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 월드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마틴 수터 지음, 유혜자 옮김 / 시공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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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부제가 기억만큼 존재하는 한 남자 이야기다. 제목보다 더 어울리는 말이다. 여기 예순 다섯의 나이 든 남자가 있다. 평생 자신의 의지대로 인생을 살아보지 못한 남자다. 어려서 엄마에게 버림받고 엄마가 일하던 부잣집에서 자라게 되어 그 집 아들과 때론 친구처럼 대부분은 그의 시종처럼 자란 남자다.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야 했던 남자, 그래서 첫사랑 여자도 빼앗긴 남자... 그가 이제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려 한다. 한 여자를 만나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살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때 그에게 닥친 알츠하이머라는 병... 그 병 때문에 그는 결국 다시 그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사랑하게 된 여자도 못 알아보고. 하지만 그는 모든 기억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만큼은 너무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기억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다. 그가 빨리 죽기만을 바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무엇 때문에 그의 네 다섯 살 때의 자그마한 기억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이 작품은 꼭 집어 추리 소설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작품이다. 그보다는 추리적 요소가 가미된 소설이라고 하는 편이 좋을 듯 하다. 정교한 고딕풍의 추리 소설 같아 보이면서도 그 방식을 따르지 않고 현대적 범죄 소설에도 맞지 않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기막힌 인생을 살았다. 그의 남은 생은 더 기막힐 수도 있다. 하지만 살아온 날들이 더 불행한 것일까, 아니면 살아갈 날들이 더 불행할 것인가. 우린 알 수 없다. 그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고 그의 세상은 우리와 조금 다른 곳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알츠하이머라는 병을 잘 표현하고 예전에 에릭 시걸의 <프라이즈>를 보면 젊은 나이의 과학자가 알츠하이머에 걸려 자살하는 얘기가 나온다. 처음에는 물건을 잘 잃어버리고 아무 곳에나 놓고 샀던 물건을 또 사고 100m 밖에서 자기 집을 찾지 못하다가 사랑하는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게 되는, 그러면서 점점 난폭해지는 병... 이 책의 주인공은 의료 시설이 좋은 곳에서 도움을 받는 행복한 환자다. 모든 환자가 이렇게 호사를 누릴 수는 없을 것이고 여기에도 빈부의 차이는 존재한다. 하지만 적어도 알츠하이머를 앓는 환자와 그 가족을 위한 요양원, 간호사, 도우미 정도는 국가에서 보조를 해주고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고 생각된다. 고령화 사회를 준비하는 우리로서는 말이다.
적극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추리 소설로 읽어도 재미있고 추리 소설을 싫어하는 독자라면 보통의 소설로 읽어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그의 작은 기억, 스몰 월드에 동참해 보자.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일지도 모르고 새로운 세상에 눈뜨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 아름답고 서글픈 한 남자의 인생 이야기를 눈물 흘리지 않고 볼 수 있는 작품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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