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의 노인 사건집 동서 미스터리 북스 63
에무스카 바로네스 오르치 지음, 이정태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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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많은 탐정들이 있다. 보통 탐정의 대명사인 셜록 홈즈처럼 돋보기를 들고 증거를 찾아다니는 탐정이 있는 가하면 이 작품에 등장하는 구석 노인처럼 머리로 상황을 생각해서 말을 하는 안락의자형 탐정도 있다. 그리고 회색 뇌세포의 포아로는 이런 두 가지를 갖춘 탐정이라 할 수 있고 하드보일드 작품이 등장하면서 더 이상 안락의자형 탐정이나 셜록 홈즈류의 돋보기 탐정도 사라졌다. 대신 진짜 탐정같이 행동하는 루 아처같은 탐정이 등장했다. 

이 단편집은 특별히 꼭 읽고 싶었던 단편집이다. 물론 오르치 남작 부인이 좋아하고 심혈을 기울인 작품은 <빨강 별꽃> 시리즈라지만 그 작품보다 다방 구석에 앉아 우연히 만난 신문 기자가 말하는 사건을 참견하는 이 작품이 더 좋다.

이 단편집은 1905년에 출판된 첫 단편집 <엘리어트 여의사 사건>에서 9편과 1909년 나온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두 번째 단편집인 <구석 노인의 사건집>에서 5편을 모아 합친 단편집이다. 첫 단편집에서 <엘리어트 여의사 사건 The Case of Miss Elliott>, < 다트무어 테라스의 비극 Tragedy in Dartmoor Terrace>, <페브마슈 살해 The Murder of Miss Pebmarsh>, <리슨 글로브의 수수께끼 The Lisson Grove Mystery>, <트레먼 사건 The Tremarn Case>, <상선 아르테미스 호의 위난 The Fate of the Artemis>, <콜리니 백작의 실종 The Disappearance of Count Collini>, <에어셤의 참극 The Aysham Mystery>, <반즈데일 장원의 비극 The Tragedy of Barnsdale Manor>의 아홉 편이 포함되었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인 두번째 단편집에서 <구석 노인의 사건집>, <팬처치 거리의 수수께끼 The Fenchurch Street Mystery 1901>, <더블린 사건 The Dublin Mystery 1902>, <지하철 괴사건 The Mysterious Death of the Underground Rail-Way>, <리젠트 파크의 살인 The Regent's Park Mystery>, <구석의 노인 마지막 사건 The Mysterious Death in Percy Street>의 다섯 편이 수록되어 있다. 참고로 각각 12편씩 수록된 단편집이었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가 기다려야 할 작품은 마지막 단편집인 1925년에 발표된 <풀 수 없는 매듭>뿐이다. 물론 출판되리라는 기대는 없지만...

독특한 또 한 명의 탐정인 구석의 노인... 정체도 알 수 없는 노인... 그의 사생활에 대한 언급은 딱 한번뿐이지만 그것으로 그의 정체를 알아낼 수는 없다. 다만 여기자는 그에게 사건을 말하거나 그가 언급하는 사건의 전말을 듣고 수확을 챙길 뿐이다. 구석의 노인에게 수수께끼 놀이일 뿐이다. 어떤 사건에 대해 생각하거나 유추한다는 것은... 그것은 그가 언제나 손으로 매듭을 만드는 것과 같을 뿐이다. 이름도 없는 이 노인은 다방 구석에 앉아 - 물론 프랑스에서는 다방이 아니라 카페나 뭐 그런 곳이겠지만 - 사건을 척척 해결한다. 경험 많고 나이 많은 노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우리 나라 옛 속담을 연상시키는 기발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미쓰 마플이 등장하는 <화요일 클럽>과 비슷하다. 그 작품에서 미쓰 마플은 사람들의 이야기만을 듣고 범인을 맞춘다. 구석의 노인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여기자에게 수상한 사건을 알려주고 범행의 전말을 설명한다. 범인을 지목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쩌면 그 노인은 사람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간절히 원하는 상담자일지 모른다. 여기자에게 간절한 것은 사건의 기사다. 하지만 그녀를 도와줄 사람은 없다. 모두가 라이벌일 뿐이다. 이때 무심코 다방에서 한 노인을 만나게 되어 그에게서 도움을 받는다. 마치 누군가 그녀를 위해 마련해 놓은 것처럼... 오르치 부인이 원한 것은 이런 것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자도 남자가 아닌 여기자를 등장시킨 것이고 구석의 노인도 나이 지긋한 노인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역시 첫 단편인 <팬처치 거리의 수수께끼>와 가장 유명한 작품인 <더블린 사건>이 가장 좋은 작품으로 느껴진다. 미쓰 마플의 여운을 느끼고 싶은 독자들이라면 읽어봄직한 단편집이다. 수수께끼형, whodunit형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제격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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