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의 비밀 - 호크니가 파헤친 거장들의 비법
데이비드 호크니 지음, 남경태 옮김 / 한길아트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 알라딘에 들어와보니 인기 검색어 리스트에 '명화의 비밀'이 올라와 있다. 흠..역시 TV의 힘은 막강하군. 아마도 며칠전 KBS에서 방영된 책 프로그램에서 이 책이 다루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에 비하면 몇편 안되는 리뷰의 숫자. 더더욱 막강한 '책값의 힘'을 느낀다. 6만원짜리 책을(알라딘에선 54000원이지만^^) 선뜻 사기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 아닐테니... '가격대비 만족도' 중심의 리뷰를 써야겠다는 책무를 팍팍 느낀다.

나 역시 굉장히 속이 쓰려오는 걸 느끼며 책을 구매했다. 하지만, 오직 '저자가 데이비드 호크니'이기에 경제적 제약을 감수하고 이 책을 샀다. 그림에 대해서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데이비드 호크니가 젊은 시절 그렸던 '캘리포니아 수영장' 시리즈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그림들이기 때문이다. 그림들에서 받은 인상만으로 따지자면 (내 상상 속) 말년의 호크니는 거듭된 마약 재활치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정신 못차리고 지냈어야 했다. (에이즈로 이미 숨지지 않았으면 다행이고.^^) 그의 한창 시절 그림들이 내눈엔 지독히 감각적이고 고독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만난 시골 서점주인같은 인상의 호크니는 나의 예상을 철저히 배반하고 있었다. 노년의 그는 학구적이고, 철저하고, 집요하며 또한 용감한 인물이었다. (그의 이론에 반대하는 미술학자들의 눈엔 무모한 인물이겠지만.) 수많은 과학적 물증을 무기로, 수백년간 감춰져 왔던 이른바 '업계 기밀'을 폭로하고 나섰으니 말이다.

우리들이 존경해마지 않던 역사속의 수많은 화가들이 사실은 광학을 이용해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쉽게 말하자면 눈으로 보고 그린게 아니라, 렌즈에 반사된 이미지를 베껴 그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호크니는 이 사실 만으로 대가들의 예술성이 폄하되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내 생각도 마찬가지다.)

그의 주장이 옳고 그른가를 따지는 건 내 능력 밖의 문제이기 때문에 뭐라 말하지 않겠다. 다만, 독자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그가 제시하는 물증들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다. 화가들이 광학을 이용했다는 문헌 자료들이 거의 전무하다는 사실은 여전히 의아함으로 남지만 (아무리 화가들 사이의 비밀이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철저히 숨겨질 수가 있는걸까?) 호크니가 수집한 방대한 그림 자료들을 보다보면, '정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는 생각을 저버릴 수 없다.

다시 '가격대비' 리뷰로 돌아가 말하자면, 바로 그 '증거물'들 때문에 이 책값이 비싸진 것이다. 그가 제시하는 증거 그림들은 '큰' 그림으로 보아야, 그것도 아주 좋은 화질로 보아야만 더욱 더 설득력을 지닌다. 덕분에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수많은 명화들을 순수화집처럼 선명한 상태에서 만나게 된다. 보는 눈이야 즐거워지지만, 그만큼 금전적인 댓가는 치루게 되는 셈이다. (출판사 입장에서 보자면, 이만큼의 책값을 책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인쇄상태는 아주 훌륭하므로.)

이 책을 읽으면서 얻게되는 것은 단순히 '명화의 비밀'을 밝히느냐 마느냐 만은 아니다. 일단은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이 재미있다. 그리고, 미술사속에서 그림이(특히 초상화,정물화) 발전해가는 과정을 좀더 환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 예전에 보던 관점과는 또다른 관점을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 책에 실려있는 명화들은 어디까지나 저자의 기준에 따라 증거물로 채택된 작품들이다. 특정 시대나 특정 화풍을 선호하는 독자들이라면, '내 맘에 들지도 않는 그림이 너무 많이 실려있는 화집'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구매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책을 읽은 후에 데이비드 호크니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독자들에게는 이 책을 서점에서 직접 보신후 구매를 판단하시길 권한다. 그런 다음에 인터넷에서 구매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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