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실망스러움

1Q84 3 - 10月-12月 ㅣ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실망스럽다. 일단 1,2권에 비해 스토리 전개의 힘이 떨어진다. 3권까지 치면 2,000여 페이지가 넘는 소설인데, 2권 중반 부터 재미가 떨어졌으니 1,000페이지 부터는 힘에 부치는 전개이다. 일단 시작하고 구성한 소설을 끝까지 밀고 나가려는 의지 때문인지 작가가 소설을 주무르는 게 아니라 소설에 작가가 휘둘린 느낌이다.

1,2권의 핵심소재였던 리틀피플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좀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공기번데기'의 내용을 설명하며 리틀피플이라는 존재를 드러냈던 것은 무슨 의도였는지 모르겠다. 2권 절반 이후 지루함은 그냥 지루함이었다. 3권으로 가기위한 연결역할도 전혀 없고.  

2권에서 선구의 리더가 말한 것 처럼 덴고와 아오마메는 서로 만나 1Q84년의 세계로 들어왔던 길로 나간다. 이 무슨? 

"가장 환영할 만한 해결방법은 자네들이 어딘가에서 만나 손에 손을 잡고 이 세계를 나가는 것이야."(2권 334쪽) 

게다가 아오마메는 성관계 없이 임신을 하게 되고, 그 아이는 덴고의 아이라고 확신한다. 덴고가 관계한건 후키에리인데 임신은 아오마메가?!

아오마메와 우키사와의 집에 찾아왔던 NHK 수금원은 혼수상태에 빠진 덴고의 아버지였다. 죽기 전 덴고의 아버지는 뭔가 문을 두드리는 제스처를 취했다고 간호사들이 이야기한다. 덴고에게는 아무런 필요가 없는 이야기이지만 아오마메와 우키사와의 집을 찾던 NHK의 수금원이야기를 읽고 있는 독자에게는 필요한 이야기이다. 스토리상 전혀 필요없는 이야기를 전혀 필요없는 사람에게 하는 말은 실은 독자에게 그 NHK 수금원이 덴고의 아버지야 라고 개입하는 꼴이다.

아마도 하루키의 힘이 딸려서인 것 같다. 하루키의 장편에서는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주요 인물외에는 중요한 장면처럼 등장하다가도 갑자기 사라져버린다. 중요해 보이는 리틀피플이 정작 3권에서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에비노스 선생이나 후카에리 또한 3권에서는 존재감이 없다. 오히려 노부인의 편에 있던 다마루가 갑자기 비중있게 다뤄진다.

1Q84를 세권까지 낸 건 무리수다. 2권 중반까지 아오마메가 선구의 리더를 살해하기 전 고민하는 부분에서 소설을 끝내는 것이 괜찮을 뻔 했다. 솔직히 1권 중반 이후부터는 중언부언하는 느낌이다.

[하루키] 절반의 재미

1Q84 2 - 7月-9月 ㅣ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9월

덴고와 아오마메는 본격적으로 종교집단 선구에 개입된다. 여성학대에 대해 물리적 복수를 감행하던 아오마메는 선구의 리더를 죽이는 일에 개입되고, 후키에리의 글을 손 봐 세상에 내놓은 덴고는 소설을 통해 선구를 실질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리틀피플이라는 존재를 세상에 드러낸다. 하지만

"리틀 피플이라는 자가 선인지 악인지, 그건 모르겠네. 그건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의 이해나 정의를 뛰어넘는 존재야. 우리는 오랜 옛날부터 그들과 함께 살아왔어. 아직 선악 따위가 제대로 존재하지 않았던 무렵부터. 사람들의 의식이 아직 미명의 것이었던 시절부터. 하지만 중요한 건 그들이 선이건 악이건, 빛이건 그림자건, 그 힘을 행사할 때, 그곳에는 반드시 보상작용이 생겨난다는 거야. 이번의 경우, 내가 리틀피플이라는 존재의 대리인이 되는 것과 동시에 내 딸이 반 리틀 피플 작용의 대리인 같은 존재가 되었어. 그렇게 해서 균형이 유지되었지"(326쪽)

...

그들은 어느 순간 암흑속에서 나타나 딸아이를 통해 이쪽으로 건너왔어. 그리고 나를 대리인으로 삼았지. 딸아이가 퍼시버=지각하는 자이고, 내가 리시버=받아들이는 자가 되었어. "(327쪽) 

1Q84는 절반만 재미있다. 절반만 재미있다는 것은 아오마메가 선구의 리더를 죽이는 과정까지는 긴장감이다. 그러나 남은 절반은 덴고와 아오마메가 만나야 하는 이유가 설명되고, 아오마메가 '공기번데기'를 읽으면서 '공기번데기'의 내용이 너무 자세히 설명된다. 뭐랄까 1권에 이어 2권 중반까지 읽으면서도 흐릿하게나마 1Q84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독자를 위해 개연성을 너무 설명하려 든다. 하루키에게는 '독자들이 스토리를 놓쳐버리거나 이해하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노파심이 앞섰던 것 같다.

그리고 갑자기 삼류 산파소설이 된다. 종교집단 선구의 리더는 아오마메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오마메가 이해하지 못할 설명을 한다. 1Q84로 들어오면서 그녀의 유일한 사랑 덴고와 끈이 생겼지만, 둘 중 하나는 죽어야만 한다는 내용인데, 아오마메는 초등학교때 잠시 만났던 덴고를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한다. 물론 '증인회'(여호와의 증인)라는 독특한 종교적 상황때문에 따돌림 당하던 자신을 단 한번 따뜻하게 대해줬던 그를 평생 기억한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힘들다. 갑자기 무슨 삼류러브스토리 타령...

"이 1Q84년에서 자네들 두 사람을 동시에 구해주는 건 현재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해. 선택의 길은 두 가지. 하나는, 아마도 자네가 죽고 덴고가 살아남는다. 또 하나는, 아마도 그가 죽고 자네가 살아남는다. 그중 하나야."(339쪽)

덴고와 후키에리가 관계를 맺는 장면도 조금은 억지스럽다. 결국 선구의 리더가 무녀(10대 소녀)들을 상대로 성관계를 갖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SF 에로영화?!

[하루키] 처음으로 재미있게 읽은 하루키의 책

1Q84 1 - 4月-6月 ㅣ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근 20년만에 하루키를 다시 읽는 중이다.

노르웨이의 숲, 당시 상실의 시대를 끝으로 하루키와 굿바이 했다. 그리고 "색채가 없는 다자키~"를 읽게 된 통에 그의 책을 여러권 다시 들고 있다. 1Q84. 강렬한 제목의 이 책에 대해 몇몇인들의 평이 좋았기에 "다자키"이후 이 책을 들게 되었다. 일단 이 책은 하루키 책 중에 드물게 재미있다. 물론 하루키의 책들이 쉽게 읽히는 편이지만, 이 책은 스토리 자체가 책을 놓치 못하게 만든다.

1Q84는 아오마메와 덴고의 이야기가 번갈아 등장한다. 패럴렐월드, 하루키는 평행이론을 이야기한다. 아쉬운점이 있다면 3인칭을 썼지만 너무 대놓고 평행이론을 이야기한다. 1Q84와 1984년 사이와의 평행, 그리고 덴고와 아오마메는 평행하게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상이 발생한 건 내가 아니라 이 세계다.

그래, 맞아.

어딘가의 시점에서 내가 알고 있는 세계는 소멸하고, 혹은 퇴장하고, 다른 세계가 거기에 자리바꿈을 한 것이다. 레일 포인트가 전환되는 것처럼. 즉, 지금 이곳에 있는 내 의식은 원래의 세계에 속해 있지만 세계 그 자체는 이미 다른 것으로 변해 버렸다. 그곳에서 이루어진 사실의 변경은 지금으로는 아직 한정된 몇 가지 뿐이다. 새로운 세계의 대부분은 내가 알고 있는 원래 세계로부터 그대로 들어와 통용되고 있다. 그래서 생활을 해나가는 데 특별히 현실적인 지장은 (현재로서는 거의)없다. 하지만 그러한 '변경된 부분'은 아마 앞으로 갈수록 더욱더 큰 차이를 내 주위에 만들어갈 것이다. 오차는 조금씩 불어난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 그러한 오차는 내가 취하는 행동의 논리성을 손상시켜 자칫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게 할지도 모른다. 일이 그렇게 된다면, 그건 말 그대로 치명적이다. (231쪽)

그렇다 그건 매우 개인적인 종류의 동요였다. 마치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잠재기억이 어느 순간 생각지도 못한 겨를에 우연히 깨어난 듯한 느낌이었다. 누군가 어깨를 잡고 흔드는 것 같은 감촉이 거기에는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까지의 인생 어느 지점에선가 그 음악과 깊은 관련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 음악이 흘러나오자 스위치가 자동적으로 켜지고 내 안에 있는 어떤 기억이 뭉클뭉클 각성한 것인지도. (236쪽)

물론 모든 것이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아오마메는 걸으면서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현재로서는 나에게 가장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가설이다. 적어도 좀더 강한 설득력을 가진 가설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이 가설에 준하여 행동할 필요가 있을 듯 하다. 그러지 않으면 어딘가로 떨어져나갈수 있다. 일단 이 가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라도 내가 처한 이 새로운 상황에 적당한 명칭을 부여하는게 좋겠다. ....

1Q84년. 이 새로운 세계를 그렇게 부르기로 하자, 아오마메는 그렇게 정했다.

Q는 question mark의 Q다. 의문을 안고 있는 것.

그녀는 걸으면서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좋든 싫든 나는 지금 이 '1Q84년'에 몸을 두고 있다. 내가 알고 있던 1984년은 이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은 1Q84년이다. 공기가 바뀌고 풍경이 변했다. 나는 이 물음표 딸린 세계의 존재양식에 되도록 빨리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운 숲에 내던져진 동물과 똑같다. 내 몸을 지키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이 장소의 룰을 빨리 이해하고 거기에 맞춰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240쪽)

아오마메는 길이 너무 막히던 날 고속도로의 비상계단을 통해 새로운 세상으로 넘어온다. 변했지만 변한 것은 없다. 자신이 하는 일은 그대로고 만나는 사람도 그대로이다. 하지만 무언가 변화가 있었고, 그 변화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아오마메는 다른 1984년에서 넘어왔으니까.

덴고와 아오마메는 중학교 시절 연결되어 있다가 서로 떨어졌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의 끈이 생기는데 바로 선구이다. 선구는 급진 좌파의 모임에서 종교화된 집단인데 그들과의 이야기를 써낸 후카에리와 선구에서 성적학대를 당한 쓰바사를 통해 서로 선구라는 조직에 대한 끈을 갖게 된다. 하지만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아오마메가 1Q84의 세상으로 넘어오게 되면서 그 둘은 어떤 끈을 갖게 된 것이다.

덴고는 유능한 수학강사이지만 소설을 쓰려고 한다. 그런 그의 소질을 눈여겨 보던 출판 편집인 고마쓰는 어느날 재미있는 제안을 한다. 소설의 기본을 갖추고 있지 않지만 내용 자체는 신선한 소설 '공기번데기'. 고마쓰는 덴고에게 작업을 제안한다. 덴고가 소설을 각색하고, 미지의 소녀가 발표한다. 소설은 베스트셀러가 되고 이 수익금을 서로 배분한다. 그리고 이 소설의 작업에 후카에리를 보호하고 있는 에비노스 선생이 개입한다. 그는 선구의 리더와 친구였던 그는 이 소설을 통해 선구라는 조직을 세상에 공론화 시키고자 한다.

아오마메는 근육 스트레칭에 유능하다. 그리고 피해자의 사체에 흔적이 남지 않게 살인을 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정체를 알 수 있는 부유한 노부인과 함께 그녀는 여성을 학대하는 남자들에 대한 처벌에 나선다. 그러던 중 성폭행당한 소녀에게서 선구라는 조직에서 성과 관련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접하고는 선구라는 조직에 접근하여 리더를 처벌하기로 결정한다.

패러럴 하게 진행되는 덴고와 아오마메의 스토리는 좀 작위적이다. 초등학교 시절 덴고는 일요일이 싫었다. NHK 수금원이었던 아버지는 일요일이면 항상 초등학생이던 덴고를 앞장세워 수신료 수금에 나섰던 것이다. 아오마메는 가족이 여호와의 증인 신자다. 그녀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지메를 당했다. 그런 그녀를 덴고가 한번 도와준 적이 있고, 아오마메는 그의 손을 꽉 잡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 기억이 20여년 후 그들을 강하게 엮어놓고 있는데, 개연성이 너무 아마추어 적이다.

1Q84에서 1권에서는 하루키가 가지고 있는 일본 문단에 대한 불만을 읽을 수 있다. 하루키는 명성에 비해 문단에서는 좋은 평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문학권위를 상징하는 아쿠타카와를 비판하는 것인데, 노벨상에 거론되는 그가 일본내 주요 문학상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한을 풀어낸 것 같다. '공기번데기' 각색에서 보여주는 능숙한 편집인의 손을 거치면 문학상을 타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점은 문학상 자체가 별 의미없다는 것을 환기시켜 본인이 문학상을 못 받는 것은 바로 이런 일본 문학 시스템 때문이라는 것을 비난하는 듯 하다. 솔직히 이런 점에서 하루키에 실망하게 된다.

1Q84를 통해 하루키 소설의 몇 가지 특성을 살펴볼 수 있다.

하루키 소설의 특징인 이름 역시 1Q84에서 의미를 갖는다. 주인공의 이름은 덴고天吾와 아오마메靑荳이다. 아오마메는 특이한 이름 때문에 이름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의 주목을 갖게 된다. 게다가 이 이름을 쓰는 사람 자체가 적어 특별하다는 의미를 갖는다. 덴고는 이름 자체가 종교적이다. 한문으로 풀이해보자면 하늘(天)이 곧 나(吾)라는 뜻이다. 아마도 후반부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음악. 1Q84에서는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를 등장시킨다. 아오마메가 고속도로에서 1Q84의 세계로 가기 전 택시 라디오에서 신포니에타를 듣고, 살인 후 신포니에타를 떠올린다. 하루키 소설을 읽을 때 마다 느끼는 점 중에 하나가 바로 자신의 음악지식을 자랑하는 태도이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음악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특정 음악에 대해서는 전문가의 식견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소설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음악을 내뱉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게 나오는 듯 하다.

후반부로 갈 수록 흥미진진해진다. 소설을 통해 선구라는 조직의 리틀피플을 드러낸 덴고와 직접 선구라는 조직과 대결하게 될 아오마메는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