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게임 - CSI: 과학수사대, 라스베이거스 #7
맥스 알란 콜린스 지음, 이수현 옮김, 한길로 감수 / 찬우물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언제부터 살인과 게임이 붙어 다니게 되었을까?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내내 든 생각이다. 살인이 게임이라니... 하지만 인간이 존재함과 동시에 살인은 있었다. 신화에서도, 성서에서도, 역사에서도. 그리고 살인을 하는 자는 언제나 자신의 죄를 시인하려 하지 않았다. 은폐하려 하고, 거짓으로 부정하려 하고, 그러다가 완전범죄를 시도하게 되었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한 오래된 게임이었던 것이다. 아주 잔인하고 모순된...


라스베이거스 과학수사대는 오늘도 주간반, 야간반 모두 바쁘다. 모두 살인 사건을 밝히기에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간반 반장이 되어버린 캐서린의 마음은 무겁다. 그리섬에 대한 배신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팀이었던 야간반원들이 쪼개져 버렸고 새로운 인력도 보강되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사건을 접하고 사건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인 과학적 증거를 통해 억울하게 살해된 자들에게 안식을 주고자 노력한다.


부지불식간에 살해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말없이 죽임을 당하고 자신들이 왜 죽어야 하는 지 변호할 기회마저 박탈당한다. 그리고 그렇게 살해된 자들을 보낸 가족들에게 단지 위로의 말이 있거나, 오래된 관행 때문에 슬픔에 잠길 사이도 없이 피해자 가족이라는 신분에서 용의자로 바뀌어 취조를 당하는 고생을 하게 된다. 살해된 자 주변 인물을 조사하는 것과 그런 통계가 많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그들이 무죄임이 밝혀진다고 했을 때 경찰들은 어떤 행동을 보이는가? 그저 무죄를 입증해줬으니 고맙게 생각해라, 또는 그것으로 피해자를 살해한 자를 잡을 기회를 갖게 된 거니 좋게 생각하라는 말이다. 이것이 말이 되는가?


그런데 범죄자를 잡았다 치면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미란다 원칙을 읽어줘야 한다, 변호사를 입회시켜야 한다, 감방에서의 인권 유린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모두 옳은 말이다.


경찰이나 사법 당국도 힘들 것이다. 하지만 가장 힘든 사람들은 그들이 아니다. 범죄자도 아니다. 바로 피해자 본인이다. 억울하게 죽은 자고 억울하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이다. 그들의 인권은 누가 보장하는가? 이 작품에서도 그것에 대해서는 없다. 물론 이 작품은 인권에 대해 말하는 작품이 아니니까 그렇지만 말이다.

 

살인은 이제 게임이다. 범죄자와 경찰간의 게임, 변호사와 검사와의 게임, 증거와 과학수사대와의 게임... 이곳 어디에도 피해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피해자는 이미 논외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살인게임이 존재하는 것이다. 살인이 게임이 아니라면 무엇이 더 존중되어야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범인을 잡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범인을 왜 잡아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흔히 그들의 이런 말을 듣는다. ‘피해자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살인범을 잡겠다.’ 원혼이 있다면 묻고 싶다. 지금의 사건 해결 방식과 사회의 관점에서 당신들의 한은 풀어졌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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