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이 나온 모양이다. 그의 에세이는 좋아해서 대부분 갖고 있지만 소설은 장편이건 단편이건 영 구미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나귀님인데, 제목이 특이해 보이기에 혹시나 지난번 단편집인가의 제목을 슬그머니 따라했던 것처럼 헤밍웨이나 뭐 비슷한 작가의 흉내인가 싶어 클릭해 보니, 오랜만에 나온 재즈 에세이라기에 호기심이 동했다.


제목에서 가리키는 인물은 유명한 재즈 음반의 표지 그림을 담당했던 삽화가라는데, 표지를 확대해 보니 만화와 수채화를 섞은 듯한 그림체가 확실히 눈에 익은 느낌이었다. 바로 구글링해 보니 찰리 파커와 레스터 영을 비롯해서 버브 음반 표지 여러 장이 나온다. 음악가 사진이나 기타 도안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디자인이다 보니 기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달까.


그러고 보니 벌써 10여 년도 더 전의 일인데, 씨디 박스세트 붐이 일면서 재즈 분야에서도 블루노트를 시작으로 주요 음반사의 대표작을 20-30장씩 묶은 저렴한 박스세트가 여러 종 출시된 적이 있었다. 국내 제작의 한계로 슬리브 규격도 제멋대로이고 표지 그림의 화질도 떨어져서 영 조악한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주요 명반을 모았다는 점은 매력이었다.


그중 '재즈 트레인'이라는 시리즈명으로 나온 박스 세트중에 버브 음반을 30종 모아 놓은 것이 있었는데, 지금 다시 확인해 보니 찰리 파커와 레스터 영을 비롯해서 데이비드 스톤 마틴이 표지화를 맡은 음반도 여러 장 수록된 모양이다. 여전히 대중적이지는 않은 재즈 분야에서도 특히나 이례적인 음반 표지 디자이너의 이야기라니, 이래저래 특이한 책인 듯하다.


최근 가을이 되니 캐논볼 애덜리의 시꺼먼 앨범이 문득 생각나서 오랜만에 블루노트 박스 세트를 꺼내 완주하고, 지금은 또 다른 박스로 건너간 상태인데, 한동안 먼지 쌓여 있던 음반들을 꺼내 뒤적여 보니, 비록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없지는 않았어도 그때 사놓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지금은 이런저런 이유로 음반 가격도 대폭 오른 다음이니.


역시나 몇 년 전에 유명 재즈 음악가들의 음반을 다섯 장씩 엮어서 염가로 판매하던 세트도 있었는데, 앞서 말한 수십 장씩의 박스세트에는 들어 있지 않은 음반도 있어서 제법 모으는 재미가 있었다. 음반 표지 재현의 측면에서는 거의 처참할 정도의 화질과 지질이었지만, 지금 와서는 다시 구하기도 힘드니 어쨌거나 그때 무리해서 짬짬이 구해 놓기 잘했다 싶다.


음반을 많이 가진 선배 한 사람은 나귀님의 이런 싸구려 취향을 싫어해서, 이번에 무슨 박스가 나왔다고 알려주면 왜 그런 걸 사느냐고 핀잔을 주곤 했다. 때로는 어떤 음반이 괜찮더라고 칭찬하면, '그래, A도 좋지만 B도 역시나 좋은데, 아마 그건 싸구려 박스세트 따위에는 들어 있지 않을 거야' 하고 말을 얹었다가, 그것도 들어 있다고 말해주면 짜증내곤 했다.


나름 고급 수집가의 입장이다 보니 초보 수집가의 행보가 우스울 수밖에 없었으리라. 하긴 음반보다 책을 많이 수집한 나귀님의 입장에서도, 을유문화사 80주년을 맞이해 <큰사전> 전6권부터 최민순 <신곡>과 <지봉유설> 같은 유명 절판본을 재현한 30권짜리 미니북 박스세트가 나왔다 치면, 이미 다 가진 수집가 입장에서야 반갑기보다는 오히려 서운했을 테니까.


비록 저렴한 박스세트의 울타리 안에서 맴도는 나귀님이지만, 그래도 반복 청취하다 보니 의외로 새로운 호기심의 단서를 찾아내곤 한다. 예를 들어 이번에 블루노트 박스세트에 들어 있던 소니 롤린스의 빌리지 뱅가드 실황 음반에서 베이시스트의 즉흥 연주 가운데 한 대목이 인상적이었는데, 나중에 다른 박스세트의 셀로니어스 몽크 음반에도 똑같이 나왔다.


구글링해 보니 롤린스 음반에 참여했던 윌버 웨어(1923-1979)라는 베이시스트가 몽크의 콜트레인 합작 음반에도 참여했었다고 나오니, 아마도 그 사람의 연주가 아니었나 싶다. 이 사람이 참여한 다른 음반은 또 뭐가 있나 구글링했더니, 역시나 지금까지 모은 박스 세트에 들어 있는 몇 가지가 눈에 띄니, 다음번에는 베이스 연주에 유의해서 들어보아야 되겠다.


게다가 요즘은 유튜브라는 희한한 물건이 있어서, 충분한 시간과 호기심만 있다면 이전에 몰랐던 많은 것을 배워가는 각별한 재미가 있다. 이른바 '김나박이' 가운데 하나인 (하지만 '장카설유'까진 아닌) 나얼이라는 가수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직접 엘피를 골라 틀어주는 시리즈가 있는데, 나귀님으로선 영 생소한 곡들이 대부분이라 오히려 재미있었다.


최근에는 한때 유행한 지브리풍 사진 만들기처럼 AI를 활용해서 '비슷한 느낌으로' 만든 사이비 음악도 유튜브에 많이 올라온다. 어쩌면 이런 가짜 음반과 가짜 음악가의 범람 때문에라도, 아예 엘피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과 음반 표지까지 그대로 보여주는 아날로그 콘텐츠가 더 유행하는 것은 아닐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간도 어쩌면 그 연장일 수 있겠다.


그러고 보니 전설적인 삽화가 아서 래컴, 노먼 록웰, 조지프 크리스천 레이엔데커의 도록을 비롯해서 최근에는 상업 미술의 대표적인 작가들에 관한 책도 여럿 번역된 모양인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간은 또한 그쪽의 연장이기도 한 듯하다. 아니면 <레코스케>라는 기묘한 만화와 마찬가지로 살짝 맛이 가 있는 수집광만을 열광시킬 극도의 마니아적인 책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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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뉴스에서 '복기왕'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기에 그건 또 무슨 신조어인가 싶어서 검색해 보니 의외로 사람 이름이었다. 무려 현역 국회의원이고, 심지어 재선 의원이라는데도 불구하고 나귀님으로서는 전혀 몰랐던 셈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바둑이나 뭐 그런 데에서 쓰는 뜻처럼 이미 진행된 뭔가에 대해 '복기'를 잘 하는 사람 정도의 뜻은 아닐까 짐작했다.


그런데 또 어제인가는 뉴스에서 어느 공직자를 거론하며 '이억원' 운운하기에 누군가가 또 그 액수만큼의 뇌물을 받아 먹었나 싶어서 검색해 보니 이번에는 금융위원회 위원장 이름이었다. 한편으로는 우스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저 양반도 지금껏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놀림과 웃음을 겪어야 했을지 생각해 보면 뭔가 측은하고 숙연한 마음마저 들어 미안했다.


이처럼 이름 중에는 유사한 의미나 야릇한 발음 때문에 자연스레 웃음을 유발하는 것들이 없지 않다. '궉'이나 '팽'처럼 희귀한 성씨도 비슷한 상황인데, 정작 본인들은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 모양이니 한편으로 딱하기도 하다. 실제로 법원을 거치는 복잡한 절차에도 불구하고 개명 신청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니, 생각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힘겨운 듯하다.


지난 주에 박명수 유튜브를 보니 최근 사람 이름을 넣어 출시해서 인기라는 칸초를 까보는 내용이 나왔다. 요즘 제일 흔한 이름 수십 종을 선별했다는데, 지난번에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목록을 확인하니 나귀님의 이름은 없고 바깥양반의 이름도 없었으며, 우리 부모나 형제자매나 지인의 이름도 하나도 없는 것을 보고, 비로소 이제는 유행이 바뀌었음을 실감했다.


예전에는 보통 이미 정해진 대로 돌림자를 따서 이름을 지었고, 그러다 보니 같은 성씨라면 이름만 들어도 대충 항렬이 짐작되게 마련이었는데, 지금은 돌림자에서 벗어난 한글 이름도 많이 늘어난 듯하다. 다만 한자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보니, 이제는 한글로 이름을 먼저 짓고 한자를 나중에 갖다 붙이는 식의 주객전도도 늘어나는 모양이라 우스울 수밖에 없다.


한때는 '이슬'이란 여자 이름이 가장 흔한 한글 이름 아니었나 싶다. 외관상 한자 같아도 실제로는 외국 이름(?)인 경우도 있는데, 기독교인 중에 흔한 '예'와 '하'가 그런 경우로, 각각 '예수님'과 '하느님'을 가리킨다. 일본어의 잔재라 해서 지금은 외면되는 여자 이름 '-자'도 사실 한때는 '제니'나 '제시'처럼 세련되다 여겨져서 유행하던 외국식 이름이었다.


외국 이름이라고 해서 아무거나 갖다 붙이는 것도 이상한데, 언젠가 미국 유학 중인 지인이 아들 이름을 '아이작'이라고 지었다기에 어색하지 않나 싶기도 했다. 영어 이름은 대개 성서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중에서도 '아이작'(이삭)은 대표적인 유대계 이름이라고 알고 있었으니까. 물론 <미나리>의 감독도 '아이작'인 것을 보면 비슷한 사례도 많았던 모양이지만.


외국인이 한국식 이름을 짓는답시고 '박김리'나 '오최정'으로 자처하면 우리에게는 어색하게 느껴지듯이, 한국인도 어느 코미디 프로그램 캐릭터처럼 '주니어 3세'로 자처한다면 웃음을 자아낼 수밖에 없을 터이다. 기업의 경우에는 회사명이나 상품명이 뜻하지 않게 웃음이나 반감을 자아내는 바람에 현지 정서를 감안해 변경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알고 있다.


이름의 중요성은 '사람 운명은 이름 따라 간다'는 속설로 잘 요약되고, 그래서인지 한때 '이름 함부로 짓지 말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기도 했는데, 지금은 운명론보다 그냥 우스갯소리로만 언급되는 듯하다. 물론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성기나 욕설 같은 부적절한 단어를 자녀 이름으로 못 쓰게 하는 법령이 있는 것을 보면 최소한의 도리는 지켜야 하겠지만.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이름 중에도 그리 평판이 좋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모비 딕>의 주인공인 '에이해브' 선장이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악한 왕 '아합'의 이름을 뜻하기 때문인데, 정신이 온전하지 못했던 어머니가 붙여주는 바람에 평생 그 이름으로 살아 왔고, 문제의 흰 고래에게 한쪽 다리를 잃는 등의 불운이 평생 따라다닌 것으로 묘사된다.


구약성서에서는 아합의 아내인 '이세벨' 역시 부창부수로 갖가지 악행을 저지르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아이작 아시모프의 <강철 도시>에는 주인공의 아내가 하필이면 그 영어식 이름인 '제저벨'을 부여받은 까닭에 큰 사고를 치게 된다. 원래 나쁜 사람은 아니었지만 이름 때문에 사람들의 오해를 받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나쁜 쪽으로 이끌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우리 식으로 이해하자면 어쩌다 본명이 '장희빈'인 여학생이 본래는 착한 성격이었지만 친구들의 놀림을 견디지 못해 진짜 악녀로 변하게 되는 셈이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숱한 동명이인 '김건희'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물론 동명이인 '차은우'나 '장원영'만큼 이름이 불릴 때마다 남들의 '기대' 때문에 불편해지는 것까진 아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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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양반과 저녁마다 산책하는 길에 종종 달리기하는 사람들을 마주친다. 언제부턴가 그 숫자가 대폭 늘어나는 바람에, 가뜩이나 좁은 산책로에서 이리저리 비켜주기 바빠 살짝 짜증까지 났었는데, 뉴스를 보니 그렇잖아도 달리기하는 사람들이 '러닝 크루'라는 이름으로 공원이며 도로에서 단체 운동을 하는 바람에 차량이며 행인으로부터 불만이 속출한 모양이다.


급기야 일부 공원에서는 3인 이상 달리기 금지, 상의 탈의 금지, 구호 외치기 금지 등 '러닝 크루'의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하며 만류하는 구체적인 규정까지 만들어 내걸었다고 하니 흥미로운 일이다. 기존의 각종 '동호회' 관련 논란처럼, 개성 중시와 참견 거부라는 최신 풍조의 이면에는 뭐든 떼를 지어 몰려다녀야 안심하는 인간의 본성이 남아 있는 것이려나.


달리기와는 애초부터 인연이 없는 나귀님이니 종종 병원에서 운동하라는 지적을 받아도 차마 시도조차 하지 않는데, 모든 운동의 기본이 달리기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현재의 체중이며 체력, 도가니며 선지로는 선뜻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으니, 그냥 저녁 먹고 바깥양반과 여기저기 걸어다니며 장바구니에 맥주만 가득 사서 들고 다니는 것쯤으로 대신할 뿐이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는 운동 삼아 달리는 것을 '러닝' 대신 '조깅'이라고 했었고, 보통 새벽에 일어나서 밥 먹기 전에 동네 한 바퀴 뛰고 돌아오는 것을 가리키곤 했었다. 아울러 이것은 운동 선수라든지 특별히 건강을 챙기는 사람들의 유별난 취미로만 간주되었고, 기본적으로는 우리나라가 아니라 서양에서 유래한 운동 방법이라고 간주되었던 것도 사실인 듯하다.


아리엘 도르프만의 자서전을 보면, 미국에 오래 살다 칠레로 귀국해서 아침마다 '조깅'을 하다가 동네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게 되었던 일화가 나온다. 고국보다는 미국의 생활 방식에 더 익숙한 까닭에 본인은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동네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디서 굴러 들어온 젊은 녀석이 미국인 흉내를 내고 다니는 모습이 영 못마땅해 보인 까닭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이식된 문화의 일종으로 간주된 '조깅'인지 '러닝'도 한때 의외의 열풍을 일으키며 유행한 적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사반세기 전인 2000년에 요슈카 피셔의 <나는 달린다>라는 책이 번역된 것이 시작이었는데, 중년을 맞이해 인생의 변곡점에 선 독일 정치인이 달리기를 통해서 건강과 삶의 목표를 되찾는 내용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해당 출판사 대표도 이 책을 내면서 운동화를 사서 달리기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인터뷰를 했던 적이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후 달리기 열풍이 불면서 과거의 '조깅'과는 결이 다른 '러닝'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이런저런 관련 서적까지 간행되는 듯 제법 유행을 타나 싶더니만, 대부분의 유행이 그렇듯 시간이 흐르며 시들해지고 피셔의 책도 이제 절판이다.


유행의 반복은 어찌 보면 역사의 법칙 같기도 한데, 치마나 바지 길이가 주기적으로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개인 이동 수단의 경우, 처음 나온 세그웨이는 기술의 한계로 반응이 미미했다가 사반세기 뒤에는 킥보드의 형태로 재현되어 크게 유행했는데, 전자와 후자 사이에 배터리 기술이 크게 발달해 충분한 동력을 마련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물론 반복이 항상 좋지는 않다는 점은 '인간의 욕심은 무한하여 실수를 반복한다'는 밈으로 잘 요약되는데, 최근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대책 역시 십수년 전의 유행 아닌 '우행'을 반복한 셈이니 기시감이 든다. 물론 가장 놀라운 점은 재테크 개미들치고 주가나 금값이나 집값 폭등 같은 유행의 반복에서 손쉽게 수익 올리는 경우가 의외로 없더라는 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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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난리가 난 캄보디아 한국인 납치 감금 사건 보도를 접하다 보니, 그 배후의 중국 범죄 조직이 운영하는 범죄 단지와 관련해서 자주 언급되는 지명 중에 '시아누크빌'이라는 것이 있기에 흥미가 동했다. 십중팔구 '시아누크'의 이름을 따서 만든 지명인 듯한데, 그러고 보니 그 이름을 뉴스에서 들은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다 싶어서 또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다.


노르돔 시아누크(1922-2012)는 캄보디아가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시절 어린 나이로 허울뿐인 왕위에 올랐다가, 이후 독립, 전쟁, 축출, 연금, 복귀라는 파란만장한 체험을 했던 인물이다. 허수아비 국왕, 줄타기 외교의 달인, 제3세계 독자 노선의 대표 인물, 우방국을 떠도는 망명객, 속내를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 같은 다양한 평가를 받은 것도 그래서다.


특히 망명 시절에는 각별히 친했던 김일성의 배려로 한동안 북한에서 머물기도 했는데, 그래서인지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중국과 북한을 오락가락하던 '시아누크 공'의 동향에 각별히 주목해서 뉴스에서도 언급했던 모양이다. 군주제를 반대하는 북한이었지만, 왕따 시절 자국을 국제 무대에서 최초로 인정했던 캄보디아 전직 국왕에 대한 의리를 지켰다는 평가이다.


물론 '교황은 몇 개 사단을 갖고 있느냐?'는 스탈린의 일침을 적용하자면, 국력 면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전세계의 말석에 머물 수밖에 없는 캄보디아였지만, 시아누크 특유의 친화력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린 덕에 한때마나 여러 강대국의 주목을 받았으니 흥미로운 일이다. 다만 그 지인 대부분이 불운한 최후를 맞이한 독재자였다는 점은 한계도 여실히 보여준다.


이른바 '킬링 필드'라는 크메르 루주의 대학살 때문에 살짝 가려진 감이 없지 않지만, 사실 시아누크 치하라고 해서 태평천하까지는 아니었다. 오히려 시아누크의 정치적 오판과 줄타기 외교를 비롯한 여러 가지 실정으로 고질적인 사회 불안이 발생했고, 이후 크메르 루주와 군부 독재가 뿌리를 내릴 토양을 제공했다고 보는 것이 오늘날의 대체적 평가인 듯하다.


우리나라에서는 그가 미국 언론인 버나드 크리셔의 도움으로 쓴 회고록이 번역되기도 했다. 출판사가 무려 '디자인하우스'인데, 그 당시에는 잡지 위주였고 단행본은 개척 단계이다 보니 이런 의외의 책도 낸 듯하다. 뒷날개를 보면 심지어 '화성인' 유리마의 책도 간행했던데, 한 시대를 풍미한 기인이었는데도 지금은 기억하는 사람조차 드무니 꽤 허무한 일이다.


시아누크의 회고록 <카리스마와 리더십>은 자서전까지는 아니고, 그가 외교 무대에서 활약하며 만났던 드골, 네루, 수카르노, 주은래, 나세르, 모택동, 티토, 차우셰스쿠, 흐루시초프 같은 각국 정상들에 대한 추억을 풀어놓은 일화집이다.(다만 '절친' 김일성에 대한 회고까지는 없던데, 원래부터 없었는지 아니면 번역 과정에서 빠졌는지는 나귀님도 잘 모르겠다).


공저자의 서문에도 나온 것처럼 캄보디아의 역사와 현실을 회고하는 본격적인 자서전이 아니라는 점은 아쉽지만, 비록 자기미화 성향의 짧은 관찰기에 불과하더라도 한 시대를 풍미한 다양한 인물에 대한 일화와 평가를 색다른 각도에서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흥미로운 자료이다.(다만 번역과 교정 모두 그리 좋지 않아서 종종 황당한 오타가 눈에 띈다!)


폴 포트와 크메르 루주에 비하면 '다시 보니 선녀 같다'던 시아누크였지만, 이후에도 군부 독재가 지속되면서 캄보디아의 상황은 그리 좋아지지는 않은 모양이고, 이번에 한국인 납치 감금 사태라는 역대급 사건이 터지면서 새삼스레 국제적인 악명을 더 쌓아 올리는 모양이다. 지나친 과장이란 교민들의 항변도 있지만, 어쨌거나 안전한 나라까지는 아닌 듯하다.


배후 세력인 중국이 문제라는 지적도 맞기는 하지만, 애초에 독재 정권 치하이다 보니 그런 무법천하도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자정 노력이 없는 한 저런 상황이 지속될 터이니, 당분간은 아예 발을 끊는 것이 방법일 듯하다. 일각의 지적처럼, 현재 캄보디아의 상황이야말로 마치 무슨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올 것 같은 범죄 국가, 또는 기능부전 국가의 모습이다.


세계적으로 흥행하다 못해 심지어 일본에서는 포르노 패러디까지 나왔다는 (심지어 원작 출연 배우가 바로 그 포르노를 언급했다가 뭇매를 맞았던)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개인적으로는 가장 설득력 없는 부분이 바로 현대 한국을 그 배경으로 설정했다는 점이었다. 총기 소지가 금지되고 곳곳에 보안 카메라가 설치된 나라에서 과연 그런 행사 개최가 가능할까. 


따라서 차라리 재난이나 전쟁 같은 파국 직후에 사회 질서가 교란되고 약육강식이 일반화된 근미래의 한국이라든지, 아니면 가상의 독재 국가라면 더 그럴싸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지금의 캄보디아야말로 그런 창작물에는 가장 어울리는 배경이 아닐까 싶다. 아닌 게 아니라 이번 사태를 보며 '조만간 영화나 드라마로 나오겠다'며 혀를 찬 사람도 없지 않았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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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님의 시각에서 보자면, 흔히 '영웅'으로 일컬어지는 중국 역대 군주 중에서도 가장 매력이 없었던 인물은 한 고조 유방이다. 왕조의 창업자로서의 성과는 인정하더라도 능력 면에서는 딱히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 없었기 때문인데, 실제로 <사기> "본기"에 기록된 행적만 살펴보면 확고한 주관도, 압도적 무력도, 뛰어난 인품도 없이 오락가락했었던 것만 같다.


훗날 소설 <삼국지> 속 등장인물을 통해 대중화된 영웅상과 비교해도, 대범한 듯하다가 편협하고 너그러운 듯하다가 잔인한 유방의 면모는 어딘가 불량스럽게도 보인다. 일본 역사가 사타케 야스히코의 평전 <유방>을 보니, 심지어 종종 욕을 남발하거나 발을 씻으며 중요 인물을 접견하거나 등의 무례함을 출세 전에 체득한 건달 습관의 발현이라 설명하고 있었다.


평전에서도 "생애"와 별도로 "됨됨이"라는 장을 두어 해당 인물의 성격을 분석하고 있으니, 어쩌면 그 저자도 나귀님과 비슷한 의문을 품었을지 모르겠다. 그의 결론은 비록 유방에게 건달 특유의 허세며 무례가 드러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의와 의리를 아주 모르는 것은 아니어서 부하들로부터는 절대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는 설명이었지만 말이다.


다만 <삼국지>의 주인공인 세 나라의 군주만 해도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는 반면 유방의 경우에는 그들만큼의 매력도 찾기 힘드니, 결국 본인의 능력보다는 참모와 장수의 '템빨'로 행운을 얻었다는 박한 평가를 해도 무리는 아닐 법하다. 물론 유비 역시 비슷한 '템빨' 덕을 본 사람이기는 하지만, 답답할만큼 의리를 강조하는 점은 오히려 인간적인 매력이었다.


한데 앤드류 카네기의 묘비명에 나왔듯이 자기보다 더 똑똑한 사람을 데려다 쓰는 것도 능력이니, 이런 점에서라면 유방도 보통 사람은 아니라고 해야 맞겠다. 그의 장수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인물이 회음후 한신인데, 본래 항우 밑에 있다가 등용되지 못해 유방 밑으로 자리를 옮겼고, 여기서도 우여곡절 끝에 결국 등용되어 유방의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물론 한신도 항상 고분고분한 것은 아니어서 종종 꾀를 부리기도 했는데, 이때마다 유방은 기분 나빠 하면서도 상대를 잘 구슬려서 써먹었다. 하지만 전쟁의 달인 한신도 천하를 제패한 유방에게는 허를 찔려 허무한 최후를 맞이했으니, 그때에 가서야 '토사구팽'(토끼를 잡으면 사냥개를 삶는다)이란 격언을 인용해 자신의 처지를 비유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한다.


지난 주에 새삼스레 한신의 일화를 떠올린 까닭은 최근 논란이 된 검찰청 폐지 결정과, 곧이어 나온 특검 파견 검사들의 복귀 요구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하는데, 한창 파견 근무 중에 모기관이 사라진다면 누구라도 불안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에서는 배신자 취급을 하지만, 검사야 군인과는 다르니 여차 하면 사표 쓰고 나가면 그만 아닐까.


결국에는 이것도 여당의 자칭 '검찰 개혁' 가속화의 부작용 가운데 하나일 듯하다. 비유하자면 빈대가 있다고 초가삼간 태운 격인데, 알고 보니 당장 써야 할 세간살이도 초가삼간 안에 들어 있었다고나 할까. 여러 방면에서 답답하게 진행되는 특검 조사나 다 끝나고 하면 모를까, 역시 뜬금없던 방통위 폐지처럼 지나치게 서두르다 보니 불만이 나오는 듯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검찰이라는 밑동을 흔드는 상황에서 특검이라는 가지가 멀쩡할 리 없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는 검찰 개혁보다 내란 특검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토끼를 잡으면 사냥개를 삶는 것이야 사냥꾼 마음대로지만, 문제는 아직 토끼를 다 잡지도 못한 상황 아닌가. 지나치게 성급하고 거친 행보이니, 자칭 '개혁'으로 인한 부작용이 우려될 수밖에.


사실 '토사구팽'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오히려 역효과만 생기는데, 대표적인 것이 문재인 정부의 윤석열 파면이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미운 털이 박혀 좌천된 검사를 굳이 검찰총장으로 등용했는데, 이후 갈등이 벌어졌지만 곧바로 쳐내지 못하며 결국 야당 대선 후보까지 되고 말았으며, 그렇게 출범한 정권이 어떤 부작용을 낳았는지는 우리 모두가 아는 바이다.


당시 법무장관 추미애와 징계와 소송을 주고받으며 논란이 커지는 와중에 대통령 문재인은 혼자만 좋은 사람인 척하는 위선적 면모를 보였고, 윤석열은 마치 '도깨비 사과'처럼 때리면 때릴수록 인기가 커진 끝에 여당과 원수지고 야당으로 가서 대선 후보까지 되어 보란 듯 원한을 되갚았으니, 앞서 설명한 회음후 한신의 행적과도 유사한 바가 없지 않았다고 하겠다.


이후에 드러난 논란을 보면 윤석열은 검찰총장 등용 이전부터 허물 많은 사람이었는데, 문재인 정권에서는 박근혜 정권에 대한 특검 이후에도 써먹을 칼잡이가 필요해 건사하다 결국 뒤통수를 세게 맞은 셈이다. 비유하자면 토끼를 잡고 나서도 사냥개를 삶지 않아 생겨난 문제인데, 그렇다고 해서 지금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듯 세상 모든 개의 씨를 말릴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검찰 대신 경찰의 권력이 비대해지는 것에 대한 의문도 없지 않다. 경찰도 검찰 못지않게 크나큰 비판과 불만의 대상인데다가, 양쪽 모두 역대 정권에서 '주구' 역할에 충실해 왔음을 감안하면, 이제 와서 제멋대로이고 입질 잦은 이 사냥개를 버리고 역시나 제멋대로이고 입질 잦은 저 사냥개를 택한다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검찰청이 없어지고 검사의 역할이 변해도, 여전히 누군가는 그 일을 담당해야 한다. 흔히 말하듯 칼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부가 잘못했다고 조직을 없앤다면, 사실 대통령실과 국회야말로 제일 먼저 없어져야 할 조직이 아닐까. 역시나 갑작스러운 '배임죄 폐지' 제안처럼, 과연 누구를 위한 개혁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이런 와중에 뜬금없이 방통위를 폐지하고 눈엣가시 위원장을 쫓아냈지만, 이진숙이 경찰에 체포되었다가 풀려나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과거의 윤석열과 유사한 '도깨비 사과' 효과 덕분에 야당의 새로운 영웅으로 대두했으니 한심한 일이다. 개고기 금지법이 생겨서 그런가, 어쩐지 지금은 사냥개는 고사하고 그냥 개 삶는 방법 자체도 모르는 사람이 많아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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