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지옥 동서 미스터리 북스 74
스탠리 엘린 지음, 김영수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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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작품 발표 연도를 생각하며 읽어야 할 듯 싶다. 제목은 거창하게 지옥을 들먹여 엄청난 것이 들어 있으리라는 암시를 주는데 실상 읽으면 추리 소설이라기보다는 추리적 기법을 차용한 문학 작품 같기 때문이다. 가끔 장편과 단편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작가를 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이 차이가 어디서 오는 지를 생각하게 되는데 어쩜 단편과 장편에서 지향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탠리 엘린은 단편에서는 섬뜩한 면을 보여주지만 장편에서는 일상적인 소소함을 표현하는 것 같다. 그런 것이 처음에는 기대 밖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차츰 매력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야기가 약간 하드보일드한 면을 띄면서 단순한 드라마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제목은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에서 따왔다. 그래서 현대 사회를 풍자하는 면이 없지 않지만 제목처럼 과격하거나 시니컬하지는 않다. 그것이 작가의 장면 전반의 기조다. 그의 다른 작품 <발렌타인의 유산>에서도 보여주듯이 살인과 폭력같은 현대 미스터리 스릴러의 요소가 그의 작품에서는 그다지 많이 보여지지 않는다. 그런 면을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리면서 역설적으로 로맨스를 중요시한다.  

한 탐정 사무소의 탐정이, 탐정이 되는 순간을 회상하면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약간 감상적인 면도 보여줌을 시사하고 있다. 그 탐정은 사장의 눈에 띄어 사장의 뒤를 이어 탐정 사무소 사장이 된다. 그리고 사건을 맡아 해결한다. 그 사이 사이 눈에 띄는 전 사장을 떠올리는 장면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아무래도 제목은 역설적으로 사용된 것 같다. 살면서 우리도 많이 지옥 같다고 일상을 말하곤 하니까. 사기꾼, 위선자, 도둑 등이 모여 있는 제 8의 지옥은 너무 현실적고 평범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탐정에게는 특히. 그리고 현대인에게도.  

이 작품에서 탐정 사무소의 사장이 의뢰인의 약혼녀에게 반해 사건을 맡고 사랑으로 인간성을 회복하게 되는 면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는 것은 그런 점에 역설적인 작용이다. 어떤 사람은 이런 면을 진부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너무 과장, 과격이 남발하는 요즘 오히려 이런 드라마적 작품이 신선하게 느껴진다. 한 사립 탐정 회사 사장이 된 남자가 사건을 의뢰 받고 해결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은 그다지 지옥 같은 풍경은 드러나지 않는다. 단테의 <신곡>에서 제목을 붙인 것은 작가의 지향점이 순수문학과 닿는 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 요리>를 읽은 독자들은 다소 실망할 수도 있을 듯하지만 탐정과 추리 로망, 요즘보다 덜 자극적이고 덜 잔인한 작품을 보길 원한다면 이 작품을 권하고 싶다. 문학적 냄새가 나는 추리 소설을 원한다면 말이다.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로렌스 블록의 매튜 스커더의 모습도 얼핏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니 말이다. 아니 이 작품이 먼저니까 로렌스 블록에게 영향을 줬으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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