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시스터 레이먼드 챈들러 선집 5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 / 북하우스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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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말로에게 어울리지 않는 마지막까지 늘어지는 작품이다. 배경이 헐리우드라서 그런지 마치 늘어진 필름 돌아가듯 끝날 듯 끝나지 않고 이어진다. 마지막까지. 조금 지루한 작품이다. 아마도 말로가 가장 말을 많이 하고 머리를 많이 쓴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도 왜 지루했냐면 글쎄...

나는 필립 말로를 싫어한다. 그가 기사 탐정을 자처하는 모습이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 탐정이 되어 늙어가는 말로는 더욱 못 봐주겠다. 인간은 젊어서는 정의의 사도인 냥 행동하기 마련이다. 그러다 늙어버리면 그렇게 산다는 것이 부질없는 일이었음을 깨닫고 자신의 얼굴에 문신을 새기듯이 주름살을 스스로 채워 나가게 된다. 젊음의 객기가 더 찬란했던 사람일수록, 산타가 있다고 너무 오랫동안 믿었던 늙은 아이일수록, 그리고 그래도 세상에 정의는 존재한다고 마지막까지 믿는 사람일수록 방황과 인생의 환멸은 깊다. 말로는 인생의 환멸을 표현하는 중이다.

하지만 그것도 너무 장황하면 질척거리게 마련이다. 이 책은 진흙탕에 빠진 말로를 보여주고 있다. 그 모습이 좀 더 솔직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직 말로는 마초적 냄새를 완전히 지우지 못했다.

<호수의 여인>에서 탐정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 줄 알았더니 또 자기 넋두리만 하고 있다. 그것도 조그만 계집애를 상대로. 하지만 이것이 <기나긴 이별>로 가는 길이기에 참는다. <기나긴 이별>이 레이먼드 챈들러의 작품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의 사무실에 필립 말로가 아닌 루 아처와 매트 스커더가 있는 상상을 한다. 그는 좋아하지 않지만 그가 남긴 사무실속에는 여전히 탐정들이 세 들어 살고 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긴 그림자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대단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헐리우드를 배경으로 쓴 다른 추리 소설 가운데에서는 가장 짜임새 있고 효과적으로 헐리우드를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다만 내 맘에 들지 않을 뿐... 아마도 읽어보면 말로에게서 포와로나 엘러리 퀸의 느낌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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