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의 진실
질리안 호프만 지음, 이미정 옮김 / 대현문화사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작품을 읽는 내내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인권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그건 참 뒷맛 씁쓸한 일이었다.
한 여자가 성폭행을 당한다. 잔인하게. 거의뻔했다 살아나지만 그녀는 예전의 그녀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녀에게 삶은 지옥으로 변했고,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고 사람들에 대한 신뢰하는 마음을 잃었다. 그녀는 두려움에 이름을 바꾸고 그래도 자신을 의지력 하나로 일으켜 세워 검사가 되었다. 그녀는 잔인한 연쇄 살인범을 쫓다가 다시 예전에 자신을 성폭행한 남자를 만난다. 이제 그 남자는 살인자로 잡혔다. 여자는 복수를 원했다. 이해 충돌을 감추고 그 남자가 다시 풀려나 성폭행범에 살인자가 되어 또 다른 희생자가 생겨나지 않도록...
유영철 사건을 접하며 나는 그 동안 내가 생각하던 사형 제도 폐지 찬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형 제도 폐지를 찬성하지만 제한적 찬성으로 마음을 바꿨다. 사람들은 보통 내 일이 아니면 신경을 안 쓴다. 그리고 내 일이면 거기에 강렬하게 집착하게 된다. 퀸시 존스 게임을 해보자. 이건 몇몇 사람을 거치면 모든 사람과 아는 사이가 될 수 있다는 게임이다. 유영철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한 희생자들은 남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부모, 형제, 친구, 친척, 이웃, 동료가 있었다. 아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내가 알고 있다면 이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이제 그들은 내 이웃이 되었다. 형제가 되었고 친구가 되었다. 내 친구, 형제, 이웃을 죽인 사람을 용서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나를 죽이려 한 사람을 객관적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을까. 그런 자에게도 인권이라는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에게 우리가 왜 인권이란 말로 보호를 해야 하는가...
세상에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란 없다고 말을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세상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있다. 성폭행, 연쇄 살인, 존속 살인, 아동 학대, 유괴 등이 그런 죄에 속한다. 어떻게 보면 우발적 살인보다 성폭행이 더 나쁜 범죄다. 그런 사람을 당사자가 용서할 수는 결코 없다. 아니 용서해서는 안 된다.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지 않다. 죄 지은 자에게 인권을 말하고 죄 짓지 않고 밑바닥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하는 사람은 돌보지 않는 사회에서 그런 말은 공염불일 뿐이다.
나는 그래서 이 작품의 결말이 마음에 든다. 이 작품은 찬찬히 살펴보면 어떤 몇몇 작품과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지만 짜임새 있게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처녀작으로 좋은 작가의 출발이라고 생각된다.
세상에 정의란 없다. 그러므로 자신은 자신이 지켜야 한다. 나는 이 땅의 많은 성폭행범들이 모두 사형 당하기를 바란다. 더불어 성폭행 당한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마치 자신이 저지른 범죄처럼 여기지 않고 자신에게 당당할 수 있고 그런 사람을 사심 없는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럴 수 있을 때만이 적어도 인권을 논하고 정의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이 말은 결코 여기에 어울리지 않지만 말하고 싶다. 이 작품의 주인공에게 죄 없는 자 돌을 던지라고... 인간이 인간의 이야기를 쓸 때 사실은 이런 심정이 더 많다. 하지만 가식적으로 그렇지 않게 쓰는 경우가 더 많다. 마치 윤리 교과서를 쓰듯이. 그건 사실도 아니고 더더군다나 아름다운 결말도 아니다. 차라리 이 책의 결말이 아름다운 결말이다.
마지막으로 변호사의 말을 적어 본다.
"사람들은 정의가 눈 먼 장님이라고 하죠, 씨제이. 하지만 전 어떤 경우에는 단순히 진실을 보려 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당신도 그 점을 잘 기억해 두는 게 좋을 거예요."
여기서 말하는 정의란 무엇이고, 진실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진지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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