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 나뭇꾼 옮김 / 내일을여는책 / 199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리뷰하기 전에. 전 옛날 책을 가지고 있어서 일단 리뷰는 위의 책으로 합니다만...검색해 보니 2008년에 새로운 책이 나왔네요. 표지도 귀엽고 상큼합니다~


나는선생님이좋아요-3판

하이타니겐지로 | 햇살과나무꾼 옮김

양철북 2008.03.14

 

 

 

 

내가 어렸을 적, 엄마는 새로 전학간 초등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으면 전집을 사주기로 약속했다. 이미 집에는 엄마 취향이 적극 반영된 셜록 홈즈 전집과 뤼팽 전집이 있었지만, 어릴 적부터 책 욕심이 많은 난 다다익선의 정신에 입각해 모처럼만에 공부에 집중했다.

 

그렇게 얻은 전집이, 지금은 구할 수도 없는 ( 중고시장 어딘가는 있겠지만 가격도 비싸고...) 에이브 전집이었다. 전 88권이지만 엄마 역시 중고시장에서 사온거라 중간중간 책이 빠져있었다. 그때는 당연히 몰랐지만 지금 새삼 검색해 보니 에이브 전집은 소위 해적판이라 부르는 책으로 작가의 허락없이 번역한 책들이었다. 그래도 훌륭한 책들이라는 것만은 변함없어서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어도 질리지 않았다.

 

그 80여권의 책들 중에서 내가 특히 좋아하던 책이 있었다. <어른학교 아이학교>, <부엌의 마리아님>, <일곱 개구장이>. 아무리 읽고 또 읽어도 질리지 않고 심지어는 찡-한 감정이 밀려드는 책들이었다. 정식 번역판이 있을까 찾아보았지만 변변찮은 검색 실력 탓에 찾지를 못하다 요 근래 겨우 <어른학교 아이학교>가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라고 (심지어는 예전에!) 번역되어 나왔다는 걸 알았다. 이미 <어른학교 아이학교>가 집에 있긴 하지만 번역본은 과연 어떨까 궁금해서 도서관에 달려가 빌려와봤다.

 

책 제목이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라고 바뀌어서 잠시 헷갈렸지만 원제는 또 토끼의 눈이라고 하니 우리나라 번역제목이 더 마음에 든다. 왜 원제가 토끼의 눈,일까 했지만 본문 중 동자 조각상의 아름다운 눈을 '토끼의 눈'이라고 말하며 '그것은 기도하는 듯, 생각에 잠긴 듯 그윽한 빛을 띠고 다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라고 하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어릴적에 읽었던 <어른학교 아이학교>가 제일 맘에 든다.

 

도서관 책을 보다보면 가끔 누군가 낙서해 놓은 페이지가 있거나 아주 가끔 없는 페이지가 있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 낙서는 흥미롭게 읽고 넘어가고 없는 페이지에는 속상해 하지만, 이 책은 곳곳에 어린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한 글귀에 밑줄이 그어져 있어서 누군지 모를 사람에게 한없이 공감하며 책을 읽었다.

 

이 이야기는 학교 옆 쓰레기장에서 사는 아이들과 젊은 여선생의 이야기다. 흔히들 더럽고 제멋대로라고 학교에서 싫어하는 아이들을 젊고 경험없는, 그야말로 곱게 자란 여선생이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성장해 나아가는지를 -그렇다, 단순히 아이들만의 성장기가 아니라 어른들의 성장기다 - 섬세하고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다.

 

아이들은 순수하고 귀엽고 착하지만 그만큼 잔인하다. 계산이 없는 대신 너무 솔직하고 어른들의 나쁜 점을 가감없이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데쯔조와 친구들은 쓰레기장에서 살고있는만큼 다른 아이들보다 더럽고, 부모님들도 바빠서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아 일상 생활도 아슬아슬하다보니 '다름'에 민감한 아이들에게 소위 말하는 왕따를 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아이들은 결국 아이들일 뿐이다. 단순히 환경의 문제일 뿐, 아이들 자체는 착한 것이다. 겉만 보고 무서워하던 여선생님이 점차 아이들과 가까워지고 공감하면서 자신의 환경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렇게 어른도 아이도 함께 성장해간다.

 

이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데쯔조와 심지어는 애완곤충(?)인 파리까지 귀여워지니 책이란 신기한 매체다. 나온지 꽤 되는 책에 나름 유명한 책이지만 꼭 더 많은 분들이 읽고 나처럼 데쯔조를 귀여워 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한다.

 

 

-데쓰조한테 보물이 잔뜩 쌓여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그 보물이란 무엇일까? 데쓰조는 글씨도 쓸 줄 모르고, 말도 하지 않는데, 도대체 어디에 보물인지 뭔지가 숨겨져 있는 걸까. (15)

 

-바다로 돌려보내니까 거북은 목을 꼿꼿이 세우고 네 발을 휘적거리며 헤엄쳐 갔다. 이 넓은 바다에서 왠지 그것은 우스꽝스러운 동작이었다. 하지만 우스꽝스럽기에 그 거북의 진지함이 더욱 가슴을 쳤다. (24)

 

-파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부모한테 버려진 채 평생 친구도 가족도 집도 없이 혼자 산다. 항상 벌, 거미, 참새 등의 위협을 받지만 남을 위협하는 일은 없고 먹이라고는 사회의 폐기물에 지나지 않는다. 파리의 생태는 전혀 아름답지 않지만 잔인하지도 않고, 극히 조촐한, 말하자면 서민의 생활과 같다. (70)

 

-난 미나코가 공책을 찢어도 화 안 내구요. 책을 찢어도 화 안 내요. 필통이랑 지우개를 빼앗아도 화 안 내고 기차놀이를 하고 놀았어요. 화 안 내니까 미나코가 좋아졌어요. 미나코가 좋아지니까 귀찮게 해도 귀엽기만 해요. (126)

 

-그게 눈앞의 욕심이 아니고 뭡니까. 우린 교육이 뭔지는 모르지만 자기 아이만 좋으면 된다는 그런 생각에는 찬성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이건 그럴싸한 소리죠. 하지만 이런 듣기 좋은 소리나 지껄이고 있다가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감히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런 세상이니까 학교에서는 더욱 서로 돕는 마음을 가르쳐야 한다고 봅니다. 서로 돕는 마음은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처럼 들립니다만, 우리 장사치들은 그런 것으로 신용을 얻기도 하죠. 그럴 때마다 사는 보람 같은 것을 느끼기도 합니다. (128)

 

-효과가 있으면 하고 효과가 없으면 안 한다는 생각을 합리주의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이것을 인간의 생활 방식에 적용시키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 아이들은 이곳에서의 하루하루가 인생인 겁니다. 그 인생을 이 아이들 나름대로 기쁨을 가지고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겁니다. 우리의 목표도 여기에 있습니다. (148)

 

-하지만 지금 고생하면 나중에는 꼭 잘했구나 생각하게 돼요. 고생이란 좋은 거죠. 좀더 고생해서 사토루의 머리를 좋게 만드세요. 글을 쓴다는 것은 힘든 일이죠. 선생님도 하룻밤 글을 쓰고나면 이가 와들와들 떨립니다. 밥을 먹으면 이가 아프죠. 사투루는 글을 다 쓰고 나면 이가 아파요? 안 그렇죠? 아직도 더 노력할 수 있다고 선생님은 생각해요. (213)

 

-약한 자, 힘이 없는 자를 소외시키면 소외시킨 자가 인간적으로 못쓰게 됩니다.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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銀耀夜 2009-10-02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고1 막 입학사고 4월 되던 때, 우여곡절 끝에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음, 파리 이야기가 정말 뇌리에 쏙 박혀있네요.
그래서 더럽게 뭐람, 싶었는데 읽다보니 감동적이고 그래서 여러 친구에게 권했지만, 제일 인기 없는 책이 되었답니다. 허허허.
영화 감상 보러 왔는데, 흠흠흠, 리뷰 잘 감사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