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드래건 1
토머스 해리스 지음 / 창해 / 1999년 9월
평점 :
절판


토마스 해리스의 한니발 렉터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이다. 물론 FBI 수사관 클라리스 스탈링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시리즈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렉터는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 렉터 박사는 그다지 중요한 역할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와 윌 그레이엄의 앙숙 관계 형성을 알려주고 윌 그레이엄의 수사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그가 한니발 렉터를 체포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한니발 렉터를 잡고 큰 부상과 정신적 후유증으로 FBI를 그만두고 한가로운 나날을 보내며 결혼해 잘 살고 있는 윌 그레이엄은 연쇄 살인 사건의 의뢰를 받는다. 가고 싶지 않았지만 그는 사건을 찾아간다. 왜냐하면 인간은 두 가지에서 동시에 만족을 느낄 수 없는 동물이고 양손에 떡을 쥐고도 항상 비교를 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윌 그레이엄은 팔자가 미치광이 연쇄 살인범을 잡을 팔자다.  

윌 그레이엄은 가족 전체를 몰살하는 이빨 요정이자 자칭 붉은 용인 범인을 찾으려고 단서를 찾아 헤매고 살인범은 달맞이 때 살해할 다른 가족을 물색 중이다. 렉터가 조연으로 등장하는 듯한 면을 보이기는 하지만 이 작품은 렉터 박사를 체포한 전직 FBI 수사관 윌 그레이엄이 또 다른 연쇄 살인범 레드 드래건을 찾기 위해 객원으로 참여하면서 레드 드래건을 체포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이 작품의 주인공은 윌 그레이엄이다.  

역시 이 작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어릴 적 아이들이 학대받고 자랐느냐, 사랑 받고 자랐느냐가 일생을, 자신의 일생과 타인의 일생을 좌우함을 알 수 있다. 사회가 아동 학대 방지에 힘을 써야 하는 것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거나 힘쓰지 않는 자가 있다면 이 책을 읽게 하고 싶다. 그것은 결국 부메랑처럼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로 돌아오는 것이다. 살인자의 범행 대상이 누가 될지는 신도 모르는 일이니까.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가 마음에 와 닿는다.  

“자비는 인간의 마름
연민은 인간의 얼굴
사랑은 인간의 신성한 모습
그리고 평화는, 인간의 옷...”...

“잔혹은 인간의 마음
질투는 인간의 얼굴
공포는 인간의 신성한 모습
그리고 비밀은 인간의 옷...

인간의 옷은 벼른쇠
인간의 모습은 달구어진 용광로
인간의 얼굴은 봉함된 화로
인간의 마음은 굶주린 창자 ”

한니발 렉터 시리즈를 그래도 한번쯤 봐야 하까 하는 생각에 망설인 끝에 봤다. 물론 나는 한니발을 동정한다. 하지만 그보다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하고 FBI에 이용만 당한 윌 그레이엄이 더 불쌍할 뿐이다. 이 작품에서 진정한 피해자는 이 사람 한 명 뿐이다. 그가 경찰, 아니 FBI였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도 누군가의 행복해질 권리를 파괴할 권리는 없는 법이다. 이 작품에서의 한니발 렉터는 조정자일 뿐이다. 그는 별로 등장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더 읽기 편하고 이 작품이 시리즈 중 가장 재미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연쇄 살인 사건의 대부분이 미국에서 일어나고 범인의 대 다수가 백인 남자라는 점은 한번쯤 집고 넘어가고 싶다. 연쇄 살인범의 90%가 미국에 있다 던가. 그들이 인간을 살해하는 행위, 이 작품에서 행복한 가정만을 골라 가족 전원을 살해하는 것은 제임스 패터슨의 <첫 번째 희생자>와 비슷하다. 하지만 그래도 이 작품이 더 나은 것은 긴장감이 있기 때문이다. 한 범죄자를 일생을 드라마틱하게 구성하기 위해 나머지 사람들의 인생을 꾸깃꾸깃 구겨 버린 듯한 느낌을 작가에게서 받았다.   

개인적으로 윌 그레이엄이 이 한 편으로 사장된 것이 너무도 안타깝다. 물론 작가의 의도와 렉터 시리즈의 완성에는 클라리스 스탈링이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지만 그렇다고 윌 그레이엄을 이렇게 만들어도 좋은 것인지 작가에게 묻고 싶다. 왜 렉터와 스탈링의 삶은 비정상적이면서도 파멸하지 않고 엽기적으로 이어지는데 - 그것도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 윌 그레이엄은 발을 뺏다가 정의감이라고 할까 아니 천성적인 어떤 면으로 협조를 했는데 안정적으로 새로 꾸민 가정을 잃고 자신마저 파멸되어 - 이 파멸의 이야기는 <양들의 침묵>에 언급된다 - 야만 하는 지.  

작가가 왜 렉터에게는 애정을 보이면서 윌 그레이엄에게는 일말의 동정도 보이지 않았는지 그것이 정말 궁금하다. 어쩌면 이것은 작가를 신으로, 작품 속 주인공을 인간으로 비유하면 말이 될 듯도 싶다. 신에게 버림받는 - 이유도 모른 채 - 이들도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한니발 렉터. 정말 정 안가는 주인공 1순위다. 윌. 빠져나갈 수 있을 때 빠져나갈 것이지. 이것이 당신의 운명이란 말인가. 한번도 평화를 누려 볼 수 없는 것이. 한 순간의 당신의 오만과 열망이 당신의 인생 전체를 망치고 말았구려. 누굴 탓할 수 있겠소. 당신 자신을 탓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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