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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 세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3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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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무라카미 하루키 씨의 일기를 훔쳐 본 기분이랄까.

아니면 작품구상 중 끄적인 메모. 단상. 엉뚱한 상상 등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 기분이랄까.

 

짤막짤막한 글 속엔 그가 주변을 바라보고 듣고 겪으며 느낀 바가 어떤 두툼한 수식과 암시의 옷도 입지 않고 가볍고 경쾌하게, 그저 본연의 모습 그대로 놓여있는 듯 하다. 앵? 하고 끝나는 글이 있는가 하면 음……하고 끝나기도 하고, 맞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 문장을 읽기도 했다. 글을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유쾌해지고 가벼워짐을 느꼈다. 세상을 무겁게만 바라보면 무거워지는 법이다. 그의 글들은 가볍고 바람을 따라 흐르는 비눗방울 같았다. 사라지면 그만이지만 눈을 마주하고 있는 순간은 아름답고 황홀하다.

 

책은 작가가 일 년 동안 일본 잡지 <앙앙anan>무라카미 라디오란 이름으로 자유롭게 연재했던 글을 모아 담고 있다. 표지의 제목과 그림은 p.13쪽, '잊히지 않는다, 기억나지 않는다' 부분에서 만날 수 있다.

그가 이런 연재를 하고 있으면 사람들이 으레 "매주 용케도 쓸거리가 있군요. 화제가 떨어져서 곤란한 적은 없습니까?" 란 질문을 종종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경우 미리 오십 개 정도의 토픽을 준비해두고 연재를 시작하며 날마다 생활 속에서 새로운 화제가 자연스레 생겨나니 뭘 쓰면 좋을까, 하며 고민한 기억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래, 이것도 써야지' 하고 새로운 토픽이 떠오르는 순간은 꼭 잠들기 직전일 때가 많아 문제라고 한다. '졸리지 않는 밤은 내게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만큼이나 드물다', 는 것. 샐러드 볼을 안고 포크질을 하는 사자의 그림도 그렇고, 하루키 씨의 유쾌한 표현도 기분 좋았다. 이 책 속의 이야기들도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만큼이나 드물게 지나는 시간들 속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이기에 그 제목을 만나게 된 것일까.

 

 

그래서 오후 1시경에 소파에 누워 슈베르트의 현악5중주곡을 듣는 둥 마는 둥 들으면서 "아아, 오늘도 특별히 상처 입는 일 없이 이대로 한가로이 낮잠을 잘 수 있을 것 같군. 다행이야." 하고 인생에 감사한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젊을 때 세파에 시달리며 제대로 상처를 입어두면 나이를 먹은 뒤 그만큼 편해지는 것 같다. 만약 기분 나쁜 일이 있다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푹 자면 된다. 뭐니 뭐니 해도 그게 제일이다. 힘내세요. -p.147, '낮잠의 달인' 부분

 

 

그는 삶에 심드렁하게 이야기하는 듯하면서도 진지한 자세를 잃지 않는다. 젊었을 때에 비해 바깥에서 자신을 공격해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지 않고 마주할 지혜가 생겼지만 순수하던 순간에 바깥을 향하던 호기심과 날카로움은 잃어버렸다고 이야기한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고 버리고 난 뒤엔 채워지기 마련인, 우리 삶의 이치를 그는 빙그레 웃으며 넌지시 이야기하고 있다. 부러 진지하지 않아도 삶은 충분히 진지하게 흘러가므로. 우리는 웃으며 그 시간들을 열심히 살아내기만 하면 된다. 아플 땐 충분히 아프고 싸워 견디며 웃을 수 있을 땐 마음껏 웃으면 된다. 노력하며 사는 사람만큼 강하고 무서운 존재는 없다.

 

 

분명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지식을 얻고자 하는 마음과 의욕일 터. 그런 것이 있는 한, 우리는 자신이 자신의 등을 밀어주듯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 잘 풀리면 아무것도 몰라요 하고 모르는 것을 '자랑'하는 작가가 될 수도 있다. 인생이란 꽤 복잡하다. -p.63, '모릅니다, 알지 못합니다' 부분

 

아름다운 것, 바른 것은 사람 각각의 마음속에 있는 것으로 말은 그 감각을 반영시키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물론 말은 소중히 해야 하지만, 말의 진짜 가치는 말 그 자체보다 말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관계성 속에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내내 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손은 깨끗이 씻었으니 괜찮습니다. -p.207, '젖은 바닥은 미끄러진다' 부분

 

 

 

현실이 주는 것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수용할 수 있는 삶까지, 그는 어떤 시간을 지나왔을까. 소설가이기에 사람들에게 욕을 먹기도 하고, 소설가이기에 편하기도 하며, 소설가이기에 먹고 살 수 있으며, 그러므로 소설가이기에 좋다는 그의 말 하나하나에 그를 지탱하는 굵은 뼈대들이 느껴졌다. 어쩐지 사랑할 수밖에 없는, 글들이었다. 물론 이런 글로 책을 출간할 수 있는 건 무라카미 하루키이기 때문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의 수많은 작품에서 우리는 진지한 그의 사유와 이야기의 힘을 느꼈기 때문에 그의 농담도 받아들여지고 그 속에 숨어진 삶의 진짜 모습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곧 그의 장편소설이 출간될 예정으로, 많은 독자들의 그의 신간을 기다리는 만큼 오프라인 서점가와 인터넷 서점가가 뜨겁다. '다자키 쓰쿠루'의 삶은, 무엇으로 인해 달라졌을까. 그의 신간을 기다리며 느끼는 초조함과 갈증을 이 책으로 달래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 그 일어날 것 같지 않은 모호한 시간의 이름을 당신의 것으로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불가능한 듯하지만 세상에 불가능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마음은 늘 찰나의 순간에 움직이고, 우리는 그 찰나의 순간을 만나기 위해 모든 시간을 땀 흘리며 살아가야 하는 아이러니한 '오늘'처럼.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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