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매혹된 사상들 - 인류를 사로잡은 32가지 이즘, 개정증보판
안광복 지음 / 사계절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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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시대든 유행이 있다. 지난 유행은 세월이 흘러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사상이나 철학도 그런 게 아닐까. 안광복의 『우리가 매혹된 사상들』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스쳤다. 하나의 시대를 이끄는 사상, 철학. 완벽한 사상은 존재하지 않기에 시대에 맞게 보완과 수정을 거쳐 새로운 사상으로 재탄생되기도 하니까.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시대에 따라 가장 대표적인 사상이 있었다. 그것을 토대로 인류는 발전하고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살아왔다고 볼 수 있다. 하나의 사상은 정치, 경제, 문화, 사회의 다방면에 영향을 미쳤다. 저자 안광복은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32가지 사상(이즘)을 소개한다. 사상으로 시대를 읽는다고 할까.

 

 책은 정치, 철학 예술, 국가, 경제, 사회로 나누어 32가지 사상을 설명한다. 각 사상에 대해 시대에 맞춰 사상이 발생한 사회적 배경과 더불어 어떻게 활용하면 좋은지 현시대에 적용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그러니까 독자는 32가지 질문을 받는 셈이다.

 

 공화주의, 계몽주의, 민주주의, 보수주의, 자유 민주주의, 사회 민주주의, 아나키즘, 포플리즘이란 사상을 통해 정치의 권력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여준다. 역사적 사건을 토대로 하나씩 잘 정리된 사상을 통해 우리는 현 시대와 접목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살피게 된다. ‘모두를 위한 나라’를 지향하던 고대 아테네의 공화주의는 지금 우리가 갈구하는 목표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정치권에서 보수와 진보의 구도를 자유 민주주의와 사회 민주주의의 대립으로 정리하는 부분은 인상적이다.

 

 사회 민주주의자들에게는 정해진 정답이 없다. 더 많은 자유, 더 많은 평등, 더 많은 정의를 위해 연대하여 끊임없이 나아갈 뿐이다. 이를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손을 내미는 열린 자세와 가장 약한 사람들을 배려하려는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다. (72쪽)

 

 철학 예술에 영향을 미친 사상은 무엇일까. 저자는 불안한 세상에서도 행복하게 살기 위해 매달렸던 사상들, 낭만주의, 니힐리즘, 실존주의, 구조주의, 해체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차례로 소개한다. 예술로 가장 활발하게 보여줬던 낭만주의, 니체로 대표되는 니힐리즘, 20세기 가장 뜨거웠던 포스트모더니즘은 학창시절의 기억을 불러온다. 우리가 끊임없이 니체의 철학을 공부하는 건 이런 글과 맞닿은 게 아닐까 싶다. 여전히 불안으로 가득한 세상, 나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간절한 다짐과 투쟁처럼 보여 안쓰러운 마음을 숨길 수 없다.

 

 죽음으로 끝날 우리 인생은 허무하다. 그러나 허무하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는 무엇이건 될 수 있다. 세상은 허무하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어떻게 살라고 강요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 할지, 어떤 인생을 살지는 오롯이 우리의 자유에 달렸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더 나아지려는 내 안의 욕망을 충실하게 사는 삶, 이것이 니체가 말하는 긍정의 니힐리즘이다. (115쪽)

 

 이제는 다양한 사상을 토대로 만들어진 국가는 좋은 나라로 성장하고 발전한 것인지 살펴봐야 할 차례다. 제국주의, 민족주의, 파시즘, 프런티어 정신, 대동아 공영권, 마오이즘, 주체사상을 통해 과거 한 나라를 지배하고 통치했던 사상이 현재 어떻게 변화했는지도 말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제국주의는 사라졌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서 제국주의의 그림자를 볼 수 있다. 다국적 기업, 세계적인 기업의 횡포, 자본주의와 겹쳐 보인다. 같은 민족을 외치며 뭉치고 애국으로 이어졌던 민족주의는 파시즘이라는 괴물을 만들었다. 파시즘, 마오이즘, 주체사상은 강력한 독재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 시절 그들만의 사상으로 세상을 지배하고자 했던 이들, 어떤 사상이 가장 훌륭했다고 할 수 있을까. 가장 적합한 사상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정치가 안정되었다 해서 좋은 국가가 완성되는 건 아니다. 경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니 경제활동을 위한 다양한 이념들이 등장하는 건 당연하다. 물건을 생산하고 수익을 남기고 투자를 하는 자본주의,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분배하자는 공산주의, 우선을 잘 살아야 한다는 목표로 개발만 외치는 과거 우리의 모습인 개발 독재, 충과 효를 중시하던 유교의 가치를 새롭게 정립하는 신유교 윤리, 규제가 완화된 신자유주의, 세계 경제를 지배하는 창조적 혁신의 기업가 정신은 경제의 흐름을 정리한다.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은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걸 상기시킨다.

 

 다른 한편으로 자본주의는 자인하기도 하다. 돈만 된다면 온갖 못된 짓을 서슴지 않고 벌인다. 지금도 세상 곳곳에서는 어린아이에게 중노동을 시키는 잔혹한 짓이 드물지 않게 벌어진다. 돈 앞에서는 가치와 양심도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한다. 자본주의의 어두운 모습이다. (247쪽)

 

 신자유주의는 빈부 격차를 벌려 놓았다. 반면에 실업자는 늘고 복지 정책은 줄었다. 힘센 기업 몇몇이 시장을 휩쓰는 독과점도 늘어나는 중이다. (290쪽)

 

 이토록 치열한 세상,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할까? 저자가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사상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직시하게 만든다. 다문화 다민족의 시대를 살면서 뽑아내지 못한 오리엔탈리즘, 차별 없는 평등한 사회를 위한 페미니즘, 환경을 생각하고 다음 세대와 공존해야 할 것을 기억하라는 생태주의, 가장 이상적인 체제를 꿈꾸는 관료주의.

 

 성의 차이는 오랫동안 차별의 근거가 되어 왔다. 이제 페미니즘은 ‘남성’과 ‘여성’에 대한 차별을 넘어,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고민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324쪽)

 

 이 한 권의 책으로 마주하는 32가지 사상(이즘)으로 역사와 사회를 전부 읽을 수는 없다. 그러나 현실의 문제와 맞춰 철학과 사상을 접목시킨 부분은 내용은 무척 유용하다. 가장 좋은 사상, 최고의 사상은 어디에도 없다. 단숨에 더 나은 세상으로 도약할 수 없다. 그 사상을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시키는가에 따라 다를 것이다. 앞으로 살아갈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사상에 대한 이해와 가치를 알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어렵고 재미없다고 생각한 철학과 사상에 대한 입문서로 『우리가 매혹된 사상들』은 만족스러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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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9-02-16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것이든 다 좋은 것만 있지 않겠지요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를 알고 무엇이 좋은지 생각하면 좋을 듯합니다 삶이 덧없기에 더 자유롭게 살 수 있다니 좋은 말이네요 덧없다고 막 살면 안 되겠지요 문제가 있는 것도 고칠 수 있어야 할 텐데, 그것도 빨리 되지 않고 천천히 되겠지요 조금씩이라도 좋아진다면 좋겠습니다


희선

자목련 2019-02-21 14:42   좋아요 0 | URL
네, 덕분에 이 책을 통해 다양한 사상을 접할 수 있었어요. 이러한 사상들로 인해 좀 더 나은 사회로 발전하지 않을까 기대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