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갖은 후 전에 없던 기호와 갈망이 생겼다. 


 넘어지거나 골반을 압박한다고 자전거를 탈 수 없다. 무거운걸 들거나 뛸 수 없으니 행동에 제약이 온다. 탄산이나 커피믹스가 자꾸 땡기고 시원한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고 싶다. 정말 숨도 안 쉬고 들이마시고 싶다. 엎드려서 뭘 하면 허리가 아파서 좋아하는 자세가 아닌데도 그냥 허리 아플 때까지 엎드려서 책을 보고 무엇이든 끄적거리고 싶다. 두 발을 지면 위로 띄우는(점프 점프) 춤을 추고 싶고 날씬해보이는 옷을 입고 싶다. 찐득거리는 섹스를 오랫동안 하고 싶고 평소에는 귀찮아서 엄두도 내지 않은 과감한 체위를 시도해보고 싶다.


 배가 불러오고 아이와 엄마에게 안 좋다는 게 많으니까 결핍감은 한없이 커진다. 대개의 경우 적정한 선에서 타협을 한다. 동냥하듯 맥주 한모금을 마신다거나 며칠에 한번씩 먹는다는 의식을 안 하려 노력하면서 커피 한잔쯤은 가볍게 먹는다. 자전거 타는 것보다 걸어다니면서 저녁 무렵 노을을 더 자세히 볼 수 있다며 자기 합리화를 하기도 한다. 섹스는 상대의 입장도 이해해야하고 어쩐다고 하지만 그렇게 큰 갈망이 생기지 않아 욕망과 별개로 전혀 시도하지 않는 영역으로 남았있다.


 자질구레하고 적절하게 실현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건 그나마 나은 편이다. 가장 큰 곤란함은 내 정체성이 아이 엄마로 고정되고 그에 걸맞는 역할을 해야하며 그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의욕이 많이 꺾인 것을 들 수 있다. 호르몬 영향인지 일을 마무리해야하는 시점이라 그런건지 모든 사안에 흥미를 잃었다. 끈기는 부족해도 새로운 일과 사람에 눈을 반짝이던 나는 온데간데 없고 심드렁한 나만 덩그러니 남아버렸다.


 왠만한건 귀찮고 귀찮지 않더라도 흥미를 잃어버려서 대개 처음부터 포기를 해버린다. 하려고 했던 작업도 줄이고 줄여서 최소한의 명분만 살리는 식으로 하다보니 초심은 커녕 중간쯤의 마음도 유지하기 어렵다. 억울하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내 몸과 맘이 이렇게 변할거라고 생각도 못했는데 변해버려서 아차 싶은 마음. 몸이 무겁다거나 호르몬 영향이란 핑계가 단골메뉴가 된지는 오래됐다. 점점 불러오는 배가 신기하고 무섭다.


 신트림이 계속 넘어오고 앉아있기가 불편해 닭들을 보러 갔다. 퇴근 전에 문 닫는걸 잊어버릴까 닭장에 넣으려고 했는데 완강히 저항한다. 철망 뒤로 넘어가더니 아무리 나오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수탉은 닭장 근처에서 꼬꼬거리며 암탉들에게 위험 신호를 준다. 작은 병아리들은 짹짹거리며 엄마 뒤를 쫓아다닌다. 암탉들은 저물기 전에는 절대 집으로 들어가지 않겠다는 식이다. 안 들어가면 뭐할건데. 파헤칠 흙도 이제 없잖아.


 술을 진탕 먹고 취해서 원숭이처럼 까불고 싶다고 했다. 몸 상태와 상관없이 맘대로 잠을 자고 무리해서 일하고 싶기도 하다. 술을 안 먹어서 술자리에서 살짝 소외감을 느끼고 금세 피곤하거나 잠이 잘 와서 사람들과 오랫동안 어울릴 수 없는 건 있다. 하지만 그 덕에 환절기에도 아직 감기 걸리지 않고 잘 지내고 있다. 말수가 살짝 줄어든 덕분에 남들이 대화하는 사이의 행간을 읽는 재미도 있다.


 저물기 전에는 집에 들어가기 싫은 닭들처럼, 날이 어둑해야 횃대에 오르는 닭처럼 나도 살짝 철망 너머로 갔다 오고 싶은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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