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둠의 근원
제임스 엘로이 지음, 이원열 옮김 / 시작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열살이라는 나이에 엄마를 잃는다는 건 잔인한 일이다. 나는 지금 마흔이 넘었지만 엄마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도 없다. 더 끔찍한 사실은 엄마를 범죄로 잃었다는 것이다. 누군가 그의 엄마를 살해한 것이다. 작가 제임스 엘로이의 엄마 진 엘로이를 말이다. 하지만 아직 심각한 일은 남아 있다. 아들이 엄마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했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그에게, 그의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 작가는 이제 나이가 들어 어둠 속에 묻어 둔 엄마를 제대로 이해하고자 한다. 

진 엘로이는 빨간 머리의 백인 여성이었다. 1950년 후반 그는 이혼하고 아들을 혼자 키우고 있었다. 왜 그녀가 멕시코인들이 사는 허름한 동네로 이사를 갔는지 당시 아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간호사였고 술을 많이 마셨다. 어느 토요일 아들이 아버지를 만나러 간 날 외출했다가 살해된 채 발견된다. 그리고 그 사건은 미제 사건으로 남는다. 같이 술을 마신 여자와 남자를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고 증언들이 있었지만 범인을 찾을만한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건은 천천히 아들의 삶에 어두운 상상력의 세계를 만들기만 했다. 

작품은 제임스 엘로이의 엄마 진 엘로이의 사건에서 시작해서 그후 제임스 엘로이가 자라는 과정과 아버지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제임스 엘로이의 청소년기에 있었던 약물과 알코올 중독, 절도, 노숙 등 그의 방황은 어떻게 그가 이런 작가가 될 수 있었는지 의아하게 만든다. 그만큼 그에게 엄마를 일찍 잃은 빈자리는 컸고 엄마의 사랑을 인식하지 못한 불안감은 쉽게 떨쳐버릴 수 없는 공포로 남아 그가 현실에서 도피해서 환상속에 집을 짓게 만들었다. 그의 범죄 사건과 범죄 소설에의 탐닉은 그의 엄마에게로 가는 길이었음을 느끼게 하고 있다.  

또한 동시대 경찰들의 사건 해결 과정과 미제로 남는 사건들을 보여주며 미국의 범죄와 경찰의 역사를 되집어간다. 그 뒤 소설가가 되어 그가 집착하게 되어 글로 쓴 LA 4부작속의 <블랙 달리아>, <LA 컨피덴셜>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을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비로소 엄마의 진짜 모습과 마주하고자 시간을 되돌리려 한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과 한 경찰의 경험을 토대로 당시 너무 어리고 아버지의 말만 믿어 방치해둔 그가 해야만 했던 일인 엄마 진 엘로이 미제 사건을 다시 들여다본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사건의 해결, 범죄자를 잡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실과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를 놔주지 않던 근원적 어둠과 말이다. 

작품은 지극히 개인적인 비극을 하나의 사회적 문화의 비극으로, 인류의 비극으로까지 연결되게 잘 정리해서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아픔은 비단 작가만의 아픔이 아닌 범죄에 희생된 모든 이들의 아픔이자 그런 범죄가 발생하게 만든 문화의 상처다. 작품 속에서 작가는 엄마를 잃은 피해자의 아들이었음에도 보호받지 못한 채 사진이 찍히는 언론의 희생양이 된다. 하지만 그 뒤 그는 자라서 언론을 이용해서 엄마의 사건을 풀어보고자 한다. 작가에게 엄마는 금지된 인물이었다. 아버지가 그를 세뇌시켰고 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까지는 아니었지만 엄마에 대한 성적 집착을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의 다른 모습이었다.   

이런 모든 것을 가감없이 보여주며 작가는 아직도 미제 사건으로 남은 엄마 진 엘로이 살인사건에 대한 제보 전화를 기다린다. 어쩌면 그것은 엄마에 대한 그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애정 표현이자 진혼곡이 아닌가 싶다. 또한 작가로써 보여줄 수 있는 범죄의 역사에 대한 비가이기도 하다. 작가 제임스 엘로이의 어둠의 근원은 모든 이들이 가지고 있는 어둠의 근원과 같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그 또한 그 어둠을 잘 헤쳐나왔다. 그가 오늘날 범죄자가 아닌 작가로써 우리 앞에 우뚝 섰다는 것만으로도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시니컬한 말투와 행동을 유지하며 흔들리지 않으려 애쓰는 작가의 글 속에서 비로소 엄마와 마주 선 아들의 코끗을 찡하게 만드는 울림이 들리는 듯하다. '엄마, 제가 왔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은. '늦어서 죄송해요.'라고 미안해 하는 모습이. 이 작품은 너무 진솔해서 불편하지만 그만큼 가치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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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ettugi 2010-06-03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봐야겠네요.

물만두 2010-06-03 14:32   좋아요 0 | URL
제임스 엘로이가 아주 솔직하게 썼더라구요.
꼭 읽어보세요.