경험들이 꼬아 놓은 새끼처럼 서로 엮이고 엉켜 만들어진, 단단한 알맹이들. 그것들이 언어화된 결과물을 눈으로 짚어가다가 문득, 수많은 목소리를 들었다. 거칠고 투박하고 때로는 쉬어 있는, 고달픈 삶의 무게가 성대에도 얹혀 있는 듯한 주름진 목소리들. 그런데도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헉헉대지 않고 깊은, 귀 안에서 오랫동안 울림을 남겨 놓는, 따듯한 목소리들.


제일 나쁜 건 제가 장애인의 아버지란 게 아니에요. 제일 나쁜 건 저에게 둘러댈 만한 확실한 핑계거리가 있다는 거죠. 이 애는 내 삶이 힘들다는 언제나 편리하게 내세울 수 있는 핑계일 수 있다는 거죠. (중략) 애가 아니어도 사는 건 어차피 힘들어요. 애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에 힘들 때도 많아요. 사는 건 복잡하고 까다롭고 제멋대로이고 엉망진창 뒤죽박죽이죠. 그렇지만 태어난 것을 생각하면 변함없이 낯설 정도로 까마득하게 신기하기만 해요. (89쪽, 빠삐용의 아버지 중)


혼자 장승 깎는 걸 배워서, 버려진 나무 주워다가 장승을 만들고 구절을 새겼지요. 살면서 내가 알게 된 것들, 책에서 읽고 가슴에 남은 것들을 새겼어요. 장승의 글귀들이 이래 되잖아요. 걸레처럼, 바다처럼, 흙처럼, 빗자루처럼. 이런 글귀들을 새긴 거죠. 걸레처럼, 빗자루처럼 마음을 닦고 살자는 말이죠. 마음을 닦고 흙처럼, 바다처럼 살자는 말이죠. (196쪽, 소원을 70퍼센트 이룬 노인 중)


원래 사람이 그래. 떳떳치 못하면 세상 모든 게 자기를 탁한다고 해싸토만. 항상 떳떳해야 해. 사방에서 탓하는 소리가 들린당게. (256쪽, 간월도의 달 중)



나는 나라서 소중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 나를 믿고 소중한 이야기를 해서 소중해지고 있어요. (p.304)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건, 목소리의 주인공들이 다른 약자에게 책임감을 느끼는 약자들이란 점이었다. 남의 아픔은 외면하거나 경시하면서 나의 아픔만 내세우며 징징대는 이들의 목소리란 얼마나 추한가. 그에 비해 사는 게 힘들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그 힘들다는 것이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낸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는 약자, 그래서 다른 이들의 아픔에 연민을 느낄 줄 아는 약자의 목소리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렇기에 표고버섯 아저씨의 이런 노점상 일 하면서 딱딱한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게 표고랑 비슷한 것 같아요. 딱딱한 현실에서 피어나잖아. 나는 내가 표고 같다고 생각해요…라는 말 앞에서, 한달에 2만 원씩 꼬박꼬박 기부한 경비원 아저씨의 왼종일 좁디좁은 경비실에 앉아서 이 방법 말고 어떻게 우주를 꿈꾸겠어요? 우주의 한 귀퉁이에 사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세상과 접촉하겠어요?라는 질문 앞에서, 생선 파는 노점상 할머니의 인생은 딱 이거야, 어떻게 살아왔냐야. 행복, 최후의 순간에 말하는 거야. 인생은 다 살고 끝에 가서 말하는 거야라는 선언 앞에서, 나는 눈물이 핑 돌 뻔했다.


어쩌면 이 책 자체가 하나의 질문인지도 모른다. 일등을 하기 위해서 딴 데 신경쓰지 말고 앞만 보라며 엉덩이를 맞는 말처럼, 세속적인 부와 명예와 성공과 권력을 위해서는 남 따위 생각하지 말고 전진하라며 초단위로 채찍질당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계속 물어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너에게 소중한 건 무엇이니? 라고. 


너에겐 무엇이 소중하니? 네 돈이? 네 집이? 네 차가? 네 위치가? 네 통장 속의 숫자들이? 혹시 이런 얘기를 들어본 적은 없니? : 저는 인생에서 사회적 지위가 중요하다고 생각지 않아요. 이룬 것이 중요하다고도 생각지 않아요. 저는 우리들이 살면서 부끄러운 일을 저지르고 산다는 것을 알기 떄문에 더는 그것을 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중략) 그녀랑 이야기하는 순간은 마치 여기가 시장이 아니고 학교인 것 같아요. 그게 살아가는 것을 쉽게 해주진 않아요. 하지만 살아가는 것을 더 괜찮게 여기게 해 줘요. 네가 살아가는 것을 더 괜찮게 여기게 해 주는 건 그 숫자들과 물건들이니? 그렇다면 그 숫자들과 물건들이 없을 때, 너라는 존재는 소중하지 않니? 그렇지 않다면, 네가 살아가는 것을 더 괜찮게 여기게 해 주는 건 도대체 무엇이니?




내가 보이는 세계를 자신도 상상해보려 해. (p.322)

사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나는 답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네가 살아가는 것을 더 괜찮게 여기게 해 주는 건 도대체 무엇이니?라는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가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여전히 내가 있는 곳은 계단 위라는 것. 아직 나는 어딘가에 도달하지 않았으므로, 불행과 불운에 대해 불평만 늘어놓고 있을 수 없다는 것. 가장 큰 선물은 시간을 나눠 갖는 것 아니겠느냐던 작가의 질문처럼, 나와 다른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과 또다른 시간을 계속 나눠 가져야 한다는 것. 그 과정에서 고민과 이야기와 비밀과 눈물과 웃음을 나누다가 공동의 기억과 경험을 만들다가 그러다가 함께 변해가면 될 거라는 것.


그러니 그때까지 저 질문을 잊지 않아야 할 테다. 그리고 상상력을 잃지 말아야 할 테다. 우리가 헛되이 살면 가장 크게 오래오래 상처를 받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의 아이들, 우리의 뒷세대,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보다 오래 살아남을 사람들일 테니까, 비록 그들의 모습이 지금 내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상상해야 할 테다. 죽음 이후에 대한 감각, 나의 삶과 죽음이 누군가에게는 희망이란 그 감각을 손끝에 기억하면서, '너'의 이야기를 찾고 듣고 읽으며 불을 밝히고 일을 해야 할 테다. 그래야만 할 테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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