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페셔널의 조건 피터 드러커의 21세기 비전
피터 드러커 지음, 이재규 옮김 / 청림출판 / 200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피터 드러커(Peter F. Drucker)의  

인생을 바꾼 7가지의 지적 경험

피터 드러커는 자신의 책 [프로페셔널의 조건]에서 자신의 인생을 바꾼 7가지의 지적 경험을 이야기한다.


첫번째 경험
목표와 비젼을 가져라
80세의 노인이 쓴 오페라 폴스타프에 매료된 후 저자인 베르디의 글을 읽었다.
'음악가로서 나는 일생 동안 완벽을 추구해왔다. 완벽하게 작곡하려고 애썼지만, 하나의 작품이 완설 될 때마다 늘 아쉬움이 남았다. 때문에 나에게는 분명 한 번 더 도전해 볼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 나이를 더 먹게 되더라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정진하리라고 굳게 마음먹었다.



두번째 경험
신들이 보고있다.

그리스의 위대한 페이디아스의 일화이다.
기원전 440년 만들었던 그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서구 미술 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뽑힌다.
페이디아스의 조각료를 청국한 재무관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보이지도 않는 부분까지 만든 것을 청구한다'
그러자 페이디아스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당신은 틀렸소, 하늘의 신들이 보고있소'
보이지 않는 곳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세번째 경험
끊임없이 새로운 주제를 공부하라

새로운 주제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새로운 방법에 대해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도록 해주었다.


네번째 경험
자신의 일을 정기적으로 검토하라

지금 보다 더 잘하도록 끊임없이 자신을 검토해야 한다. 완벽을 추구한다.


다섯번째 경험
새로운 일이 요구하는 것을 배워라.

그토록 유능했던 사람이 갑자기 무능해지는 이유는 새로운 일을 배우지 않기 때문이다. 시대는 변한다. 계속 배워야 한다.


여섯번째 경험
피드백 활동을 하라.

자신의 개선할 점을 안다는 것은 어떻게 발전하고 계발해야 하는 가를 아는 것이다. 이것이 없으면 퇴보한다.


일곱번째 경험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 바라는가?

자신이 스스로 질문하라.
세상의 변화에 맞추라.
사는 동안 다른 사람의 삶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피터 드러커의 [프로페셔널의 조건]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존 스토트가 본 로이드 존스 로이드존스와 존 스토트 “로이드존스 박사를 추모하며” 마틴 로이드존스 박사의 죽음과 더불어, 약 30년 동안 영국에서 가장 강력했던, 그리고 가장 설득력 있었던 그의 복음주의 목소리는 이제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는 주로 성경 강해자로서 세인의 뇌리에 기억될 것이다. 버킹엄게이트(Buckingham Gate),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시무하던 50년대와 60년대의 전성기에 그는 2천명의 회중을 1시간, 혹은 1시간 15분 동안 마법에 매혹된 듯 꼼짝 못하게 만들곤 했다. 그는 과학적으로 훈련된 지성이 가질 수 있는 분석적 솜씨와 웨일즈인의 정열을 겸비하고 있었다. "설교란 무엇인가?" 그는 이에 대해 감동적인 그의 저서 '설교와 설교자'(Preaching and Preachers)에서 "불타는 논리! 웅변적 이성!"이라고 답변했다. 이 양자 겸전(불타는 웅변과 논리적 이성)의 힘을 실감하기 위해서는 그의 설교를 직접 들어보아야 하겠지만 여러 권으로 나온 그의 '로마서 강해'와 '에베소서 강해'를 통해서도 이런 힘은 지금도 계속 전달되고 있다. 로이드존스 박사는, 강단에서는 준엄한 인상을 주었지만 서신에서는 수줍어하는듯한 인상을 풍겼다. 친구들에게 보낸 서신에서조차 그는 첫머리에 "My dear Sir"(나의 친애하는 분께)라고 썼다. 그리고 자신의 세례명 (David Martyn)으로 서명한 적도 별로 없었다. 또한 교회 집무실이나 서재에서 내담자들과 상담을 할 때는 그보다 더 동정적이고 자애로울 수가 없었다. 의사로서 호더경(Lord Horder)의 조수로 일하던 초년 시절 이후 줄곧 그는 의학 서적 읽는 일을 계속하였다. 그러므로 인간들의 약점과 단점에 대해 의사와 목사의 통찰력으로 직시할 수 있었다. 그의 가장 인기 있는 저서 가운데 하나인 '영적 침체'(Spiritual Depression, its Causes and Cure)는 실제적인 성경적 지혜로 가득 차 있다. 교회관에 있어서 로이드존스 박사는 강력한 독립교회주의자였다. 그리고 복음주의자가 어떻게 영국국교회와 같은 "혼합된 교파"의 신도로 남아 있는지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여러 해 동안 계속하여 그는 지조있는 복음주의자들이 자교단에서 탈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66년 웨스트민스터, 센트럴 홀에서 열린 전국 복음주의자 대회(National Assembly of Evangelicals)에서 그는 우리에게 교단을 탈퇴하여 신실한 복음주의적 "남은 자"를 결성하자며 감동적인 호소를 하였다. 나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그가 강연을 마쳤을 때 나 자신은 그와 입장을 달리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부터 며칠 동안 이 문제를 다루게 되어 있었으므로 문제가 논의되기도 전에 일부 목사들이 경솔하게 사직서를 제출할까 하는 염려도 들어, 나는 이런 입장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중에 로이드존스 박사를 찾아가 사과를 드렸다. 물론 내가 말한 내용 때문은 아니다. (나는 아직도 나의 견해가 옳다고 믿고 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고 모임을(로이드 존스 박사의 표현대로) '논쟁장'으로 만들뻔했기 때문에 사과를 한 것이다. 로이드 존스 박사는 그때 나의 이의에 반론을 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려 논쟁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두 사람은 그 후에도 계속하여 따스한 인격적 관계를 유지했다. 나는 로이드 존스 박사에 대해 애정과 감탄어린 존경심을 늘 품고 있다. 신학적으로 혼란스런 시대에 그는 역사적, 성경적 기독교 신앙을 굳게 고수했다. 그는 논쟁적인 연설가였으나 언제나 원리 원칙과 인신 공격을 분명하게 구분할 줄 알았으며, 가슴이 따스한, 사랑과 평화의 사람이었다. '박사님'은 많은 사람들의 영적인 아버지 같은 인물이었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신학적, 영적으로 가히 심각한 공백이 빚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존 스토트(John W. Stott) / 올 소울스 교회의 교구목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놀라운 임에는 틀림없다. 

하루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별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요즘 글좀 올렸더니 몇분들이 찾아 와서 행복하다. 좀더 많은 글을 써야 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도둑과의 인터뷰 

 

기자가 한도둑고 인터뷰를 했다. 

"왜 도둑질을 하십니까?" 

"빈부의 격차를 없애려고" 

"왜 혼자 도둑질을 하십니까?" 

"믿을 놈이 있어야지" 

"언제가 가장 슬펐습니까?"
"도둑질하러 나가서 집에 와보니 우리집에 도둑이 들었을 때" 

"자식들이 아버지 직업란에 뭐라고 씁니까?" 

"귀금속 이동 센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365일 매일 읽는 신선한 웃음 하나
용혜원 지음 / 나무생각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복이와서 웃는것이 아니고 웃어야 복이온다. 그래서 말인데 이 책을 사서 읽고 웃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