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님과 나
우타노 쇼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책을 처음 펼쳤을 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했다. 주인공이 마흔네살이나 먹은 히키코모리라니. 여기에 여동생이라며 인형하고 대화를 나누고 어린 여자 아이를 좋아하는 롤리팝이라고 하니 원 앞으로 내용이 어떻게 전개되고 그다지 개운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작품은 이런 신토 카즈마라는 볼품없는, 아니 이 나이에 부모에게 얹혀 살며 가끔 부모를 폭행까지 하는 인물이 열두살의 어린 여학생을 만나 그 어린 아이가 하자는데로 하며 하루하루 즐겁게 보내다가 그녀의 친구들이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녀를 지키기 위해 범인을 밝혀내기 위해 애를 쓴다. 

처음 만난 여자 아이에게 조련당하듯이 끌려 다니는 남자와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 행동하는 어린 아이의 조화가 너무 부자연스러워서 엽기적으로 보였다. 픽션이니까도 한계가 있는 것이고 현실이라고 해도 좀 이상할 상황인데 어느날 갑작스러운 상황은 불쑥 처음부터 등장하는지라 원래 이렇게 시작하는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하게 만든다. 그것이 작가의 힘이지 싶다. 뭐, 따지고 보면 뜬금없기로는 동화 속 이야기들도 만만치않으니까 말이다. 허구란 원래 그런 것이니 더 허구적이면 어떠랴 싶은 생각마저 나중에는 들게 만든다. 

세상에는 별 사람들이 많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게 이상한 사람이 많다. 마흔네살에 인형을 여동생이라 생각하며 대화하는 이는 정상이 아니다. 열두살짜리가 어른에게 롤리팝을 길들인다고 끌고 다니는 것도 이상하다. 등장하는 모든 이들의 상황이 비정상적이다. 그런데 왜 완벽한 허구라는 생각이 안드는 걸까? 세상에는 이런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 작품이라고 일본에만 있는 건 아니다. 사람은 모두 거기서 거기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점들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내가 꿈꾸는 환상적 낙원이 허상이었음을 알려주는 것만 같아서. 

히키코모리의 마흔네살 먹은 남자가 탐정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원빈같은 아저씨만이 어린 소녀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그 의도가 어떤지 노리고 있는 것이 있다면 문제는 달라질 것이다. 본인은 순수함을 강조하지만. 그래서 그가 오히려 범인으로 몰리는 상황이 되자 불쌍하게까지 느껴졌다. 주인공의 모습만으로, 그의 평소 행동만으로 그가 저지르지 않은 죄를 물을 수는 없는 거니까 말이다. 그런데 정말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세상은 이 남자를 어떻게 바라볼까? 이 작품과 같지 않을까 싶다. 인간의 편견이란 무서운 것이다. 자신에게도, 사회에게도.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것이 세상 이치니까. 무섭고 불공평한 세상의 이치. 원빈같은 아저씨만을 원하는 세상이 지금의 세상이니까 말이다. 뒤집어 말한다면 잘생기고 직장있고 멀쩡해보이는 남자가 범죄를 저지르기 쉬운 세상이 지금의 세상이라는 말도 되는 것이다.  

우타노 쇼고의 작품답기도 하고 반면 읽기 찜찜하기도 했지만 히키코모리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하지만 내용은 추리적 기법을 잘 따르고 있어서 그것 하나만은 인정하고 싶다. 몸만 어른인 아이도 많고 몸은 아이인데 정신연령은 어른인 아이도 많고 세상이 공평한 건지 불공평한 건지 만화경처럼 어지럽게 돌아가는 것만 같다. 이런 세상에 내가 살고 있다니 이걸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참 난감한 일이다. 작가의 작품이 이런 의문을 갖게 만든다. 마지막 장에 가서야 비로소 조금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그것도 나름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모순될지는 몰라도.  

작가가 우타노 쇼고라는 점은 처음부터 이 작품을 정독하게 만든다. 작은 단서 하나만으로도 뒤에 가서 뒤통수를 맞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 작가의 특징을 아는지라 곳곳에 작가가 단서를 눈에 보이게 들이대도 믿을 수가 없었다. 작가의 이야기 자체에 또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그것 자체가 트릭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아마도 작가는 그것을 노렸던 것 같다. 믿을 수 없는 상황들이 펼쳐진다. 보이는 것만을 믿지 마라. 보여도 믿을 수 없는 것들이 많으니 그 이면을 파악하는 습관을 들여라. 추리소설이 사회를 담아내는 방법이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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