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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가는 문 - 이와나미 소년문고를 말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 미야자키 하야오가 열어 준, 책으로 가는 문.

명사가 추천하는 책 목록을 읽는 것은 대부분 흥미로운 일이다. 예전에는 네*버에서 연재하는 '지식인의 서재(http://bookshelf.naver.com)'를 꼬박꼬박 챙겨 읽으면서 이 사람이 추천한 책 중 내가 읽어본 건 몇 권인가, 갖고 있는 건 몇 권인가 하나하나 세어보기도 했다. 누군가가 추천하는 책 목록을 훑다 보면 그 사람의 취향을 알 수 있게 되어 흥미롭기도 하지만, 세상엔 정말 읽을 책이 많구나 싶어 머리가 어질해지기도 한다. 나를 뺀 사람들은 다들 이걸 읽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괜히 불안해지기도 하고ㅎㅎ


그러나 그보다 더 큰 건 역시 부러움인 것 같다. 이 책 한 번 읽어봐, 참 좋아! 라고 추천하는 사람들의 자신만만함에 대한 부러움. 난 이 책이 좋아! 라고 당당히 밝힐 수 있다는 건 언제 읽어도 좋은 책이라는 거 아닌가.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와 미래의 나는 분명 다를 테지만, 이 책은 언제의 내게라도 좋은 책일거라는 확신. 언제의 내게라도 좋은 책이라면 어떤 시공간에 있는 어떤 연령의 이에게라도 좋은 책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 누군가에게 책을 선물할 때마다 딴 게 더 낫지 않을까? 과연 이 책을 좋아는 할까? 나한테만 특별히 좋은 책인 건 아닐까? 하고 자주 주저하는 나인지라, 부러움이 가장 큰 건지도 모르겠다.


책으로 가는 문을 처음 읽을 때에도, 참 부러웠다. 아이들에게 추천해줄 수 있는 책을 50권이나 뽑을 수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부러웠고, 이토록 흥미로워보이고 때로는 사랑스러워보이기까지 하는 책들로 꾸려진 소년문고를 갖고 있는 일본이 부러웠고, 마음만 먹는다면 이 책들을 한 권 한 권 다 찾아 읽을 수 있는 일본 사람들이 부러웠다.


처음엔 내가 읽어본 게 있는지 손가락을 꼽다가 그만뒀다. 내가 읽었던 책과 미야자키 하야오가 추천한 그 책은 제목만 같을 뿐 하나의 책이 아니니까. 내가 읽은 하이디엔 마르타 프파넨슈미트의 귀염 돋는 그림이 없었고, 내가 읽은 톰 소여의 모험은 노먼 록웰의 그림이 표지에 있는 책이 아니었으니까. 일본어를 읽지 못하고 일본에 살지도 않는 내가 죽기 전 이와나미 소년문고를 읽게 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우니 아마도 나는 이 책에 소개된 50권을 단 한 권도 읽을 수 없을 테다.


**윗사진 : 미야자키 하야오의 친필 추천사. 이 추천사가 책 한 권 한 권마다 붙어 있다.


* 미야자키 하야오가 전해 준, 책에 대한 이야기.

그가 추천한 책을 한 권도 읽지 못하게 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왜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 책을 추천했을까, 이 책을 추천하면서 그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를 짐작해 보는 일이었다. 그 짐작의 실마리는 '책'에 대해 미야자키 하야오가 남긴 말들에서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책의 2부, [소중한 책 한 권만 있으면 된다] 부분에서. 어떤 의미에서, 내게 50권의 목록보다 더 의미있었던 건 2부이기도 했고.


이런저런 인터뷰에서 미야자키 하야오가 했던 말들을 기초로 묶고 다듬은 2부에서, 그는 책에 대한 추억을 잔잔하게 풀어놓으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책의 의미, 특히 어린이책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1950년대에 읽었던 책은 글자가 가득 들어찬 책이었다며, 내용이 있는 책이니 공손하게 읽으라는 느낌을 주었다는 말부터 인상적이었다. 공손함이란 새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길 때의 설렘과 비슷한 것 아닐까. '어디 한 번 나를 설득시켜 보시지'라는 건방 대신 '와, 이 책을 통해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또 새롭게 알거나 느끼게 되겠구나!'하는 두근거림. 요즘의 나는 그런 공손함을 가지고 책을 접하고 있는 걸까. 겸손하게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이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걸까. 한번 반성해 보기도 했다.


자본론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칸트와 헤겔, 사르트르, 마르크스, 키에르케고르 등를 언급하면서 펼치는 순간 졸립니다. 도대체 단어부터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읽지 않으면 안 되는 책을 상당히 읽지 않고 지냈습니다.라고 진솔하게 고백하는 부분에서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럼에도 자기 안에 담긴 서랍을 언제 읽었는지 기억도 못하는 책들로 가득 채울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많은 작품들을 만들 수 있었다는 회고. 


그러고 보면 '읽지 않으면 안 되는 책'이 정말 있을까 싶다. 사람들의 생각도 취향도 감수성도 감각의 예민도도 다를 텐데, 모든 이에게 의미 있는 만큼의 정보와 감동과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책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사실 인간이라면 이 정도는 읽었어야지! 넌 이 정도의 책을 읽지 않았으니 교양 없는 사람이야! 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폭력적인가. 자본론이든 순수이성비판이든 논리학이든, 잠을 쫓아가며 꾸역꾸역 페이지를 넘겨 마지막 장까지 다 읽어치우는 것도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나를 힘들게 하는 책 대신 톰 소여의 모험이나 파브르 곤충기를 읽고 역시 엄청나게 재미있구나! 경탄할 만한 이야기야! 라고 감탄하는 것 역시 의미 있는 독서 아닐까. 얼마나 어려운 책을 읽는 사람인가를 인간 판단의 한 기준으로 삼는다는 게 얼마나 멍청한지 잘 알고 있으면서, 왜이렇게 나는 종종 그것이 어리석음을 잊어버리는지.


소년문고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편견이나 책 자체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게끔 하는 세태를 차분하게 지적하는 부분 역시 기억에 남는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들.


어린이문고의 역사를 보면, 처음에는 어른으로서 아이에게 뭔가 좋은 것을 전해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말 잘 들으면 좋겠다, 배우면 좋겠다, 나쁜 짓 하면 혼난다는 등 교훈을 담으려 합니다. 그러다가 점점 문학적 감동을 담은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려는 움직임으로 나아가지요. (p.98, 그러니까 결국 '어른으로서 교훈을 담으려고 한 책'은 제대로 된 작품이 아니라는 거잖아! 근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ㅎ 의도된 교훈성은 아이들을 피곤하게 해요!)


일본 영화계에서는 어린이를 위한 작품을 '조무래기물'이라고 했습니다…저는 그 '조무래기물'이라는 발상이 싫었습니다. (p.105, 이 역시 어른들의 건방짐. 나이가 어리다는 게 무시해도 된다는 건 아니라는 건 너무 당연한 얘긴데.)


어느새 모두가 소인이 되어버린 겁니다. 세상에 대해 무력해져서 한 푼이라도 싼 게 낫다는 둥 하찮은 문제로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시야도 정말 좁아졌습니다.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게 어떤 인간으로 살 것인가 논하던 거대한 주제는 지금 건강이나 연금 이야기로 바뀌어버렸습니다. (p.108, 물론 연금 이야기나 건강 이야기도 중요한 얘기긴 하지만ㅎ 여기서 그가 토로하고 싶었던 건 사익만을 중시하는 존재들로 변해 버린 인간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닐까.)


오늘날은 사진도 영상도 흘러넘쳐서, 한 장의 그림을 꼼꼼히 읽어내는 습관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p.127, 깊이 공감. 그리고 반성. 꼼꼼히 그림을 읽어본지 나 역시 너무 오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의 과제는 우리들 안에 싹트는 값싼 니힐리즘을 극복하는 일입니다…깊은 니힐리즘은 생명의 근원에 대한 물음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만, 값싼 니힐리즘은 게으름의 변명이기 일쑤입니다. (p.149, 결국 삶을 치열하게 대하지 않는다면 모든 게 다 허무할 뿐이겠지.)


앞으로 참담한 일이 속속 일어나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를 테지요. 아직 끝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진도 끝나지 않았고, '몬주'도 정리되지 않았고, 원전도 재가동하려고 기를 쓰는, 그런 나라니까요. 아무도 현실을 보려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p.157, 미야자키 하야오가 말하는 일본의 현실이 한국의 현실과 쌍둥이 같아 소름이 끼쳤다.)



* 미야자키 하야오가  남겨 준, 책이 가진 과제.

그의 말마따나 값싼 니힐리즘과 자포자기한 데카당스의 향락주의가 한층 더 강해지고 살벌해지는 앞으로의 시대에, 책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특히 어린이책은, 어린이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너희가 살 세상이 얼마나 무섭고 지독하고 끔찍한지 일찍부터 알려주는 걸 해야 하나. 저 끝의 절망까지 떨어져 보게 하여 쓸데없는 희망따위 갖지 말라고 충고해야 하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만드는 것 이상을 소비하는 이 생활을 그만둘 수밖에 없습니다. 가난해지기도 하겠지요. 전쟁마저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전세계가 터질 것처럼 부풀어 있습니다…거대한 경제 변동에 농락당할 가능성도 농후합니다. 그렇게 되더라도 마음가짐은 무너지지 말자 다짐할 도리밖에 없습니다. (p.153)


어린이문학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이것이 인간이라는 존재다"하고 인간 존재에 대해 엄격하고 비판적인 문학과는 달리 "태어나길 정말 잘했다"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살아 있어 다행이다, 살아도 된다"라는 응원을 아이들에게 보내려는 마음이 어린이문학이 생겨난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아이들에게 절망을 말하지 마라"는 뜻입니다. 아이들 일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평소에 니힐리즘이나 데카당스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라도, 눈앞에서 아이의 존재를 본다면 " 이 아이들이 태어난 걸 쓸데없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하는 마음이 강하게 작동하는 것입니다. (p.155)


아무리 거지 같은 세상이더라도, 태어나길 잘 했다고 도닥여줄 수 있는 문학. 너희가 세상을 오염시키기만 하는 존재들이 아니라, 나름의 가치와 의미를 가지고 태어난 생명들임을 주장해 주는 문학. 나와 마찬가지로 너도 소중한 생명이니까, 너를 위하듯이 남을 위해야 한다고 속삭여주는 문학. 그것이 앞으로의 책들이 해야 할 일들이라면, 내가 할 일은 그 책을 읽고 그 책의 메시지를 기억하면서 전하는 일이겠지. 그것은 어두운 세상을 완전히 외면하거나 그로부터 도피하는 것과 분명 다르리라고 믿는다. 태어나길 잘했다고 말해 주는, 그래서 읽는 사람을 더없이 행복하게 하는, 그 책을 만날 수 있도록, 권할 수 있도록, 선물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이야기를 읽고, 생각하고, 나눠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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