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혹은 문학작품 속 주인공의 그늘에 가려 있거나 비련의 여주인공이었던 여성들을 등장시켜 페미니즘적인 시각으로 재구성한 책이다. 그녀들의 옆에는 모두 ‘위대한 남자’가 있었으나 남성 중심적인 사회 통념에 갇혀 모두 제 할말을 하지 못한 여성들이다. 하녀였지만 후에 괴테의 부인이 된 실존인물 크리스티아네,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중 하나인 <오셀로>의 여주인공 데스데모나 등이 등장한다.
표제작 <데스데모나, 당신이 말을 했더라면!>은 남편 오셀로의 오해로 억울하게 죽은 데스데모나의 이야기이다. 이 글에서 데스데모나는 사랑하는 남편의 손에 죽어가는 절박한 순간, 마지막으로 남편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애쓴다.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두사람의 사랑이 파멸에 이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오셀로의 이성에 호소하는 것이다. - 6. 네가 주문을 알아맞히기만 한다면 귀머거리 개 롤로와 산책을 하던 에피 브리스트의 혼잣말
17세기 초 유럽을 열광시킨 세계 최초의 베스트셀러 『돈 키호테』. 수 많은 젊은이들이 죽음까지 모방하게 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어른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아동문학의 고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만화보다 더 재미있고 영화보다 더 극적인 『보물섬』과 『정글북』등 누구나 꼭 한 번 읽고 싶었던, 그리고 반드시 읽어야 할 고전소설 50편을 골라 그 속에서 펼쳐졌던 인간들의 다채로운 운명을 요약해 놓고 있다. 영화로 다시 태어난 소설 속 명장면(화보 300컷)들은 독자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해냄 클라시커 50 시리즈의 열두 번째 책인 『고전소설』은 세계 문학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16~19세기 명작 소설 50편의 내용과 창작 배경을 담은 책으로, 이미 소개된 바 있는 『클라시커 50―현대소설』에 이은 것이다. 인쇄술의 발달과 문맹률의 감소에 힘입어 세계 최초의 베스트셀러가 된 이 작품들은 소설의 모범을 보여주었으며, 당시의 독자들을 사로잡은 데 그치지 않고 50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만인에게 사랑받고 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들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남녀노소 모두에게 열렬히 애독되고 기억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정답은 이 소설들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들을 담고 있다는 데 있다.
새뮤얼 존슨이 ‘소설은 주로 사랑에 대해서 다루는 수수한 이야기’라고 말한 것과 같이, 이 작품들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일이지만 무엇보다 흥미롭고 극적이며 누구에게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우리의 인생사를 다룬 재미있는 이야기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고전소설’에 대해 갖고 있는 선입견은 어떤 것인가? ‘고전’이라고 하면 왠지 지루하고 재미없고 어려운 옛날 소설로만 생각하며 멀리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고전을 한 편 읽고 ‘고전소설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니!’하고 놀란 경험이 누구나 한 번씩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따분하기만 할 거라고 생각하는 이 소설들을 읽기 위해 하루 종일 선착장에서 원고를 실은 배를 기다렸다는 사실을 안다면?
『클라시커 50―고전소설』은 우리가 고전소설에 대해 갖고 있는 선입견, 경외감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책이다.
영화로 다시 태어난 소설 속 명장면(화보 300컷)들은 독자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고, 작품의 줄거리는 물론 대중들의 반향, 혹평까지 담은 친절한 설명은 고전에 대한 관심을 북돋는다. 특히 세르반테스와 볼테르, 톨스토이 같은 대가들이 세기를 뛰어넘는 명작 소설들을 짓게 된 창작 배경과 그들의 삶은 그들이 창조한 소설만큼 흥미진진하다.
『몽테 크리스토 백작』이 70명의 직원이 매년 2~30편씩 소설을 찍어내는 ‘소설 공장’에서 만들어진 작품임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가난과 간질, 도박벽에 시달리던 도스토예프스키가 짧은 시간 안에 소설을 지어내지 못하면 글쓰는 노예가 될 위기에 처해 쓴 작품이 『죄와 벌』이라는 사실은 얼마나 경이로운가! 어린 앨리스를 향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탄생시킨 원동력이었다는 사실은 또 어찌나 아름다운지.
명작소설 50편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과 충실한 정보, 명쾌한 문학 지식을 두루 담은 『클라시커 50―고전소설』은 고전의 세계가 얼마나 흥미롭고 매혹적인지를 알려주는 훌륭한 교양서이다. 또한 이 책을 통해 아직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14편의 명작소설을 만날 수 있다. - 에피 브리스트- 테오도르 폰타네
문화적 책읽기의 즐거움
문화의 중심에는 책이 있다. 책은 지식과 문화의 창출과 전수의 핵심 영역을 담당했으며, 시대를 읽는 눈이 되어왔다. 철학자와 시인, 학자와 예술가는 자신들이 깨달은 바를 책으로 독자들에게 전해온 것이다. 이렇듯 인류 문명을 지탱해왔던 인간의 지적활동은 대부분 문자와 책을 통해 이뤄졌다. 하지만 20세기 들어서면서 점점 강력하게 부상해온 다양한 매체들 틈바구니에서 문자와 책은 과거의 화려한 독점적 지위를 상실하고 있다. 혹자들은 책의 종말을 논하기도 했고, 과거의 지위를 인터넷이나 텔레비전 등이 대신할 것이라 공언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성급한 판단이었음이 증명되고 있다. 인터넷은 1초에도 수백만 개의 정보를 영토의 구분 없이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이를 수용하는 우리들은 과도한 정보 홍수 속에서 질식할 지경이라 호소하는 실정이다. 정보와 지식은 무엇보다도 체계적인 관리와 인간의 폭넓은 인식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아주 간명하게 보여주는 책이 바로 취른트가 쓴 <책>이다. 이 책은 <교양BILDUNG>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시리즈의 두 번째 권이다. <교양>이 역사, 철학, 문학, 예술 등 교양인을 만드는 요소들을 소개한 책이라면, <책>은 이러한 교양과 지식을 만드는 데 필요한 도구인 책에 대한 책인 셈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단순히 여러 책의 내용에 대해 짤막하게 소개하는 책 정도로 여길 수도 있다. 아니면 기껏해야 책의 내용을 이른바 다이제스트 형식으로 가공하여 만든 인스턴트 지식 정도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책 속에 담긴 지식의 전달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책 속의 지식을 지식으로 만드는 요인과 책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지식의 의미에 대해 소개한다. 여기에 취른트는 학문적이고 현학적인 표현을 걷어내고, 읽기 난해한 고전들을 오늘날의 시각에서 알기 쉽게 일반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아울러 현대사회의 실정을 고려하여 고대와 중세의 고전뿐 아니라 현대소설과 사이버픽션, 아동도서까지 포함시켜 교양 정전正典의 현재성을 두루 갖추고 있다. <책>을 읽은 독자들은 고전작품들을 살펴보고 무엇을 읽어야 할지 결정할 수 있다. 이제 그들은 문화와 시대정신을 정확히 짚어낼 수 있는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교양>을 잇는, 사람이 읽어야 할 모든 것을 담은 <책>
지난 2001년 가을, 국내에 번역 출간된 슈바니츠의 <교양>(부제: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은 ‘교양’ 열풍을 일으키며, 현재까지도 인문학 출판의 스테디셀러로 자리잡고 있다. 768쪽이라는 적지 않은 분량의 이 책이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게 된 이유는 교양인을 만드는 기본요소들을 현학적인 접근 대신, 쉽고 간결한 문체로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교양>에 따르면, 교양인에게 필요한 기본요소는 역사와 철학, 문화과 예술에 대한 이해이며, 사회를 자기의 내면에 비추어봄으로써 사회를 결속시키는 도덕적 구속력을 생성해내는 유연하고 자성적인 정신을 뜻한다. 슈바니츠는 이러한 교양의 기초가 없는 전문가는 한 뼘도 안 되는 전문영역에 갇혀 평생을 살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 그들은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고 말한다. 이번에 출간된 <책>은 ‘사람이 읽어야 할 모든 것’이라는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교양>과 같은 시리즈물이다. <책>은 <교양>과 마찬가지로 전문지식의 한계를 지적하고, 문화 전반에 대한 지식 습득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방법의 하나로 문명의 발명품인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을 것을 제안한다.
<교양>과 <책>이 한 짝을 이루는 것은 사실 당연한 일일 것이다. 우리는 활자와 책을 통해 역사를 알게 되고, 자신의 정체성과 시대를 읽는 눈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오디세이아>로 고대 그리스인의 세계관을, <햄릿>으로 지식인의 문제를, <돈 키호테>로 세계 개선자의 운명을, <파우스트>로 지식의 무절제함을, <자본론>으로 자본주의의 모순을 이해하게 된다. 요즘 들어 다양한 매체들이 과거의 책의 역할을 함께 병행하기도 하지만 수용자(독자)들이 행간을 읽으면서 얻는 사고력과 집중력은 그 어떤 매체도 책을 따라오기 힘들다. 그리고 교양이란 단순한 정보의 나열이 아니라 정보를 체계적인 지식으로 만드는 능력이라는 점에서 책은 교양에 이르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될 것이다.
지식의 바다를 밝히는 항해용 나침반
그렇다면 책 중에서도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사회처럼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말이다. <교양>의 저자인 슈바니츠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 책은 고전을 소개함과 동시에 우리시대가 요구하는 지식의 새로운 가능성를 모색한다. 고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 문화적 시각, 읽는다는 행위에 대한 설명 등 쉽지 않은 테마들을 자연스럽게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과거의 고전들이 우리시대에도 새로운 시각을 전해주고 있음을 알 수 있고, 사이버픽션이나 아동도서들이 의미 있는 새로운 범주의 고전으로 인식될 수 있다. 아울러 정치, 경제, 사회학 같은 사회과학 서적들도 추상적이고 도식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일상 속에서 그 의미가 분명하고 쉽게 드러나게 한다. 이 모든 것은 문화적인 책읽기가 독자들에게 주는 효과다. 비록 이 책이 서양 고전만을 다룬다는 한계를 갖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 독자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은 이 책이 일관되게 추구하는 문화적인 책읽기의 모습 때문이다.
연대기가 아닌 주제에 따른 분류
이 책은 성서에서 <리바이어선>을 거쳐 <해리 포터>까지 다루고 있다. 그리고 호메로스에서 셰익스피어, 마르크스를 거쳐 헤르만 헤세까지 사상가, 철학자, 시인 등 다양한 분야의 거인들을 소개한다. 이렇듯 이 책은 고대에서 현대까지 3천 년이 넘는 장구한 역사 속의 고전들을 다루고 있지만 단순히 연대기로 짜맞추고 있지는 않는다. 또한 고정된 틀로 책들을 엮어 절대화시키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은 사회문화를 구성하는 주제에 따라 고전들을 분류하여 일상의 문제로까지 접근시킨다.
이 책의 차례를 보면 저자가 책들을 분류해놓은 범주들을 훑어볼 수 있다. 그 범주들은 문명을 지탱하는 여러 요소들을 담고 있다. 정치사상을 다루는 고전들 외에도 ‘학교 고전’, ‘셰익스피어’, ‘아동도서’, ‘성’, ‘경제’, ‘유토피아 : 사이버 세계’ 등으로 구성된다. 이렇듯 이 책은 방대한 범주들을 다루고 있지만 결코 모든 전문 분야의 고전들을 총망라하고자 욕심 내지는 않는다. 저자가 선택한 기준은 다름 아니라, 오늘날 ‘고전’으로 여겨지는 책들과 각 분야에서 이미 인정받은 책들이다. - <에피 브리스트> 테오도르 폰타네
사랑과 고통, 유혹과 간통이라는 전통적인 주제는 지난 수세기 동안 동서양을 막론하고 위대한 문학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표현되어 왔다. 저자 디터 벨러스호프는 이 책을 통해 근대 계몽주의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백년 간의 문학사를 통틀어 각기 다른 시대적 배경과 사회계급, 환경 속에서 인간의 원초적 욕망인 '리비도(Libido)'가 어떻게 발현되고 또 억압받는지를 심도있게 서술하고 있다.인간 존재의 영원한 화두, '에로스', 왜 에로스를 말하는가?
아침에 눈 뜰 때부터 저녁 잠자리에 들 때까지 현대인은 에로티시즘의 변형된 여러 형태들 속에서 생활한다. TV를 켜면 광고 속에 교묘히 자리를 틀고 앉아 있는 것도 에로티시즘의 하나요, 영화나 문학은 말할 것도 없고, 사진, 패션, 음악 그리고 각종 제품의 디자인도 에로티시즘을 저변에 깔고 있는 것을 우리는 부인할 수가 없다. 철학자들 또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에로스를 여러 가지 말로 정의 내리고 있다.
칸트(1724~1939)는 에로스를 '이성의 힘으로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는 당위의 문제'라고 일축했으며, 마르크스(1818~1883)는 '경제적으로 한정되고 인간에 의한 착취와 피착취의 문제만 해결되면 에로스는 저절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규정했다. 20세기에 들어서야 프로이트(1856~1939)의 '무의식' 개념이 사회에서 인정받으면서 인간에게 '리비도(Libido)', 즉 성본능이 존재함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인류 역사의 흐름 속에서 때로는 무시되고 금기시되었으며 때로는 그 존재를 인정받기도 했던 '에로스'가 예술의 제1 형식인 '문학' 속에서 어떻게 발현되고 변천되어 왔는지를 깊이 있게 통찰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학 속의 에로스≫는 빛나는 가치를 갖고 있다.
세기의 걸작 속에 흐르는 에로티시즘의 내밀한 유혹
이 책에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 문학의 거장들이 중심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부터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미셸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D. H. 로렌스의 ≪아들과 연인≫, 에밀 졸라의 ≪나나≫, 우엘벡의 ≪소립자≫ 등의 작품 속에서 그 시대의 배경과 사회적 분위기에 둘러싸인 한 개인의 욕망이 어떻게 좌절되고 있는지 통렬하게 분석하고 있다. 또한 작가의 개인사와 시대적 배경과의 관련성 또한 배제하지 않고 꼼꼼하게 들여다 보고 있다.
사회적으로 보잘 것 없는 여자하고만 성교가 가능했다는 괴테, 귀족 집안 유부녀들의 도움을 받아 사회적 출세를 꿈꾸는 발자크나 스탕달, 동성애 성향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문제, 기묘한 변덕으로 죽을 때까지 아내에 대한 증오심을 버리지 못한 톨스토이 그리고 돈처럼 성도 시장의 법칙에 따르게 된 세상에서 일부 남자들이 모든 여자들을 차지해 버렸다면서 집안으로만 숨어 버리는 우엘벡. 이 위대한 작가들의 개인사 안에 있었던 성적인 문제들을 들여다 보면서 우리는 관음증과 호기심을 충족시키면서 우리의 일상사 또한 되돌아 보게 된다.
한 작품을 예로 들자면 괴테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쓰기까지는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담과 대학 시절 그의 학우였던 카를 빌헬름 예루살렘의 자살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하고 있다. 괴테는 1772년 몇 달 동안 부프 집에 드나들면서 이 집안의 둘째 딸인 샤를로테를 사모하게 된다. 처음에는 그녀가 이미 약혼한 상태라는 사실에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지만 점점 내면의 갈등으로 고민하던 그는 도덕과 현실의 원칙에 따라 그녀가 요한 크리스티안 케스트너와 결혼하리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는 그의 소설에서 베르테르가 약혼자가 있는 로테란 여인을 사랑하면서부터 느끼는 고뇌와 일치한다. 게다가 그의 학우였던 카를 빌헬름 예루살렘이 상관의 부인에게 접근했다가 거절당한 후 마음의 상처를 받고 자살하는 사건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쓰는 직접적인 자극제가 되었다.
그리고 이 작품의 배경인 18세기의 상황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이때는 경제적으로 부유해진 시민 계층이 성직자와 귀족 계층에 이어 완전히 세 번째 신분으로 올라서면서 점점 사회적 영향력이 커져가는 시기였다. 또한 이 시기에 처음으로 연애 결혼이라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지만, 아직까지 시민 문화는 성을 '도덕과 사랑'이라는 관념 속에 포장하는 때였다. 그리고 이런 시대적 문화의 틀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읽을수록 재미가 느껴지는 에세이 형식의 글, 살아 숨쉬는 예문
이미 몇 편의 소설을 통해 하인리히 뵐 문학상, 프리드리히 횔덜린 문학상, 요제프 브라이트바흐 문학상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을 갖고 있는 디터 벨러스호프는 마치 주인공의 심리를 꿰뚫어 보면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관능적 코드를 조율하고 있다. 근대 계몽주의 이후 수백 년 간의 소설사를 관통하는 그의 분석은 독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뿐 아니라, 에세이 형식의 글로써 읽을수록 재미가 느껴지는 힘이 있다. 인간의 자의식에 대한 이해는 헤아릴 수 없는 깊이가 있고, 맛볼수록 단맛이 느껴지는 기이한 음식처럼 읽는 재미 또한 적절히 어우러져 책장을 넘기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또한 작품별로, 테마별로 매우 흥미로운 예문을 발췌한 점은 이 책의 손꼽히는 장점이다. 예를 들어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중 다음과 같은 구절을 뽑아 놓았다.
"내가 전에 알베르틴에게 말하던 것과 똑같았다. 그녀가 나를 사랑하도록 만들기 위해 '난 너를 사랑하지 않아'라고 말하고, 그녀가 나를 좀더 자주 찾아오도록 '사람들을 보지 않으면 난 그들을 잊어버려'라고 말하고, 이별의 생각에서 그녀를 앞지르기 위해서 '난 너와 헤어지기로 결심했어'라고 말했다. 그렇듯이 지금 나는 그녀가 일주일 안에 돌아오기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에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영원히 안녕.' 그녀를 다시 보기를 원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했다. '너를 한 번 더 만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해.' 그녀와 헤어져서 사는 것이 내게는 죽음보다 더 끔찍하게 여겨지기에 나는 이렇게 썼다. '우리가 함께 하면 불행할 거라던 네 말이 맞았어.'"
위의 장면은 자신의 동기를 감추고 거리 두기로 일관하는 사랑싸움의 묘사를 통해 사도마조히즘의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형태를 적절히 보여 주고 있다. 저자는 '그림자놀이'라고 부르는 이러한 행위를 일종의 섬세한 권력 놀이의 하나라고 평가하고 있다. 또 스탕달의 ≪에고티즘(자아주의) 회상록≫에서는 작가 자신의 회고록 성격의 예문을 보여주고 있는데 매우 흥미롭다.
"얘야, 넌 머리가 좋지, 수학 과목에서 그렇게 우수한 성적을 받았으니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구나. 하지만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 세상은 오직 여자들을 통해서만 위로 올라갈 수 있단다. 넌 못생겼지만 사람들이 네가 못생겼다고 비난하지는 않을 게다. 개성을 갖고 있으니까. 앞으로 네 애인들이 너를 버리고 떠날 텐데 지금 하는 내 얘기를 잘 기억해 두었다가 그대로 실천하렴. 버림을 받은 순간에는 누구나 자신을 우습게 여기기가 아주 쉽다. 그런 일이 한 번 일어나면 남자는 다른 여자들 눈에 아주 형편없는 존재로 보인다. 그러니까 버림을 받거든 24시간이 지나기 전에 얼른 다른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해라, 더 나은 사람이 없을 경우에는 하다못해 하녀에게라도 괜찮다." 나이든 삼촌이 17살의 스탕달에게 충고하는 이 대목은 작가가 가진 삶에 대한 태도, 즉 신분상승을 위해서 권력을 가진 이들의 부인들을 유혹하여 결국 목적을 이뤄내는 속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도발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도판
이 책에는 에로티시즘을 주제로 하는 다양한 작가들의 도판이 함께 실려 있다. 책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원서에는 없는 도판을 새롭게 선정하고 편집한 것이다. 백화점식 나열이 아닌 각 장의 주제에 부합하는 도판을 찾기 위해 애썼다. 이 부분은 ≪팜므파탈≫, ≪사비나의 에로틱 갤러리≫ 등의 저서로 잘 알려진 이명옥 관장(사비나 미술관)의 적극적인 자문을 받았음을 밝힌다. 클림트를 비롯해서 르느와르, 고갱, 에곤 쉴레, 뭉크, 샤갈, 르네 마그리트 등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한 작품을 통해 책의 온기가 더욱더 살아나게 되고 보는 이로 하여금 도발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 5. 간통한 여인들 폰타네 <에피 브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