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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묘지 1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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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트 에코. 지적이고 철학적이면서도 탄탄한 플롯과 구조를 갖춘 소설을 쓰는 작가. 흥미롭고 긴장감 넘치지만 집중하며 읽지 않으면 줄거리도 잘 따라가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그의 작품이다보니 이번 신간평가단 소설로 에코의 작품이 결정되었을 때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웠다. 3월엔 바쁜 하루하루가 이어질 게 뻔한데, 그의 소설을 잘 읽을 수 있을까. 게다가 한 권도 아닌 두 권인데!


역시나 그의 책을 읽는 건 부담 없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유려하게 펼쳐지는 19세기 유럽 사회의 모습과 심심하면 나타나는 역사 속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서양사에 대한 지식이 좀더 풍부했더라면 조금 더 쉽게 책을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느꼈다. 물론 '시온 장로들의 프로토콜'이라는 존재 자체의 무게도 상당했고. 그러나 결국 중요한 것은 이야기. 19세기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시모네 시모니니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생각할 만한 거리들을 듬뿍 안겨 주었다. 오랜만에 만난, 몰입도 참 높은 이야기.

본격적인 이야기는 에코가 '세계 문학 사상 가장 혐오스러운 주인공'이라 했다는 시모니니의 일기로부터 시작한다.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난 시모니니는 19세기 유대인 세계 지배 음모론의 비조에 해당하는 인물이었던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고, 극단적인 냉소주의와 유대인 혐오증을 가진 인물이 된다. 청년이 된 후에는 문서 위조 기술을 배우고 이중첩자가 되기도 하며 테러를 저지르기도 한다. 그러다 시모니니에게는 삶의 전환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알퐁스 투스넬과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이 만남을 통해 시모니니는 반유대주의를 '돈 벌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대학생이던 시절 인상 깊게 읽었던 뒤마의 소설과 예수회 신부의 글을 이용하여 '프라하 묘지' 보고서, 즉 '시온 장로들의 프로토콜'을 만들어낸다. 이는 유대인들이 세계를 지배할 음모를 퍼뜨리고 있다는 믿음의 근거가 되었고 반유대주의 및 유대인 혐오증과 결합해 유대인 홀로코스트의 단초가 된다. 이후 어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들로 태어났다는, 오직 그 이유 하나 때문에 혐오하고 증오하는, 그래서 결국 죽여버리는 상황이, 그야말로 아무렇지도 않게 인류사에 펼쳐진 것에 대해서는-굳이 얘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시모니니라는 인간을 '일반적인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인물이라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그 나름의 매력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의 행위가 잘못된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움베르트 에코의 의도가 시모니니라는 인간을 최대한 추악하게 그림으로써 '그런 추악한 인물이야말로 그정도의 못된 짓을 하기에 적당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리라. 한 인간의 부주의한 행위로 인해 유대인들의 운명이 위기에 빠진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역시 절대로 아닐 테고. 에코의 말처럼, 시모니니는, 실존하지 않았으나 분명 우리들 사이에 있는 인물이니까.

결국 이 소설의 매력은 과거 유럽의 현실이 현재 오늘날 한국 사회의 모습과도 다를 것 없다는, 인간 사회의 보편적인 추악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한다.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어떤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에 대해선 큰 관심이 없다. 자기가 믿는 것이 진실과 동떨어져 있을 지라도, 그것이 '내가 믿고 싶은 것'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할 뿐이다. 

물론 진실을 찾고자 하는 이들은 소수일지언정 늘 존재한다. 그들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그것'이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니거나 왜곡된 것임을 드러내려고 애쓴다. 그러나 진실이 무엇인지 드러나는 과정은 지난하고 지루하며 길기까지 해서, 우우 몰렸던 사람들의 관심을 떨어뜨리기에 충분하다. 그뿐인가. 사람들은 자신이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이라 믿었음을 깨닫고 반성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이 어리석은 존재일 수 있음을 인정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지혜로움에도, 누구나 자신이 어리석을 수 있음을 믿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진실이 진실임을 알게 되더라도 외면하거나 또다른 음모가 숨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버린다. 

권력을 가진 이들은 이런 인간의 속성을 너무나 지혜롭게도 잘 이용해 먹는다. 사람들이 믿고 싶은 것을 믿게끔 유도하고, 그렇게 유도한 결과를 자신들의 권력 유지에 써먹는다.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의 질과 양은 지극히 불평등하고, 권력을 갖지 않은 이들은 또다시 속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권력은 끊임없이 연장된다. 아,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인데, 이게 현실인 걸 어쩌나.

그래서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도 나의 마음은 편안치 않다. 나 역시 시모니니의 가짜 문서에 속아넘어간 이들처럼, 거짓된 누군가'들'의 손놀림에 놀아날 수 밖에 없다는 걸 잘 아니까. 그러므로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은, 가비알리가 일러준 그 말을 따르는 것이다. 이것을 조심하고 저것을 조심하라. 모두를 조심하라. 무엇도 완전한 진실이라고 쉽게 믿어버리지 마라. 그 마음으로, 프라하의 묘지를 다시 읽어야겠다. 에코 선생이 숨겨놓은 메시지가 혹시나 또 있는지, 눈을 크게 뜨고 살펴봐야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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