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보수 동서 미스터리 북스 61
H. P. 러브크래프트 지음, 정광섭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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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의 도시 아컴과 인스마우스를 창조해 낸 작가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이 동서미스터리북스에 끼워졌다는 사실이 조금 의외이기는 하지만 이 문고가 아니었다면 볼 생각도 안 했을 작품이라 그 의외성이 어쨌든 고맙다.

사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은 <심야에 찾아온 손님>이라는 단편밖에 읽은 기억이 없고 그 작품이 약간 기괴했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이 작가의 작품이 이 정도의 상상력을 가진 공포물일 줄은 몰랐다. 이 단편집의 네 작품 <인스마우스의 그림자>, <벽 속의 쥐>, <어둠 속의 속삭임>, <크투르프가 부르는 소리>를 읽고 이 작가가 어떤 작가인지 알게 되었다. 비교하자면 이 작가는 역자가 말한 <두 병의 소오스>의 작가 던세이니보다는 <피의 책>의 작가인 클라이브 바커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로테스크하고 기괴하다는 점에서.  

러브크래프트는 인간이 스톤헨지의 거석에 대한 비밀의 근원을 알지 못하는데서 오는 두려움을 신화적, 우주적인 견지에서 공포를 불어넣으며 이야기로 풀어 보고자 했던 것 같다. 네 작품 모두 그런 외계 생명체나 인간이 아닌 두려운 존재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두려움은 인간이 유한한 존재이며 영원불멸에 대한 기대에 기인한 것이라는 것을 확대 해석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그로테스크한 작품도 괜찮지만 <심야에 찾아온 손님>과 같은 심령적 작품이 더 좋은 것 같다. 너무 기괴하면 그것 자체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의 더 많은 작품을 읽고 싶은 생각이 드니 묘한 매력이 있는 작가다.

러브크래프트가 지향하는 공포란 것은 호러적 공포가 아닌 인간의 내면적, 역사적, 신화적인 근원적 공포에의 접근이다. 작가가 상상 속의 공포를 창작하지만 그것을 공포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신화로 만들려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어김없이 아컴과 인스마우스라는 마을이 등장하고 그 마을에서는 기괴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 아닐까. 그 기괴함의 정체는 신화의 공포 창조다. 인간과 바다 속 물고기 사이에 태어난 변종들이 산다는 상상은 신화에 기초를 둔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인간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될 만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신화라는 인간을 뛰어넘는, 인간 이상의 것을 만들 필요가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 자체가 인간에게는 공포로 다가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떤 작가가 SF적 장르에서 우주인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단지 러브크래프트라는 작가는 그것을 지구의 과거, 오랜 동안 인간이 기억하지 못했던 과거와 결합시켜 공포를 만들어 낸 것뿐이다.

이 작가의 장편도 많은 것 같지만 사실 더 읽을 필요는 느끼지 못한다. 작가가 대단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인간만으로도, 미스터리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스러운데 거기다 신화까지 보태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지구상에 인간이 알지 못하는 어떤 곳에는 아컴과 인스마우스같은 곳이 있지 않을까. 지금의 인간이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닐 테니까 말이다. 마지막으로 제목도 ‘공포의 보수’보다는 ‘보수는 공포’가 더 적당하지 않나 싶다. 내가 이 작품을 읽고 얻은 대가가 공포이니 말이다. 작품 속 인물들이 겪는 것, 호기심, 여타의 모든 것은 대가도 공포로 귀결이 되는 관계도 있고.  

작가의 특징인 가공의 배경인 도시 아컴과 인스마우스가 등장한다. 그곳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니 그곳은 어떤 곳이 길래 공포감을 주는 것일까. <인스마우스의 그림자>에서는 그곳이 어떤 곳인지를 알려준다. 물고기와 인간의 변종이 사는 곳. 다시 말해 인간과 물고기가 결합해 새로운 종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그들은 육지에서는 사람 비슷하지만 물에 들어가면 물고기가 된다. 물 속에는 그들만의 세상도 있다. 한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섬뜩하게 그려지는 작품이다.  

다른 작품들도 같은 맥락의 작품이지만 작가는 신화, 자신만의 신화와 배경을 가지고 독특하면서 기괴한 공포를 만들어 내고 있다. 신화 속의 내용 중 무시무시한 면만을 부각시키고 인간 내면의 공포를 끌어내는 능력이 탁월한 작가다. 다만 단명한 작가로 살아 생전에 단 한 권의 책도 내지 못한 비운의 작가였다. 사후 친구들이 그의 작품을 모아 발표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의 짧은 인생에서 그는 공포를 만났었던 모양이다. 천재 작가의 단명을 안타까워 할 수밖에 없다. 공포 소설을 좋아하는, 그로테스크한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좋아할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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