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일그러진 세계
니시오 이신 지음, 이성현 옮김 / 들마루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책을 읽고 나서 속았다는 느낌이 들 때 그때가 가장 기분 나쁘다. 이 책의 정체는 뭐냐... 추리 소설이 살인만 있음 추리 소설이냐... 이 작품은 청소년 소설이다. 그렇게 보는 게 낫겠다.
고등학교 3학년 남자 아이 사마토키는 일면 시스터보이다. 한 살 아래의 여동생이 초등학교 때 왕따 당한 걸 해결한 후로 여동생 보호를 위해 앞장서다 급기야는 여동생을 위해 근친상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아이다. 자신의 세계는 없고 자신이 바라보는 다른 사람의 세계만 있는 아이...
사마토키와는 달리 뵤잉자카는 사회부적응아로 양호실 등교로 양호실에서만 생활하며 졸업 후 미국 연구실로 갈 생각을 하는 아이다. 하지만 이 아이도 성적인 자유분방함이 문제가 되는 아이다. 이 아이는 자신만의 세상이 존재할 뿐, 남의 세상에는 관심이 없다.
학교에서 사마토키의 여동생 요우츠키에게 접근하려던 남자애를 위협한 다음날 돌연 그 아이가 살해된다. 사마토키는 알리바이가 있어 용의자가 되지는 않았지만 불완전함을 참지 못하는 뵤잉자카는 범인 찾기에 나선다.
그리고는 없다.
일본 추리 소설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살인자라 할지라도 법의 심판을 받던 받지 않던 변함없이 친구로 우정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 추리 소설이나 추리 만화에서는 그렇게 그려진다. 그것은 어떤 뜻일까. 일그러진 세상에서 한번 일그러진 것에 대해 또 다시 흠집 낼 필요가 없다는 뜻일까, 아니면 그 정도야 얼마든지 있는 일인데 하는 생각의 차이일까...
비슷하면서도 다른 <아름다운 아이>에서 주인공은 가족으로서 최선책을 찾는다. 중학생이라서 차이가 나는 걸까. 이 작품의 아이들의 사고는 이해하기 힘들다. 범인을 찾아내고서도 이미 지난 일이라는 듯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돌아간다. 아니 일그러진 세상에서 더 일그러지지 않게 하려는 듯 방어막을 치는 느낌이다. 가식의...
아무런 해결도 없고, 결말도 없는... 그래서 더 일그러져 보이는 소설 속의 고요함은 태풍의 눈처럼 느껴진다. 태풍의 눈 속에 있다고 해서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 옆을 못 보게 경주마의 눈을 가리고 앞으로만 달리게 한다고 해서 경주마가 아닌 인간에게 통할 리 만무하건만... 어쩜 이것이 극단적으로 보여 지는 일본과 우리의 관점의 차이일지 모르겠다.
일그러진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그래도 꿈같은 오아시스의 행복을 찾는다. 그리고 좌절할 때 좌절하더라고 그것을 놓지 않는다. 인간인 까닭에... 너무 그런 것을 일찍 알아버린 사춘기의 아이들이 그저 가엾기만 하다.
이 책은 결말과 내용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추리소설 초보자를 위한 텍스트로 이용해도 좋을듯하지만 거부감이 꽤 심하게 들 거라는 생각이 드니 권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중간 중간의 만화는 무엇인지... 차라리 만화로 나왔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만화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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