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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편 (반양장)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1. 이 책은 저자 진중권이 [서양 미술사 모더니즘 편]에 이은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전후 현대 미술의 흐름을 주로  비평가들의 '평론'을 통해 재구성했다. 전전(戰前)에는 예술가들이 강령과 선언문의 형태로 자신들의 생각을 직접 드러냈다면, 전후에는 예술가들이 하는 작업의 의미를 언어화하는 과제가 비평가에게 돌아갔다고 한다.


2.  1947년 1월 어느 날, 잭슨 플록은 이젤의 수직으로 세운 캔버스 위에 토템(=동물) 비슷한 형태를 그리고 있었다. 그러다 무슨 생각에선지 돌연 캔버스를 바닥에 수평으로 눕히고는 그 위로 물감을 들이부었다. 새로운 조형의 가능성을 본 것이자, 바라보는 이들에게도 전혀 새로운 회화의 계기가 된다. 그의 작품에서는 동일하거나 유사한 요소들이 눈에 띄는 변화 없이 '캔버스의 한쪽 끝에서 다른 끝까지 되풀이' 된다. 시작도, 중간도, 끝도 없는 종류의 그림이다. 이를 '전면화(all over)'라고 부른다.


3. 그렇다면 위의 플록의 작품은 평단에서 어떤 반응이 나타났을까? 1950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처음 소개 되었을 때, 플록의 작품은 그곳의 평단에서 거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오직 한 평론가만이 그의 작품에 혹평을 남겼다. 함축하면 '혼돈 그 자체이다'.  이에 대해 플록은 이렇게 답했다. "혼돈은 무슨. 빌어먹을(No chaos, Damn it)."


4. 플록이 미국에서 격렬한 표현적 제스처로 형(形)자체를 붕괴시키고 있을 때, 유럽에서는 '앵포르멜'이라는 흐름이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카운터파트 역할을 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두 흐름이 서로 상대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가운데 대서양의 양안에서 동시에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저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마치 커다란 산 하나를 두고 약속된 상태는 아니지만, 양쪽에서 굴을 파고 들어오다가 서로 만난 것으로 표현해도 될 것 같다.


5. 1960년대 초 추상표현주의가 이미 관학적 예술언어로 전락했을 때 예술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은 것은 '팝아트'라는 이름의 구상회화였다. 1964년 그린버그는 일군의 작가들을 모아 '탈회화적 추상'이라는 전시회를 조직한다. 이를 '뜨거운 추상에서 차가운 추상으로'라고 표현된다.


6. 팝아트하면 '앤디 워홀'이다. 팝아트에서 회화는 자기 자신을 주체화하지 않고 자기 바깥에서 제재를 취한다. 팝아트의 화면에는 먼로가 있고, 엘비스가 있고, 재클린이 있으며, 또한 캠벨 수프 깡통과 블리로 세제 박스가 있다. 어떻게 이렇게 변했을까? 아마도 우리의 의식은 이미 내 안에서 다른 사람(유명인), 물건, 잘 팔리는 상품 등에 프로젝션되어서 그럴까? 그렇게 생각이 들긴 하다.


7. 미니멀리즘이 있다. 미니멀리즘은 도처에 있다. 백화점에서는 상품의 디자인이며, 거실에서는 인테리어의 원리이며, 건축에선 구축의 원리이기도 하다. '더 적은 것이 더 많은 것이다.'라는 말은 건축가 반 데어 로에가 한 말인데,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슬로건으로 통하고 있다. 


8. 저자는 미니멀리즘의 가장 큰 업적을 모더니즘의 협소한 감옥에서 미술을 해방시킨 데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미니멀리즘은 그린버그의 모더니즘을 내부로 붕괴 시킨 계기가 된 듯하다.


9. 작품을 전시회에 출품하는 것이 아니라 잡지에 기고하는 화가들이 있다. '개념미술가'라고 불리는 이들이 그들이다. '개념미술'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헨리 플린트(1940~ )라고 한다. 1961년에 쓴 에세이에서 그는 개념미술을 이렇게 정의한다. "개념미술은 무엇보다도 개념을 재료로 하는 미술이다. 음악의 재료가 소리인 것처럼 말이다. 개념들은 언어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개념미술은 언어를 재료로 하는 미술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10.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낱말의 의미는 '사용'에 있다. 낱말은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오직 언어론적 토양위에서 생명력을 얻는 것이다. 내가 어떤 단어를 조합해서 말을 만들어 낼지라도 아무도 알아듣는 사람이 없다면 그 의미를 잃는 것이다. 개념미술가들의 주장은, 미술 역시 그것이 가진 물리적 속성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속한 특정한 맥락에 힘입어 비로소 '미술'이 된다고 한다. 뒤상이 창조한 것은 변기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술이 무엇인가? 에서 언제 예술인가? 로 바뀌는 상황이다.


11. 이젤에 그림을 그리는 것도 식상하다. 지겹다. 이런저런 변화를 시도해봤지만, 거기서 거기다.  1962년 9월 1일 부터 23일까지 비스바덴에서 '플럭서스 페스티발'이 열렸다. 테마는 '행위예술'이다. 이 페스티발에는 딕 히긴스, 조지 브레히트, 백남준을 비롯한 여러 작가가 참여했다. 가장 악명 높은 것은 필립 코너가 작곡한 [피아노 활동]이었다. 이 곡의 악보는 '뽑거나 두드려라', '물건을 떨어뜨려라', '음향판을 때려라' 등의 명령어로 이루어졌다. 연주가 끝났을 때 피아노는 완전히 부서져 있었다. 이는 물론 피아노로 상징되는 전통적인 음악과 기존의 음악 제도에 대한 다다적(dada)공격이라고 볼 수 있다. 서독의 언론은 이 사건을(페스티발이 아닌 '사건') "정신병자들이 탈출했다."고 보고했다. 


12.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 플럭서스를 거치면서 전통적 의미의 '작품'은 사라져가는 듯했다. 하지만 '회화'라는 것이 아직도 가능한지 의문이 제기되던 시대에 갑자기 새로운 구성회화가 나타나,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의 미술계를 주도하게 된다. 이 새로운 구상회화를 '신표현주의'라고 한다. 미술사는 쓰는 이의 관점에 따라서 그 흐름이 달라 질 수도 있지만, 저자가 목표로 했던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개관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잘 인쇄된 그림과 사진들이 책 읽기에 재미와 탄력을 주고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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