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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연기하라
로버트 고다드 지음, 김송현정 옮김 / 검은숲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끝까지 연기하라>를 읽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 정녕 이렇게 끝? 이었다. 전체 이야기와는 별 상관도 없는 배우 한 명이 별안간 목숨을 잃은 것도, 그의 동생이 자기 다리를 피투성이로 만들어야 했던 것도, 누군가는 진실 앞에 총살당하고 누군가는 자신을 기다리던 사람과 투신해야만 했던 것도, 모두 다 결국은 토비가 잃어버린 부인을 다시 찾기 위한 것이었던가, 하는.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 책은 '전형적인 미스터리물'과 꽤 다르다. 어떤 사건에 대해 알게 된 주인공이 진상을 찾아 나간다는 과정 자체는 다르지 않겠지만, 그 주인공-토비-의 행동을 휘발하는 동기는 직업적 사명감이나 공의를 실현하겠다는 정의감 등 '옳은 것'에 대한 갈구에서 비롯하지 않는다(물론 아예 그렇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있더라도 상당히 작다!). 그에게 중요한 건 자신의 아내, 제니를 되찾고 싶다는 욕망이고, 그녀를 되찾기 위해서는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로저-의 추악한 모습을 제니 앞에 까발려야만 한다는 강박이다. 그래서 토비는 별 관심 없었던 사람들을 만나고, 무대 위에서 대충 연기를 하고, 때로는 공연 계획이 잡혀 있음에도 땡땡이를 치고, 주위 사람을 위기에 빠뜨리고, 자기마저도 죽기 일보 직전의 순간에 처넣는다. 왜? 로저에게 맞서기 위해, 그래서 제니를 되찾아오기 위해. 


그러다 보니 소설은 일관성을 잃는다. 제니는 처음부터 토비에게 별로 호의적이지 않다. 스토커처럼 자신 주변에서 얼쩡거리는 사람을 떨쳐달라고 토비를 충동질하는 때부터 로저를 잃고 딜리어 고모, 데릭 오스윈, 로저가 모두 살아 있다면 감당하기 힘든 진실들이 펼쳐졌더라도 로저와 진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p.488-489) 거라며 흐느낄 때까지 쭉 그렇다. 그녀에게 토비는 손대는 모든 걸 파괴하는 사람이고, 떨어져나가길 바라는 사람이고, 같이 말장난하고 싶지 않은 상대다. 그런데, 로저가 죽고 난 후에도 떠나달라며 울던 제니가, 맨 마지막 장면에서 갑자기 토비에게 달려온다. 아니, 이 뜬금없는 해피엔딩이란 뭐지?!


이 강박적인 해피엔딩으로 인해 소설의 긴장감은 팍 떨어져 버린다. 이 모든 사건이, 결국은 제니가 다시 토비에게 돌아오는 결말을 위한 것이었다면, 아니, 이건 좀 너무하지 않냐는 거다. 물론 개인의 행복이 공의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건 절대 아니다. 그리고 로저가 숨겨 뒀던 진실이 밝혀진다는 사실 자체가 나름의 정의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제니가 토비에게 돌아오기 위해 이 모든 사건이 일어나도 나쁠 건 없다. 하지만 그래 버리면 이전까지의 제니라는 캐릭터가 가졌던 통일성이 한 번에 무너져 버리잖나. 


독자는 토비도 제니도 아니기 때문에 둘 사이에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 토비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제니가 어떠한 과정을 통해 로저를 선택하게 되었는지, 자세히 알 수가 없다(기껏해야 전 아들의 죽음을 운운하는 로저의 말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정도…). 그리고 소설이 진행되는 내내 제니를 대하는 토비의 태도는 '지나간 버스에 매달려보려고 발버둥치는' 정도일 뿐이다. 이미 관계가 종료되었음을 머리로는 100퍼센터 이해하면서도 받아들이지 않고 징징대는, 하나도 반갑지 않은 구남친  같은 느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비에게 돌아가는 제니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더이상 갈 데가 없어진 여인의 차선책 선택? 늦게 그러나 다행히도 깨닫게 된 진정한 사랑? 갑자기 불쑥 일어난 변덕? 주인공에 대한 작가의 마지막 배려? 저 중 무엇이더라도 큰 매력 없긴 마찬가지다.


사실 내가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롭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결국 모든 인물들이 데릭이 설치해 둔 무대 위에서 놀아나고 있었다는 점이었고, 결국은 가장 헐렁하면서도 괴이해 보이던 데릭이 가장 치밀하면서도 지능적인 인물이라는 점이었다. 그런 데릭이 로저와 함께해야만 한다(!!)고 마음먹게 되는 과정이나 그 과정에서 데릭의 심리 상태가 어떠했는지 같은 내용이 좀더 치밀하게 드러났다면 반전은 더욱 긴장감 넘쳤을 테고 데릭의 아픔은 더욱 독자들의 마음에 와닿지 않았을까. 물론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소설이다보니 토비가 데릭의 상황이나 심리를 자기 일처럼 자세히 묘사하긴 어려웠을 테다. 하지만 그렇다면 데릭을 좀더 만나기라도 했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리고 데릭의 죽음에 대해 곱씹으며 브라이턴을 떠나는 토비의 쓸쓸한 뒷모습을 소설의 마지막 장면으로 했다면 더 여운이 남지 않았을까…싶지만, 독자가 아무리 소설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해도 이미 만들어진 텍스트 자체를 바꿔버릴 수는 없으니 결국 나는 이쯤에서 아쉬움을 접어야 하는 걸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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