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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미슐레의 자연사 1
쥘 미슐레 지음, 정진국 옮김 / 새물결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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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이때 이명박 정부는 여수엑스포 예산의 대부분을 내년도 예산에 반영하지 않아 불평을 사고 있다. 여수시민들은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느니 차라리 엑스포를 반납하자”며 울분을 토로한다. 과거 대전엑스포에 쏟아부었던 국가의 관심과 노력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형님예산이며 영부인예산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데 박람회 예산은 바다에 ‘풍덩’ 하고 빠졌을까? 아무튼 바다를 테마로 여수엑스포를 성공적인 해양박람회로 만들겠다던 여수시민들의 분노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리고 하필이면 이때 내 무릎에 <바다>가 펼쳐졌다.  

쥘 미슐레. 그는 프랑스인이다. <프랑스혁명사>를 비롯해 방대한 역사서를 남기고 중세사의 기초를 다진 인물이다. 역사를 구술체로 풀어내 대중들의 접근성을 높이는데 크게 이바지한 인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는 <바다>라는 훌륭한 저작을 남긴 지성이기도하다.

오늘날 우리의 눈으로 그의 글을 읽다보면 조금 불편한 부분이 없잖아 있을 수 있다. 그는 19세기(1798~1874)를 살다간 사람이었으므로 우리의 기준에서 보면 완고하고 편협해 이해하기 어려운 사고의 지점들을 간혹 만나게 된다.

또 그는 어쩔 수 없이 서양인이었으므로 갖게 되는 지정학적 한계로 인해 우리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 페미니스트들이 보기에 그는 지나친 남성우월주의자다. 그가 감탄사를 연발하며 서술하는 북해와 노르망디의 해변은 우리에겐 어떠한 영감이나 감흥도 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미슐레의 <바다>는 <다음백과사전>이 소개한 바처럼 ‘최상의 산문작가가 쓸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문구’들의 결정체임에 부족함이 없다. 진보에 대한 예언자적 믿음과 혁명적 헌신으로 <프랑스혁명사>를 썼던 그가 이토록 서정적인 글을 쓸 수 있었던 건 실로 연애의 힘인지도 모른다. 

그는 1849년 자기보다 서른 살이나 어린 아테나이 미알라레와 재혼했던 것이다. 아름다운 신부는 그의 속에 잠들어있었을 태초의 신비와 경이를 이끌어내었을 터이다. 그에게 바다는 ‘어디에서나 장중하고 무서운 모습이’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또한 ‘더욱 새롭고 행복한 영감을 주는’ 바다는 매혹의 대상이었다. 바다를 바라보며 그는 맥박이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것이 두려움 때문이든 아니면 경이 때문이든 그의 맥박은 매혹적인 바다에 뛰어드는 꿈을 꾸었을 것이다.

바다는 어떤 짓을 해도 다 용서해주고 관용을 베풀어주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다. 그에게 바다는 모든 생명들의 고향이다. “이 지구상에 처음으로 생명을 낳은 바다는 인간이 그것을 깨뜨리지 않고 참을 줄만 안다면 그 복 받은 양식을 기꺼이 내놓을 것이다.”

진보적 열정과 혁명적 헌신으로 무장해 <프랑스혁명사>를 서술했던 미슐레 같은 사람이 행복에 도취된 영감으로 자연의 찬가를 썼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우리에게도 이런 인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당장 정약전이 생각난다. 그는 <자산어보>라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그가 해부해 그린 물고기 뼈의 모양과 개수의 정확성은 오늘날 해부학의 관점에서도 경이로운 일이다. 하지만 정약전은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채 흑산도에서 생을 마감했다.

아마도 어쩌면 <자산어보>는 그가 그의 형 정약종과 동생 정약용과 더불어 천주교도로 몰려 신유박해에 연루되지 않았더라면 태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는 절해고도에서 만난 친구와 더불어 물고기를 잡으며 칼로 배로 따고 뼈를 갈라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그에 비해 미슐레는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 그는 부유하지는 못해도 자식 하나 공부시키는데 어려움이 없었던 인쇄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선천적인 총명과 노력하는 탐구심은 그에게 좋은 직업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게다가 그는 인생의 말미에 어린 신부와 결혼함으로써 더없이 행복한 영감의 바다에 빠지는 행운도 누렸다. 정약전과는 완전 딴판의 인생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정약전이 절망에 빠져 바다 속 생물을 해부하고 있을 때, 미슐레는 바다가 던져주는 경이를 마주하며 자연의 권리를 옹호했다.

그렇다고 해서 미슐레에게 어떤 고뇌도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충분히 고뇌했다. ‘위험천만한 먼바다에서 고기잡이하며 사는, 조금 슬프고 특이한 작은 어촌마을’을 사랑하는 그는 ‘지칠 줄 모르는 겨울바다가 얼어붙은 삭풍으로 후려치는 창문’ 아래에서 긴 기다림과 마주했다.

그 긴 기다림이 아름답고 젊은 신부가 가져다준 서정적인 영감과 만나면서 ‘최상의 산문작가가 쓸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문구’들로 이루어진 <바다>가 탄생한 것이다. 그에게 바다는 무엇이었을까? 그저 바닷가에서 바라보기에도 장중하고 두려운 존재이기만 했을까?

이런 해석에 불만의 토를 다는 이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에게 바다는 남들처럼 생명의 보고다. 인간을 위해 무한한 자원을 간직한 생산물의 저장고. 그래서 “모든 순수한 생명은 행복의 순간을 누릴 권리가 있는 것”처럼 바다에도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행복의 순간을 누릴 권리란 인간에게 자신을 내어줄 영원을 위한 잠깐의 휴식일 뿐이다. 말하자면 “순수하게 고래만을 위한 간절한 평화”란 종의 보존을 위한 것이다. 어떤 특정한 생물의 멸종이란 인간에게도 아주 좋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오랜 평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들을 잡아야 하지만” 미래의 풍요로운 수확을 위해 “우선은 살려두어야 하는 것”이다. 근본적 환경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미슐레의 자연예찬이나 멸종생물옹호론이 위험하게 들릴 수도 있다.

더 큰 훼손을 위해 잠깐 훼손의 기쁨을 참자는 전략적 개발자의 논리라고 공박해도 크게 다툼의 여지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살았던 시대가 19세기라는 것을 상기하자. 중상주의의 깃발을 단 산업혁명의 증기선들이 대양으로 뻗어가기 시작하던 시대란 사실을.

미슐레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순수한 생명은 행복의 순간을 누릴 권리가 있다. 각자가 아무리 열등한 자리에 있어도 자신의 좁은 한계를 넘어, 자신을 뛰어넘어, 어두운 욕망을 넘어, 영원히 지속될 무한 속으로 침투할 순간을.”

그리고 이어 말한다. “인간의 협력이 얼마나 간절한가! 자연의 순리에 따르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면 축복받고 심연에서 별빛이 비치리라. 그렇게 하느님의 눈길을 받지 않을까. 하느님이 생명을 축복하면서, 이 지상에서 누릴 권리의 몫을 가장 작은 놈들에게도 나눠주지 않을까!”

19세기에 이미 환경파괴의 심각성을 인지한 미슐레는 멸종생물 옹호론과 자연예찬론을 폈지만, 21세기 대한민국에선 불도저와 포크레인으로 강을 파고 뒤집어 모든 생명체를 죽여 없앤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수입산 생명체와 로봇물고기가 대체된다.

미슐레가 보기에 자연스럽게 강물이 흐르는 것이 순리일 테지만, 21세기 대한민국에선 보로 강을 막아 물을 가두는 것이 순리라고 강변한다. 그것이 생태계를 보존하는 길이요, 인간과 자연이 함께 평화와 행복의 순간을 누리는 권리라고 주장한다.

산을 깎아 바다를 메워 공장을 지으면서 녹색성장을 말하는 것이 오늘날 세태다. 하나의 도시(경남 창원)에서 람사르 총회가 열리는 시각에 동시에 바다매립계획이 발표되는 것이 오늘날의 상식이다. 이를 두고 미슐레가 한마디 한탄을 늘어놓는다면 그들은 이렇게 항변하지 않을까.

“강을 파고 보를 쌓아 물을 가두는 것이야말로 영원한 휴식을 주는 행위 아닌가요? 모래를 다 걷어내고 나면 모래무지나 꺽지 같은 물고기들에겐 그야말로 쉬지 않는 평화가 주어진 것 아닌가요? 새로운 환경엔 새로운 생명이 생겨나는 법이죠.” 난센스지만 어쩌면 그들은 이런 말도 쉽게 할만한 사람들이다.

미슐레는 말한다. “이렇듯 무자비한 싸움에서 인간에게 홀대를 받으면서도, 바다는 되레 인간에게 관대하며 선행을 베푼다. … 무섭고 저주받은 바다는 아무런 담보도 없이 그를 반겨 자기 품에 안고 혈기를 되찾아준다.”

코앞에 닥친 세계인의 축제 여수엑스포의 불행을 지켜보면서 한없이 서글퍼진다. <바다>의 역자 정진국의 말처럼 “바다에 둘러싸여 살고 수많은 아름다운 섬에서 사는 우리”는 그 드넓은 바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특히 국회의원님들.  

* 이 글은 <100인닷컴(100in.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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