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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당한 유언들 밀란 쿤데라 전집 12
밀란 쿤데라 지음, 김병욱 옮김 / 민음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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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쓰기'를 눌러버린 지금 이 순간도 '이 책은 소설이 아니잖아, 근데 왜 주목할 만한 소설 신간으로 선정된 거냐고ㅠㅠㅠㅠㅠ'로 시작하는 불평을 좔좔 늘어놓고 싶은 마음이 아주 없지는 않다(이런 문장을 썼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불평의 9할은 다 한 셈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대해 별 다섯 개를 매겨 놓고, 리뷰를 시작한다. (왜 별을 다섯 개 매겼는지는 마지막에 쓸 것이다ㅋ)



<배신당한 유언들>은 말 그대로 예술가들의 배신당할 수 밖에 없는 유언들에 대한 쿤데라의 글이 묶여 있는 책이다. 글 한 편 한 편은 길지 않지만, 꽤 많은 작가들과 작품들이 인용되어 있기에 풍부한 배경 지식이 없다면 이해하기 쉽지 않은 글이다. 물론 나는 풍부한 배경 지식이 없기 때문에 이해하려고 애쓰기보다는 그냥 그러한 존재가 있음을 확인하면서 넘어가야만 했다(즉 야니체크의 음악에 대한 부분을 읽으며 '아 쿤데라의 이 말은 야니체크의 이 음악에 대한 설명 같은데 왜 나는 이 음악에 대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지?'라고 고민하지 않고 '응응 그래 세상에 이런 것도 있구나 응응 예 아이고 잘 알았습니다' 하며 술술 페이지를 넘기는 식으로-_-). 따라서 내가 이 책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하긴 매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책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게 가능한가? 어떤 책까지 갈 것도 없다, 어떤 문장 하나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이 가능한가? 아니, 그 이전에, 완결된 의미를 지닌 완벽한 문장이란 게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가능한가? 글쎄, 완벽한 직선 하나 제대로 긋지 못하는 인간이 그런 걸 만들 수 있을까? 


나는 내가 던진 저 질문들에 대해 모두 다 회의적이다. 그렇기에, 완벽하게 이 책의 내용을 숙지하지 못했을지라도, 쿤데라가 언급하는 헤밍웨이의 책과 카프카의 책과 니체의 사상과 야니체크의 음악과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에 대해 지식이라 할 만한 정도의 정보도 갖지 못했을지라도, 그가 헤밍웨이와 카프카와 니체와 야니체크와 스트라빈스키와 플로베르와 조이스와 발자크 등등을 인용해 가며 이 글들을 써내려간 '의도'가 무엇일지 추측해 가며 이 책을 읽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총 9부로 이루어져있다. 각 부의 줄거리나 중심 내용을 일관되게 요약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므로 그냥 인상적이었던 부분들 또는 비중 있게 다루어진 소재를 언급하자면, 1부에서는 소설과 유머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했고, 2부에서는 카프카를, 3부에서는 스트라빈스키를 중심으로 글이 묶여 있었다. 4부에서는 쿤데라가 직접 카프카의 문장을 번역해 보면서 카프카의 글에서 나타나는 특징들을, 5부는 헤밍웨이의 단편을, 6부에서는 니체의 사상을, 7부에서는 야니체크의 음악을 중심으로 한 글이 실려 있었다. 8부에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여러 소설 속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9부에서는 (제목과 가장 관련이 깊게) 예술가의 뜻과 반하는 방식으로 쓰이거나 재편되거나 만들어진 예술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1부였다. 쿤데라는 소설 속의 유머를 유머로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유머를 이해시키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도 없다는 깨달음을 털어놓는다. 소설이란 모든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호기심을 품고 자기 것과는 다른 진실들을 이해하도록 노력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여기서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란 '그저 장난이라 생각하고 가볍게 넘기는 것'의 반의어가 아니라, 소설 속의 모든 사건에 대해 윤리적으로 '판결'을 내려야만 한다는 강박을 가리킨다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소설은 도덕적 판단이 중지된 땅이어야 한다는 쿤데라의 말은, 일견 틀리게 보이지만 사실은 진실이라고 믿는다. 저 말은 소설이 도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영역이어서, 비윤리적인 내용-예를 들어 한국의 상황이라면 어떤 게 있을까, 5.18 때 시민들에게 발포를 허락한 '그들'의 용기와 대담함을 열정적인 어조로 찬양하는 것 따위? 아, 글자로만 봐도 토할 것 같구나-을 아무렇게나 써제껴도 된다는 말이 아닐 것이다. 소설 속의 내용을 현실의 잣대로 재어 '선'인지 '악'인지 구분하느라 낑낑대지 말고, 그 겉 이야기 속에 숨어 있는 진실을 발견하려고 호기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는 뜻일 게다. '얘는 좋은 얘기니까 상' '얘는 나쁜 얘기니까 벌' 따위의 규범적 갑갑함에서 벗어나, 작가가 숨겨 놓은 유머를 찾아 내라고.


그래서 쿤데라는 소설 속의 모든 존재들이 그의 내부에서 잠자는 그 자신의 가능태들이며, 그만의 개성을 갖기 위해서 그 가능태들과 싸우는 존재들이라고 얘기한다. 선이 무엇이고 악이 무엇인지, 영예가 무엇이고 파멸이 무엇인지, 한 소설을 두고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를 쿤데라는 선악에 대한 파악 불능이라고 칭하며, 그 속에서 인간 실존의 토대인 불확실성을 찾아낸다. 그리고 유머란 이 불확실성에 대한 확신에서 오는 기이한 즐거움이자 인간이 다른 사람을 심판할 수 없는 존재임을 드러내는 신성한 빛으로서 현대 정신의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평가한다. 아, 이 얼마나 멋진 설명인지. 선과 악이 확실하게 딱딱 나눠진다면, 인간의 오늘과 여기가 '확실한 것'이라면,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완벽하게 평가할 수 있다면, 세상은 얼마나 단순무지하고 재미없고 잔인하겠는가. 도덕과 유머라는 키워드를 통해 소설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히게 해 준, 멋진 글들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외에도 인상적인 부분들은 참 많았다. 무감한 것은 영원한 존재이고, 그러므로 인간에게 위로가 된다는 말, 카프카의 <아메리카>에 대한 이야기(사실주의를 애초부터 지향하지조차 않았다는!), 엑스터시에 대한 이야기와 예술의 행복에 대해 논한 부분, 예술 작품에서 특정한 태도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한 혐오, 공포 자체보다 더 무서운 것은 공포의 서정화라는 지적, 소설은 현재라는 달아나는 현실의 상실과 대립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말, 아, 줄을 그으려고 들면 온 책이 다 줄투성이가 될 까봐 쉽게 펜이나 색연필을 들지도 못하겠다.



참 식상한 말이지만, 아는 만큼 더 알게 된다는 걸 늘 깨닫는다. 이 책 속에 언급된 책들을 더 찾아 읽어 보고, 언급된 음악들도 찾아 들어 보고, 쿤데라가 던진 여러 가지 명제들에 대해 고민도 해 보면서, 오랫동안 여러 번 보고 싶은 책이다. 그래서 나는 아낌없이 별 다섯 개를 선사한다. 다섯 개 중 세 개는 오래 곱씹어 보고 싶은 생각거리를 글로 구체화해 준 쿤데라 선생(!!)에 대한 고마움, 한 개는 활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들었던 몇(십?) 개의 문장들에 대한 찬사, 한 개는 글의 제목만큼이나(어쩌면 그보다 더!!) 마음에 드는 표지에 대한 칭찬의 의미로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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