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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자본 발전사전 - 자본주의의 세계화 흐름을 뒤집는 19가지 개념
볼프강 작스 외 지음, 이희재 옮김 / 아카이브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지난 반세기를 우리는 오직 발전, 개발, 성장만 외치며 살아왔다. 이와 반대되는 모든 개념은 악으로 치부하면서. 처음 목표는 국민소득 천 달러였다. 천 불 소득 백억 불 수출을 달성하면 어찌어찌 될 거라는 신동엽 화백의 그림 선전물은 정말 달콤했다.  

그리고 다음 목표가 정해졌다. 이번엔 만 달러였다. 만 달러만 넘어서면 선진국이 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목표가 제기될 당시 실제로 일본과 미국, 북유럽 선진국들의 국민소득은 대략 만 달러에서 2만 달러였던 것 같다. 

이제 2만 달러를 넘어섰지만, 소위 747 공약을 내걸고 4만 달러 시대를 열어야 비로소 선진국이 될 수 있다며 그렇게 만들겠다는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럼 4만 달러가 달성되면 이제 우리의 목표 갱신 행진은 그만 멈추어도 될까?  

천만에, 그 말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발전, 개발, 성장은 독이다. 치명적인 중독성을 가진 독. 개인의 행복과 자유, 평등하게 누릴 모든 권리를 박탈한 채 오로지 끝도 안 보이는 전진만을 강요하는 독인 것이다.  

이제 국가적 차원에서 벌어지던 이 발전에 대한 캠페인은 지역으로도 넘어왔다. 지방자치단체들은 너나없이 앞을 다투어 발전전략을 고민한다. 지자체들의 발전전략의 핵심은 개발이다. 바다를 메우거나 산을 깎아내고 거기에 공장을 짓는다. 

이렇게 해서 공장을 지어봐야 지역경제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아무리 외쳐봐야 발전의 종교적 신념에 포박된 관료들에겐 마이동풍이다. 그들은 이런 외침들을 그저 지역이기주의 내지는 대책 없는 진보주의자들의 반항 정도로만 치부한다. 

발전이라는 멈추지 않는 괴물은 20세기 말 자본주의의 위기를 맞아 퇴락할 듯이 보이기도 했지만, 세계화, 신자유주의란 이름으로 옷을 갈아입으며 오히려 그 명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한편으론 지구촌 전체로, 한편으론 작은 지역공동체까지 깊숙하게….  

발전은 말 그 자체로서는 부정하기 어려운 매력적인 이데올로기다. 그리고 인간의 본성이 함축된 개념이라고 말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발전의 이면에는 끝없는 임금착취와 빈부 격차, 자원의 고갈, 환경의 파괴, 문화의 학살이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반자본발전사전>은 바로 이런 문제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기 위해 엮은 책이다. 발전은 자본주의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사회주의에서도 역시 똑같은 문제다. 두 사회는 모두 화석연료에 입각하여 쌓아올린 공업문명의 막강한 생산력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앞에서 나는 발전이란 괴물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이 책의 저자 중 한 사람이며 엮은이인 볼프강 작스는 서문에서 발전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발전은 사회를 달래는 신화요, 욕망을 풀어놓는 환상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작스는 발전은 결코 평등이니 공정이니 하는 신화를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단정한다. 남반구의 저개발국들이 발전을 통해 북반국의 선진국들처럼 되려고 했지만, 1960년대에 20배 더 잘 살았던 북반구 나라들이 그 차이를 1980년대엔 46배로 벌려놓았다는 것이다.  

이런 차이는 나라 안에서도 양극화란 이름으로 그대로 벌어진다. 나라는 전보다 잘 살게 됐는데 실질소득은 줄어들어 살기는 더 힘들어졌다고 불평하는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작스는 발전이 실패하는 것보다 성공하는 것이 더 무서울 수 있다고 경고한다.  

획일적인 삶과 의식이 다양성을 해치고 종잡기 어려운 미래를 우리에게 던져줄 것이라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완벽하게 이해하고 지지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공감은 가는 말이다. 지금은 누구나 승용차를 가져 편리해졌지만, 대신 많은 것을 잃었다.  

시내버스를 기다리며 부리던 여유, 생각에 빠져들 시간, 과도한 약속으로부터의 해방 같은 것들을 우리는 잃어버렸다. 스마트폰은 편리하지만 사람들을 더욱 꽁꽁 묶어놓는다. 개인의 자유를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보수든 진보든 발전(혹은 성장)을 약속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서 이 책의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 뭔가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해 고민할 때가 왔다는 것이다. 올바른 삶이란 어떤 건지, 진정한 행복이란 무언지, 무엇이 선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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