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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 다니엘 튜더
비정상회담의 유행도 지나간 듯 하다. 외국인들이 유창한 한국말로 한국문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것만으로도 한국 사람들은 관심을 갖는다. 그들의 눈에 한국이 어떻게 비춰질지 말이다. 물론 그들이 신경쓰는 눈은 선진국의 백인 남성의 이야기일테지만.
비정상회담도 그렇지만, 외국인이 한국에 대해 쓰는 말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나 역시 몇달 머물렀을 뿐인 외국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하지만, 그 나라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의 편견을 깬 것은 박노자 선생님의 글이었다. 그의 글 앞에 외국인이 본 한국이라는 말을 쓰는 것도 민망할 정도의 시선, 지식, 관점.
스스로를 '서양 좌파'라고 말하며 한국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겠다는 외국인이 한 명 더 나타났다. 이코노미스트 지의 한국 특파원이었다는 남자. 큰 기대없이 책 소개를 펼쳤는데 꽤 궁금하게 만들었다.
일종의 ‘신자유주의 경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코노미스트』에서 기자로 일하던 시절, 한국을 방문한 영미권 시장옹호주의자들을 만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 한국의 시장 환경이 실망스럽다고 말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진정한 신자유주의 대신 ‘국가 자본주의’, 나아가 ‘정실 자본주의’뿐인 한국의 맨얼굴을 목격했기 때문이다.(책 70p)
박노자 이후 '한국인 보다 더 한국을 잘 읽는 외국인'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까.
2. <사랑은 사치일까> - 벨 훅스
페미니스트의 사랑은 어렵다. 상대가 남성이라면, 남성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남성 페미니스트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일까? 1970년대 급진 페미니즘의 사상을 생에 실현한 여성들은 동성애자가 많았다고 한다. 벨 훅스는 묻는다.
남성 애인들에게 계속해서 실망하면서도 왜 여성과 사귀어보기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지, 같이 자는 애인보다 친구와 함께 나눌 것이 더 많다고 느끼면서 왜 애인을 더 중요한 사람으로 여기는지, 한 사람과만 사랑을 나눈다는 생각이 답답하다면 왜 여럿이 함께 사랑하는 관계를 시도해보지 않는지 등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해보자고 저자는 제안한다.
현재의 관계를 당장 끝내야 한다거나 동성애, 낭만적인 우정 관계, 다자연애가 무조건 더 좋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이런 합당한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고 따져본 후 선택할 수 없다면 그 삶은 자유와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는 뜻이다.
명예 남성이 되려던 여성들에게 사랑은 사치였을 것이다. 하지만 벨 훅스는 여성이 스스로를 사랑하면서 남성이든 여성이든 다자연애든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와 같은 방식으로 남녀의 성차를 너무나 당연시한 나머지 여성의 억압을 알아차리지도 못했던 기존의 연애서가 아닌 것을 지향한다고 한다.
사실 3세대 페미니즘을 접하며, 남녀의 성차를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하는지가 항상 헷갈렸다. 연애와 사랑이야기로 접근하는 페미니스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헷갈림이 조금 줄어들까.
3.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아무래도 5월에 나온 신간 중 가장 뜨거운 책이 아닐까. 사실 서점에서 친구를 기다리면서 삼십페이지 가량을 읽었는데, 마치 잡지 기고란에 가볍게 쓴 글들처럼 느껴졌다. 음, <이 폐허를 응시하라>의 작가라고는 상상이 안갈 정도로 가벼웠다. 앞부분만 읽어서일까..
한국에서는 올해 착륙한 '맨스플레인'이라는 단어가 뉴욕타임스에서 2010년에 선정된 단어였다고 하니 놀랍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성들의 설명욕은 비슷한가보다. 게다가 리베카 솔닛처럼 어쩌면 자신의 의견을 왠만한 여성들보다 많이 개진하고 다녔을테고, 그녀의 의견을 경청할 청자와 독자들이 많은 지식인도 '남자들은 나를 가르친다'고 느꼈다니 감히 동질감이 느껴진다. 마저 읽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