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드로 파로디의 여섯 가지 사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외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하우스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이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작가가 기존에 안락의자형 탐정이라는 것을 앉은뱅이 탐정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말이 그 말로 받아 들였는지 모르겠지만 호르헤스가 과연 그랬을까를 생각해보면 의도적이라는 판단을 하게 된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방에서 청춘을 보낸 주인공 이시드로 파로디... 밖에 있을 때는 평범한 이발사였지만 감방에 오래 있다 보니 지혜가 넓어져 남이 풀지 못하는 사건을 해결하게 된 남자. 그를 안락의자형 탐정이라고 정의해 버린다면 이만저만 어불성설도 아닐 것이다. 자의에 의한 탐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앉은뱅이 탐정, 누군가에 의해 주저 앉혀진 탐정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작품은 단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처음 사건을 해결해 준 사람이 다음 사람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해서 이시드로 파로디의 명성은 퍼져온 모양이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두 작가의 공저 작품이라지만 내가 이들 남미의 사실적 환상 문학을 만들어내는 작가들의 글을 제대로 읽을 날이 오기나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추리소설이라고 덥석 잡은 내가 추리 소설적으로만 말하기에는 이 작품 안에 숨어 있는 행간의 생각들이 너무 많고 알 수가 없다. 다른 사람이 이런 작품을 썼다면 말 많은 이 작품은 뭐냐...라고 했을 것이다.

이시드로 파로디는 듣기만 한다. 답답한 감방에서 그 감방을 찾아오는 외부인들의 말만을. 들고 나감이 자유로운 사람들의 얘기만을 듣고 있다가 나중에 해결을 한다. 그들 말만을 듣고. 그런데 어찌 보면 우스운 광대놀음 같은 그네들의 말들이 나중에는 서글퍼졌다.

어쩌면 이것은 그들 작가들이 쳐했던 상황에 대한 풍자를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려, 이시드로 파로디라는 주인공을 내세워 한 판 살풀이라도 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방에 갇혀야만 답답한 건 아니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계속 해결책을 내놓으라고 찾아온다. 그래서 해결은 해주지만 정작 본인들의 고단함, 답답함은 어디에서도 해결해 주지 않는다. 이시드로 파로디의 상황처럼 말이다.

그래서 다 읽은 다음 이 작품을 결코 추리 소설이라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왠만한 작품은 모두 추리소설이라고 우기는 나지만 도저히 이 작품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273호 감방에는 아직도 누가 있으리라. 그는 그 속에서 오랜 세월 살면서 깨달음을 얻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과연 그는 행복할까. 지금 이 순간 그런 감방이 없어졌을까. 우린 그런 그들을 이런 웃기는 일들로 괴롭히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뿐이다.  몬테네그로처럼 심지어 그의 공적을 가로채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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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05-12-09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르헤스군요..언제 한번 보르헤스도 찬찬히 읽어야할텐데...

물만두 2005-12-09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티님 머리 아파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