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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언어 -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인문학 ㅣ 음식의 언어
댄 주래프스키 지음,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2015년 3월
평점 :
‘푸드 포르노’라는 말은 이미 음식을 먹는 행위가 섹스와 얼마나 비슷한지 보여준다. 최대한 탐욕스러운 그 행위를 비추다 보면 공통점은 점점 두드러진다. 재료를 섞는 소리, 입에 넣는 순간, 음식을 입에 넣고 쾌락에 미간을 찡그리는 모습까지.
▲킴 카다시안이 출연한 미국 패스트푸드 체인 '칼스 주니어'의 샐러드 광고 중 한 장면. 말 그대로 '푸드 포르노'다.
<음식의 언어>의 저자 댄 주래프스키는 음식과 섹스의 비유가 단순히 “있다”는데 그치지 않는다. 언어학 교수인 저자는 래스토랑 리뷰 100만 건 가운데 섹스가 언급되는 모든 경우를 추출해 조사했다. 실험결과, 섹스언급은 값비싼 레스토랑을 다룬 리뷰에 특히 더 자주 나왔다.
연상 관계의 위력은 꽤나 강하다. 리뷰에서 섹스가 더 많이 언급되는 레스토랑일수록 음식 가격은 더 높았다. 저렴한 레스토랑에서 나온 음식이 마음에 들 때 사람들이 쓰는 은유는 아주 다른 종류다. 비싸지 않은 레스토랑의 리뷰에서 튀김이나 마늘국수를 말할 때는 섹스보다 마약이나 중독과 연관된 표현이 더 많이 쓰인다. 196p
모든 사람들이 그저 어떤 현상이 “있다”고 넘어갈 것을, 학자는 집요하게 파고든다. 사실 이 책에 실린 저자의 여러 실험과 연구가 ‘왜 굳이 저렇게까지 알아야 하지?;;’ 할 정의 것들도 있다. 제목은 <음식의 언어>이지만, 음식이야기의 탈을 쓴 언어이야기이기에, 음식에 대한 정보를 얻을 양으로 접근하다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언어학에 대한 이야기로 접근하면, ‘왜 굳이..?’라는 반응은 나오지 않을 것.
앙트레(Entrée)와 언어의 역사성
음식이야기의 탈을 쓴 언어학 이야기는 앙트레(Entrée)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앙트레는 프랑스어로 ‘입구’ 혹은 ‘들어가다’라는 뜻으로, 음식에 관련된 용어로 쓰일 때는 전채요리 정도로 번역된다. 하지만 미국식 코스에서 앙트레는 전식이 아닌 메인코스를 말한다.
앙트레라는 단어는 원래 1555년 식사를 시작하는 첫 번째 코스를 뜻했으며, 여러 재료를 섞어 조리하고 대개 소스를 뿌리 든든한 육류요리로 이루어진 코스였다. 그런다가 같은 종류의 음식이지만 수프와 생선이 나온 뒤, 가금 로스트가 나오기 전에 내는 세 번째 코스로 서빙되었다. 미국에서는 여기서 말한 상당한 분량의 육류코스라는 의미로 쓰이고 이와 구별되는 로스트와 생선 코스라는 의미는 통상적으로 쓰이지 않게 되었다. (69p)
그리하여 미국식 영어에서 앙트레는 더 이상 샌선이나 로스트 요리와 대비되는 것이 아니고 단독의 메인코스를 뜻하게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1930년대에 그 단어의 의미가 변해서 달걀이나 해산물로 요리한 가벼운 코스를 뜻하게 되었는데, 그럼으로써 본질적으로 오르되브르나 앙트르메 같은 단어의 예전 의미를 더 많이 띄게 되었다. (69p)
종종 ‘앙트레’를 그저 미국식 용례인 메인음식이라는 뜻으로 알고 있는 이들에게, 프랑스어 어원을 설명하며 잘못된 용례라며 잘난 척하는 이들을 마주친다. 그러나 그 지적은 언어의 역사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언어의 역사성이란 언어가 하나의 사회적 약속이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성장, 신생, 사멸의 변화를 할 수 있는 성질임을 말한다. 언어는 변하고, 변한 언어 역시 옳다. 언어의 역사성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은, 짜장면이 표준어가 아닌 시절 ‘짜장면’에 굳이 ‘자장면’이라고 지적하는 이들처럼 껄끄러울 뿐이다.
케첩이 다시 쓰는 역사
음식의 언어를 집요하게 파는 일은 언어학에만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 음식 언어의 역사를 제대로 짚으며 현대의 잘못된 편견을 교정하는 효과도 낳는다. 케첩의 경우가 그렇다. 답부터 말하자면 케첩은 중국에서 유래했다. 첩이라는 단어는 한자 즙(汁)에서 유래했다. 케첩은 한국으로 치자면 멸치액젓과 같은 중국의 소스였다. 케첩이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역사는 케첩이 미국음식이라는 선입견을 깸과 동시에, 18세기 이후 중국이 쇠락하고 있었다는 인식도 바꿀 수 있는 사실이다.
미국의 국민소스가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요리 역사에서 사소하게 재미있는 요소에만 그치는 문제가 아니다. 케첩의 역사는 새로운 통찰력을 토대로 세계경제사를 보게 해준다.
아시아 경제에 대한 전통적인 서구식 모델을 적용한다면, 중국은 명 왕조 때인 1450년에 내부로 방향을 틀어 고립되고 경제적으로 시대에 뒤떨어진 나라가 됨으로써, 19세기와 20세기에 서구가 마침내 아시아를 세계경제체제로 끌어낼 때 까지 정체되고 낮은 생활수준에 머물러 있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18세기가 한참 지나도록 케첩의 생산과 교역이 방대하게 이루어진 사실은 실제 상황이 그와 달랐음을 말해준다. (120p)
케첩에 얽힌 사연 즉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만들어진 발효생선소스부터 일본의 스시, 우리의 현대적인 달콤한 토마토즙액에 이르는 이야기들은 결국 세계화의 이야기이며, 하나의 세계적 강대국이 몇 세기에 걸쳐 세계를 지배해온 이야기다.
그러나 그 강대국은 미국이 아니며, 그 세기는 우리의 세기가 아니다. 여러분의 자동차 좌석 밑에 떨어진 작은 케첩 봉지는 지난 천 년대의 대부분 기간 동안 세계경제를 지배해온 중국 경제력의 상징이라 생각하라. 124
역사의 진보를 확인하게 만드는 ‘토스트’
음식 언어의 역사를 되짚으며 이전 세기의 문화를 다시 볼 때면, 그래도 역사는 진보한다는 것을 느낀다. 소수자의 인권문제에 관해선 특히 그렇다. 건배를 의미하는 ‘토스트’의 어원은 지금 같은 상황에선 만들어지기 어려웠을 듯 싶다. ‘토스트’는 결국 여성의 역할을 남성의 술자리를 즐겁게 만드는 부수적 요인쯤으로 보고 있던 그 세기의 문화를 고스란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토스트라는 단어는 케첩이 그런 것처럼, 처음의 단어가 뜻하는 것과 지금의 것과 천지개벽한 듯 달라진 분류는 아니다. 용례에 큰 차이는 없다. 지금 쓰는 것처럼 토스트의 어원은 빵이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지금은 토스트가 주식으로 여겨지지만, 17세기까지는 빵이 술자리에서 먹는 안주 쯤으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토스트’는 지금으로 치면 ‘안주’정도가 되겠다. 그리고 그 안주에는 종종 여성도 끼었다.
▲토스트(toast)를 영어사전에 찾아보면, 빵이라는 단어와 함께 건배라는 뜻이 등재되어있다. 3번째 뜻을 보면, 빵이라는 뜻의 토스트가 어떻게 건배를 의미하게 되었는지도 알 수 있다.
와인에 토스트로 맛을 더하는 이런 전통이 사라지기 시작할 무렵인 17세기에 영국의 식사자리에서는 식탁에 앉은 사람 모두가 누군가의 건강을 위해, 다음에는 또 다른 사람의 건강을 기원하면서 마시는 관행이 발달했다.
이런 건배는 흔히 어떤 숙녀의 건강을 위해 올려졌는데, 그 기원의 대상인 숙녀는 좌중의 토스트로 일컬어졌다. 당시의 사정을 알려주는 어떤 글을 보면, 양념된 토스트와 향초가 술에 맛을 더해주는 것처럼 그 숙녀가 모임의 맛을 더해주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다고 설명되어 있다. 133
역사가 진보했다고 쓰긴 했지만 최근의 ‘여성혐오’관련 발언들을 되짚다보면 정말 역사가 진보한 것인지, 혹 진보하는 척하는 것인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진보하는 척’이라도 하게 된 것도 일종의 진보일테다. 토스트라는 어원이 만들어진 그 당시에는 여성을 안주로 여긴다는 인식을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공공연히 선언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을테니 말이다.
자의성주의자와 본성주의자
다시, 언어학이다. ‘앙트레’가 언어의 역사성을 이야기했다면 ‘크래커’(cracker)는 언어의 자의성과 관련한 논쟁을 불러온다. 언어의 ‘자의성’ 논쟁은 어떤 사물과 그 사물이 갖는 이름의 관계에 대해, 자의적인 것이냐 본성적인 것이냐는 갑론을박이다. 셰익스피어는 아마 언어가 갖는 이름이 자의적이라는 말에 고개를 저을 것이다.
어떤 단어의 발음은 보통 그 단어의 의미를 말해주지 않는다. 이를 셰익스피어<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이름이란 무엇가? 우리가 장미라고 부르는 것이 다른 이름으로 불리더라도 그처럼 달콤한 향기를 낼까?”-셰익스피어 (302p)
셰익스피어의 우려와는 달리, 장미를 설사 미장이라고 불렀어도 장미를 향기를 낼 것이다. 같은 장미를 두고 한국은 장미, 미국에선 rose라고 부르는 것처럼, 각 언어 사이에 연관성은 없다. 이러한 언어의 자의성을 처음 말한 것은 정치철학자 존 로크였다.
로크는 소리와 의미 사이에 필연적인 관계가 있다면 한 사물의 이름은 모든 언어에서 똑같을 것이고, 영어와 이탈리아어에서 달걀을 가리키는 단어가 곧 중국어에서도 똑같이 달걀을 가리키는 단어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302p)
결국 장미든 미장이든 이름이 뭐든 상관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관례주의(conventionalism)이라 분류된다. 이와 반대로 본성주의(naturallism)는 한 사물에 어울리는 언어가 있다고 생각한다. 플라톤의 <크라틸로스>에서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는 “그리스인과 야만인 모두에게 어떠 사물에 대해서든 원천적으로 옳은 이름”이 있다고 한다. 물론 그 뒤로는 방언과 같은 사례를 들며 관성주의 역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후 언어철학사에서 소쉬르는 자의성을, 로만 야콥슨은 본성성을 이야기했다.
전설모음(혀를 입의 앞쪽에서 높이 쳐들어서 내는 소리, 모음 I의 소리 등)은 작고 얇고 가벼운 것들에 연결되며, 후설모음(혀가 입의 뒷부분에 낮게 자리 잡고 내는 소리, 모음 a의 소리 등)은 크고 무겁고 견고한 것들에 연결된다. 실제로 스탠퍼드 대학의 언어학 교수인 저자는 이를 위해 실험을 진행했다.
▲[i]는 전설모음, [a]는 후설모음이다.
이들의 가설은 아이스크림처럼 진하고 부드러운 이미지가 필요한 상품에는 묵직한 후설모음이, 크래커처럼 가볍고 바삭한 이미지를 줘야하는 상품에는 작고 얇은 느낌의 전설모음이 더 많이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물론 예외는 있었지만 실험은 가설을 뒷받침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미 언어학에는 이러한 실험 결과를 뒷받침하는 이론이 있다. 주파수 코드(frequency code)라는 이론은 저주파(음정이 낮은 소리)와 고주파(음정이 높은 소리)가 특정한 의미와 결부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외에도 공감각적 가설은 언어와 촉각 혹은 다른 감각이 무엇과 더 잘 어울리는 지를 설명한다. 예를 들어 쌉쌀한 초콜릿은 밀크 초콜릿보다 ‘날카롭다’고 느끼고, 보통의 물보다 탄산수가 ‘날카롭다’고 느끼는 것 등이다.
국어에서 ‘울림소리’가 둥글고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는 것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간다. 국어의 음운 중 ㄴ, ㄹ, ㅁ, ㅇ이 이러한 울림소리에 해당되는데 자신의 시에 울림소리를 위주로 시상을 풀어써 부드러운 이미지를 살린 김영란 등이 유명하다.
저자는 이와 관련된 실험을 본격적으로 실행했고 그 결과를 자세히 기술한 것을 보면, 음운과 사물의 본성이 어떠한 연관성이 있다고 믿는 본성주의자일 것이다. 만약 그가 사물과 사물이 갖는 언어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자의성주의자’였다면 그는 언어학 교수가 되지도, 이 책을 쓰지도 않지 않았을까. 그는 언어, 즉 소리와 글자에 고유의 ‘의미’를 발견하고 싶어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그 언어가 갖는 고유성이 음식이 가진 특성과도 연결됨을 깨달았을 것이다.
소리는 언어마다 다르지만 놀랄 만큼 비슷하기도 하다. 이와 비슷하게 바로 똑같은 인간 혀의 다양한 측면을 토대로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감칠맛 등의 맛 요소를 지각하는 능력은 보편적이다. 그러나 각 퀴진은 각각 문화적으로 특정한 고유의 맛을 더해주는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이런 보편적인 맛 요소를 표현한다. (337p)
저자는 언어와 음식의 고유 ‘의미’를 발견하고, 그 의미를 발견하는 일이 결국은 인간의 욕망을 발견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음식을 두고 이야기하는 방식에는 인간의 욕망도 반영되어 있다. 건강하고 자연스럽고 진정한 삶을 살고 싶다는 우리의 욕망, 우리 가족과 문화와 합일하고 싶다는 욕망, 낙관주의와 긍정성의 깊은 흐름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또 그것은 우리의 인식도 반영한다. 347p
저자는 남들이 ‘왜 굳이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지?’라고 생각하는 것까지 파고들고 실험하고 결론을 낸다. 이는 결국 음식과 언어에 대한 탐구를 넘어 인간의 욕망과 인식, 즉 인간에 대한 탐구일 것이다. 학자의 일이란 그런 것이니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