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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의 탄생 - 사라진 암호에서 21세기의 도형문까지 처음 만나는 문자 이야기
탕누어 지음, 김태성 옮김 / 김영사 / 2015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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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한자의 탄생>의 저자 탕누어는 책날개의 자기소개에서 자신을 직업 독자라고 말한다. 문화비평가 아내와 가까운 작가들과 살면서 매일 글쓰기와 책읽기로 하루를 보낸다고 한다. 직업 독자라서 일까. <한자의 탄생> 곳곳에는 그가 여러 책을 읽은 흔적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아마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거나, 메모 해 둔 것을 각각의 상황에 맞게 편집한 것이리라.

 

한국에서 강준만 씨가 이러한 전개방식을 사용하는데, 굳이 깊이가 없는 인용일지라도 글의 풍부함을 위해 많은 인용을 하는 전개방식이다. 예를 들어 가차문자(기존 글자의 음이나 뜻과 상관없이 글자를 빌려 쓰는 문자)를 설명하면서 롤랑 바르트를 빌려 일종의 찬탈이자 또 다른 문자 사용의 납치’(114p)라고 말한다거나 회의, 지사 형성문자(기존의 글자를 합쳐 새로운 문자를 만드는 문자)를 설명하며 레비스트로스의 수선공개념을 빌려온다. 이런 인용은 책 전체에서 계손 된다. 또 다른 이용구도 비슷하다.

 

육체의 눈이 아닌 상상의 눈으로 본다면 이것은 신화와 전설을 간직한 상형자라고 할 수 있다. (...)콜럼비아의 소설가 마르케스가 자신의 소설은 한 줄 한 줄이 모두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고 말한 것과 같다. 67p

 

이런 식의 인용이 글을 풍부하게 하는지, 깊이 없는 인용이 계속 이어져 글을 산만하게 하는지에 대한 평가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사실 단순 독자라면 후자의 평가를 내릴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고 글감을 모으고 메모를 해 글을 써내려는, 탕 누이처럼 직업 독자는 아니더라도 글을 쓰는 독자라면 간편하게 글감을 모을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글감모으기를 엮어 쓸 수 있는 글은 한정돼있긴 하지만.

 

소재의 생소함에도 불구, 친절한 글은 아니다. 우선 중국어를 쓰는 대만 저자의 책을 번역한 것이라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나를 포함한 한국의 젊은이들은 한자에 대한 이해나 관심이 적다. 7차 교육과정 이후를 겪은 대한민국의 20대 청년의 한 사람으로 이야기해보자면, 수능에 포함되지 않았던 한자는 수험생의 잠을 보충하거나 다른 과목의 자습 시간으로 쓰이곤 했다. (내 경우가 조금 더 심하게 한자에 관심이 없는 것일 수도 있지만) 기본적인 한자에 대한 이해 없이 이 책을 읽기란 고역이었다. 이렇게 겉핥기 같은 서평을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본적인 상식도 부족한 마당에, 탕누어가 주장하는 한자에 대한 기본 상식을 뒤집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더 그렇다. <한자의 탄생>은 한자의 탄생이 창힐이라는 인물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중국의 오랜 속설을 부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중국인들은 수천 년 동안 교활하게도 이 문제(문자의 발명)를 창힐이라는 인물에게 미루어 피해왔다. 문자 발명의 영광과 그에 따르는 모든 의문을 한 사람에게 미룬다는 것은 물론 진실하지 못한 방법이었지만, 오늘날 우리도 이것을 그대로 믿는 경향을 보인다. 문자는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변화하고 발전하여 형성된 것이다. (17p)

 

이렇게 시작된 책은 글자글자마다의 역사, 형성과정, 발전에 대해 설명한다. 하지만 언어학이나 한자에 생소한 이들에게는 한 문장 한 문장에 어려움을 느끼고 좌절할 소지가 크다.

자고 이래로 중국인들은 조자의 방법을 여섯 가지로 귀납하여 이를 육서라고 부르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상형과 지사, 회의, 형성, 전주, 가차가 그것이다. 40p

 

이 문장만으로도 그렇다. 이 하나의 문장에, 나는 혼자서 이러한 설명을 덧붙여야 했다.

 

상형(像型)문자는 말그대로 그림으로 이루어진 문자이며, 지사(指事)문자란 사물의 형태를 본떠서 만든 상형문자의 일종이다. 회의(會意)문자는 이미 만들어진 둘 이상의 한자를 합하여 만든 문자로 뜻은 쉽게 이해되나 글자의 소리는 알 수 없는 단점이 있다. 회의문자의 단점을 보완하여 나온 것이 형성(形聲)문자인데 글자와 소리를 나타내는 글자를 합친 것이다. 예를 들어 큰 바다 양’()은 뜻 부분의 물 수’()와 음 부분의 양 양’()을 합친 형성문자이다. 전주(轉注)문자는 이미 있는 글자의 본래 의미로부터 유추하여 다음 음이나 뜻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길 도’()의 경우 원래 길의 뜻만 가지고 있었으나 사람의 도리나 도를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하는 것이 예다. 마지막으로 가차(假借)문자란 어떤 뜻을 나타내는 한자가 없을 때, 그 단어의 발음에 부합하는 다른 문자를 원래의 뜻과는 관계없이 빌려쓰는 것이다. 전주문자가 본래 글자의 의미와 연관이 있는 것이라면 가차문자는 크게 관계가 없어도 문자를 빌려쓰는 것이 차이점이다. 가차문자는 주로 외국어 표기에 쓰인다. 독일(獨逸), 파리(巴里)같은 용법이 예다.

 

이렇게 스스로 주석을 달며 읽다보니 이제야 탕 누어의 글쓰기 형식까지 이해가 갔다. 그저 낙서와 같이 보이는 하나의 그림에서 갑골문자가 생기고 이를 배경삼아 문자가 탄생하는 그 과정은 이성뿐 아니라 온 상상력을 동원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철학자들의 이런저런 단상까지 빌려오며 글을 전개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무지개를 뜻하는 자에서 구부러진 용을 떠올리는 일이 어디 쉽겠는가.

 

상형자라고 해서 단순히 그림을 본따 만든, 원시 수준의 글자는 아니다. 상형문자에는 보이는 것 그대로 딴 것은 물론, 상상의 모습을 반영하기도 한다. 무지개를 의미하는 홍()자는 용의 머리와 공자가 합쳐진 글자인데, 무지개를 용이 강에서 물을 마신, 구부러진 곡선의 모양이라 상상한 것이다. 67p

 

사실과 상상이 만난 이런 현상을 저자는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 한다. 꿈과 환상이 현실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현실을 꿈처럼, 꿈을 현실처럼 만들어 간 과정이 문자가 형성된 과정과 같다는 것이다. 이는 콜럼비아 소설가 마르케스가 한 줄 한 줄이 모두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는 말처럼, “한 글자 한 글자가 모두 사실과 상상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글자 하나하나를 되짚고 거기에 상상력을 통해 해석을 더한 탕 누어의 이 책이야말로 마술적 리얼리즘 소설 혹은 역사서에 비견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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