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복이 지나고 나니 깊은 밤바람의 맛이 달라졌다. 어젯밤에는 침대와 바닥을 오가는 횟수가 예전보다 줄어들었고 제법 잠을 잤다는 기분이 들었다. 실내 온도는 똑같은데 체감온도는 1~2도 낮게 느껴진다. 올여름을 생각하니 발악하는 여름이었구나 싶다. 8월에는 해야 할 일들을 제법 잘 했다. 아직 8월의 날이 남아있지만 그래도 더운 날씨에 나름 괜찮게 보냈다고 여긴다.

 

 앞으로 계획된 일정에 두려움이 머물고 있지만 괜찮다. 괜찮다고 마음을 먹으니 점점 괜찮아지는 것 같고 더욱 괜찮아지고 있는 듯하다. 내 의지로 되지 않는 것들을 붙잡지 않기로 한다. 그것이 감정이든, 사람이든, 일이든 말이다. 사실 이건 내가 작은언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작은언니가 휴가 중 일 때 사무실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언니가 힘들어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행동으로 인해 누군가가 피해를 보는 상황들. 나쁜 의도가 담겨있지 않더라도 그 진행과정에 있어 동료에게 불편함을 주는 일, 충분히 예상했을 일인데 그것을 간과한 것이다. 휴가지에서는 휴가만 즐겨야 하는데. 휴가(休暇)를 검색하니 일정(一定) 한 일에 매인 사람이 다른 일로 말미암아 얻는 겨를이라고 나온다. 그 짧은 겨를 동안 일정한 일에 다시 마음을 쏟아야 하다니.

 

 꽃을 피운 배롱나무를 보았다. 가지마다 진분홍 꽃을 피운 모습이 기지개를 크게 펴는 것 같았다. 개운한 맛이라고 할까. 배롱나무의 꽃은 내게 여름의 끝을 의미한다. 여전히 뜨겁고 강렬하지만 내게는 그렇다. 매년 만나는 배롱나무, 어김없이 꽃을 피우는 게 기쁘고 고맙다. 짧은 문자로 서로의 안부를 주고 받으며 거기 당신이 있다는 걸 확인하는 일처럼. 이 글을 작성하면서 나는 좋아하는 선배와 문자를 주고받았다. 단어와 단어 사이에, 숨어 있는 감정, 격려하는 마음이 확장되고 있음을 느낀다.

 

 아직 김연수의 산문집은 곁에 두지 않았다. 대신 김사과의 장편 『N. E. W.』,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영화감독 이경미의 『잘 돼가? 무엇이든』이 있다. 김연수의 산문집은 선배에게도 한 권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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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18-08-17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젯밤에야... 한달 넘도록 거실 바닥을 뒹굴었던 유랑 생활을 접고 침대에서 자기 시작했어요. 제게 이번 여름은 불면과 뻐근함으로 기억될듯 해요.ㅠㅠ

자목련 2018-08-19 17:51   좋아요 0 | URL
이 여름이 끝나기도 전에 내년 여름을 걱정합니다. ㅠ.ㅠ
곧 다정한 가을이 오기를 기대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