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벌 공장
이언 뱅크스 지음, 김상훈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이언 뱅크스가 언제나 내 뒤통수를 때릴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또 당했다. 뭐, 보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쓰레기 같은 작품으로 보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호밀밭의 파수군>에 필적할만한 작품으로 보이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런 수식어에 상관없이 이 작가의 작품은 언제나 머릿속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오랫동안 비워주지 않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제목이 뜻하는 말벌 공장은 작가가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인간들이 나아가는 각자의 길이고 각자가 만든 방, 또 하나의 공장을 뜻한다. 우리는 언제나 인생을 설계한다. 허물고 다시 짓고 하는 모래성처럼 수많은 꿈을 어린 시절에 꾸고 그 중 하나가 되어 자기만의 공장을 운영하기도 하고 뜻하지 않은 생각지도 않던 공장을 운영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삶이란 공장인 것이다. 부품을 수시로 교체하고, 쫓겨나기도 하고 쫓아내기도 하고 채용하기도 하고 채용되기도 하고... 공장을 만들 수도 있고 그 공장의 부품이 될 수도 있다.

처음 이 작품을 읽을 때는 소년의 성장통 쯤으로 여겼다. 출생신고도 안 되어 있고 어렸을  적에 개에게 물려 거세당한 고통을 갖고 사는 소년이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읽게 되는 추리적 요소를 찾았다. 그것이 어쩌면 그의 형이 미쳐 정신병원에 있다가 탈출해서 집, 그들만이 고립되어 사는 섬에 찾아오는 것의 결말일 거라고 생각했다. 단순하기는...

그렇게 단순한 거였다면 어쩌면 좋았을 테고 위에서 언급된 극과 극의 말들을 듣지 않는 보통의 평범한 데뷔작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가가 그 길을 가지 않겠다는데야 할 말이 있나...

이 작품은 작가에 중독된 내 관점에서도 문제가 많다. 끊임없이 여성을 비하하는 주인공의 말과 태도는 어떤 뜻이 있던 간에 비난받기 딱 좋고 마지막 결말은 정말 페미니스트에게 공격당하지 않은 게 다행이다 싶다. 또한 개를 먹는 것에 대해 혐오하는 것도 생각에 따라 주인공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다 싶지만 그것 또한 너무 노골적이다. 그리고 프랭크의 형 에릭이 미치게 된 동기가 되는 사건에서는 짚고 넘어갈 여지가 있다고 본다. 그게 과연 가능한지, 아니면 에릭의 편두통에 의한 상상인지, 사실이라면 정말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많은 문제 속에서 얼굴 찌푸리면 읽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작가는 탁월한 글 솜씨를 보여준다. 한동안 내 머리 속에서는 말벌들이 날아다닐 것이다. 스코틀랜드 바닷가에서 날아가는 연과 마지막에 형에게 무릎을 베어주며 한없이 생각에 잠긴 프랭크가 내내 생각나리라. 그가 어떤 결정을 내려 어떤 공장을 지었을지 궁금해 하리라... 그리고 프랭크만큼 나도 믿고 싶지 않은 일이다. 마지막 결말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