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이 방학이다.

 이 말에서 암울한 기운이 느껴진다면 당신은 풀타임 육아 담당자다. 선생님들도 쉬어야하니까 방학하는건 당연하며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가도 된다. 방학이어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도 되는데 나는 눈치가 보여서 못보냈다.  잠깐 알바를 했지만 아주 잠깐이고 맞벌이가 아닌 이상 내가 집에 있는게 뻔한데 방학까지 아기를 맡기기가 좀 그랬다. 집안일도 엄연히 재생산 노동이고 블라블라하지만 현실에서 집안일은 경제적 가치가 없는걸로 취급된다. 취업 준비중이거나 공부를 한다거나 다른 활동하는건 부차적이다. 돈 버는 일이 아닌 이상 맞춤형 보육을 해야하고 맞춤형 보육인데도 부득불 방학때까지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면 누군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맘이 불편하다.

 

 그래서 아기랑 단둘이 하루종일 같이 있다.

 

 어린이집에 가기 전에도 그랬잖아. 문제될거 없다고. 나는 프로 엄마? (어?)라고. 오전은 어떻게 잘 지나갔다. 새벽부터 일어나는 아기 덕분에 뭐하고 뭐하고 할 수 있는 건 다 했는데 고작 10시 뿐이라 시계가 고장난줄 알았지만. 더위도 복병이었다. 둘 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목욕을 했다, 선풍기 앞에서 놀았다, 얼린 물수건으로 땀을 식혔다 했지만 몸이 스스로 달아오르는걸 막지는 못했다. 여차여차해서 어거지로 낮잠을 재우고 한숨 돌렸는데 방금 피난 채비를 마친 집처럼 집이 어수선하다. 하지만 나는 저질체력 아치니까 간단히 모르쇠하고 잠깐 눈을 붙였다.

 

 오랜만에 오랜 시간을 같이 있다보니 내가 이전에 아이랑 하루종일 있었던 생각은 못하고 아기랑 거리를 두고 싶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하루종일 있으면 할 말이랑 할거리가 없 듯 아기랑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고 잡기 놀이를 하고 춤을 춰도 여전히 많은 시간이 남았다. 조금만 떨어져 생각한다면 아기가 느끼는 것을 같이 바라보고 공감하고 새로운 발견에 박수를 쳐주며 환영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제 막 혼자 있는게 좋아졌는데 맘이 선뜻 그렇게 되지 않았다. 게다가 아기와 같이 있으며 해야하는 일상적인 뒤치닥거리가 너무 귀찮았다.

 

 나 또 이 책 들고 나왔는데 '부모로 산다는 것'에 보면

 

 아기가 사랑스러운 순간은 대부분 그저 바라볼 때, 아기는 수동형으로 존재하고 그 존재 자체에 감탄하는 '나'로 내가 존재할 때라는 얘기가 나온다. 잘 시간이니까 재우고 이를 닦이고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할 것, 밥 먹은 자리를 훔치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일 등을 처리하느라 정작 아기 눈을 보며 기운차게 웃지 못했다.

 

 낮잠 시간이 늦어져 자는 시간도 늦춰진 아기를 재웠다. 다른 때 같으면 아기를 재우고 내 볼일을 보려고 조급해졌을텐데 맘이 느긋해져 그냥 아기를 바라봤다. 아직 잠이 안 오는지 책을 본다, 물을 먹는다, 땀띠가 난데에 약을 발아야한다던 아기가 조용해졌다. 토끼 베개를 가져다 베고선 나를 바라본다. 나도 같이 누워서 아기를 바라봤다. 초롱초롱한 눈이 나를 한번 봤다 감았다, 다시 나를 보고선 감는다. 초점이 없어진다. 눈에 힘이 풀리고 스르르 눈이 감긴다.

 

그리고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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