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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커리의 <허영의 시장>이 웅진에서 새로운 번역본으로 간행된 모양이다. 을유문화사 판본이 1963년에 나왔으니 무려 55년 만에 새로운 번역본이 나왔다고 해야 할 것도 같다. 물론 2012년에 동서문화사에서 간행된 또 다른 번역본이 있기는 하지만, 그 출판사의 과거 행적으로 미루어 보면 과연 제대로 된 번역인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 자연스러우므로, 동서문화사 판본은 그냥 없는 셈 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물론 록웰 켄트 삽화본 <모비 딕>의 경우처럼, 가끔 한 번씩은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기 아쉬운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말이다).


웅진 판본의 소개에 따르면 (1847-48년에 분권 간행된 초판본 이후 저자가 일부 내용을 수정한) 1853년의 보급판을 대본으로 사용했다고 나오는데, 을유 판본은 (그 당시로선 비교적 최신 간행본인) 1955년 미국 간행본을 대본으로 사용했다고 나오니, 단순히 연도만 놓고 보자면 웅진보다 을유 쪽이 좀 더 최신의(?) 판본인 셈이어서 흥미롭다. 구글링해 보니 1853년의 보급판에서도 수정되지 않았던 인명 표기상의 오류가 저자 사후인 1889년의 판본에서야 비로소 수정되었다고 하는데, 새로운 번역본에서는 그걸 어떻게 표기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을유문화사 판본의 경우에는 과거 영미문학연구회의 고전 번역서 검토의 대상이 되어서 비교적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은 적이 있었다. 물론 오역이나 누락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는데, 새로운 번역본은 과연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다. 다만 제1장 도입부에서 등장인물 가운데 하나가 "부케"(bouquet)를 "부키"(booky)로 잘못 발음하는 대목이 을유 판본에서는 역주로 설명된 반면 (결국 그 인물의 교양이 높지 않음을 암시한다), 웅진 판본에서는 둘 다 "부케"로 표기되고 그냥 넘어간다는 점이 눈에 띄던데, 이후의 내용에서도 유사한 경우가 있을지 모르겠다.


막상 내용을 설명하려고 보니, 무려 사반세기 전에 읽었던 책이어서 솔직히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 다만 지금까지도 지닌 몇 가지 인상 가운데 하나는 여주인공이 상당히 약삭빠르기 때문에 피카레스크 소설 같은 느낌이 들었다는 것, 그리고 여주인공의 친구 오빠인가 하는 남주인공이 꽤나 우유부단하고 답답한 인물이었다는 것 정도인데, 이번 기회에 양쪽 번역본을 꺼내 놓고 제1장을 뒤적이다 보니, 이전에는 미처 만끽하지 못했던 신랄한 묘사와 대사가 상당히 흥미를 자극하기도 한다. 반세기 만에 나온 책을 사반세기 만에 다시 읽어보면 또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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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온다, 안 나온다, 또는 실재한다, 실재하지 않는다를 놓고 무척 말이 많았던 라캉의 <에크리> 번역본이 결국 나오긴 나왔는데, 어쩐지 <중력의 무지개> 때부터 역시나 말이 많았던 터무니없는 고가 책정 정책 때문에 또다시 말이 많은 모양이다. 인용문이나 중역본이나 해설서로만 접하던 유명한 책이다 보니 이번 기회에 한 번 제대로 읽어 보자는 생각도 없지는 않지만, 일단 가격도 가격이려니와 <중력의 무지개> 때와 마찬가지로 애초에 번역 자체가 쉽지 않은 작품이다 보니, 과연 제대로 번역되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서 선뜻 지갑을 열 엄두가 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당장 알라딘 미리보기를 뒤적뒤적 하다가, 본문까지 들어갈 것도 없이 서문만 살펴보아도, 포의 "도둑맞은 편지"와 포프의 "머리타래 약탈"을 나란히 놓고 뭔가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턱 하고 막혀 버리니, 이건 좀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 포의 이 작품도 알고, 포프의 저 작품도 아는데, 정작 라캉의 설명은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으니, 이건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다. 영역본을 구글링해서 대조해 보니, 이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말끔하거나 명료한 것까지는 아니다. 서문부터 이런 식이라면 과연 본문은 읽을 수나 있을지...


그렇게 보자면 결국 라캉의 <에크리>는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우리말 번역본으로 읽으나, 영어 번역본으로 읽으나, 프랑스어 원본으로 읽으나, 아니면 (보르헤스의 유명한 도서관에 있던 책처럼) 고대 아랍어의 어형 변화를 지닌 과라니어의 사모예드 리투아니아식 방언 번역본으로 읽으나 간에,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매한가지가 아닐까 하는 추측도 가능해 보인다.(어쩐지 이 대목에서 문득 미국 역사상 가장 무능하고도 과묵한 대통령으로 꼽히는 캘빈 쿨리지를 가리켜 "무려 5개국어로 침묵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꼬집은 도로시 파커의 유명한 농담이 떠오른다).


프랑스어 원문을 못 보았으니 속단은 금물이겠지만, 영역본과 살짝 대조해 보고 느낀 개인적인 감상은, 이런저런 부연 구절을 적절히 끊어주거나 괄호로 묶어 정리하지 않고 너무 고지식하게 우리말로 옮기다 보니 더 요상해진 것도 같다. 여하간 라캉의 "에크리"를 읽어 보려는 사람이라면 새물결의 우리말 번역본 대신 그냥 영역본 페이퍼백을 (또는 그보다 더 저렴한 판본이 있다면 그쪽을) 구입하는 것이 가장 저렴하게 "읽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일단 가격도 무려 4분의 1로 저렴하고, 표지 디자인도 (적어도 내 눈에는) 더 멋지고, 더 얇으며, 어차피 뭘로 봐도 모르겠으니 말이다.


라캉에 대한 관심이 최근에 환기된 까닭은, 작년 가을엔가 뜬금없이 바깥양반이 관련서를 읽을 일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손대지 않았던 책들을 찾아서 먼지 터는 김에 나도 한두 권 붙잡고 뒤적이다 보니, 라캉의 초창기 이력 가운데 "살인자 하녀들"로 유명한 파팽 자매에 관한 저술도 있다는 대목이 흥미로웠다. 이 악명 높은 사건의 전개와 여파와 2차 창작에 관해서는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장 주네의 희곡 <하녀들>이다) <잔혹과 매혹>이라는 책도 나왔었는데, 마침 그 즈음에 각별히 관심을 두었던 "하녀의 심리"에 관한 흥미로운 참고 자료라고 생각되었다.


역시나 뜬금없이 하녀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 까닭은, 언젠가 알라딘 중고매장에서 <에데시 언너>라는 특이한 제목의 헝가리 소설을 구입했기 때문이었다. 제목과 같은 이름을 가진 순진한 하녀가 속물적인 주인 부부에게 충성스럽게 봉사하다가 어느 날 밤에 살인귀로 돌변하여 두 사람 모두를 난도질해 죽인다는 이야기인데, 의외로 담담한 문장이 이상하게도 매력적이었다. 상당히 충격적인 전개이지만 이상하게도 주인공인 하녀의 심리에 대해서는 묘사가 부족하기에 뭔가 좀 답답하고 미진하던 참에, 엉뚱하게도 프랑스 하녀가 주인공인 또 다른 책에서 실마리를 얻었다.


여기서 말하는 또 다른 책이란 몇 년 전에 영화로도 제작되어 호평을 받았던 <어느 하녀의 일기>인데, 순진무구한 처녀의 기구한 인생담이 아닐까 싶었던 첫인상과는 달리 피카레스크 소설에 해당하는 작품이어서 상당히 놀라웠던 한편, 지금까지 거쳐 간 여러 주인들의 속물 근성을 낱낱이 꼬집는 주인공의 속내가 상당히 흥미롭게 생각되었다. 여하간 프랑스인 하녀의 설명에 따르면, 가끔은 하녀의 마음에도 이상한 광기 같은 것이 치밀어 올라서 주인에게 대들고 욕하게 만든다고 했으니, 어쩌면 저 헝가리인 하녀의 순간적인 광기 폭발도 그렇게 볼 수 있지 않나 싶었던 것이다.


파팽 자매의 사례가 수많은 사람을 경악시키고 또한 매혹시킨 까닭도 그 불가해성 때문은 아니었을까. 평소에 특별한 문제가 없었던 자매 하녀가 어느 날 갑자기 주인 마님과 아가씨를 난도질해 죽이고 자기네 방에 들어가 태연하게 잠을 청했다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기묘한 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장 주네의 <하녀들>은 <에데시 언너>나 <어느 하녀의 일기>만큼 쉽고 명료한 작품은 아니어서 그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에 딱히 도움을 얻지는 못했기에, 라캉의 분석은 과연 어떨까 궁금하기도 하다. 물론 그것도 <에크리> 서문마냥 봐도 모르겠는 글일 수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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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코프의 "창백한 불꽃"이 재간행되었다. 삼성출판사의 이태동 번역본이 70년대에 나왔던 것으로 알고 있었으니 거의 40년 만에 나오는 셈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물론 1970년대의 세로쓰기 판본에 이어서 1980년대의 가로쓰기 판본이 있었으니, 아예 판이 끊겨 있었던 것은 30년 정도라고 줄여서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이게 나온다면 과연 어떻게 나오려나 하고 궁금하던 참이었는데, 문학동네의 나보코프 기간 번역서를 생각해 보면 가능할 법한 두 가지 방향 중에서 오히려 아쉬운 쪽으로 결정된 셈이 되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롤리타"와 "절망"은 세계문학전집으로 나왔지만 "오리지널 오브 로라"와 "어둠 속의 웃음소리"가 별도의 단행본으로 나와서 "창백한 불꽃"도 그럴 줄 알았는데, 결과는 후자가 아니라 전자였기 때문이다. 세계문학전집이 아니라 별도의 단행본으로 간행되기를 바란 까닭은 "창백한 불꽃"이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에서도 상당히 독특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책 속의 책" 개념으로 나보코프의 소설인 동시에 "창백한 불꽃"이라는 시의 주석본이라는 형식을 취하므로, 총서보다는 단행본으로 나와야 어울린다.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영어 초판본처럼 나보코프의 소설이라고 나와 있는 표지를 넘기자마자 "창백한 불꽃"의 내용이 시작되어 서문과 시와 주석이 나오고 인명해설로 끝나는 것일 터이고, 아마도 저자가 애초에 의도한 바도 이것이었을 터이다. 하지만 번역서인 한에는 부득이 역주와 해설이 달라붙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고, 거기 덧붙여 책 표지며 본문에 저자의 이력과 추천사와 기타 부록이 달라붙을 수밖에 없는 운명일 것이다. 이쯤 되면 번역서인 한에는 총서냐 단행본이냐 여부는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한 것도 같다.


개인적으로는 과거 이태동 번역본이야말로 그 작품의 형식과 관련해서는 저자의 의도를 두 번이나 물먹인 셈이라고 생각해서 (왜냐하면 그것 역시 삼성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이라는 "총서" 가운데 한 권이었고, 또한 내가 가진 판본은 무려 업다이크의 토끼와 "합본"된 궁상맞은 형태였기 때문이다) 아쉬운 마음에 훗날 제법 멋드러지게 천 장정한 "창백한 불꽃" 영어판을 헌책방에서 구입해 두었는데, 지금 와서 다시 꺼내 보니 나머지 부분은 그럭저럭 괜찮은데, 맨 앞에 리처드 로티의 상당히 긴 해설이 붙어 있는 것이 영 눈에 거슬린다.


이쯤 되면 영어본이건 번역본이건 간에 저자가 원래 의도한 메타픽션의 장치 가운데 결정적인 것 하나는 이제 영영 준수될 수가 없게 된 것은 아닌가 싶어 아이러니한 기분마저 든다. 로티의 해설에 따르면 이 소설은 출간 당시에만 해도 평단의 반응이 시큰둥했었다. 하지만 그 당시 평론가들의 대체적인 입장이었던 "특이한 것은 오래 가지 못한다"는 속설을 보기 좋게 반박하며 지금까지 버티기는 했지만, 이제 고전의 반열에 오르고 나니 온갖 해설과 추천사 세례로 저 "특이한 것"의 위력도 줄어든 셈이 되고 말았으니 아이러니할 수밖에...


그러니 위에 말한 속설도 아주 틀리진 않은 것 같다. 이 소설처럼 형식의 특이성이나 줄거리의 반전 같은 장치를 사용한 작품은 처음 읽었을 때에야 신선하지만, 이후로는 아무래도 감동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여하간 이미 나왔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수십 년만에 새로 나온 번역본이라면 그 특징을 살려서 (예를 들어 본문과 역주/해설을 별권으로) 간행해도 재미있지 않았겠느냐는 속 편한 훈수를 드느라 쓸데없이 말이 길어졌다. 차라리 내가 원하는 그 형식은 훗날 알라딘에서 스페셜 리커버판으로 나오길 기다리는 게 빠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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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헌책방에서 싼맛에 주워 온 책 가운데 하나인데, 봄도 되었으니 마루 한구석에 쌓아 놓은 "읽고 버릴 책들" 무더기에서 하나 꺼내 치우려고 하다 보니, 마침 맨 위에 있기에 집어들고 먼지를 닦아낸 다음에 저자의 공개 구혼과 결혼에 얽힌 사연을 설명한 대목부터 읽기 시작해서 야금야금 다 읽어 버렸다. 저자는 1932년생으로 대학 재학 중에 한국전쟁을 겪고 군복무를 끝내자마자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에 다니고, 이후 미국 회사에서 공학자로 일하면서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다가 1998년에 췌장암으로 타계한 인물이다. 책의 부제가 "세상에 단 한 권의 책만 남긴 사람, 전시륜"이니 글쓰기는 본업이 아니라 부업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몇 편을 읽다 보니 글발이며 말발이 보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제목은 행복론이지만, 실제로는 저자가 본인 체험을 위주로 쓴 에세이를 엮은 것이다. 세상에 대한 나름의 식견을 피력하는 대목보다는 좌충우돌 살아온 인생 이야기가 오히려 흥미로우니, 타계 전에 본격 자서전을 써보았다면 오히려 더 흥미로운 자료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없지 않다. 최성각의 서문을 보니, 영어로 쓴 원고를 저자 스스로 영한사전을 뒤적여 가며 번역하고, 그걸 조카와 손자가 컴퓨터에 입력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 원고라는데, 그래서인지 이런저런 오타가 눈에 띄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내가 가진 책은 2000년의 2쇄본인데 특이하게도 2008년과 2015년에 개정판이 새로 나와서 아직 판매 중이니 의외로 생명력이 긴 셈이다. 심지어 오타도 여전히 수정되지 않은 채로...


[*] 저자가 타계한 해인 1998년에 로마를 방문했다가 스트립쇼를 보러 갔는데, 마침 저 유명한 치치올리나가 등장해서 객석의 손님들에게 서비스를 하기에 기쁜 마음으로 엉덩이를 쓰다듬어 주고 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얼마 후에 세상 떠날 노인에게 좋은 추억 만들어 주었으니, 역시 사랑당 대표님... (개인적으로는 그녀의 정치적 동지인 모아나 포지가 더 좋았더라마는... 33세에 타계한 그녀가 아직 살아 있다면 올해 환갑이었겠네... 문득 아침부터 세월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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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괴물백과>라는 책이 나왔다기에 흥미를 느끼고 클릭클릭하다 보니, 원전 출처를 제대로 밝혀 두지 않은 것이 의아했다. 예를 들어 <태평광기>나 <성호사설>의 내용을 참고했다면 원저의 몇 권 몇 편이다, 또는 번역서의 몇 권 몇 쪽이다 정도는 밝혀두는 것이 기본이다. 이 책처럼 원전을 인용하지 않고 패러프레이즈하는 데에서 멈추다 보면, 아무래도 내용 중에 모호하거나 의문이 드는 대목이 있어 원전을 참고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막상 몇 편의 내용에서 모호한 부분을 발견해서 원전과 대조해 보니, 의외로 오독과 왜곡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감서"라는 쥐 괴물의 경우, <성호사설> 제5권 "만물문"에 나오는 "혜서"(번역서 2권 258쪽)의 내용을 보면 사실은 괴물이 아니다. 이익은 "감서"와 "혜서"가 같은 동물인가 하고 의문을 제기한 다음, 여러 문헌을 토대로 "감서"는 조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쥐이지만, "혜서"는 그렇지 않다고 결론짓는다.


"내가 본 바로는 (...) 닭과 오리 따위가 혹 쥐에게 파먹히는 경우가 있었다. 죽기에 이르러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니 이것이 세속에서 이르는 "감서"라는 쥐이다. 그러나 [감서가] 소는 파먹지 않는 것인 (...) [반면, 중국 문헌에 소를 파먹는다고 나온] 이 혜서란 쥐는 다만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것일 뿐 아니라, 중국 사람도 역시 드물게 봐서 괴이한 재변으로 여겼던 것이다"(258-259쪽)고 나온다.(인용문의 [ ]는 나귀님의 부연임).


실제로 반세기 전쯤만 해도 쥐가 가축뿐만 아니라, 잠든 아이까지 습격해서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갉아먹었다는 이야기가 있었음을 생각해 보면, "감서"를 괴물이라고 보기에는 곤란하지 않을까 싶다. 차라리 (이익의 견해에 따르면) 감서와는 다른 종류인데도 종종 같다고 오인된 "혜서"야말로 소를 갉아먹는 괴물이라고 해야 할 터인데, 이놈은 조선에 없고 중국에도 드물다고 하니 <한국괴물백과>에 수록할 만한 자격 요건은 되지 않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오독보다 더 심각한 것은 "가면소수"라는 항목의 내용이다. <한국괴물백과>에 서술한 내용만 봐서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서 그 출처라는 <청파극담>의 번역문과 대조해 보니, 이건 원전을 패러프레이즈한 것이 아니라 숫제 왜곡했다고, 또는 저자의 창작이 가미되었다고 봐야 맞을 것 같다. 우선 <청파극담>에 수록된 해당 내용 전체를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대동야승> 제6권; 번역서 2권 89쪽에서 인용).



어떤 사람이 가면을 좋아하더니, 하루는 그 집에 병이 전염하였는데, 무당이 말하기를 "나무 가면의 빌미다" 하자 즉시 들판에 버렸더니, 수개월이 지나 가족 하나가 밭에서 추수를 하다가, 전에 버렸던 가면이 있었는데, 반절이 이미 썩어서 버섯이 온통 생겨, 따다가 삶아 한 다리를 먼저 먹으니, 갑자기 웃고 일어나 춤을 추는데 마치 미치광이 같았지만, 모두 우연으로 여기고 그렇게 괴이하게 여기지 않았었다. 그런데 다음에 먹은 사람도 모두 웃으며 춤추기를 앞사람과 똑같이 하다가 조금 후에 그치는지라, 물어보니, "처음 먹고 나니 자연 흥이 나서 않으려고 하여도 할 수 없어 그렇게 하였다"고 하였다.



[[ <한국괴물백과>의 "가면소수" 항목은 다음과 같다:



버섯이 핀 모양과 비슷한데, 버섯의 바탕이 되는 부분은 나무로 만든 가면 같다. 처음에는 버섯이 돋아나지 않은 상태인데, 가면을 좋아하는 사람이 집어 가기를 바라는 듯하다. 이것을 가까이 두거나 이것에 몸이 닿으면 병에 걸리고 괴롭다. 가면을 쓴 사람이 병에 걸리면 주변 사람에게 옮는다. 눈치를 채고 이것을 버리면 썩으면서 버섯의 기둥과 갓이 나타난다. 먹을 만해 보이지만 먹은 뒤에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고 즐거워지며 웃음이 나오는 등 정신과 마음을 혼란하게 한다. 하나둘 계속 먹다가 어느 순간 노래하고 춤을 추고 싶어지다가 견딜 수 없어 춤을 추게 된다. 이때 추는 춤이 무척 격렬해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한다. 경기도 광주에서 발견된 이야기가 <청파극담>에 나온다. (23쪽) ]]



<한국괴물백과>의 저자는 가면과 버섯 모두를 "가면소수"라는 한 가지 괴물의 단계별 모습 정도로 (즉 1단계는 가면, 2단계는 버섯으로 사람을 유혹한다고) 해석하는 듯하다. 그런데 원전만 보면 과연 이 가면/버섯을 "괴물"이라고 봐야 하는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오히려 가면을 만든 나무가 맹독성이거나 환각성이어서, 그 가면을 보관한 사람도 병이 나고, 그 가면에서 돋은 버섯을 먹은 사람도 발광했다고 해석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게다가 삽화에서는 버섯의 갓을 마치 가면 모양으로 묘사했는데, 원전에 따르면 내버린 가면이 썩으며 버섯이 자라났을 뿐이었다. 추측컨대 "버섯의 바탕이 되는 부분은 나무로 만든 가면 같다"는 저자의 설명만 가지고 삽화를 그리다 보니, 버섯의 뿌리가 가면에 닿아 있다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버섯의 갓이 가면 모양이라고 삽화가가 착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 버섯이 정말 그런 불길한 모양이었다면 사람이 선뜻 따가기나 했을까?


물론 책 전체를 살펴본 것은 아니지만, 일단 위에 소개한 두 가지 항목의 문제점만 살펴보아도 이 책의 한계, 또는 단점은 뚜렷하지 않을까 싶다. 고전의 내용을 간추려 한 권으로 편찬할 작정이라면, 최대한 성실하게 내용을 소개하고 출처를 밝혀두며, 이 과정에서 오독과 왜곡이 없도록 거듭 주의했어야 마땅했을 것이다. 책 소개 글에서는 장장 11년의 세월을 투입했다고 자랑 삼아 설명했건만, 실제 내용은 빈약하기 짝이 없으니 한심한 일이다.


아울러 잘못된 지식이 만천하에 퍼지는 상황도 걱정스럽다. "가면소수"만 해도 과거 저자가 창작을 가미해서 게시한 블로그 글이 지금은 마치 <청파극담> 원전인 척 여기저기 퍼나르기 되어 있다. 이제 단행본까지 나왔으니, 원전을 오독하고 왜곡한 엉터리 내용이 마치 정확한 정보인 것처럼 사방팔방 소개되며 인용되지 않을까. 기존 동물의 여러 부분을 조합/왜곡한 결과물이 곧 "괴물"이란 정의에 비춰 보면, 이 책이야말로 딱 "괴물 책"인 듯하다.



[*] 표지에 대해서 불만을 가진 독자도 많은 듯한데, 뭐, 내용부터 엉망이니 표지야 뭐가 되어도 상관 없지 않나 싶다. 아울러 이전에 상당히 유사한 표지의 사례도 몇 가지 있었고 말이다.


[**] 1월도 지나갔으니 지워버려야 마땅한 글이겠지만, 나귀님의 지적에 대한 저자의 이상한 변명이 (즉 오독과 왜곡에 대한 해명은 전혀 없고, 엉뚱한 부분을 물고 늘어지는 주장이) 올라와 있기에, 참고 삼아 이 글도 일단 지우지 않고 남겨 둔다. 저런 식의 대응이라면 재반박을 해 보았자 문제의 핵심에서 벗어나 점점 다른 이야기로만 이어질 것 같으니, 차라리 말을 아끼는 게 나을 듯하다. 마침 비슷한 문제를 지적하는 다른 분들의 서평도 계속 올라오는 중이니, 위의 내용이 단순히 나귀님 혼자만의 트집잡기가 아니라는 점은 이로써 명확해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원래의 글에는 없었지만, 이번에 수정하는 김에 정확한 비교를 위해 "가면소수"에 관한 <한국괴물백과>의 서술 인용문을 [[ ]] 괄호 안에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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