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영화들
이남 지음 / 미메시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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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영화들

'봉준호는 그 자체로 장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봉준호 영화는 기존 영화 문법을 깨뜨리고, 새로운 시도와 신선한 내용을 드러낸다. 봉준호는 자신이 만든 영화의 특징을 한 마디로 '부조리'라고 했는데, 부조리를 다룬 영화도 찾아보면 많고, 문학에서도 볼 수 있는 내용이지만 봉준호 영화는 다른 영화에서 찾기 어려운 독특한 형식과 내용으로 관객 마음을 사로잡는다.
봉준호는 '부조리'하다는 내용과 함께 그의 영화에서 보이는 형식적 특징으로 '삑사리'를 들었다. '삑사리'는 속어로 쓰이지만, 무언가 잘못 어긋나는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한 단어로, 외국에서도 '삑사리'를 그대로 표현할 정도로 봉준호 영화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부조리'한 사회 현상을 '삑사리' 나는 상황으로 드러내는 봉준호 영화는 하나의 장르적 특징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봉준호 영화가 세계에서 주목하는 영화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건 그의 영화적 형식 즉 독특한 연출 방식과 함께 그가 다룬 한국사회의 부조리한 현상이 외국에서도 공감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봉준호는 한국사회의 부조리를 들여다 보면서 그 안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의 보편적 모순을 발견하고 언급한다.
글쓴이 '이남'은 이런 봉준호의 영화 언어를 한국의 현대사와 맞물려 해석한다. 봉준호 영화에서 한국사회의 부조리가 특별하게 강조되는 건, 그가 '사회학'을 전공한 배경도 있지만, 그가 살았던 시대가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부독재 시절이었으며, 1997년 '외환위기' 사태 이후 한국 사회를 강력하게 타격한 '신자본주의' 체제에서 우리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핍진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봉준호는 모두 여덟 편의 장편 영화를 연출했고,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만 흥행에 실패했을 뿐, 모든 영화가 세계적 성공을 거둔다. 영화에서 '작품성'과 '흥행'이 반드시 등치하지 않지만, 좋은 영화를 알아보는 관객이 봉준호 영화를 선택한 건 그의 영화가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했다는 의미다.
봉준호는 또한 '봉테일'이라는 별명도 있을 만큼, 사실성을 구현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데, 이런 구체적이고 사실적 묘사가 영화의 서사를 보다 깊이 있게 만드는 핵심 토대로 보인다. 이렇게 구축한 토대 위에 영화 속 인물들은 서로 오해하거나 '오인(誤認)'하는, 즉 이것 역시 '삑사리'의 하나로, 인물과 상황이 어긋나면서 벌어지는 기묘한 정서, 느낌, 뒤이어 나오는 예상하지 못한 사건 또는 상황에서 관객은 당황하거나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글쓴이 이남은 봉준호 영화를 구체적으로 분석하면서, 한국사회의 특성 - 군부독재(살인의 추억), 신자본주의 체제(설국열차, 옥자), 한국사회의 모순(괴물) -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욕망(마더, 기생충),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설국열차, 옥자, 미키17)을 부조리한 내용을 통해 드러낸다고 설명한다.
봉준호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다양한 감정과 영화 속 인물의 모순된 행동이 어떤 배경에서, 무슨 이유로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가를 '이남'은 세세하게 분석하는데, 어렴풋하게 알았거나 느꼈던 봉준호의 영화 언어가 명징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한 편의 영화에 관해서는 나름 분석하고 평론할 수 있으나 봉준호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맥락을 짚는 건 쉽지 않다.
이 책의 장점은 봉준호 영화들을 관통하는 맥락을 짚고, 봉준호의 세계관을 구체적으로 드러내 독자가 봉준호 영화를 더 재미있고 즐겁게 볼 수 있도록 안내한다. 봉준호 영화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책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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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동경일일 1~3 세트 - 전3권(완결)
마츠모토 타이요 지음, 이주향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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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일일 - 마츠모토 타이요

근대(近代)의 향수와 추억을 담아내려는 편집자 시오자와의 노력과 고집. 한편으로는 자신이 실패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려는 악착 같은 오기의 양면성을 내재하고 있다. 만화출판사에서 무려 30년을 일한 시오자와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회사에 사표를 내고 자유로운 몸이 된다.
사표를 내게 된 결정적 이유는 자신이 추진했던 만화잡지가 실패해서 회사에 재정적 손해를 끼친 것이지만, 한편으로 자기가 선택한 작가들이 이제 대중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 '상품'으로 가치가 떨어져 소비되지 못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시오자와가 시도한 작업은 과거 그와 함께 작업했거나 적어도 안면이 있는 작가들 가운데 훌륭한 작가들을 찾아가 단편 작품을 하나씩 받는 거였다. 시오자와가 만나는 작가들은 한때 최고 작가였거나, 재능은 뛰어난데 편집자가 올바르게 '디렉팅'을 하지 못해 아직 빛을 내지 못하는 작가들이다.

시오자와가 추진하는 기획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를 갖는다. 그는 출판사에서 근무할 때, 자기가 기획해서 만든 만화 잡지가 실패해 결국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고, 편집자의 경력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실패라는 점에서 뼈아픈 경험이었다. 시오자와는 자기가 무능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고, 회사를 그만두고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그 일을 해내고자 한다.
다른 한편으로, 시오자와는 현재 만화의 현실에 불만이다. 그가 함께 작업했던 만화가들은 나이 들어 과거의 명망으로 살아가거나, 한때의 영광을 가슴에 안고 만화 작업을 포기한 작가들인데, 과거의 만화에는 지금 만화에서 볼 수 없는 깊이와 감동이 있다고 시오자와는 확신한다.
즉 현재 만화는 작가의 영혼이 없는, 기능과 기술과 클리셰가 가득한 만화일뿐, 진정한 예술로써의 만화, 독자에게 감동과 진심어린 추억을 남기는 만화는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오자와는 '진정한' 만화를 다시 한 번 만들어 눈 밝은 독자와 만나기를 바란다.

시오자와가 지금은 잊혀진 작가들을 찾아가는 과정은 '7인의 사무라이'를 보는 느낌이다. 한 마을에서 도적떼의 약탈을 막으려고 가난한 사무라이를 고용해 마을을 지킨다는 내용이어서 '동경일일'과는 아무 관련 없지만, 편집자 시오자와가 만화계의 원로, 고수들을 찾아다니며 읍소하면서 작품을 하나씩 받아낸다는 구조는 맥락이 같다고 생각한다. 즉, 절실함과 간절함으로 무언가를 이루려는 '마을'과 '시오자와'의 입장은 본질에서 같다. 그리고 '7인의 사무라이'가 목숨을 던지며 마을을 지킨 것처럼, 원로 고수 만화가들의 작품은 시오자와의 노력으로 빛을 발한다.
'동경일일'은 일본에서만 나올 수 있는 독특하고 특별한 관행을 바탕으로 한다. 세계의 모든 출판사에서는 '편집자'가 있고, 편집자는 저자, 작가의 작품을 '높은 품질'로 만드는 기획자이면서, 저자, 작가의 조력자이며, 책 내용을 판단해 수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다. 유명한 저자, 작가에게는 뛰어난 편집자가 반드시 존재한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편집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출판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본에서 만화 편집자는 일단 단행본 편집자보다 더 많은 권한과 권력을 가진 걸로 알려졌다. 작가와 창작 단계부터 함께 내용과 캐릭터를 협의하며, 주간, 월간 연재를 결정하며, 원고료 수준 등 중요한 결정을 한다. 스타 작가에게는 '을'의 위치에 있지만, 신인이나 보통의 작가에게는 '갑'으로 군림하기도 한다. 뛰어난 편집자를 만나 성공하는 작가도 많기에, 편집자의 역할은 작가와의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데, 시오자와는 편집자로 30년을 살면서 나름 능력 있는 편집자로 인정받은 사람이다.

시오자와가 찾아가는 작가들은 한 때 최고 작가로 이름을 알렸던 작가들로, 지금은 나이도 어느 정도 들었고, 인기의 절정을 지나 조금씩 잊혀지는 작가들이다. 여전히 과거의 영광을 안고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도 있지만, 이제 만화와 인연을 끊은 작가도 있다. 시오자와는 자신의 판단으로 선택한 작가들을 찾아가 작품집을 내겠다고 제안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편집자 시오자와의 판단이다. 그는 지난 30년 동안 만화 편집자로 일하면서 수 많은 작가를 만났고, 작품을 봤으며, 대중이 좋아하는 작품과 작가를 잘 아는 사람이다. 그런 시오자와가 잊혀진 작가를 찾아가 작품집을 내겠다고 제안하는 건, 앞에서 말한 것처럼 두 가지 목적이 있지만, 그 대상이 되는 '작가'가 누구인가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시오자와는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려는 아집도 있고, '진짜 좋은 작품'을 대중에게 보여주고픈 욕망도 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작가들이 누구인가를 고민했고, 몇 명의 작가를 선정해 찾아간다. 따라서 여기 등장하는 예전 작가들은 시오자와의 만화 세계관에서 최고의 작가로 인식된 작가들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선택은 시오자와가 퇴사 직전에 만든 만화 잡지가 판매 부진으로 폐간하게 된 이유와 정 반대라는 걸 알 수 있다. 즉, 퇴사 직전에 만든 만화 잡지는 현재 독자를 상대로 새로운 감각을 보여주려 했던 시도였으나, 그 시도가 실패했다. 그건 시오자와 개인만의 실패가 아니라 출판사가 지향하는 만화 잡지의 전략이 실패한 것이다.
따라서 시오자와는 출판사의 판단을 배제하고 오로지 자기 스스로의 판단으로 새로운 만화 잡지를 만들어 독자의 판단을 받아보려는 생각이다. 그는 자신의 잘못으로 만화 잡지가 실패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자기의 감각을 믿고 있다. 그건 시오자와가 집에 오래 전부터 모아 온 만화책을 헌책방에 팔려고 업자를 불렀다 판매를 철회하는 장면에서 읽을 수 있다. 그는 여전히 만화를 사랑하고, 만화 창작을 직접 하지 않지만 작가를 도와 만화 창작을 하는 과정에 개입하고, 독자에게 새로운 만화를 선보이고, 좋은 만화가 세상에 나와 독자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만화의 세계로 빠져드는 일련의 과정을 즐기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동경일일'은 진정한 만화 독자와 만화가, 만화편집자를 위한 만화다. '만화를 위한 만화'를 그리고, 그런 만화를 사 보는 독자가 있는 것도 일본의 특수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은 세계 최고, 최대의 만화 강국이고,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포함하면 '만화 대국'이다. 만화 산업의 규모도 크고, 스타 작가가 되면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돈을 벌 수 있다. '만화를 위한 만화'를 천재 만화가 마츠모토 타이요가 그렸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 사소한 이야기를 이렇게 매력 있게 그릴 수 있는 작가는 많지 않다. 마츠모토 타이요의 작품이라서 더욱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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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비메탈을 듣는 방법
김혜정 지음 / 델피노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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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
[헤비메탈을 듣는 방법] - 김혜정 작가
 
장 그르니에의 말처럼,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섬이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거대한 바다에 떠 있는 섬이며, 그 섬들을 오가는 건 우리의 ‘육체’가 아니라 ‘마음’이고 ‘정서’다. 일렁이는 물결처럼, 섬에 부딪치는 파도처럼, 우리의 마음과 정서는 다른 사람, 다른 섬에 부딪치며 전달된다.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거칠게.
김혜정의 이 소설은 짧은 이야기 아홉 개가 마치 저마다 하나의 독립한 섬처럼 존재하는 듯 보이지만, 마지막 장을 읽다보면, 서로 다른 이야기와 개별로 등장했던 인물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연작 장편 소설이다.
아홉 개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우리들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와 그리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 가운데 약간의 재능을 가진 사람, 약간의 육체적 불편함이 있는 사람이 있지만, 그런 부분적 모습으로 구분할 만큼 우리들은 특별하지 않다.
오히려 그런 부분적이고 사소한 면들을 감싸고, 아우르며, 서로의 공감대를 만드는 게 이 소설에서 마치 바다처럼 사람들의 감정을 전달하는 ‘음악’이다. ‘음악’은 사람들 사이를 연결하고, 감정과 정서를 전달하며, 저마다의 삶에 생기를 불어 넣는다.
 
음반 가게를 운영하는 화자는 평범한 중년 남성이다. 그는 다른 재주가 없고 음악을 많이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음반 가게를 열고, 생업으로 살아간다. 어느 날, 두 젊은 여성이 가게에 들어와서 ‘굿바이 제리’라는 밴드의 라이브 음반을 찾는다.
음반을 찾는 여성이 청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음악을 들을까 생각하다, 귀를 막고 음악을 크게 틀면 진동으로 음악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뒤로 가면서 다른 단편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과 관계가 하나씩 드러나는 방식으로, 작가는 독자가 궁금해서 계속 읽게 만드는 기법을 쓰고 있다. 청각장애가 있는 수연은 음반 가게에 함께 온 지우와 친구이고, 수연은 하진을 만나 연인이 되었다가 헤어지지만, 음반 가게 사장의 후일담에서 두 사람이 다시 결합한다는 소식을 전하는 방식으로 만났던 사람들의 뒷 이야기까지 촘촘하게 이야기의 그물로 엮었다.
 
작가는 음악과 청각장애라는 두 가지 장치를 통해 소리가 들리지 않는 사람이 음악을 받아들이고 즐기는 방식과 헤비메탈이라는 음악 장르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말한다. 두 가지는 비슷하면서 다른데, 소리가 들리지 않는 사람으로 수연과 글렌 크레이그라는 헤비메탈 음악을 하는 미국인 그리고 한 쪽 눈만 오드아이인 고양이가 등장한다.
수연은 여섯 살 무렵 열병을 심하게 앓고 나서 귀가 들리지 않게 되었고, 글렌 크레이그는 천재 음악가로 알려졌으나 교통사고 이후 귀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고양이도 소리가 들리지 않는 선천성 장애인데, 헤비메탈 밴드에서 활동했던 글렌 크레이그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작곡을 한다. 마치 베토벤이 말년에 청각을 잃어버린 뒤에도 작곡을 했던 것처럼.
여기서 작가는 헤비메탈 밴드 ‘굿바이 제리’에 관해 자세한 묘사를 하는데, 독자는 이 그룹이 마치 실재 있는 듯한 착각을 하도록 만든다. 당연히 ‘굿바이 제리’라는 헤비메탈 그룹은 작가가 만든 가상 그룹이다.
 
작가 자신이 지체장애가 있으니, 그의 작품 소재에 장애가 있는 사람, 동물이 등장하는 건 자연스럽다. 그리고 작가의 (마음의)눈은 사회적 약자들의 삶에 더욱 세심하고, 섬세하다. 비장애인이 무심하게 살아가는 하루가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는 특별한 하루이며, 날마다 새로운 체험으로 본다. 아니, 장애가 있고 없고가 아니라, 삶을 소중하게 여기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감성과 정서의 파도를 민감하게 느끼는 사람이라면, 하루하루가 늘 새로운 날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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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양장)
쑤퉁 지음, 김은신 옮김 / 아고라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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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 쑤퉁

현대 중국문학 작가들 가운데 모옌, 옌롄커, 다이호우잉, 위화의 작품은 그나마 읽었는데, 쑤퉁의 작품은 이번에 처음 읽었다. 쑤퉁의 작품은 소설보다 영화로 먼저 만났다. 그때는 몰랐는데, 장이모우 감독의 '홍등'이 쑤퉁의 소설 '처첩성군'을 원작으로 한 영화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
앞에 언급한 중국 작가들의 작품이 보여주는 공통점은 작품 속 인물들이 거의 모두 자기 욕망에 충실한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다른 나라 작품에서는 보기 어려운, 매우 보기 드문 현상인데, 이렇게 개인이 자기 욕망을 한껏 발산하게 되는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있을 것이고, 특히 '현대 중국 문학'의 특징으로 드러나는 배경을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중국은 '산업화'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봉건시대에서 곧바로 '공산주의' 체제로 진입한 매우 독특한 역사를 가졌다. 러시아가 '쏘련(쏘비에트 연방공화국)'이 될 때도 유럽에 비해 산업화, 공업화가 매우 뒤쳐진 상태였으나, 그래도 제정 러시아는 중국보다는 훨씬 산업화가 진전되고 있었다.
러시아는 레닌과 볼셰비키가 이끄는 혁명 전략을 따라 '혁명적 노동계급'의 조직적 투쟁으로 봉건 왕정과 부르주아 의회 권력을 쫓아내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수립했다. 결과로만 보면 '러시아 혁명'은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실천이었으나 실패했다. 그것도 레닌이 권력을 잡았던 불과 몇 년을 제외하고, 레닌이 사망한 이후, 스탈린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러시아 혁명'은 철저하게 배신당하고, 봉건 왕정과 형식만 다를 뿐, 독재자와 독재 체제를 오래 유지했다.
중국 역시 이와 매우 비슷한 길을 걷는다. 더 나빴던 점은, 중국은 아예 '산업화' 단계를 거치지 조차 못한 상태로 모택동이 이끄는 중국공산당이 장개석 군벌을 대만으로 내쫓고 '프롤레타리아 독재' 권력 체제를 수립했다. 19세기 공산주의자들은 지금과 달리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세상을 꿈 꿨던 사람들이다. 그때는 자본주의와 봉건주의에 맞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성공하는 것이 역사의 당위였으며, 억압과 착취로 신음하는 민중을 해방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여겼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명제에서 사회주의, 공산주의도 비켜갈 수 없다. 조지 오웰은 '동물농장'과 '1984'를 통해 권력 그것도 새롭게 등장한 권력이 구시대(봉건 왕정, 자본주의)의 권력보다 더 나을 게 없는 건 물론, 오히려 더 악랄하게 인민을 착취하고 억압한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다.
'쏘련' 당시, 스탈린 독재가 한창일 때, 혁명의 선두에 섰던 뛰어난 노동자, 혁명가들이 '반동'이라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참혹하게 고문을 당한 채 살해당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많았다. 이건 북한에서 김일성이 '한국전쟁'에서 실패한 이후 전쟁의 책임을 '남로당'에 떠넘기면서 박헌영을 비롯한 남로당 공산주의자들 대부분을 '미제 간첩'이라는 누명으로 살해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중국 역시 모택동 체제가 조금씩 균열을 일으키던 1970년대, '문화대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모택동 체제에 반대하거나, 반대할 기미가 보이는 혁명가, 지식인, 노동자들을 '반동', '수정주의자'라는 이름으로 낙인을 찍어 거리에서 집단 린치로 살해하거나, 오지로 보내 중노동을 시키거나, 사회적으로 매장을 시키는 방식으로 독재 체제를 강화했다.
중국 현대 문학은 여전히 '문화대혁명'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노벨문학상을 받은 모옌이나 강력한 후보인 옌롄커 같은 작가들 작품이 중국 당국의 검열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이다. 이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도 중국 내에서 작품 발표가 금지되고, 금서 목록에 올라 작품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쑤퉁의 작품 '쌀'은 이런 중국의 현실을 배경으로 나온 작품이다. 중국공산당이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 이후의 '중국'은 '왕조'에서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로 진입하고, 체제를 비판하는 창작 활동은 철저하게 금지된다. 쑤퉁의 작품 속 시대가 1920년대에서 1940년대인가를 이해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중국 문학의 거목, 루쉰의 소설에서도 시대 배경은 대부분 혁명 이전이다. 봉건제 시기의 중국은 철저한 신분제와 계급의 착취가 극심했고, 외세의 침탈에 무능한 지배 계급, 폭정과 가난으로 찌든 인민들의 분노가 밑바닥에서 들끓기 시작하던 시대였다.
'쌀'에서 주인공 '우룽'은 봉건제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이행하는 중국의 농촌에서 태어난다. 그는 쌀농사로 유명한 지역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고향에서 큰 홍수가 발생하고, 사람과 쌀이 모두 홍수에 휩쓸려가자 살 길을 찾아 남쪽의 도회지로 탈출한다. 우룽의 처지에서 그가 도착한 도시는 '하얀 눈처럼 수북이 쌓인 쌀, 아리땁고 농염한 여인, 철도와 부두, 도시와 공장, 사람과 재물...' 등은 그의 고향에서는 볼 수 없는 동경의 대상이고 천국과 가까운 모습이다.
우룽이 정착한 도시는 '뤼대감'이라는 군벌이 지배하는 도시였고, '대홍기 쌀집'의 펑사장은 대를 이어 쌀가게를 운영하는 부유한 집안이다. 우룽이 쌀집에서 일하게 되면서, 펑사장과 두 딸 쯔윈과 치윈의 만남은 악연으로 이어지고, 대를 이어 끔찍한 범죄와 만행이 끊이지 않는다.
쯔윈과 치윈은 봉건제와 남성가부장제의 피해자이며, 중국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혁명' 이전에 어떠했는가를 보여준다. 쯔윈은 나름으로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에 저항하지만, 결과는 참혹하다. 치윈 역시 뜨내기였던 우룽과 결혼하면서, 자매가 한 남자와 결혼하는 기괴한 결혼을 보여준다.
우룽은 쌀집의 가장이 되었고, 지역의 조직폭력단에 들어 우두머리가 된다. 우룽은 빈털털이로 이 도시에 들어와 돈과 권력을 거머쥐었다. 그는 술집을 드나들며 접대부와 난잡한 관계를 맺다 결국 매독에 걸리고, 그의 육체가 썩어들어가는 꼴을 보면서 점차 비참한 몰골로 전락한다.
우룽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려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살인과 방화를 저지르고, 도둑질과 강도질을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돈을 모으고, 자신의 멀쩡한 이빨을 모두 뽑고 금니로 박아 넣는다. 그에게 최고의 성공은 번쩍거리는 금니와 눈처럼 하얀 쌀이었다.
우룽의 이런 악행은 그의 집안에 거대한 불행과 파멸로 돌아온다. 우룽의 세 자식인 미셩, 챠이성, 샤오완은 어릴 때 집안의 보물을 우연히 발견하지만, 그걸 사탕가게 주인에게 넘기고 사탕 한보따리를 받는다. 하지만 이 사실이 발각되고, 큰아들 미셩은 아버지 우룽에게 심하게 매질을 당하는데, 미셩은 막내 샤오완이 고자질했다고 생각하고 샤오완을 쌀 창고에서 쌀에 묻어 죽인다. 우룽은 동생을 죽인 미셩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가족은 서로에게 원망과 저주의 심정을 갖고 살아간다.
쌀집의 몰락은 큰딸 쯔윈의 일탈에서 시작했지만, 우룽을 받아들이면서 우룽의 탐욕과 무지에서 오는 사악함으로 집안이 이웃들의 저주를 받고, 처절하게 파멸한다. 인간의 타락한 욕망이 얼마나 추악하고 역겨운가를 우룽의 삶을 통해 드러내면서, 이런 사회가 봉건적 중국의 실상이며, 어리석은 중국 인민의 모습이라는 걸 쑤퉁은 잔인함을 과장하는 방식으로 표현한다.
우룽의 운명은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고, 그가 지배하던 도시의 폭력집단이 배신하면서 급격히 몰락한다. 그는 쌀을 팔고, 강도짓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고향에 넓은 땅을 매입해 쌀 농사를 짓는 꿈을 현실로 만든다. 우룽에게 중국의 운명은 전혀 관심이 없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느라 질주하고, 가족도 돌보지 않으며, 핏줄에 대한 애착도 보이지 않는다. 욕망에 휩싸여 인간성을 잃은 우룽을 통해 인간의 어두운 모습, 타락한 모습을 중국 인민에게 알리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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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해방 - 치매, 암, 당뇨, 심장병과 노화를 피하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법
피터 아티아.빌 기퍼드 지음, 이한음 옮김 / 부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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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거의 읽지 않는 분야의 책들을 꼽자면, 마케팅, 재테크, 투자, 자기 계발, 종교, 건강 등이다. 나와 아무 관련도 없을 뿐 아니라 대중을 기만하고, 심하게 표현하면 대중을 상대로 사기 치는 책들이 많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종류의 책에서도 배울 점은 있고, 어느 정도 훌륭한 내용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삶의 본질에 관해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태어나 살고 죽을 때까지 끊임 없이 공부하고 배워야 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데, 그 배움의 과정에서 얄팍한 껍데기만 핥는 내용으로 쓴 책을 읽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살면서 구체적으로 필요한 내용을 쓴 책을 읽어야 할 때가 있다. 기술 서적이 아니라 인문학을 포함한 폭 넓은 시야와 역사와 인간을 교직하는 입체적인 내용을 다룬 책을 읽는다면 배움도 있고, 읽는 즐거움도 크다.
예전에 약 2년 정도, 암 투병을 하면서 암을 완전히 치료한 어떤 분을 도와 건강에 관한 책을 만들 때가 있었다. 나는 그 분이 쓴 초고를 컴퓨터로 옮기면서 초고 내용을 다 읽었고, 그 분이 구입한 건강 관련 책 약 200권의 목록과 그 내용을 어느 정도는 읽어서 내용이 익숙했다.
암 환자가 암을 극복하고 '완치' 판정을 받은 건 대단한 사건이다. 의학이 발달해도 암은 여전히 매우 심각한 질병이며, 시한부 삶을 살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건강이 나빠지고, 병이 들고, 암이 생기는 걸 두려워 하면서도 건강을 유지하고 늙어서도 오래도록 건강하게 생활하려면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가를 잘 모르거나, 고민하지 않거나, 배우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또는 알면서도 실천, 실행하기를 게을리 하는 사람도 있다.
요즘은 텔레비전, 유튜브 등에서 건강 관련 정보가 해일처럼 쏟아지는 세상이다. 전문가인 의사들이 출연해 세세한 의학 정보를 제공하고, 모든 질병에 관한 자세한 설명과 예방, 치료 방법까지 일러준다.
그렇게 의학 정보가 넘쳐도 여전히 병에 걸리는 사람은 많고, 병원에는 환자가 가득하며, 의료보험이 고갈될 위기에 있다는 언론의 보도가 나온다. 너무 많은 정보 때문에 사람들은 의학에 관해 많은 걸 안다고 착각한다.
여기저기서 들은 정보를 바탕으로 사람들은 거의 준 전문가처럼 건강과 질병에 관해 이야기하고, 건강과 질병은 술자리의 안주꺼리로, 친구끼리의 잡담 소재로 활용한다. 성인 흡연률은 줄었지만, 청소년, 여성 흡연률은 증가하고, 술 소비량은 한국도 세계 상위권이며, 각종 성인병 지수도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고 있다. 평균 기대 수명도 80세가 넘어 세계 상위권에 있으면서 또한 각종 질병의 유병률도 높아, 오래 살지만,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아닌, 나이 들면서 온갖 질병과 질환에 시달리는 노인이 되어 간다는 통계가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사람들이 파편적으로 알고 있는 건강과 노화, 장수에 관한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크게 3부로 나누고, 모두 17장으로 구성한 책은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내용으로 가득하다. 무려 750페이지가 넘는 책으로, 많은 내용을 담고 있으며, 각 장마다 꼭 해야 할 말을 잘 정리하고 있다.
1부에서는 건강과 장수, 현대 의학의 문제점에 관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누구나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지금까지의 현대 의학(필자는 현재의 의학을 '의학 2.0'이라고 말한다)이 꽤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지금보다 더 나은 의학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걸 '의학 3.0'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개인의 삶을 바꾸기 위한 방법으로 운동, 영양, 수면, 정서 건강에 관해 설명할 거라고 알려준다.
2부에서는 구체적 사례를 통해 질병의 발생과 원인에 관해 설명하는데, 환자의 임상과 현대 의학, 생물학, 진화학, 심리학, 병리학 등을 모두 동원해 유전자, 장수의 비결, 당뇨병과 식단, 심장병과 동맥, 콜레스테롤의 관계, 암의 발생과 전이, 암세포의 생리학적 특성, 암 발생을 촉진하는 건강의 문제, 치매, 알츠하이머 같은 신경퇴행성 질환의 발생과 예방 등에 관해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면서도 어렵지 않게 설명한다.
3부에서는 2부에서 다룬 심각한 질병들을 예방하거나 치료하기 위한 방법과 대안을 제시한다. 필자가 제시하는 방법과 대안은 건강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상식으로 아는 내용들이라 뻔하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오히려 과장하지 않고,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 실천에 도움이 된다.
운동, 통증 예방, 호흡, 근력 운동의 필요성, 영양 섭취의 중요성과 방법, 식단을 구성하고 자기 식단을 찾는 법, 수면의 중요성과 질 좋은 수면을 만드는 방법 등에 관해 다양한 사례를 들며 장점과 단점을 말하고 있다.
특히 이 책에서 가장 마지막에 나오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내용이 바로 '정서 건강'이다. '정서 건강'은 우리가 말하는 '정신 건강'과는 다른, 자기 자신의 본 모습을 올바르게 들여다 보고, 삶을 긍정하는 태도를 갖는 과정을 말한다.
필자인 피터 아티아는 누가 봐도 성공한 의학자다. 그는 스탠퍼드 의대를 졸업한 의학 박사이며, 세계적인 장수 의학의 권위자로 명성을 얻고 있는 사람인데, 그가 '정서 건강'에서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 하는 장면을 보면, 겉으로 보는 세속의 출세와 명예, 권위가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를 잘 알 수 있다.
인간의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건, 겉으로 보이는 출세, 명예, 성공보다는 자신과 가족을 사랑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육체가 아무리 건강하고, 오래 산다고 해도, 정서 건강이 나쁘면 행복할 수 없다는 게 필자의 주장이다. 또한 정서 건강이 좋은 상태를 유지하면 많은 부분 건강 문제는 해결된다고 믿는다.
건강 문제는 그 자체로 대응해야 하지만, 건강 문제에서 '정서 건강'을 따로 떼어놓을 수 없으며, 육체의 건강과 '정서 건강'은 반드시 함께 맞물려 이해해야 하고, 건강을 지키거나 치료할 때 늘 함께 고려해야 할 관계라고 말한다.

노화와 장수에 관심을 갖는 세대는 이미 노인 세대라고 말하지만, 사실 노화와 장수는 20대 이후부터 꾸준히 관심을 갖고 실천해야 하는 건강의 문제다. 따라서 이 책은 중년 이상의 세대가 읽겠지만, 그보다 젊은 세대도 꼭 읽어보길 권한다. 청년 세대의 부모들이 겪게 될 건강의 문제를 청년 세대가 미리 배우고, 이해하면, 부모의 건강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지고, 대처하는 방식도 더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질병해방

  • 이 글은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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