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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수꾼들
발따사르 뽀르셀 지음, 조구호 옮김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배를 탄다는 행위에 대해 생각한다. 움직이지 않고 단단히 내 발 아래 존재해 주는 뭍. 뭍 위에 발바닥을 디디고 산다는 것이 고정되고 안정된 것에 대한 지향이나 희망을 의미한다면, 내가 밟고 살던 땅을 떠나는 것은 불안을 온몸으로 끌어안겠다는 것일 테다.  내 몸이 끊임없이 휘청거리도록 허락하고 배멀미에 시달려야 하는 일상에 내던져지는 배 위의 삶.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라면, 그래서 많은 것을 지켜야 하는 사람이라면, 쉽게 선택할 수 없는 길이다.


그건 배 위의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뭍 위에선 가진 것이나 지킬 것이 많지 않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일지도 모른다. 움켜쥔 것을 쉽게 놓을 수 있을수록, 아예 움켜쥔 것 자체가 적을수록, 배를 타겠다는 선택을 쉽게 내릴 수 있다는 것.


<밀수꾼들>을 처음 읽을 때,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질 거라고 생각했다. 육지에서의 삶을 놓을 수밖에 없는 경험을 해 본 사람들이 떠밀려 선택한 배 위에서의 또다른 삶. 땅을 떠난 그들이 몰입해야만 했던 배와 바다와 다른 세계. 어쩌면 나도, 그들처럼 떠밀려서라도, 지금의 삶이 아닌 다른 삶을 선택하고 싶은 걸까. 그들이 몸으로 겪어냈던 배 위에서의 삶과 그들의 눈을 빌려 그려낸 바다의 모습을 만날 때면 왠지 벅찬 기분이 들었다.


아침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밝아왔다. 불그스레하게 물들었던 푸른 바다는 이미 활활 타오르는 붉은 막으로 변해 있었고 그 표면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점들이 콕콕 찌르는 듯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눈부실 만큼 붉게 물든 하늘이 바다에 푸르스름한 오렌지빛으로 투영되고 있었다. 서쪽으로는 날씨가 맑고 차분했으며 바다는 호수 물처럼 푸르고 잔잔했다. 농밀한 물이 옥빛으로 빛났다. 연한 푸른색 막이 하늘을 덮고 있는 것 같았다. 곧 해가 떠오르리라. 상큼하고 건조한 바람 한 줄기가 불어왔다. (183-184쪽)


손에 잡힐 것 같은 축축한 어둠이었다. 하늘 쪽을 바라보니 저 위, 끝없이 높은 절벽 위로 동굴의 입구가 보였고 그 위로 톡톡 튈 것 같은 별들이 빽빽하게 들어 차 있는 푸르스름한 하늘이 전개되고 있었다. 동굴 위에서부터 귀뚜라미 소리가 하늘에 깔린 별처럼 빽뺵하게 들려왔다. (270쪽)


파도가 선체에 부딪쳐 산산이 부서져 파편이 갑판까지 세게 튀겼다. 파도가 일정한 높이로 규칙적으로 밀려왔으며 배는 전후좌우로 움깆이며 파도를 비스듬히 가르고 있었다. 바람이 약간 수그러들긴 했으나 아직도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쌩쌩 불어내려오고 있었다. (349쪽)


세차게 엉켜돌아가는 역사의 조류가 어떻게든 이어져야만 하는 개인의 삶에 만들어낸 온갖 상흔들. 삶의 굴곡들을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 그들이 배에 오르기 전의 과거는 배 위에서의 현재와 교차되며 조명된다. 레오나르, 쁘루덴시, 마르꼬, 요렝-까발, 비센 바랄...의 삶에 조금 더 감정이입할 수 있었다면, 조금 더 공감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스페인 역사와 그쪽 지리에 대한 지식이 너무 짧다 보니 충분치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밀수꾼으로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좀더 긴장감 넘치게 펼쳐졌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들의 비극을 더 잘 이해하지 못했다는 데 대한 안타까움이 더 크다.


스페인 내전에 대한 책이라도 좀더 읽어보고, 여유롭게 다시 책을 읽어보고 싶다. 좀더 정성스럽게, 배 위의 그들에 대한 연민을 잃지 않고.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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