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사회 - 타인의 공간에서 통제되는 행동과 언어들
김민섭 지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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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사회 : 타인의 공간에서 통제되는 행동과 언어들

        _김민섭 저 | 와이즈베리

 

 

1.

지방대학 시간강사가 대리기사가 되었다. 저자는 이 사회를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이라고 표현한다. 사회구성원 모두를 자신의 욕망을 대리 수행하는 대리인간으로 만들어내고 있다는 뜻이다. 타인의 운전석에서 저자는 무엇을 보았을까? ‘세 가지통제를 경험한다. 우선 운전에 필요하지 않은 모든 행위의 통제다. 내 차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긴 차주가 다음 날 아침 맑은 정신으로 차를 몰고 나오면서 이곳저곳 맞춰놓은 포인트가 달라져 있을 때, 입에서 숫자, 동물이름이 안 나올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2.

대리 운전을 하면서 손님(차의 주인)에게 하는 제일 좋은(무난한) 말은 , 맞습니다. 대단하십니다.” 라는 3단 화법이다. 저자는 대리운전 기사의 일상과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 학생들과의 대화(토론)를 비교한다. 학생을 주체로 대하지 않는 토론은 강사나 교수의 일방적 현장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를 공감 능력의 결여라고 표현한다.

 

3.

타인의 운전석과 다름없는 을의 공간은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차의 주인과 대리기사와 같은 역설의 관계 역시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그 어디에서든 주체의 욕망은 쉽게도 타인을 잡아먹는다.

 

4.

대리기사를 통해 표출되는 대리사회는 언제부터 이렇게 깊숙이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는 대리사회’.

 

5.

그렇다면 대리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어떤 삶을 살아야할까? 저자는 자신을 둘러싼 구조와 마주하고, 주체가 되어 사유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불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한 개인이 가진 사회적 책무이자 다음 세대를 위한 성찰이다.”

 

6.

내가 가장 합리적인 공간으로 믿었던 대학도 역시 우리 사회의 욕망을 최전선에서 대리하는 공간일 뿐이었다. 거기에서 나는 괴물이 되기 위한 경쟁에 내몰렸다가 밀려났다. 그 이전에 스스로 한 발 물러서는 연습을 했다면 나와 내 주변인들의 모습이 어떻게 변해 있는지 조금 더 빨리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주체로서 한 발 떼어놓을 만한 특별한 인간이 되지 못했다.”

 

7.

저자는 이 글들을 책상보다는 주로 거리에서 썼다고 고백한다. 책상에 앉아서 쓰는 한 편의 글보다 거리에서 문득 떠오른 한 줄의 문장이 더욱 가치 있었다고 한다. 대리사회는 그렇게 하루의 밤과 한 줄의 문장을 조금씩 쌓아가며 쓰였다. 대리기사를 불러 본 적이 없는 나에겐 대리기사의 존재감이 남아있지 않다.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대리기사들의 일상이 치열한 삶그 자체로 그려져 있다. 모두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있지만, 당연히 그 곳에도 따뜻한 인간애가 흐른다. 웃어도 될지 어떨지 애매모호한 대목에선 종종 눈보다는 가슴으로 읽게 된다. “우리 모두는 경계에 있다. 다만 한 걸음만 물러설 용기를 가지면 된다. 대리인간으로 밀려날 것인지, 스스로 물러서고 다시 나아오는 주체가 될 것인지,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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