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에서는 켄트 하루프의 작품을 헤밍웨이의 초기작 문체에 견주고 여러 문호를 들먹이며 성찬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낯선 작가다. 독서모임이 아니었으면 읽어보지 않았을 책이다. 이 책은 평생 철물점을 운영한 대드 루이스가 죽음을 앞둔 한달 남짓의 이야기를 담았다. 현재뿐 아니라 과거의 상념과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냈다. ‘축복’은 무슨 사건이 벌어지는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면 그냥 그렇게 살았노라식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조금 싱거운 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제는 140p쪽 대드와 라일의 대화가 아닐까 싶다.

- 밀을 수확할 참이나 (비가)달갑지 않을 테지. 옥수수밭을 가진 집들은 개의치 않을 테고.

- 축복이 고르지 않게 내리는 것 같군요.

- 알고 보면 많은 일들이 고르지 않은 축복이지요.

대드는 안정적인 삶을 산 것처럼 보이지만 그에게는 프랭크란 아픈 손가락과 직원을 해고한 후 겪었던 어려움이 있었다. 이웃들 역시 마찬가지다. 노년과 중년으로 접어드는 이웃들은 축복처럼 비가 내리는 순간을 맞이하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았다.

 

183p

- 아까 상점에서 내가 울었던 것 말이오. 나로 하여금 울음을 터뜨리게 한 그 일 말이오. 거기서 내가 보고 있던 것은 바로 내 인생이었소. 어느 여름날 아침 앞쪽 카운터에서, 나와 다른 누군가 사이에 오간 사소한 거래 말이오. 몇 마디 말을 주고받는 것. 그냥 그뿐이었소. 그런데 그게 전혀 쓸모없는 일이 아니었던 거요.

죽음이 다가왔을 때야 비로소 이렇게 살아있는 지금 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그 하루가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 시간이 어떤 의미인지 느낀다.

 

88p 에일린과 엄마의 대화

- ... 이제 내게서는 섹스에 관한 어떤 암시도, 심지어 그럴 가능성조차 보이지 않는다고요

- 섹스라고?

- 네. 이제 나는 더 이상 누구에게도 매력을 발산할 수 없어요.

-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냐?

- 삶의 질을 말하는 거예요. 내 삶을 살면서 살아 숨쉬고 관심의 대상이 되고 생기가 넘치고 활기차고 치열할 수 있는 조건 말이에요. 아 이런 건 싫어요. 나는 죽어가고 있어요. 아직 제대로 살아본 것도 아니면서. 정말 우스운 일이죠. 너무 부조리하고 모든 것이 너무나도 무의미해요.

라고 하자 엄마가 좋아질거라며

- 얼마 후에는 잊게 돼. 그리고 통증과 고통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할 거다. 고관절대치술도 생각하게 될 테고. 시력도 떨어지지.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게 돼. 행동반경도 전보다 좁아지고. 그러다 다음달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그만두게 된단다. 목숨을 끌어가며 살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거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반신반의하며 일을 시작해서 예전같은 설렘이 안 느껴진다고 의기소침해있었다. 그런데 몸 상태가 너무 안 좋고 오래 앉아있으면 허리와 고관절에 통증이 느껴져 맘 상태를 들여다볼 수 없을 정도로 그야말로 고통과 통증에 주의를 기울이게 됐다. 그러고보니 30대에 붙들렸던 ‘이 일이 아니면 나는 무엇을 하나’에서 벗어나 ‘이것만이 지금 내가 해야할 일인가’로 질문이 바뀌었다. 그래서 조금 여유를 갖으려고 하는데 할 일은 계속 미뤄지고 쫓기듯 사는 느낌이 든다. 인정욕구에 불타오를 때도 힘들었지만 지금 상태도 말이 아니다.

 

 꼭 어릴 때 억지로 쓴 독후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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