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코담뱃갑 동서 미스터리 북스 108
존 딕슨 카 지음, 전형기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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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정독을 요하는 작품이다. 한 문장 한 문장 공들여 읽어야 한다. 안 그러면 놓치기 십상이다. 무엇을? 단서를. 딕슨 카의 최고의 걸작이라 평가되는 작품이니 공들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딕슨 카의 작품 가운데 가장 먼저 읽은 작품이지만 그때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이 작품의 진가를 깨닫지 못했다. 이제 다시 그때 느끼지 못했던 추리 소설로서의 묘미를 느끼게 된다.  

물론 밀실 트릭의 황제라는 칭호답게 역시 밀실 트릭을 이 작품에서도 구사한다. 아니 더 정교하게 구사한다. 왜냐하면 사건을 목격하지만 증명할 수 없게 만들어 한 여인을 피해자로 몰아가는 방식 자체가 밀실 트릭, 인간의 증명할 수 없는 알리바이라는 트릭을 만들기 때문이다.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앞집의 살인 사건을 목격한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가 혼수상태에 빠지는 바람에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진짜 트릭은 여기에 있지 않다. 딕슨 카가 그렇게 허술한 작가는 아니니까.  

이 작품은 벌써 세 번째 읽는다.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른 작품이다. 첫 번째 읽었을 때는 지금부터 이십 여 년 전이니까 그냥 설렁설렁 읽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때는 이 작품에서 재미를 못 느꼈다. 두 번째는 삼십이 넘어 읽었는데 그때는 머리를 강타 당하는 느낌을 받았었다. 왜 그때 이 작품의 진가를 몰랐을까 머리를 쥐어뜯었었다. 근자에 세 번째로 읽었는데 트릭을 발견하는 묘미보다는 드디어 딕슨 카가 늙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은 1942년 작품이니 최초의 작품 <밤에 걷다>에서 12년이 지난 작품이니 뭐 그다지 나이를 느끼기에는 좀 뭐하지만 그 동안의 딕슨 카가 보여 주었던 트릭 위주의 작품이나 오컬트적 작품에서 벗어나 드라마틱한 면이 강조된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 느낌을 강조하면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그가 나이가 들고 있다는 증거, 아니 완숙미를 내뿜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 작품이 그의 다른 작품들을 제치고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는 것 아닌가 싶다. 물론 개인차는 있지만.    

남자 복이 없는 아름다운 여자가 있다. 그녀는 방탕한 전남편과 이혼을 하고 앞집의 건실해 보이는 남자와 약혼을 한다. 사건이 벌어지는 날 밤, 그녀의 전남편은 그녀를 찾아와 협박을 하고 그때 창문 밖으로 그녀의 약혼자 아버지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하는 장면을 그들은 목격한다. 운 없는 여자는 이상한 상황으로 인해 목격자에서 살인 용의자가 되고 그녀의 무죄를 밝혀 줄 전남편은 계단에서 그녀에게 밀려 떨어진 후유증으로 의식불명 상태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존 딕슨 카의 트릭과 그가 추구하는 추리적 형태를 파악할 수 있어 더 없이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이제야 추리 소설에 대한 조그마한 시각을 갖게 된 모양이다. 나로서는 더 없이 이런 의미만으로도 더없이 좋게 기억될 작품이다. 한 십 년 뒤에 다시 이 작품을 읽는다면 그때는 어떤 생각이 들지 지금부터 흥분된다. 그때는 더 좋은 추리적 안목이 생겼기를 바라고 싶다. 

이 작품의 가장 뛰어난 점이 바로 드라마틱한 점안에 교묘히 녹여 놓은 심리적 트릭이다. 그것을 알려면 천천히 읽어야 한다. 아가사 크리스티도 속았다는 작품이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아가사 크리스티보다 덜 뛰어난 우리에겐 정독만이 이 작품을 파악하는 길일 것이다. 딕슨 카의 트릭, 밀실 트릭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어떨지 모르지만 이 작품도 어떤 의미에서는 밀실 트릭이라는 생각이 든다. 직접 읽고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혹자들은 이 작품을 다른 딕슨 카의 작품들, 즉 <세 개의 관>, <화형 법정>, <모자 수집광 살인 사건>보다 못하다고 말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작품들에 뒤지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이 작품에는 드라마틱한 딕슨 카의 작품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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