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 극장 열린책들 세계문학 204
카렐 차페크 지음, 김선형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을수록 좋아지는 작가가 있다. 카렐 차페크는 분명히 그런 작가에 속한다. 희곡 선집인 <곤충 극장>까지 읽음으로써 지금까지 읽은 차페크 작품은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도롱뇽과의 전쟁>, <로봇>, <호르두발>, <별똥별> 총 일곱 권이 된다. 앞으로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까지 읽은 뒤 차페크 평전을 읽을 계획이다.

그의 철학 소설 3부작으로 꼽히는 <호르두발>(1933), <별똥별>(1934), <평범한 인생>(1934)가운데 <평범한 인생>만 못 읽었는데, 이 책은 절판된 상태이고 중고로도 비싸게 팔리고 있어서 새로 출간되지 않는 한 한동안 읽지는 못할 것 같다. 우리 동네 도서관에는 이 작품이 없다. 사실 <호르두발>과 <별똥별>도 내가 신청해서 도서관에 비치했다. 지만지 시리즈에서 <평범한 인생>까지 출간한다면 또 도서관에 신청해서 읽을 예정인데,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르겠다.

차페크의 모든 작품들이 대단한데, <곤충 극장> 또한 예외는 아니다. 이 책에는 희곡 3편이 실려 있다, 세 편 모두 100쪽 남짓으로 짧지만 강렬하다. 첫 희곡인 ‘곤충 극장’은 한 편의 우화에 가깝다. 인간인 여행자가 곤충들의 세계를 엿보게 되는데, 그 곤충들의 삶이란 보면 볼수록 인간의 삶과 다름없다. 나비들은 암컷수컷 할 것 없이 짝짓기에 몰두한다.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다른 짝한테 추파를 던지는 꼴불견을 서슴없이 저지른다. 쇠똥구리는 또 어떠한가? 똥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 것을 끌고 다니면서 그것이 마치 이 세상에 더 없을 숭고한 보물이라도 되는 듯이 광적으로 집착한다. 쇠똥구리가 똥 덩어리를 대단하게 여기면서 종일 굴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이 집착하는 모든 것들 그러니까 돈, 성공, 명예, 권력 같은 것들이 어쩌면 저렇게 하나의 똥 덩어리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싶어져서 씁쓸한 웃음을 짓게 된다.



    쇠똥구리 부인: 진즉에 결혼을 했는데 아직 공도 없는 거요?
    귀뚜라미 부인: 공을 어디다 써요?
    쇠똥구리 부인: 제대로 된 똥 공은 가족을 하나로 묶어 준다오. 진정한 삶- 즉 안정을 주지.
    귀뚜라미 부인: 아니, 아니에요. 삶이란 우리만의 가정이에요. 둥지를 짓고, 가게를 사고, 커튼도 달고요. 아이들도 있지요. 꼭 맞는 귀뚜라미 씨를 만나는 거예요. 우리의 작은 가정, 우리의 세계.
    쇠똥구리 부인: 그렇지만 똥 공 없이 살림을 어떻게 꾸려가려고? 어디를 가나 굴리고 다녀야지. 새댁, 잘 들어요. 자기만의 똥 공이 있어야 남편을 꽉 붙들어 매놓고 살 수 있다니까!
    귀뚜라미 부인: 좋은 집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요!
    쇠똥구리 부인: 똥 공이라니까! (60쪽)


이미 많은 것을 갖고 있으므로 거기에 만족하고 살아가도 되는 맵시벌이 욕심 때문에 다른 곤충의 목숨까지 아무렇지 않게 짓밟는 모습은 이기적 욕망에 충실한 인간의 모습을 고스란히 재현한다. 때문에 이 이야기는 그저 모두 곤충, 눈살 찌푸려지는 벌레들의 추잡한 이야기라고 치부하면서 웃어넘길 수만은 없게 된다. 이런 맵시벌을 비판하는 ‘기생충’의 역할이 흥미롭다. 흔히 기생충은 그 이름부터가 혐오감을 갖게 하는데, ‘곤충 극장’에서는 이 기생충이 차라리 가장 순수하다.



    여행자: 당신은 누구요?
    기생충: 나? 사실 별거 아니야. 빈털터리고 ? 고아, 기생충, 뭐 그렇게들 부르더군.
    여행자: 옳은 일이 아니잖아요. 저렇게 죽이다니!
    기생충: 아, 내 말이 그 말이라니까, 친구. 그럴 필요가 없었거든. 나처럼 배를 곯은 것도 아니잖아. 저 친구는 그저 바리바리 쌓아 놓으려는 거라고. 충격적이지!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는지. 아무것도 없는 사람도 있는데, 저놈은 먹이 창고를 저렇게 꽉꽉 채워 놓고 말이야. 안 그래? 비수가 있다 이거지. 나는 맨손밖에 없는데! 무슨 말인지 알겠어? (61~62쪽)

    여행자: 다 고기 한 덩어리 얻어먹자고 하는 짓이군!
    기생충: 그게 바로 내 말이야. 죄다 고기 한 덩어리 얻자고 하는 짓이라니까. 다른 딱한 새끼가 배를 곯더라도 말이야! 죄다 자기 배를 불려야 하는 거지! 안 그래? (64쪽)


이렇게 우화와도 같은 ‘곤충 극장’이 끝난 다음에는 스릴러와도 같은 ‘마크로풀로스의 비밀’과 한 편의 그로테스크한 SF를 보는 듯한 ‘하얀 역병’이 이어진다. <곤충 극장>에 실린 희곡 모두 좋았지만 나는 뒤로 갈수록 더 좋았다. ‘마크로풀로스의 비밀’은 웬만한 독자라면 ‘그 비밀’을 눈치 챌 수 있다. 혹시 그런 게 아닐까? 그럴 거야 하는 의심이 심증으로 굳혀질 때쯤 독자의 예상대로 비밀은 밝혀진다. 하지만 그 비밀은 이 작품에서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 그 비밀을 통해서 차페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의미가 있다. 그 메시지는 ‘곤충 극장’의 마지막 장면과도 일맥상통한다. ‘곤충 극장’의 에필로그 부분에서는 하루살이들이 자신들의 생명을, 삶을 예찬한다. 오직 단 하루 밖에 살지 못하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그 하루살이들은 알고 있었다. 단 하루 밖에 살수 없기 때문에 그 하루가, 그 삶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마크로풀로스의 비밀’에는 이 하루살이와는 정반대되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영원히 살기 때문에 모든 것에 의미를 잃었다. 사랑을 느끼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슬픔이나 연민, 즐거움이나 행복 같은 감정과도 거리가 멀다. 사람의 목숨이 ‘1백 년, 130년까지는 괜찮을지’ 모르지만 그런 삶이 끝없이 이어지면 깨닫게 된다. ‘영혼이 속에서 죽어 버’리는 것이다. 결승점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전력질주를 해야 할 어떤 의무도 느끼지 못한다. 그런 그에게는 어쩌면 단 하루뿐일지라도 끝이 있는 삶을 사는 ‘곤충 극장’ 하루살이들의 삶이 더 의미 있으리라.

마지막 희곡인 ‘하얀 역병’에서는 놀라운 장면이 있다. 나는 이 작품이 가장 좋았는데, 어떤 부분을 읽다가, 거의 100년 전 이야기가 마치 오늘날 우리나라 이야긴가 싶어져서 차페크의 혜안에 무릎을 쳤다. 한 도시에 나병과 증상이 비슷하지만 나병은 아닌, ‘하얀 역병’이 창궐한다. 치료법은 없다. 그런데 이 백색 바이러스 즉 ‘쳉 바이러스’는 신기하게도(?) 50세 이상만 발병하고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간다. 쉰 살 이상이면 어김없이 모두 이 바이러스를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도시에서도 그 세대는 많은 것을 가진 기득권층이다. 인생의 절정기를 살고 있다. 반면 젊은이들은 그 세대들이 모두 하나씩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빌붙어 살아가거나 그렇지 않으면 도무지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차지할 기회가 없다. 때문에 젊은이들은 이 하얀 역병의 창궐을 어떤 면에서는 반기기까지 한다. 이 바이러스 관련 기사가 실린 신문을 보던 어느 가정의 대화가 의미심장하다.



    딸: 그렇게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마세요, 아빠! 우리가 사회에서 일을 시작하기 어렵다는 얘기일 뿐이에요. 일자리도 없고 말이죠. 우리도 인생을 살고 가정을 꾸리려면 뭔가 희생이 필요하다는 거죠…….
    어머니: 일리 있는 얘기에요, 여보.
    아버지: 그러니까 당신도 얘 편이다 이거군- 그 말대로라면 우리는 모두 인생의 전성기에 꼴깍 죽어 넘어가야 한다는 거네.
    아들: 아빤 또 왜 저렇게 흥분하고 계세요?
    어머니: 아무 일도 아니다. 얘야, 그저 그 질병에 대한 기사를 읽으셨는데-
    딸: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려면 어떤 식이든 희생이 필요하다고 내가 말했어.
    아들: 그건 사람들이 다 하는 소리에요, 아빠! 역병이 없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았을까 싶다니까요! 누나는 결혼도 못 할 거고, 나 역시 끝도 없이 시험만 치면서 악전고투하고 살았겠죠…….
    아버지: 때마침 잘됐다 이거냐, 이 녀석아?
    아들: 어쨌든 요새는 학위도 아무 소용이 없잖아요. 나이 든 사람들이 죽고 나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죠. 뭐, 농담입니다! (253~254쪽)


그런데 이 아버지 또한 나중에 회사에서 동료들이 죽어나감으로서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니 참 아이러니하다. 아버지는 자식세대들이 자신들이 죽어나가기를 바라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자신 또한 회사 동료들의 죽음으로써 기대하지도 않았던 자리를 차지하게 되니, 그 ‘하얀 역병’이 반갑지 않은 것만은 아닌 게 된다. 아니 오히려 자신은 그 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 자부하면서 그 병을 반긴다.

이런 설정도 놀랍지만 이 작품은 뒤로 갈수록 전율하게 된다. 이 바이러스를 치료법을 알아낸 의사 갈렌이 역병 치료법을 나라에 알려주는 조건으로 ‘평화’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을 고칠 수 있도록 해주는 대신 전쟁을 멈출 것. 병 때문에 죽어가는 목숨과 전쟁으로 죽어가는 수많은 목숨을 나란히 놓고 생각해보게끔 하는 설정에서 또 한 번 감탄하게 된다. 그런데 인간은 참으로 어리석게도 평화보다는 전쟁을 선택한다. 자기 목숨이 꺼져가고 있음에도 전쟁을 놓지 못한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차페크의 작품은 이렇듯 한없이 탐욕적이고 이기적이며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을 풍자한다. 그 풍자는 위트가 넘쳐서 읽고 있노라면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이 풍자와 해학은 그다지 기분 나쁘지는 않다. 인간은 어리석고 이토록 못났지만 그래도 불쌍한 존재라는, 이렇게 자기의 행복과 삶의 기쁨을 놓쳐버리는 안타까운 존재라는 연민어린 시선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뒤늦게라도 어리석은 자신들의 존재를 돌아볼 줄 알고 ‘수정’할 줄 알거나 그렇게 하려는 의지를 보이기 때문에 그런 인간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차페크의 작품들을 읽노라면 어리석고 못난 인간들 때문에(물론 나를 포함해서) 늘 한숨짓다가도 그래도 인간은, 완전히 희망을 버릴 수 없는 존재라는 1%의 가능성이라도 확인하기에 그저 ‘절망’하면서 책장을 덮지는 않게 된다. 차페크의 문학이 갖는 힘이 바로 거기에 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1-06-14 16: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고싶어요 누르니 바로 피드 뜨는 잠자냥님 리뷰네요 ^^

잠자냥 2021-06-14 16:45   좋아요 2 | URL
제가 어쩌다 보니 카렐 차페크 마니아 1위인데요... 쿨럭쿨럭... 이 책 정말 재미나요. <곤충극장> 희곡이긴 하지만 읽으시고 괜찮다 싶으면 다음엔 차페크의 <도룡뇽과의 전쟁>도 추천합니다. 참, <도룡뇽>은 희곡 아닙니다~~ ㅎㅎ

coolcat329 2021-06-17 1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저 어제 알라딘 우주에서 딱 한 권 있는 이 책 구해서 샀습니다. 2만원 맞추느라 또 끙끙거리면서요~😅😅

잠자냥 2021-06-17 12:50   좋아요 1 | URL
ㅎㅎㅎ 애쓰셨네요! 우주점에 있었군요. 2만원 맞출 게 있었다니 다행이에요. ㅎㅎ 애쓰신 만큼 재미나야 할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