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시끌벅적했던 언론의 고은 타령이 없어졌기 때문인지, 올해는 물리학상과 화학상 등 과학 분야의 수상자가 발표되는 걸 지켜보면서도 정작 문학상에 대해서는 깜박하고 있었다. 작년에 미발표로 넘어갔기 때문에 올해는 두 명이 수상자로 발표된 모양인데, 비록 내부 사정이라고는 하지만 반성의 차원에서라도 한 해는 그냥 공란으로 남겨놓고 넘어가는 것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두 명의 수상자 가운데서 페터 한트케는 비록 아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약간은 의아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의 이름에는 항상 실험이니 파격이니 하는 단어가 따라붙었던 것으로 기억하기 때문에, 그가 어느 새 나이 들어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하게 되었다는 사실과는 뭔가 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도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한때의 실험성이 지금은 상투성으로 굳어지고 말았다는 증거인 것은 아닐까.


한트케의 작품 중에서 맨 처음 접한 것은 역시나 <관객 모독>이다. 삼성출판사의 세로쓰기 세계문학전집 가운데 <세계희곡선 3: 현대편>에 수록된 것으로 읽었는데, 지금 다시 확인해 보니 나중에 예니에서 단행본으로 재간행된 것과 같은 번역인 듯하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작품은 비교적 최근에야 중고로 입수한 <카스파>인데, 제목 그대로 수수께끼의 소년 카스파 하우저를 소재로 한 실험극이었다.


내가 가진 한트케 관련 자료 가운데 각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이인웅 선생의 <현대 독일문학 비평>에 수록된 대담이다. 작가의 집 근처 호텔로 찾아가서 잠깐 만나서 나눈 대화이므로 아주 깊은 내용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저자의 평소 말투며 태도를 슬쩍 엿볼 수 있다는 점은 특히 흥미로웠다. 자기 작품 <관객 모독>이 한국에서 인기라고 말하자, 그 먼 나라에서 왜 내 작품을 공연하느냐고 꼬집는 식이다.


특히 맨 마지막에 이인웅 선생이 '다음에는 좀 더 길게 만나서, 술이라도 한 잔 합시다'라고 아쉬움을 표하자, 한트케는 대뜸 "싫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하고 받아치기까지 한다. 물론 곧이어 "한트케는 큰 소리로 웃으면서 악수를 하였고, 신간 작품 두 권을 내 손에 쥐여주고는 '금사슴' 호텔 바 문을 나갔다"는 설명으로 대담 기사가 마무리되는 것을 보면 십중팔구 그 나름대로의 농담이었겠지만 말이다.


이인웅과 한트케의 대담은 1981년 1월 22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것으로 나와 있다. 거의 40년 가까운 예전의 이야기이니, 오늘 그가 노벨문학상으로 재차 얻은 세계적인 명성을 생각해 보면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인웅 선생의 책에 나온 당대의 독일어권 작가들, 예를 들어 뵐과 그라스와 프리쉬와 뒤렌마트와 렌츠 모두 이제 고인이라는 사실을 상기해 보니, 새삼스레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