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애호가를 위한 잔혹한 책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선집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선집 4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기 전에 <펫숍 오브 호러스>를 읽은 독자들이라면 D백작의 펫숍을 생각해 주기 바란다. 물론 D백작의 펫숍에 있을만한 진귀한 동물들이 아니고 우리 주변의 흔한 동물들이지만 만약 D백작이었다면 어떻게 이 책을 생각했을까를 미루어 짐작하면 아마도 좀 쉽게 이 책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 가운데 이런 말이 있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 이 말에 우리는 우리가 조심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우리가 개구리라고 생각해 보면 얼마나 끔찍한 일일까.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 책을 우리에게 주는 서스펜스와 스릴러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이 책은 이 책에 등장하는 동물들을 비롯한 많은 우리가 무심코 하는 행동으로 야기되는 그들의 서스펜스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을 때 되도록 감정을 이입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냥 읽기를. 이 작가는 원래 이런 작가고 이런 글을 쓰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우리를 위한 서스펜스만을 원해야 하는가. 그렇다고 작가가 동물들 편을 드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순수한 정글의 법칙일 뿐이다. 냉혹한 정글의 법칙이란 약육강식이다. 인간이 약하다면 강한 자에게 당하는 건 당연하다. 그 당연함을 그냥 한번 경험하기를...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인간>이란 작품 마지막을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 한 동물원에서 침을 뱉는 침팬지가 있다는 것을 봤다. 우리는 그것을 그저 흥미로 봤지만 침팬지가 인간에게 침을 뱉게 된 것은 인간을 따라 한 것뿐이다. 내가 침팬지에게 침을 뱉거나 코끼리에게 총을 쏘는 것은 괜찮은데 침팬지나 코끼리가 그러면 안 되는 것일까?
프랑스의 진미라고 일컬어지는 송로를 발견하는 것은 돼지다. 하지만 그것을 먹지는 못하게 하는 것은 인간이다. 쥐나 바퀴벌레는 인간에게 혐오스럽지만 그들도 살아야 할 이유는 있다. 그들이 인간에게 당하는 하루하루가, 죽는 날까지 견뎌야 하는 삶 자체가 서스펜스다. 그래서 인간보다 오래 산 바퀴벌레는 이렇게 말한다.

내기라니! 삶 자체가 하나의 도박 아닌가? 그런데 왜 내기를 하는가?”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동물들 말고도 많다. 일본에서 낚시에 이용되는 가마우지가 있고 인간에게 프와그라를 제공하기 위해 먹이를 억지로 눈물을 흘리며 쑤셔 넣는 거위가 있다. 그래도 우리는 사는 게 그렇지, 뭐. 이러면 그만이다. 그렇다고 안 먹을 것도 아니고 지나가는 바퀴벌레를 안 죽일 것도 아니고 말이다. 

단지 그렇다는 말이다. 뒤집어보면 누군가에게는 서스펜스인 것이 누군가에게는 재미이고 누군가에게는 모험이고 스릴이고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내기거리인 세상... 그 세상에서 이런 동물들이 있다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 아닐까. 그들에게도 살아갈 권리가 인간에게와 마찬가지로 주어진 거니까 말이다.

퍼트리셔 하이스미스의 작품은 간단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단편 하나도 뒤 끗이 영 개운하지 않고 찜찜하게 만드는 것이 그의 특기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모르겠는 것이 그의 작품의 매력이다. 모르면서도 읽게 되는 것. 몰라도 읽을 수 있고 읽으면서 감탄하고 그러면서 울적해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작품. 산다는 건 이렇게 반쯤 누구나 포기하고 손을 놓고, 그러면서도 무언가 움켜쥐려 애쓰는 거라고 말하는 듯한 작품... 퍼트리셔 하이스미스만이 느끼게 하는 미묘한 감정의 서스펜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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