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농장 1 - 법의관 케이 스카페타 시리즈 5
퍼트리샤 콘웰 지음, 유소영 옮김 / 노블하우스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제목이 조금 껄끄러운 건 사실이다. 시체 농장... 원 제목은 The Body Farm이다. 직역하면 맞다. 우리나라에 없는 것이라 약간 생소해 보일 뿐 이런 시설은 법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반드시 필요한 곳이다. 아직 요원하겠지만...
이 작품은 전작인 <사형수의 지문>과 이후에 나올 작품까지 합쳐 템플 골트라는 연쇄 살인범을 잡는 스카페타 시리즈 안의 템플 골트 시리즈라고도 할 수 있는 작품이다.
패트리샤 콘웰의 작품은 경험을 유감없이 발휘한 검시관 케이 스카페타가 주인공이다. 그녀의 작품 속에는 잔인하게 살해된 시체가 많이 나온다. 그 시체를 검시해서 살인자의 특성이나 살인 장소, 목적을 찾은 것이 주를 이룬다. 예를 들면 시체를 살해한 후 살점을 일정한 크기로 도려내는 것은 시체를 깨문 범인의 이빨 자국을 없애기 위한 방법이다. 시체에서 나오는 실오라기 하나, 먼지 하나도 자세히 분석한다. 그것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만큼 해결하기 어려운 범죄가 많이 일어난다는 반증일 것이다.
이 작품은 템플 골트라는 살인마를 쫓는 연속선상에 있는 이야기다. 한 마을에서 골트가 저지른 것과 유사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스카페타 박사는 골트의 범죄와 유사성도 있지만 큰 차이가 있음을 감지한다. 그것은 골트는 어린 남자아이만을 살해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사건의 희생자는 여자아이다. 그래서 골트를 염두에 두지만 골트를 모방한 범죄에도 초점을 맞춘다.
이 작품의 숨겨진 매력은 스카페타라는 인물과 그 주변 인물들이 우리 주변에 있음직한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우선 스카페타 박사는 법의학자로써 탄탄한 지위를 가지고 있지만 사랑이라는 측면에서는 약간의 열등감이랄까 실패했다는 감정을 가진 인물이다. 그래서 더욱 자신의 일에 열심인 인물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프랭크 상원 의원은 스카페타가 아버지처럼 생각하는 인물인데 아마도 작가 자신이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빌 그레이엄 목사를 모델로 하지 않았나 싶다. 이런 점에서 강한 여성으로, 아니 한 인간으로 살려고 애쓰는 그녀가 더욱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기대고 싶지만 기댈 수 없는 사람을 대변하는 인물로써... 그리고 그녀가 템플 골트로 여겨지는 인물을 멀리서나마 보자마자 도망치는 모습은 너무도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작가는 스카페타를 영웅이 아닌 인간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해결사이기는 하지만...
스카페타의 조카인 루시를 보면 천재의 외로움과 보통의 이십대 초반이 가질 수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랑에 빠지고 배신당하고 상처입고 하는 과정은 누구나 마찬가지니까. 또한 루시를 대하는 이성을 잃은 스카페타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딸처럼 생각하는 조카니까.
이 작품에 대단하지 않은 인물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범죄자마저도 대단한 범죄자로 묘사되니까. 그러므로 대단하게 보이는 인물들을 보통 사람에게 감정이입할 수 있게 만든 작가의 솜씨는 빼어나다고 할 수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은 마리노 형사다. 그를 평범한 형사의 전형으로 그리고 있지만 그도 나름대로 안목이 있는 베테랑이다. 그런 형사, 밑바닥에서 자라 황혼 이혼을 경험한 그에게 차갑게 대하면서 친구같은 걱정을 보내는 스카페타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이상하게 보여지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주변에서 있을 법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리노가 처하는 상황도 공감이 갔다.
하지만 스카페타 시리즈도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작품임이 마지막에 입증된다. 그것은 작가가 과정을 결말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진짜 상황이라면 그렇게만 되지는 않을 테니까.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물론 읽어서 알고 있는 것이지만 또 읽는 묘미는 색다를 것이다. 내가 처음 스카페타 시리즈를 접했을 때 나는 그다지 이 작품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역시 책은 언제 보느냐에 따라 느껴지는 감정이 달라지는 모양이다. 똑같은 책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살인은 너무 쉽다. 매스컴에서 전해 준 살인자의 행동을 모방하기만 해도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시대의 살인자는 어쩌면 매스컴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한다. 매스컴이 대량의 살인자를 복제하는 기구라고 말하면 너무 심한 발상이 될까...

p 151 에 이런 말이 있다.

지금껏 강력 범죄 수사에 참여해 오면서 배운 중요한 진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범죄 현장은 나름대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흙은 당시의 충격을 기억하며, 곤충은 체액에 의해 변하고, 식물은 사람의 발에 짓밟힌다. 증인이 그렇듯 현장 또한 프라이버시를 잃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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