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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 어려운 시대에 안주하는 사토리 세대의 정체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이언숙 옮김, 오찬호 해제 / 민음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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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쇼펜하우어는 삶을 의미 있게 보려는 낙관적인 노력을 기만이라고 했다. 노력을 통해 얻는 행복을 거지가 손에 넣은 푼돈에 비유하기까지 했으니. 원래 인간의 삶은 비참하기에 아무렇지 않게 삶의 허무를 인정하는 용기를 가지라는 것이 쇼펜하우어의 가르침이다.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을 쓴 후루이지 노리토시에 따르면 일본 젊은이들은 가장 훌륭한 쇼펜하우어 주의자가 아닐까. 그들은 미래가 지금보다 나아질 것 같지 않기에 지금, 여기행복하다고 말한다. 이 기묘한 절망-행복은 모순적이지만 거짓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이제 자신이 이보다 더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 인간은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인간은 미래에 더 큰 희망을 걸지 않게 됐을 때, “지금 행복하다혹은 지금의 생활에 만족한다라고 대답하게 되는 것이다. (134p,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저자인 노리토시는 일본 젊은이들이 절망-행복을 느끼는 또 다른 이유를 동료라고 말한다. 그저 비슷한 연령층이기에 모두 다같이 젊은이들로 묶일 수 없는 개성 강한 일본의 젊은이들은 비슷한 개성을 가진 동료들과 함께한다. 그들이 행복한 첫 번째 이유가 미래에 나아질 기미가 없어서인 것처럼 두 번째 이유도 내향적인 젊은이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내향적이고 소극적인 동료지향은 일본의 히트 만화까지 결정짓는 요소가 됐다.

 

 

▲<원피스> 23권의 엔딩.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왼팔의 이것이 동료의 증표다. 출항~!!!”이라고 외치는 밀짚모자 해적단의 선장 루피의 대사로 마무리되는 장면. 이 장면은 수많은 원피스팬들의 눈물샘을 터뜨린 컷 중 하나다.

 

판매 부수 누계가 2억 부를 돌파한 현대판 성서 <원피스>에 흐르는 사고방식은 동료를 위해서로 요약될 수 있다. <원피스>의 인물들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동료들에 대한 헌신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고 있다. 뚜렷한 적도 없고, 절대적인 악도 없는 그 세계에서, 루피(19, 후샤 마을)일행은 끝을 알 수 없는 동료 찾기를 이어간다. 현실의 젊은이들도 사정은 루피일행과 마찬가지다. (140p, 같은 책)

 

책에서 예시를 드는 <원피스>뿐 아니라, <나루토>, <블리치>, <은혼>, <20세기 소년> 등 일본에서 최고로 히트한 만화책들의 주제는 동료와 함께 떠나는 모험이다. 현실의 젊은이들도 동료로 행복을 이어가는 것은 변함없지만 그들의 동료지향의 약점인 내성적인 성격을 보완하는 모험이 더해졌기에 완벽한 판타지인 셈이다. 물론 소년만화라는 장르의 전통적인 설정이기도 하지만 최근까지도 끊임없이 같은 설정이 각광받고 2억부 판매라는 비현실적 인기를 끄는 것은 젊은이들의 이러한 특성과 연결 짓는다 해도 무리가 아니다.

 

문제는 이 동료지향이 가져다준 지루함이다. 현실의 동료들은 <원피스>의 해적단처럼 매일매일 새로운 나라로 떠난다든지 흥미로운 적을 만나 동료로 영입한다는 등의 이벤트가 없다. 처음에 동료들끼리 모이면 아무 것도 안하고 같이 있기만 해도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그 밥에 그 나물들은 지루함을 느낀다.

 

동료지향이 불러온 지루함을 타개하기 위해 불끈불끈한 그들의 행동반경은 월드컵 응원부터 시작해 사회봉사활동 등으로 넓어진다. 책에 소개된 한 청년은 친구들과 함께 캄보디아에 학교를 세우는 단체를 만들기도 했다. 이들의 모임은 월드컵’, ‘캄보디아에 학교 세우기를 지나 ‘3.11 후쿠시마이후 원전모임으로까지 확장됐다. 노리토시는 동일본 대지진이야말로 사회지향적 성향을 지닌 젊은이들에게는 기다리던사건이었다고까지 말한다. 한 나라의, 아니 세계의 큰 비극까지 자신들의 불근불끈함을 풀 하나의 이벤트로 여겼다는 노리토시의 분석은 신선하면서도 충격적이다.

 

(원자력 발전 반대 시위에 참여한 젊은이는) 마치 축제를 즐기는 기분으로 고엔지 주변을 행진할 것이다. 그렇게 행진을 마치고 나면 꽤 피곤해질 것이다. 그리고 무언가 성취감을 얻고 돌아갈 것이다. 적어도 원자력 발전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는 방법은 되었을 것이다. (254p)

 

이러한 분석은 사회참여라는 단어에서 떠오르는 사회정의구현’, ‘더 나은 세계를 위해같은 슬로건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린다. 자신의 토요일을 동료들과 함께 보내기위한 수단 중 하나로 원전모임을 선택한 젊은이들에겐 말이다. 결국 사회정의보다 자신의 주말을 위해, 동료들과의 시간을 위해 이벤트로 활용되는 참사에 대해선 충격적이라 봐야할지, 이유가 무엇이든 사회참여를 했으니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지 헷갈리게 된다.

 

결국 이 젊은이들의 에너지를 정말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흡수하는 것은 정책담당자와 사회적 이벤트 메이커들의 몫일지도 모르겠다. 노리토시는 이를 위해 젊은이들이 살고 있는 가깝고 친밀한 세계(친밀권)사회라는 커다란 세계(공공권)를 제대로 이어줄 필요가 있다고 주문한다. 결국 젊은이와 세계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느닷없이 중국 공장에서 발생한 농민공 착취라는 사회문제를 접하더라도,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스마트폰 사용자에게 지금 당신이 사용하는 스마트폰을 제조한 공장에서 노동자가 연속 자살을 하고 있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라는 방식으로 정보를 제공한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222p

 

노리토시는 수십년간 쌓여온 일본의 문제를 풀기위해 필요한 것은 단 한 번의 혁명이 아닌 각각의 제도를 정비하고 차근차근 바꿔나가는 노력이라고 말한다. 국가 기능의 상실과 경제불안 같은 문제들은 단지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간단히 풀리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은 일본사회가 느슨한 계급사회로 탈바꿈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으로 끝이 난다. 저자가 제안하는 젊은이의 세계와 사회라는 세계를 잇는 연결고리를 만들 세력의 부재를 느낀 것일까. 한국에 똑같이 적용하기엔 적잖이 다른 일본의 젊은이론이지만 책 속 그의 제안은 한국 정치세력에게도 유효한 충고가 될 것이다.

 

 

 


 

 

세대론이 사회에서 유행하게 되는 때는 계급론이 현실성을 잃었을 때다. 세대론이라는 것은 본래 매우 억지스러운 이론이다. 계급, 인종, 젠더, 지역 등 모든 변수를 무시하고, 부유층도 빈곤층도, 남성도 여성도, 인본인도 재일 한국인도 그 밖의 외국인도 모두 한데 뭉뚱그려, 그저 ‘어떤 연령’에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젊은이’라고 일괄해 명명해 버리기 때문이다. 76p

젊은이론이 결코 마무리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사회학에서 말하는 ‘가령(加齡)효과’와 ‘세대효과’의 혼동 때문이다. 다시 말해, 본인이 늙어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일 뿐인데, 이것을 마치 ‘세대의 변화’ 혹은 ‘시대의 변화’로 착각해 버리는 것이다. 이런 착각은 ‘젊은이론’에 국한되지 않는다. ‘일본이 약해졌다’고 지적하는 대부분의 논의 역시, 이 현상으로 설명 가능하다. 86p

만약 "젊은이가 소비를 하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싶다면, 젊은이들에게 불평을 늘어놓기 전에 먼저 일본의 출생률을 이렇게까지 저하시킨 정책 담당자, 그리고 이런 정책을 지지한 당시의 국민들에게 책임을 따져 물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경우에 일단 과거의 자신부터 탓해야 할 것이다. 126p

행복한 젊은이들의 정체는 ‘컨서머토리’라는 용어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컨서머토리란 가지 충족적이라는 의미로, ‘지금 여기’라는 신변에서 가까운 행복을 소중히 여기는 감각을 말한다. 136p

1990년대 이후, ‘중산층의 꿈’이 무너짐과 동시에 ‘기업’의 정식 구성원이 되자 못한 젊은이가 증가했다. 그런 와중에, 컨서머토리한 생활을 이어 갈 수 있는 젊은이가 지속적으로 증가했던 것이다. 더구나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불리는 1990년대 이후,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생활 만족도가 상승하고 있다. 여기서 현대의 젊은이가 행복을 느끼는 이유로 새로운 보조선 하나를 더 제시해 보려고 한다. 바로 ‘동료’다. 138p

사람들이 행동을 시작하고, 그것이 대규모 운동으로 이어지는 계기, 바로 그들이 지닌 가치관이나 규범의식이 침해당했을 때라고 볼 수 있다. 218p

‘내 주변 세계가 변할지도 모른다’라는 위기감이 사회적인 행동으로 분출한 것이다. 219p

20대 젊은이들의 생활만족도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쩌면 벌써 일본의 젊은이들이 어느 정도 ‘농민공화’되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304p

이대로 간다면 일본은 ‘느슨한 계급 사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일등 시민’과 ‘이등 시민’의 격차는 점진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일부 ‘일등 시민’은 국가와 기업의 의사를 결정하는 데 분주할 테지만, 다른 수많은 이등시민은 태평하게 하루하루의 삶을 소일하는 그런 구도가 만들어질 것이다. 30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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